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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27화 (527/740)

527화 방금은 노크였어

서둘러 온 보람이 있는 걸까. 때마침 잘 왔다. 어디 가서 못 들을 개소리도 듣고.

“왜들 표정이 구겨졌어? 나 보고 싶어하던 거 아니었나?”

손가락을 뻗었다.

“허구한 날 찾아서 없애겠다고 애들 풀더니 왜 그러고 있어. 옆에 너도 마찬가지야. 다음에 또 보자고 했지? 설마 그게 적으로 만나자는 건 줄은 몰랐는데.”

데이본드야 숭배자인 만큼 내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건 당연했고, 옆에 있는 베칼은 어째서 녀석이랑 붙어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그리 궁금하지도 않다. 세계를 배신하고 숭배자가 된 놈들이야 여럿 봤으니까.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에 속았든지 데이본드가 뭔가 수작을 부렸든지 그것도 아니면 흑마법사들이 말랑말랑한 뇌를 주물럭거렸든지 했을 거다.

다른 건 관심 없다. 슬쩍 주변을 살폈다.

‘싸움이 거칠었나 보군.’

냥펀이 있던 곳도 난장판이었지만 여기는 정도가 더 심하다. 아군 측 피해도 상당해 보이고. 탈모맨도 지친 기색이 있다.

육체적으로는 멤버 중에서 최고인 녀석이 이 정도까지 숨을 거칠게 내쉰다는 건 그만큼 쉽지 않은 전투였다는 뜻.

탈모맨과 샤일이 있었음에도 이 정도라. 역시 데이본드가 강하긴 한 건가. 하기야 군단장이라는 놈들을 부려먹을 정도니 당연한 일이기는 한데.

“저 성검을 조심하는 게 좋아. 교단 쪽은 힘도 못 쓰고 있고, 어째서인지 배반자가 늘어나고 있어. 성검의 효과 같더라.”

“흐음.”

탈모맨의 말에 권능을 사용했다.

[베칼]

-89층 중립 NPC.

-타락한 용사 후보.

-성검, 만트라 스크루저 보유.

-멸망의 저편을 본 자.

일단 베칼이 맛탱이가 간 건 확실해 보였다.

시기적으로 봤을 때, 내가 마족들이 치르던 소환 의식을 방해했을 때에 무슨 일을 당한 게 아닌가 싶은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만트라 스크루저(SSS)]

-마기에 침식당한 성검.

-모두의 우상이었던 자, 속삭이는 멸망의 씨앗이 되리라.

-긍지와 신념을 뒤바꾸는 충동을 일으킵니다.

탈모맨 말이 맞다.

녀석이 간략하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말해 줬고, 베칼이 모습을 드러낸 것과 동시에 곳곳에서 배신자가 튀어나와 전장이 뒤집혔다고.

SSS급 아이템쯤 되니까 저런 말 같지도 않은 능력을 쓰는 건가.

슬쩍 손에 잡혀 있는 혼돈검을 바라봤다.

[이블아이의 혼돈검(SSS)]

-단단합니다.

-혼돈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 능력이 뭐가 중요하냐. 내 새끼 튼튼하기만 하면 됐지.

“그에에.”

옆에서 울어 대는 덕춘이를 무시하고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결국 지금 가장 곤란한 건 베칼이라는 거 아닌가. 탈모맨이 녀석을 처리하려 했지만 데이본드가 방해했을 건 뻔한 일이고 샤일은…….

“호페그라마! 정신 차려!”

“그으으으으!”

호페그라마가 이상 증세를 보이며 주춤하고 있었다.

설마 이제 와서 수명이 다 한 건 아니겠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본인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며 죽는 소리를 했었는데.

“…성검을 부숴야 한다, 인간.”

“아, 너도 이거 때문이었냐!”

아무래도 착각을 한 모양. 호페그라마는 이 세계에 남은 마지막 드래곤. 녀석의 사명은 세계를 수호하는 것이었고, 자신의 신념을 어기게 만드는 성검의 힘은 독이나 마찬가지였다.

겉으로는 저래 보여도 속으로는 파괴 충동과 맞서고 있겠지.

드래곤마저도 흔들리는 걸 보면 보통 능력은 아닌 듯했으나, 다행히 나를 비롯해 핵심 인원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거 같았다.

우선 나 같은 경우에는.

[정신 보호(SSS) Lv.MAX]

[혼돈이 일정 수치를 넘겼습니다.]

[규칙이 일그러집니다!]

정신 계열에 해당하는 능력에는 면역이라고 볼 수 있었고, 가지고 있는 혼돈도 상당해 영향을 아예 안 받는 수준.

겪으면서 알게 됐는데 혼돈이라는 건 혼돈의 파편이 쓰는 능력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템이나 스킬의 영향도 어느 정도 거부하는 힘이 있었다.

애초에 혼돈의 파편만큼은 아니지만 대미지 일부를 없애버리니 말 다 했지.

탈모맨 같은 경우에는 혼돈 수치가 높은 것도 있지만 타락한 성검과 마찬가지로 신성력과 마기를 동시에 가지고 있어 저항력이 높은 거 같고.

‘샤일은 정령이 돕고 있군.’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어땠을지 모르나 샤일은 정령 마법사. 가장 순수한 종족 중 하나가 정령이다. 그만큼 정신적인 오염에 취약하기도 하지만 저항력 또한 높은 것이 사실.

해야 할 일은 정해졌다.

“탈모맨, 데이본드를 막아 줘. 그사이에 성검을 부술 테니까. 할 수 있겠어?”

“당연하지! 혼자서도 버티고 있었는데!”

어쩐지 힘들어하는 거 같더니만, 탈모맨 혼자 두 놈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었다.

2 대 2라면 할 만하다. 탈모맨도 놈들이 쌍으로 덤벼서 곤란했던 거지 따로따로 상대하면 상대할 수 있을 테니까.

굳이 내가 베칼을 잡으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성검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면역이나 다를 바 없기도 했지만.

“검은 검으로 붙어야 제맛이지.”

아무래도 탈모맨은 주먹으로 싸우는 편이라 근접전을 더 선호하는 편이라서.

달라붙기 시작하면 말도 안 되게 까다롭지만 거리를 내주지 않으려 한다면 조금은 곤란할 수 있었다.

반면에 데이본드는.

-촤르르르륵!

저 가시덩굴을 이용해 공격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는데.

-콰직!

탈모맨은 덩굴을 찢는다.

무식하기도 해라. 두께가 어지간한 고목이나 다를 바 없는데 그냥 찢어 버리네. 나였으면 검으로 자르거나 폭발로 터트려 버렸을 텐데.

동작이 간편한 만큼 돌파하는 것도 빠르다. 데이본드 역시 그것을 느꼈는지 날뛰기 시작했고.

-카아아앙!

베칼의 성검과 혼돈검이 맞부딪쳤다. 과연 괜히 용사 후보였던 게 아니었는지 검술이 수준급이다.

녀석의 몸을 지배한 마기가 지독하게 손을 뻗는 건 물론이요, 날카롭게 벼려진 신성력이 빈틈을 찔러 들어왔으니.

“읏차.”

난 몸을 회전시켜 공격을 튕겨 냈다.

혼돈의 파편과 싸우느라 컨디션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완전히 못 할 정도는 아니다.

순간적으로 손에 힘을 빼며 오로라 빔. 이어서 프로즌 브레이크.

급속도로 냉각된 얼음이 깨지며 녀석을 휩쓴다. 여기에 일렉트릭 쇼크를 합쳐 주면.

-콰지지지지직!

강렬한 전격이 얼음 파편을 타고 흐르며 전기 그물이 일대를 뒤덮는다.

아낌없이 워터.

-촤아악

-치지지지지지직!

물까지 쏟아 전격의 파워를 더했고, 일순간 몸이 굳은 녀석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너, 성검도 성물인 거 알아?”

“어리석다. 이 검은 주인을 알아보거늘!”

놈이 소리를 지르든 말든 난 성검을 움켜쥐었다.

입가를 비틀며 웃던 녀석의 표정이 딱딱해진다.

[칭호, 성물 약탈자가 발휘됩니다.]

허무하리만치 빠르게 빼앗긴 검. 이건 손기술도 스킬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일 뿐.

[성검, 만트라 스크루저가 소유권을 거부합니다!]

[칭호, 성물 약탈자가 만트라 스크루저를 짓누릅니다!]

아이템 주제에 의지라도 있는 것인지 내 손을 거부하며 짜릿하게 기운을 뿜어 댔지만 그게 전부다.

자격이 없어도 한 번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성물 약탈자의 힘이니까.

물론 이대로는 쓸모가 없고.

-구구구구구궁!

성검을 쥔 손에 신성력을 불어 넣었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검강과 러브 앤 피스로 신성력을 최대치로 불어 넣었으니.

-투둑. 차아아아아앙!

성검을 잠식하고 있던 마기가 가루가 되어 깨져 나간다.

상극의 에너지라면 더 강한 쪽이 이기는 것이 당연한 진리.

[성검, 만트라 스크루저가 마기에서 벗어납니다!]

[본래의 모습을 되찾습니다!]

기존의 힘을 되찾은 성검이 찬란한 빛을 내뿜는다.

보는 것만으로도 생기가 돋아나는 기분. 아니나 다를까.

[만트라 스크루저(SSS)]

-용기백배!

-모든 버프 효과 증가.

-모든 디버프 효과 감소.

-일정 범위에 있는 이들에게 해로운 효과 일부가 차감됩니다.

-굳건한 의지(S)

S급 스킬까지 같이 붙어 있다. 정신적인 공격을 반감시키고 회복 능력을 상승시키는 스킬.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용사 후보로 오르기까지 온갖 전장에서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았었다지? 아무래도 성검의 효과가 컸던 모양이다.

“어어? 내가 왜 여기에? 아니, 이블아이! 그건 내 성검……!”

“시끄러워!”

-까앙!

난 정신이 돌아온 베칼의 머리를 손잡이로 내려찍었다.

그대로 기절해 쓰러지는 녀석.

“샤일! 이 녀석 좀 적당한데 치워 줘!”

“과연 이블아이. 사람을 물건처럼 대하는군. 알았어!”

샤일이 냉큼 옆으로 다가와 베칼을 챙긴다.

오염된 성검이 되돌아오며 베칼을 비롯한 변절자 일부도 제정신을 찾은 것 같았으나 아직 호페그라마는 혼란스러운 상태.

회복해서 전장에 합류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할 거다.

그사이 난 탈모맨과 함께 데이본드를 처리하면 되겠지. 선발대는 덕춘이.

“가랏!”

“그에에엑!”

거리가 떨어져 있어 급한 대로 덕춘이를 집어 던졌다.

한창 탈모맨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던 녀석의 시선이 덕춘이에게로 향했고.

“퉷.”

“크하아아아악!”

산성 가득한 침이 얼굴에 떨어지자 기겁하며 뒤로 몸을 빼낸다.

얼굴 한가득 묻었네. 지금까지 침을 모아두기라도 한 건가. 아무리 고통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얼굴 전체가 녹아내릴 거 같은 통증이라면 움찔하기 마련.

[정의의 일격(S) Lv.MAX]

-콰아아앙!

타이밍을 높치지 않은 탈모맨이 데이본드의 복부 깊숙이 어퍼컷을 꽂는다.

보는 것만으로도 내장이 뒤집히고 척추가 꺾이지 않을까 싶은 충격파.

눈을 부릅뜬 녀석이 속을 게우며 뒤로 구른다. 그 와중에도 사방에 가시나무를 뻗어 몸을 보호하는 것도 잊지 않았는데.

“망구야, 가자.”

“끼에에에엑!”

난 곧장 잊히지 않는 창기사를 사용해 망구를 소환해 보냈다. 응원의 의미로 어깨를 두드려 준 건 덤.

창술의 귀재. 다른 잡다한 놈들을 상대할 때도 좋은 선택지지만.

-스르르륵

망구는 타고나길 망령. 무자비한 창술과는 별개로 고스트에 가까운 몸을 지녔다. 아무리 가시나무를 촘촘하게 감쌌다고는 하나 완전 밀폐는 아니었고.

-따악

내부까지 들어갔다고 판단됐을 때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콰아아아아아앙!

“끼에에에엑!”

가시덩굴 안에서 들려오는 폭음과 망구의 외침.

도로 어깨에 올라탄 덕춘이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미안하다, 망구야. 잊지 않을게!”

“게에에.”

그렇다. 안으로 들여보내기 전에 두드렸던 어깨.

그곳에 시한폭탄을 설치해 뒀다. 생각해 보니까 이런 식으로도 응용할 수 있을 거 같더라고.

망구야 다시 소환할 수 있는 거고. 미안하기는 하지만 매우 효과적인 방법인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이래서 스킬 이름이 잊히지 않는 창기사였나.

아무튼 보호한답시고 쳐두었던 가시덩굴은 데이본드를 제대로 된 보호를 하지 못했고, 망구를 통해 대미지까지 넣었다.

바로 반응이 오지 않는 것으로 봤을 때 탈모맨에게 맞은 대미지가 적지는 않은 거 같고.

“저 녀석 나오면 부탁할게.”

“나만 믿으라고.”

탈모맨 옆에 덕춘이를 두고 넝쿨 안으로 몸을 던졌다.

고스트에 가까운 망구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건 나 역시 안개질주를 통해 진입할 수 있다는 뜻.

단순히 폭발 좀 먹이려고 망구를 희생한 게 아니었다. 들어갈 수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한 거지.

그동안은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했지만 응용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법.

[안개 질주(S) Lv.MAX]

-사아아아아악

미세한 틈을 파고들었다. 빛을 가려 어두운 공간이었으나 야간 시야를 가진 내게는 훤히 보이는 공간이었으며.

“방금은 노크였어, 데이본드.”

“이블, 아이!”

[안개화가 종료됩니다.]

[망자귀환(SSS) Lv.2]

[되갚기(SSS) Lv.3]

복부를 움켜잡은 녀석과 눈이 마주친 순간.

챕터가 진행되며 흘러간 시간 동안 강화된 스킬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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