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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21화 (521/740)

521화 둘이 대화하게 놔두고

갑작스러운 기습.

설마 자신을 찌를 줄은 몰랐는지 마탑주의 눈이 부릅떠진다.

문을 부수고 달려든 마법사들은 물론이고 마탑과의 전투를 준비하던 파반트 역시 입을 벌렸고.

“이블아이! 무슨 미친 짓이야!”

나를 직접 데리고 온 샤일은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질렀다.

순식간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비틀었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마탑주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지만 피식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연기하지 말고 정체를 드러내시지, 7군단장.”

“7군단장?”

가장 빠르게 내 말에 반응한 건 파반트. 녀석이 재빨리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확인한다.

무려 500년간 이어진 계약을 통해 얻어낸 최종 정보. 7군단장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게 하나.

‘이미 7군단장은 이쪽 세계에 있어.’

아마 500년 전 침공 때 마계로 돌아가지 않았던 거겠지. 그게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상하건대 지금 날뛰고 있는 흑마법사를 모으고 수작을 꾸민 것도 녀석의 입김이 닿은 게 아닐까 싶다.

아무리 흑마법사 중에 숭배자가 다수 섞여 있다지만 암만 그래도 군단장들이 너무 빨리 넘어왔거든.

이번에 마왕을 소환하려고 했던 것도 그렇고.

“이, 이런 제기랄!”

파반트가 거칠게 종이를 찢는다.

허공에 흩어지는 서류 더미에 적혀 있는 문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화살표 하나. 그게 전부였지.

마탑과의 계약은 종료되었다. 마탑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내놓았다고 시스템이 인정을 했다.

그야 그렇겠지. 이전에 있던 진짜 마탑주는 죽었고 정체를 숨긴 7군단장이 마탑주 자리에 있었으니까.

“농락하고 있었구나, 제코 말린!”

그토록 찾고 있던 대상에게 기만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파반트가 달려들었다.

마탑주. 아니, 마계의 7군단장을 향해 검과 손을 내뻗는 우리를 보며 혼란에 빠졌던 마법사들이 마법을 난사했다.

“마탑주를 지켜라!”

“배신자다!”

“마족 자식! 배신할 줄 알고 있었어!”

그들이 지금까지 모셨던 인물을 마족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우리가 배신자라고 생각하는 편이 편하겠지.

간악한 녀석은 지금도 마탑주의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고통에 신음하는 듯했지만 푹 숙인 고개 아래, 놈의 입가가 올라간 모습이 보인다.

-쿠과과과광!

등 뒤로 마법이 터지며 충격이 몰려온다.

내 방호력을 뚫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

특히나 저 녀석들이 끝이 아니다.

-삐이이이익!

지하를 파고 만든 무너진 마탑.

내부를 밝히기 위해 설치한 발광석이 일제히 붉은빛을 내뿜더니 요란한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만약의 상황 발생 시 내부에 대기 중이던 마법사들을 모으는 것.

쿵. 쿵. 묵직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느껴지는 것이 층마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파반트를 상대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거 같다.

어디 보자, 여기가 대충 지하 14층 정도 되니까.

“이건 뭐 건물로 된 무덤이나 다를 바가 없군.”

콰아아아앙!

폭발을 일으켰다. 기묘한 움직임으로 마탑주가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고 대신 벽이 터져 나갔다.

파편이 어지럽게 날아갔지만 벽이 완전히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이 정도 규모의 지하 시설을 만들려면 어지간한 사이즈로는 힘들 테니까. 특히나 온갖 마법 실험을 하는 게 마법사다.

마법적인 처리는 물론이고, 강도도 일반적인 건물과는 궤를 달리하겠지.

아쉽게 됐다. 건물이 무너지면 땅굴 이동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는데.

“읏차.”

뒤에서 날아오는 마법을 피해 내며 마법사 한 명의 턱을 발끝으로 쳐 냈다.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천장까지 솟구쳤던 녀석이 바닥에 떨어졌고, 이어 바닥에 굴러다니는 파편을 걷어찼으니.

“크억!”

미쳐 반응하지 못한 다른 마법사 역시 코피를 줄줄 흘리며 벽에 기대 잠들었다.

“멍청한 녀석아! 베리어를 써!”

“언제 뭐가 날아올 줄 알고!”

“인지 마법은 폼인 줄 알아? 이래서 경험 없는 녀석들은!”

샤일과 같이 전투 마법사면 모를까 내부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물리적인 기습에는 약하단 말이지.

마법이야 징조가 있으니 마나에 예민한 마법사들은 바로 반응하겠지만 사각에서 날아오는 돌멩이는 무슨 수로 알아차릴까.

자동 베리어 아니면 탐지, 인지 마법을 상시 두르고 다니는 수밖에 없다. 비효율적인 방법인 건 말할 것도 없다.

그건 그거고.

“걱정 마라, 샤일. 죽지는 않았을 거야. 살살 쳤거든.”

“그래야지, 자식아! 이 또라이 같은 새끼!”

어느새 나와 파반트를 도와 뒤에서 몰려오는 마법사들을 막는 샤일에게 외쳤다.

7군단장이 노리는 건 분명했다. 무너진 마탑의 내분, 혹은 세력 깊숙이 침투해 마탑을 무너트리는 것.

그 여파가 마탑에서 끝날지 교단이나 제국까지 미칠지는 잘 모르겠지만.

‘준비를 오래 했어. 녀석이 마탑주 위치에 있으니 다른 마족들이라고 없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고.’

어쩌면 이미 제국 깊숙한 곳에 첩자가 있을지도 몰랐다. 있다고 보는 게 맞겠지. 혼자서 이러고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으니까.

제국에서는 군단장들이 죽으며 흑마법사의 힘이 크게 줄었다고 판단했지만 과연 그럴는지.

“이블아이, 마탑주가 7군단장인 건 맞겠지? 그치?”

“그럼. 나 못 믿어?”

“믿으니까 이러고 있지!”

나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샤일이 곧장 내 편이 되어 같이 싸워 줄 리가 없다.

적어도 이런 일에 있어서 내 말이 틀린 적은 없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제코 말린]

-무너진 마탑의 마탑주.

-7군단 소속입니다.

-다양한 마법과 신비를 다룰 줄 아는 강자!

-눈을 떼지 마십시오. 찰나의 순간에 뒤통수를 맞을 테니까!

권능을 통해 보인 정보가 명확하게 정답을 말해 주고 있었다.

설명대로 온갖 이상한 마법을 쓰는 녀석이다. 연달아 공격해 댔고 피할 공간조차 주지 않았는데 어떻게든 공격을 피하거나 흘려내고 있다.

-카앙!

베기 도중 찌르기로 바꾸어 목을 노렸지만 간발의 차이로 빗나갔다.

각도가 틀어진 건 아니다.

“슬라임이라도 되냐!”

“그거 실례되는 말이군.”

신체를 제멋대로 움직여 목 두께가 어린아이처럼 얇아졌다.

그뿐일까. 관절의 가동 범위를 넘어선 각도로 허리를 비틀거나, 순식간에 근육을 부풀려 위험한 일격을 막아 내는 등 괴상한 짓을 해 대고 있다.

진짜 도플갱어도 이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 게다가 단순히 도망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촤라라라락!

머리카락이 급속도로 자라더니 그대로 날 베려고 들어왔다.

가닥가닥이 칼처럼 날카롭다. 사람의 머리카락 개수가 10만 개라고 했던가. 말 그대로 수만 개의 칼날이 덮쳐 오는 것과 같은 꼴.

-촤아아악!

벽, 천장, 바닥 할 거 없이 사방을 난도질한다.

자신을 도우러 온 마법사들이 휘말리는 건 신경도 안 쓴다. 애초에 마족이니까 관심도 없겠지.

웃기는 건 마법사들 또한 사람이 아닌 기행을 보고도 계속해서 나를 공격하고 있다는 것.

현혹 마법이라도 당한 건가. 무너진 마탑도 한물갔군.

-주르륵

미친 듯이 쏟아지는 머리카락을 크게 튕겨 내며 뒤로 미끄러졌다.

잠깐이지만 샤일과 등을 맞댔고.

“힘 좀 더 써 봐. 마탑에 이 녀석이 있다는 건 교단에 마족. 아, 마족은 아니겠군. 흑마법사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거니까.”

“헤렐다!”

“맞아, 헤렐다도 위험할지 몰라.”

샤일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렸다.

놈이 아무런 조치 없이 이곳에 있을 리가 없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마족과 흑마법사에게 전달하고 있을지 모른다.

물론 쉽게 당하지는 않을 거다. 교단 사람들은 마기에 더 예민하니까.

게다가.

‘핥짝이도 그쪽에 있다고 들었어.’

무슨 일이 생기면 핥짝이가 바로 움직일 거다. 핥짝이면 믿을 수 있지. 교단도 나름 철저하게 헤렐다를 보호하고 있을 거고.

머리로는 그렇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었고.

“뭐 해, 파반트! 그동안 찾아다니던 녀석이 앞에 있잖아! 얼른 뭐라도 좀 해 봐!”

“아, 알았다.”

“바람이여!”

내 말이 기폭제가 된 샤일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무지막지한 압력으로 달려오는 마법사들을 밀어 버리는 동시에 순간적으로 진공 상태를 만들어 기절시키기까지.

-구구구구구궁

위에서부터 진동이 울린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수준. 어디 폭격이라도 하고 있는 건가.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여기까지 울릴 정도면 보통 난리가 아닐 거 같은데.

그거야 나가서 확인해 보도록 하고.

“파반트, 오래 끌어서 좋을 거 없어.”

“나도 안다!”

나와 파반트는 계속해서 마탑주, 제코 말린을 압박했다.

뭐가 됐든 7군단장. 군단장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서걱!

-카아아아아앙!

나 또한 군단장 여럿 보낸 이력이 있었고, 파반트 역시 전투력으로만 따지면 군단장보다 윗급으로 평가받는다고 했었다.

파반트를 확실히 잡기 위해 밀실을 골랐으나, 녀석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나와 샤일.

궁지에 몰린 것은 녀석이었고.

[일렉트릭 쇼크(SS) Lv.6]

“크아아아아악!”

광범위하게 펼친 전격에 놈이 직격당한 틈을 노려 파반트가 마기로 이루어진 검을 내리꽂았다.

살기 가득한 것이 한 번에 보내 버리려는 거 같은데 그건 또 안 돼서 말이야.

가볍게 발을 내뻗어 검의 경로를 비틀었다.

졸지에 배가 꿰뚫린 녀석이 비명을 질렀고, 막바지에 방해를 받은 파반트가 날 노려봤다.

“지금 죽이지는 말자고.”

“놈과의 원한은 네가 끼어들 게 아니야.”

“그건 맞는데 도와준 게 있잖아?”

턱 끝으로 마탑의 마법사들을 상대하고 있는 샤일을 가리켰다.

복수를 방해한 건 미안하지만 이 정도 껴들 자격은 나한테도 있어서 말이지. 나 아니었으면 운이 좋아 봤자 동귀어진. 현실적으로는 조롱받다 죽었을 놈이다.

녀석 또한 그 사실을 알기에 한차례 노려보는 것으로 더 이상 말이 없다.

“복수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잠깐 미루라는 거지. 보다시피 오해를 받고 있어서. 녀석이 마족인 것도 확인시켜 줘야 하고.”

콰득!

“크아아악!”

7군단장의 발등을 밟아 부쉈다.

“이 녀석이 어디까지 마수를 뻗쳤는지 알아보기도 해야 하거든.”

도망칠 때를 대비해서 기동력을 없앨 생각이기는 한데 워낙 신체 조절을 자유자재로 하는 녀석이라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도주하려 하면 그때마다 다리를 부러트리든 하지 뭐.

과정이야 어찌 됐든 7군단장을 잡았다. 놈들이 내부에 침투한 것도 알게 됐고, 전투도 큰 피해 없이 마무리됐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되겠지.

“샤일, 죽은 사람은 없지?”

“어어. 죽으면 내가 죽겠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람.”

오케이. 사망자가 있으면 곤란할 뻔했는데.

오해가 있었더라도 반감을 사게 되니까.

그럼 이제.

“슬슬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지, 응? 아니면 좀 도와줄까?”

녀석이 마족인 것부터 증명해 보자.

징그러운 녀석. 이렇게 당하고도 여전히 마탑주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팔다리 늘리면서 괴상쩍은 짓은 다 했으면서도 말이지.

고집부려도 괜찮다.

“마침 여기 도움을 주고 싶은 녀석이 있거든.”

툭. 샤일의 어깨를 두들기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마법사를 챙겨 문밖으로 나섰고.

“죽이지만 마. 그럼 우리도 커버 못 쳐 주니까.”

“그 정도는 해 주지.”

끼이이익. 쿵.

둘이서 할 이야기가 있는 듯해 자리를 비켜 줬다.

문 너머로 비명 소리가 들린 것도 같은데 착각이겠지 뭐.

그동안 우리는…….

“다들 흥분한 거 같은데 머리 좀 식혀 줘야겠다.”

“하이고, 진짜.”

전멸한 마법 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새롭게 내려오고 있는 마법사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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