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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17화 (517/740)

517화 사람은 없다

예상 외의 인물의 등장에 긴장감을 끌어 올리는 것도 잠시. 이내 손에 힘을 뺐다.

상대방을 믿어서는 아니고, 나를 보고 반가워하는 것이 경계심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모습이라서 말이지.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베칼]

-89층 중립 NPC.

-용사 후보 중 하나.

-성검, 만트라 스크루저 보유.

-당신에게 호의적입니다.

-묘하게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권능을 통해 보이는 정보. 내게 호의적이라, 동시에 라이벌 의식도 가지고 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게드릭을 잡았다는 소식은 들었지. 그때도 녀석을 잡으려 했었잖아? 아쉽게 놓쳤었지만. 어, 설마 기억 안 나는 건?”

“기억나. 그때 잘 싸우던걸.”

“하하하하! 인연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첫 번째 챕터 때 혼령탑에서 게드릭을 잡으려 했었다. 결과적으로는 챕터가 종료되면서 잡지 못했지만.

당시 온갖 자칭 용사들이 나섰다가 떼죽음을 당했었는데 이 녀석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제대로 된 실력자였다는 게 달랐을 뿐.

이 녀석도 당시에는 게드릭을 놓쳤었다. 그러니 내가 이전 챕터에서 게드릭을 잡을 수 있었지.

고생하기는 했지만 보상으로 혼돈 수치를 짭짤하게 받아서 그다지 아쉽지는 않았다.

‘혼돈은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니까.’

특히나 보다 강해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점이 중요하다. 동시에 100층에 도전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고.

재앙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규칙에 저항할 수 있을뿐더러 일정 수치를 넘어서면 상대방의 스킬의 효과도 무시할 수 있다.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혼돈의 파편처럼 상대방 공격의 대미지를 일부 덜어 낼 수도 있고.

장점이 많기는 하지만 얻기가 어려운 것이 단점. 그나마 80층대에 들어서고 나서부터는 혼돈의 파편과 마주쳐 폭발적으로 수치가 늘어나기는 했다.

‘음?’

이렇게 생각해 보니 80층대도 이상하군.

난이도만 생각해 보면 굳이 혼돈의 파편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될 텐데 지금까지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끼쳐 왔다.

거인계에서는 대놓고 나왔었고, 정령계 역시 내가 직접 계약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모습을 드러냈을 거다.

이곳은 아직까지는 별다른 소식이 없지만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고.

어째서? 물론 직접적으로 놈들이 뭔가를 하지는 않을 거다. 작정하고 날뛰기 시작하면 사실상 클리어가 불가능할 지경에 이를 테니까.

시스템은 이런 쪽으로는 철저한 편. 여태까지는 탑이 탑처럼 행동했구나 하고 넘어갔었는데.

‘자세히 생각해 보면 그런 것도 아니야.’

난이도가 높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90층에서 상대해야 할 적을 생각해 보면 그런 것도 아니다.

혼돈의 파편은 이미 모습을 드러냈고, 보나마나 90층대에서는 직접 움직이기 시작할 테니까.

그동안 탑은 놈들과 싸울 수 있도록 여러 준비를 해 놨다. 70층에서는 혼돈의 파편의 열화판과 싸울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두었고, 80층대에 들어오고 나서는 간접적으로나마 놈들의 위험함을 체감할 수 있게 해 줬으니까.

다르게 말하면…….

‘싸움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한 거야.’

더불어 보다 높은 난이도의 공략을 이어 나가 혼돈 수치를 획득하도록 유도하고 말이지.

70층대에서 이미 학습시키지 않았던가. 그냥 가만히 있어 봤자 위로 올라갈 수 없음을. 더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이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당장 79층에 머물고 있었던 상위 헌터들도 80층을 넘어서자마자 눈에 띄게 활약하고 있었다.

탑은 의도적으로 우리가 혼돈 수치를 올리도록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는 건…….

‘90층에 올라가기 위한 조건도 혼돈일 가능성이 크군.’

적어도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어디까지나 가능성. 분명한 건 다른 상위 헌터들과 접촉해 알아낼 생각이다.

게다가 그 녀석들이 아니더라도 힌트를 얻을 방법은 있다.

이미 마지막 챕터에서 해야 할 일은 정해 뒀다.

‘일단은 오지혁부터. 녀석이라면 루키 그룹과도 소통할 수 있으니까.’

그다음이 다른 상위 그룹 소속 헌터다.

커뮤니티로 멤버들에게 다른 이들의 위치를 알아봐 달라고 하면 되겠군. 다들 지금쯤이면 각자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있을 거다.

나도 그러기는 해야 하는데. 다른 녀석들이야 그렇다 쳐도 샤일 이 자식은 어디로 간 건지 모르겠다.

하기야 무조건 만나라는 법은 없으니 불만을 가질 건 아닌데.

뭐, 만약에 일이 꼬여도 내게는 릴카의 퀘스트가 있지 않은가.

[릴카의 부탁(7)- 강제 퀘스트]

-당신을 위한 마음이 느껴지시나요?

-감사한 마음으로 구르란 말입니다!

-라프테의 마지막 양심(0/1)

-목걸이는 반짝반짝입니다!

80층대에 들어오고 릴카에게 받은 퀘스트.

라프테의 마지막 양심이라. 여전히 답을 알 수 없는 퀘스트다.

90층에 오르는 단서가 된다는 말에 80층대에 들어온 이후부터 계속해서 찾고는 있는데, 적어도 지금까지 이어진 시나리오에서는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설마 지나친 건 아니겠지?’

평소였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어느덧 89층이다. 이번에 찾지 못하면 퀘스트에 실패하는 건 물론이요, 단서조차 얻을 수 없다.

조급해하지 말자. 어떻게든 방법이 있겠지.

속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는 타이밍.

[기억이 생성됩니다.]

“으음!”

때마침 기억이 생성되었다. 정보를 얻기 쉬운 방법은 아무래도 이쪽. 특히나 거짓은 아닐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이봐, 괜찮나?”

“안색이 안 좋은데.”

갑작스럽게 머리를 쥐자 반응을 보이는 녀석들. 손을 내저었다.

“별거 아니야. 전에 다친 상처가 잠시 아팠을 뿐이지.”

“부상은 제때 치료해야 한다고. 내가 봐주지. 이래 보여도 힐러라고.”

“외상은 전부 치료했으니 괜찮다.”

“그렇다면야 뭐.”

힐러라고 하는 녀석에게 적당히 변명하고 생성된 기억을 살폈다.

시간이 생각보다 흘렀다. 대략 3개월이 좀 넘는 시점.

‘상황 자체는 나쁘지 않아. 적어도 지금은 말이야.’

빠르게 지난 시간 동안 세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인해 본 결과, 큰 사건이 터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밖으로 나왔던 군단장은 두 번째 챕터에서 모두 죽었다. 가장 위험했던 적들이 사라진 만큼 흑마법사의 세력도 크게 약화됐고.

‘놈들이 꾸미던 계략들도 대부분 실패하거나 뒤로 미루어졌어.’

군단장이 사라진 것을 기회 삼아 제국이 놈들의 본진을 밀어 버렸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힘이 없을 때는 기회를 노리며 몸을 숨기는 것이 상책. 흑마법사 무리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현재는 제국을 필두로 마족의 땅을 수복하는 것에 힘을 쓰고 있었다.

여전히 남아 있는 마족과 흑마법사들이 끊임없이 공격을 해 댔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들을 상대하는 법 또한 습득한 이후였다.

여기에 하나 더.

“샤일 이 녀석이 안 보인 데는 이유가 있었군.”

왜 샤일이 보이지 않았는지에 대한 것도 알 수 있었다.

교단의 힘이 강해졌다. 이유는 성녀의 등장. 말할 것도 없이 헤렐다다.

샤일에게 교단과 거래를 하면서 헤렐다의 신변을 지키라고 조언하기는 했지만 진짜로 했을 줄은 몰랐는데.

결과적으로는 잘됐으니 다행이다. 아니, 너무 잘됐다고 해야 하나.

‘교단이 더 커진 건 물론이고 무너진 마탑도 양지로 올라왔다라.’

샤일과 헤렐다를 연결 다리로 교단과 무너진 마탑이 크게 성장했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게 세상이 망하면서 마법사 대부분이 흑마법사 무리로 넘어간 상황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과 함께하거나 모습을 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무너진 마탑이 부활을 표명하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은거하던 마법사들이 모습을 드러내 무너진 마탑으로 향한 것.

게다가 교단의 신성 마법사 군단과 교류까지 했으니 멀찍이 떨어져 구경만 하고 있던 마법사들도 호기심을 느끼고 합류했다.

마법사 전력이 늘어난 것만 해도 충분한 성과.

특히나 헤렐다의 예지 능력은 전략의 핵심과도 같았으니.

“든든한 빽 하나 생겼네.”

지금에 이르러서는 샤일의 위치 또한 높아져 있는 상황이었다.

내 중얼거림을 들은 걸까, 베칼이 관심을 보인다.

“샤일? 방금 샤일이라고 했나? 드래곤을 부리는 자?”

“오호, 그 사람과는 한 번쯤 만나보고 싶었는데. 소문이 무성해. 제국 내에서는 진정한 용사라는 말도 있던데.”

“진중하면서도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들었어요.”

눈을 반짝이며 떠들어 대는 녀석들.

진중하고 정의롭다라.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 아무튼.

‘샤일은 제국 내에서 활약하고 있겠군.’

위상이 높아지면서 예전처럼 밖에 나돌아다니며 싸우는 빈도가 줄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헤렐다의 꿈을 해석할 수 있는 건 녀석뿐인지라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거나 죽어 버리면 난처했다.

나야 제국 내에서 정치질하기 골 아파서 개인행동을 이어 나가기로 한 거고.

지금 내가 이쪽에 있는 이유는 하나.

“너희도 마족을 찾아 왔나?”

“아아, 소식 들었나 보군. 맞아. 어느 순간 모습이 뜸하다 싶더니 어디론가로 이동하고 있더군. 여기는 꽝이었지만.”

“어중이떠중이만 있더라고.”

마족이 이동하고 있다.

최근들어 제국과 왕국에 공격해 오는 놈들은 흑마법사와 수준이 떨어지는 마족 정도.

제국과 교단에서는 토벌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라며 대중을 안도시키고 있지만, 뒤로는 적들의 핵심 인력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조사 중이었다.

워낙 은밀하게 이동 중이어서 알아차리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헤렐다의 예언 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고.

난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녀석들도 마찬가지인 거 같고.

“방향이 같은 듯한데 함께 움직이는 건 어때? 앞으로 어떤 놈들이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나쁘지 않은 제안이군.”

베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털었다.

“하지만 거절하지.”

“응? 왜?”

“혼자가 편하거든.”

“여기부터는 위험해! 지형도 바뀌어서 지도도 소용없어. 사실상 미개척지를 뚫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이 앞으로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그저 방향성 정도만 안다고 해야 하나. 마기의 영향 때문인지 나침반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니 까딱 잘못하면 길을 잃고 헤매겠지.

보통이라면.

“먼저 가지. 만나서 반가웠다.”

“이봐!”

-파앙

녀석이 뭐라 말을 걸기도 전에 앞으로 뛰쳐 나갔다.

굳이 혼자 움직이려는 이유는 하나.

‘무너진 마탑의 지부 중 하나가 있다.’

사람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과거에 사용했던 무너진 마탑의 지부가 있을 뿐.

샤일이 내게 전해 준 정보가 있다.

마족들이 한곳에 모이고 있다는 것과 그곳으로 가는 길에 마탑이 있으며 마탑에 들어가면…….

‘마족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애초에 무너진 마탑은 마족을 쫓는 집단. 마족을 상대하는 기술과 데이터는 교단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앞서 나가는 부분도 다수 존재한다.

베칼과 녀석의 무리들을 데리고 간다면 조금은 편할지도 모르겠으나.

“그건 안 돼.”

그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가 찾아가려는 곳에 사람은 살지 않는다.

대신…….

“마족을 데리고 있을 줄은 몰랐군,”

마족은 한 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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