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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14화 (513/740)

514화 뒷마무리

신성력과 혼돈을 담은 검강.

평소와는 달리 기묘한 빛깔을 띠며 놈의 팔을 잘라 낸다.

쇳덩이도 잘라 버리는 것이 검강이다. 하물며 놈과 상극인 신성력까지 있다면 데카르의 두꺼운 팔을 잘라 내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었다.

-쿠웅

무슨 놈의 팔이 나무기둥 떨어진 소리를 낸다.

워낙 깔끔하게 잘랐기 때문일까, 바닥에 떨어진 팔의 신경이 살아 있는지 펄떡거린다.

절단된 면으로부터 피가 흘러나오는 건 덤.

“크흡!”

데카르가 처음으로 신음 소리를 낸다.

놈의 근육이 부풀더니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한다. 이마에 핏줄이 선 것이 쉽지는 않은 모양.

처음에 발이 잘렸음에도 바로 재생시켰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나중에 혼돈의 파편을 상대할 때 쓰려고 연습했던 건데 다른 놈들한테도 유용하게 쓰이는군.’

전력 증강의 필요성을 느끼고 눈길을 준 것이 혼돈.

시작은 권능을 사용해 S급을 뛰어넘는 스킬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고, 그다음은 조금씩 다루기 시작한 혼돈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 자체만으로는 별다른 힘을 내지 못하는 것이 혼돈.

다른 기술이나 힘에 섞어서 쓰거나, 아니면 지금처럼 어떠한 규칙이 있는 대상에게 사용해야 힘을 발휘했다.

혼돈의 파편 같은 경우에야 자기만의 법칙을 새로 써 온갖 현상을 불러일으켰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혼돈의 파편이 아니라서 그럴 수는 없었으나 지금은 이걸로 충분했다.

-파앙!

옆으로 돌며 검을 휘둘렀다. 위에서 아래로. 대각선으로 긋다가 꺾어서 위로 쳐올리기.

데카르 역시 재생 중인 팔을 보호하며 반대 손을 휘두른다. 언제 어떻게 잘릴지 모르건만 과감하게 손을 뻗는 모습.

싫지 않다. 그렇게 나와주면 나야 더 쉽게 놈을 잡을 수 있으니까. 절단상을 입은 만큼 출혈이 심한 상태.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마족이라 한들 무한정 피를 쏟을 수는 없다.

깊지 않아도 된다. 최대한 많이 살을 가르고 혈관을 찢으면 승리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필승에 가까운 전략.

“크하아아아아!”

녀석이 포효를 내지른다. 고통을 잊기 위한 발버둥일까.

그건 아닌 거 같다. 삽시간에 녀석의 몸에 마기가 폭증했다. 넘실거리던 시커먼 기운이 이내 형태를 갖추고 녀석의 전신을 뒤덮었으니.

-카앙!

내가 내민 검이 녀석의 어깨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가볍게 던졌다고는 하지만 쉽게 쳐낼 만한 공격은 아니었을 텐데.

‘마기로 외갑을 만든 건가.’

일종의 보호막처럼 검이 신체에 직접적으로 닿지 않도록 층을 만든 거다.

밀도가 무식할 정도로 높아 내부에 파고들기도 전에 막힌 거고.

엄청난 마기량과 그것을 다룰 수 있는 감각, 충격을 버텨 낼 수 있는 피지컬이 있어야 가능한 기술.

본인의 장점을 극대화할 줄 아는 녀석이었다.

‘확실히 다르다.’

연옥계에서 만났던 악마들과는 전투 센스부터 기술까지 차원이 다르다.

애초에 연옥계에 있던 이들이 마계에서 자신의 영역을 가지지 못해, 기회를 찾아 이곳에 온 것인 만큼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군단장이라는 자리에 앉아 있을 만큼 전투 경험도 풍부할 게 뻔하니 당연한 이야기인가.

“죽어라!”

-콰르르르릉!

천둥과도 같은 소리와 함께 녀석이 내지른 주먹에서 충격파가 퍼져 나왔다.

땅이 뒤집히고 바람이 찢어지는 파괴력. 순간적으로 샤일의 정령 마법이 휘몰아친다.

아주 잠깐의 순간이었으나 접근전을 하고 있는 녀석에게 있어서는 파고들기 충분한 시간.

-콰앙!

묵직한 주먹이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검을 쥐고 있는 팔을 오므리며 막아 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

그대로 뒤로 밀려나 땅에 처박혔다. 그나마 샤일이 보조를 해 줬기에 이 정도로 끝났지, 그게 아니었다면 몇 번이고 튕겨 나가고 나서야 멈춰섰을 거다.

-쿠구구구궁!

거대한 덩치에 맞지 않는 속도록 달려온 녀석이 발을 내리찍는다.

거구에서 나오는 파워와 육중한 무게. 머리를 노리고 들어오는 발을 옆으로 굴러 피해 내자 다이너마이트라도 심어 놓은 것처럼 주변이 박살 나 비산한다.

“괜찮냐!”

“어, 아직은. 저거 한 대 맞으면 골로 가겠는데.”

정통으로 맞았다가는 나도 정신을 잃을 거 같다. 어쩌면 토마토처럼 퍽하고 터지던가.

그러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가 움직임이 살짝 느려진다. 반면에 녀석은 줄기차게 피를 쏟아 내면서도 기세를 줄이지 않고 있고.

‘살짝 아쉽군.’

녀석이 마족이 아니었다면 좀 더 편하게 상대할 수 있었을 텐데.

마기는 혼돈과 가장 비슷한 힘. 저렇게 두툼히 마기로 몸을 감싸고 있으니 아까처럼 공격하기가 쉽지 않다.

기습적으로 오로라 빔을 쐈다.

“크흥!”

게드릭처럼 마법적인 뭔가가 있는 건 아니라 우직하게 몸을 받아 내는 모습.

관통력만큼은 굉장한 스킬인 만큼 황소같이 달려들던 녀석이 주춤한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직선으로 맞으면 무시하기 힘들지만 다르게 말하면 측면으로 맞으면 저지력이 떨어진다는 말.

영악하게도 수시로 위치를 바꾸며 접근해 온다. 직격을 피하고 최대한 흘려보낼 수 있는 모양으로.

이내 10미터 거리에 들어오는 순간 일렉트릭 쇼크를 사용했다.

-파지지지직!

전 범위로 뻗어 나가는 전격.

일순간 녀석의 몸에 마비가 왔고, 그 타이밍에 맞춰 검을 찔러 넣었다.

녀석이 나를 상대하기 위해 전략을 바꾸었듯 나 역시 그랬으니.

-콰직!

밀도 있게 쌓인 마기의 층을 뚫고 검이 녀석의 무릎을 찔렀다.

기동성을 위함인가 비교적 관절에는 마기가 옅었다. 거기에 찌르기. 힘을 한 점에 모아 내지른 일격은 녀석이라도 참기 힘든 것이었고, 기어코 마기를 뚫고 놈의 무릎을 찍었다.

보통이라면 이번 일격에 무릎이 잘렸겠지만, 놈의 덩치와 근육과 뼈의 강도에 어이가 없을 정도.

-쿠웅!

앞으로 고꾸라지려던 녀석이 땅을 디딘다.

근성인가, 아니면 마족이라 인대가 사람의 2배는 많은 건가.

재생도 제대로 안 될 텐데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있다. 어찌 됐든 지금까지 녀석이 보여 줬던 기동력은 잡았다고 보면 됐는데.

“이런 전투는 오랜만이구나!”

녀석은 되려 멀쩡한 다리를 추진력 삼아 몸을 날렸다.

“미친 녀석.”

쏜살같이 달려오는 녀석을 피해 옆으로 굴렀다.

그 자리에 서 있었다가는 그대로 들이박혀 나가떨어졌을 거다.

본인의 파괴력을 믿고 날뛰는 것이 야수 그 자체다. 근력이 얼마나 좋은 건지 방향을 전환하는 건 약했지만 직선으로 돌진하는 건 한 다리로도 굉장한 속도를 자랑했다.

-뿌드득

녀석의 몸이 버틸지는 의문이었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허무한 작전은 아닌 것이.

“쯧, 피한다고 피했는데. 영악하기는.”

허벅지에 둔중한 통증이 느껴진다.

옆을 스치는 순간, 녀석의 마기가 변형하더니 망치처럼 뭉쳐 허벅지를 때리고 지나갔다.

마기를 뭉쳐 외갑 형태로 만드는 것만 아니라 이런 것도 할 수 있었던 건가.

목숨을 건 전투에 있어 여력을 남겨 두는 것은 필수.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실력이 좋다.

다행히 뼈가 부러지지는 않은 거 같다만.

‘회복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군.’

나 역시 온갖 방어 스킬로 어지간한 타격에는 아무렇지 않지만 저렇게 피지컬에 몰빵한 타입이 휘두른 공격은 부담스러워서.

그나마 샤일이 정령 마법으로 보조해 주지 않았다면 제대로 움직이는 것도 버거웠을 거다.

게드릭에 이어 연달아 싸우지만 않았어도 할 만했을 거 같은데.

‘내줄 건 내주면서 싸워야겠어.’

녀석도 모든 전력을 쏟는 만큼 나 역시 적당히 넘어갈 생각을 하면 안 될 거 같다.

같은 마음인지 1군단장도 차분한 얼굴로 날 노려본다.

약간의 정막.

-파앗

-콰앙!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든다.

마력을 아낄 생각은 버렸다. 바로 파이어 밤으로 가속.

녀석과 맞닿을 타이밍 안개 질주를 사용했다. 가뜩이나 마력을 많이 잡아먹는 스킬,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녀석의 주먹이 안개가 된 나를 통과해 지나쳤고.

“망구야!”

“끼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망구를 소환했다.

SSS급 스킬은 여전히 남아 있다. 괴성을 지르며 모습을 드러낸 녀석이 놈의 사각을 향해 창을 내지른다.

푸욱!

등을 뚫는 일격. 그것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는지 망구가 손을 비틀며 창을 뽑아낸다.

기이하게 비틀린 창날이 녀석의 근육을 헤집었고.

“망구야, 나 믿지?”

“끼아아?”

[일렉트릭 쇼크(SS) Lv.4]

“크하아아아악!”

“끼아아아악!”

망구를 전선 삼아 전격을 쏟아부었다.

아낌없이 밀어 넣은 전격. 배가 뚫린 녀석이 발작하듯 몸을 떤다.

탄내와 함께 피어오르는 고약한 냄새.

-구구구궁

녀석이 무릎을 꿇는다.

반쯤 망가진 무릎과 전신을 타고 흐른 전격.

척추 가까운 곳에서 쇼크가 일어났으니 척추를 타고 머리까지 짜릿할 거다.

지금도 몸을 꿈틀거리며 떡 벌린 입으로 연기를 뱉어 내고 있으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무방비 상태라고 보는 것이 맞겠지.

“힘들어 죽겠네.”

나 역시 상태가 말이 아닌 건 마찬가지였지만. 체력은 바닥. 자잘한 상처는 물론이고 컨디션도 별로다. 마력도 이제는 한계에 가깝고.

기회가 왔을 때 마무리를 지어야지.

혼돈검을 고쳐 쥐며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검강에 절삭, 신성력과 혼돈을 담은 검을 들어 올렸다. 이후 섬광같이 녀석의 목을 쳐내려는 타이밍.

“크르르륵!”

-콰아아아아악!

눈이 뒤집혀 흰자위만 보이던 녀석이 나를 향해 몸을 던졌다.

“무슨!”

어떻게?

분명 의식이 없었다. 지금도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으며, 한쪽 다리는 너덜거려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양팔은 멀쩡했으니 그대로 나를 붙자고 입을 벌린다.

야수니 뭐니 하더니 진짜 짐승이 되기로 한 건가.

덩치에 걸맞게 입 또한 커다랗기 짝이 없었고, 사람 머리 정도는 충분히 뜯어 버릴 사이즈였다.

벗어나려 했으나 무의식적으로 뿜어내는 완력은 상식을 벗어날 정도였고.

“젠장.”

안개 질주를 사용하기에는 마력이 없다.

내구도를 믿고 버틸 수 있을까, 아니면 다른 방법이?

샤일의 정령 마법이 요동치며 나를 도왔고, 전격에 같이 휘말렸던 망구가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 미친 듯이 창을 내질렀다.

몸에 구멍이 나든 말든 모든 마기와 힘을 내게 쏟은 녀석이 아가리를 들이밀었고 이내 내 머리를 씹어 버리려는 찰나.

-구구구구구구궁!

지축이 흔들렸다.

수백 마리의 소 떼가 몰려오면 이런 소리가 나려나. 모르겠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닐 거 같은데.

놈의 입에 시야가 가려진 상황.

“드, 드래곤? 뭔 또 드래곤이야!”

샤일의 외침만이 새롭게 등장한 존재의 정체를 알려주었고.

[마지막 남은 드래곤의 등장!]

[바닥을 기는 용, 호페그라마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호페그라마는 수호자의 이름으로 임무를 다할 것입니다.]

알림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우우우우우웅!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압도적인 마력의 기운이 느껴졌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곳으로 달려온 드래곤이 한 짓은 하나.

‘브레스.’

다른 아룡족이 사용하거나 마법으로 흉내 내는 것이 아닌 진짜 브레스.

모두가 따라 하고자 아형의 형태로 만들어 내려고 했던 최강의 공격 중 하나.

브레스가 향하는 곳은 보나 마나 이쪽이었다. 나와 함께 데카르를 날려 버리려는 속셈.

망설임 없이 망구를 역소환하고 데카르의 송곳니를 붙잡았다.

제대로 된 자세도 취하지 못한 채 힘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뒷마무리는.

-쿠와아아아아아아앙!

저 망할 드래곤이 쏘아 낸 브레스가 해 줄 테니까.

이윽고 닥쳐 온 브레스.

지금껏 겪어 보지 못했던 파괴적인 마력이 나와 데카르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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