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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13화 (512/740)

513화 데카르

나쁜 일은 몰아서 닥친다고 했던가. 기껏 게드릭을 잡았더니 나타나는 게 1군단장이라.

일이 꼬여도 이런 식으로 꼬일 줄은 몰랐다. 게다가 뭐? 자기 동생을 죽여서 쫓아 왔다고?

‘1군단장의 만인장이니 뭐니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니더니 이거였나.’

자신이 만인장인 것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겠지만 본인의 형에 대한 자랑도 섞여 있는 말이었던 거 같다.

저 녀석 입장에서는 혈육을 죽인 원수가 나라는 거다. 나만 모르고 있었을 뿐 나를 쫓고 있던 건 게드릭 한 명이 아니었다.

상황을 봤을 때 펠리츠라는 녀석도 나를 찾고 있던 거 같고. 그러다 1군단장과 마주쳐서 당한 느낌이다.

“펠리츠가 왜 여기에? 분명 이블아이와 접선하는 것은 나로 바뀌었을 텐데. 개인적으로 접선하려 했던 건가.”

“원래 너 말고 저 녀석이 나랑 만나기로 했었나?”

“아, 응. 네가 모습을 드러내고 마탑에서 사람을 보내기로 했었거든. 펠리츠는 그때 따로 임무가 있었어서 다른 쪽으로 돌렸고.”

샤일이 궁금증을 풀어준다. 하긴, 펠리츠의 이름을 처음 봤던 건 1챕터 때 산적 소굴에서였지.

마탑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나를 쫓은 이유는 하나일 거다.

‘펠리츠는 NPC야. 내가 등반가인 걸 깨닫고 접선하려 한 거겠지.’

나 말고도 등반가는 많다. 다만 녀석이 처음 마주친 게 나였고 그동안 해 온 일이 있으니, 내가 이번 시나리오를 공략하는 데 있어 중축이 될 거라 판단한 게 아닐까 싶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일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나와 만나기도 전에 잡혔지만.

아니지. 이런 식으로라도 만나기는 했으니 목적은 달성한 건가.

“끄으으윽.”

펠리츠가 작게 신음 소리를 낸다. 어찌나 두들겨 맞았는지 목이며 얼굴까지 멍 자국이 올라왔다. 눈도 퉁퉁 부어 앞이 보일지 의문이고.

어디 뼈라도 나갔는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래도 88층에 있는 NPC면 힘깨나 쓰는 놈일 텐데.

적어도 지금까지 마주쳤던 80층대 NPC들은 그랬었다.

‘하기야 거인계나 정령계는 종족값이 있으니 그런 거겠지만.’

펠리츠는 평범한 인간이고. NPC인 만큼 탑을 올랐을 테니 일반인이라고는 하기 힘들겠지만. 반면 1군단장은 출신부터 능력까지 보통이 아니고.

“이런 꼴로 보게 되어 미안하군, 이블아이. 더 빨리 찾아왔어야 했는데.”

“둘이 아는 사이?”

펠리츠의 말에 샤일이 의외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오해다.

“나도 처음 본다.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예전에 몰래 나를 염탐하고 있었거든.”

“오? 어떻게 그랬대. 네 성격이면 바로 달려가서 제압하려 했었을 텐데.”

실제로도 그러려고 했었다. 위치를 찾기 전에 도망쳐서 엿보기 용으로 보냈던 까마귀를 잡고 끝냈지만.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타이밍이 영 안 좋군.”

난 펠리츠를 대충 뒤로 던져 놓고 앞으로 나섰다.

내 의지를 읽은 덕춘이가 펠리츠에게 회복을 걸어 주는 사이, 샤일 또한 내 옆에 서 1군단장을 노려봤다.

꽤 여유로운 모습. 우리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보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데르카는 못난 동생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욱 성장했을 아이였지.”

“그래? 내가 보기에는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녀석들한테 당했을 거 같은데.”

성질을 살짝 긁어 줬다.

가뜩이나 전투를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 저 녀석은 멀쩡하니까.

정신이라도 흩트려 놔야 이길 가능성이 생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랬다면 내가 찾아갈 대상은 그놈이 되었겠지.”

아쉽게도 쉽게 도발에 걸려들 만큼 멍청한 녀석은 아닌 거 같다.

작게 혀를 차며 현재 내 상태를 점검했다.

‘아스트랄 레인보우도 이미 사용했고. 쓸 수 있는 것들을 다 모아도 마력이 버텨 줄지는 잘 모르겠네.’

그나마 아스트랄 레인보우로 사용한 스킬이 많지 않아 주력으로 쓸 만한 스킬 몇 개는 사용할 수 있지만,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사용한 마력이 상당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스텟과 장비로 올라간 마력, 칭호 효과로 올라간 스텟이 있어 어지간하면 마력이 고갈 날 일이 없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

다행인 점이 있다면 나를 찾아온 건 녀석 한 명뿐이라는 것.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을 발휘합니다.]

-츠즈즈즈

권능을 통해 놈의 정보를 보았다.

[데카르]

-5마계 1군단장.

-마계에는 수많은 야수와 마물이 있죠.

-단, 마족이되 야수라 불리는 자는 데카르뿐입니다!

야수라.

생긴 것부터가 여러 동물 합쳐 놓은 것처럼 생기기는 했다.

피지컬을 보나 마나 대단할 게 뻔하고. 머리도 그리 멍청해 보이지는 않는다.

느껴지는 마기가 강열하고 정제되어 있으나 마법사의 것처럼 섬세하게 엮여 있지는 않았으니 마법이 능한 것 같지는 않고.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마법이 까다로운 것은 맞으나, 순수한 피지컬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내는 적은 그 자체로 힘든 부분이 있었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멤버들도 같이 부르는 건데.’

지금이라도 부를까?

아니다. 아무리 빨리 온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필요하다.

스읍. 숨을 들이쉬며 기세를 가다듬었다. 피할 수 없는 전투. 운이 나빴다거나 상황이 좋지 않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중요하지.

“이제 싸울 마음이 생겼나 보군.”

“처음부터 싸울 생각이었어.”

피할 수 있으면 피하되, 피할 수 없는 것은 겸허히 받아들인다.

현재 등장했다고 알려진 군단장 중 활동하고 있는 것은 셋. 그중 하나인 게드릭을 잡았으니 지금 이놈을 잡으면 1명만 남게 된다.

그쪽은 오징혁과 김소담이 잡기로 했으니 결과적으로 이놈만 잡으면 흑마법사와 마족의 전력은 크게 감소할 터.

“샤일, 보조 부탁한다.”

“걱정 말라고.”

-스아아아아

샤일이 고개를 끄덕이기가 무섭게 바람이 불어온다.

거세게 요동치지만 내게는 안정적으로 달라붙는 바람. 샤일의 정령 마법이 내 몸을 보조했고.

-타앗

가볍게 발걸음을 박차는 동시에 신형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말 그대로 날아간다. 내가 움직이려는 것에 맞춰 바람이 불었고, 땅에 발이 닿지도 않았음에도 나아갔으니.

기동력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이고 비정상적인 각도로 몸을 움직이는 것도 가능했다. 바닥에 발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그만큼 큰 이점을 가지고 왔고.

-카아아아앙!

상황에 따라서는 허공으로 날아들어 공격을 이어 나갈 수도 있었다.

크게 위로 떠올라 내려찍은 일격.

녀석이 팔을 휘둘러 공격을 막아 냈다. 그에 따른 반발력으로 뒤로 밀려났으나 바람의 보조를 받는 만큼 충격은 거의 없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으아아압!”

-콰아앙!

안정감 있게 땅에 붙어 있을 때와는 달리 허공에서의 움직임은 낯설기 그지없다는 것.

오로지 바람의 정령의 힘을 받아 움직이는 거라 버티거나 다른 뭔가를 할 때의 감각이 익숙하지 않다.

아무래도 정령을 조종하는 것이 샤일이다 보니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없다고 해야 하나.

나의 공격을 튕겨 낸 데카르의 공격을 받고 예상보다 멀리 밀려난 지금도 그것과 같았다.

“쉽지 않겠군.”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힘이 굉장하다. 탈모맨이 작정하고 날뛰면 이 정도일 거 같은데.

피지컬로 따지면 멤버 중에서도 독보적인 녀석이라서 말이지.

다른 점이 있다면 녀석은 덩치 자체가 인간의 규격을 벗어났다는 것?

-쿠웅!

거대한 덩치임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움직임은 재빨랐다.

한 번 도약할 때마다 수십 미터가 좁혀지는 느낌. 나 또한 검을 휘둘렀으나.

“잘도 이런 실력으로 까불었구나!”

빈틈을 노리고 주먹을 내지른다.

말이 주먹이지 놈의 덩치로 봤을 때 주먹이 내 얼굴보다 컸다.

그대로 맞아 주기에는 너무 강한 일격. 몸을 비틀며 검을 쥔 손으로 손등을 찍어 눌렀다.

나를 노리던 주먹이 바닥에 꽂힌다.

굉음과 함께 피어오르는 먼지. 뒤로 몸을 빼며 일렉트릭 쇼크를 사용했다.

언데드와 달리 생명체 그 자체인 녀석. 강력한 전격을 쏘아 내면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파지지지지직!

“크하아아압!”

괴성을 지른 녀석이 억지로 몸을 비틀며 마비된 감각을 되찾았다.

괴물 같은 녀석. 그래도 SS급에 이른 공격인데 타고난 야성으로 버텨 낸다.

저게 마족이냐, 짐승이지.

‘확실히 보통 놈은 아니야.’

힘으로 찍어 누른다? 단순 피지컬로는 어림도 없을 거 같고, 한다면 버프를 받은 상태에서 해야 할 거 같은데 틈이 나질 않는다.

컨디션만 괜찮았으면 어떻게든 해 보겠건만.

“다리부터 잘라야겠는데.”

놈이 날뛰는 것이 문제라면 기동력을 없애 버리는 것이 답.

순간적으로 놈에게 달라붙어 검을 그었다.

[칭호, 발목 수확자가 빛납니다.]

[영혼 찢기(S) Lv.10+]

-서걱!

검이 놈의 발목을 자른다.

칭호에 더불어 스킬까지 합쳐진 일격.

놈의 발이 날아가 땅에 처박혔으나.

“크흥!”

힘줄이 돋아나는 듯하더니 짧은 순간에 발이 재생했고 그대로 내게 달려들어 주먹을 내질렀다.

어깨로 받아냈다. 충격이 몸을 타고 흐르고 그대로 밀려나 땅에 처박혔으나 바람의 정령이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고.

-카아아아악!

기세를 몰아 앞차기를 하는 녀석의 다리를 걷어차며 옆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무식한 녀석. 재생력이 말도 안 된다. 신체 일부가 잘렸는데 바로 재생하다니. 영혼 찢기까지 들어갔음에도 회복한 걸 보면.

“너도 정상은 아니구나?”

“난 마왕, 데이본드의 권속. 나의 영혼은 그분의 것이다.”

영혼 자체가 데이본드의 손에 들어가 있는 거였다.

어이가 없네. 마족 자체가 본인의 영혼을 남에게 맡기고 있다니. 이상할 것도 아닌가, 게드릭도 영혼을 분리해 놓고 움직였는데.

나야 짜증 나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놈들의 뒤에는 데이본드가 있으면 녀석은 나를 노리고 찾아올 거라는 것을.

숭배자 놈들에게 한 짓이 있어서 나는 처치 대상 1순위에 올라 있을 것이다.

‘아직 놈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때 전력을 최대한 깎아 놔야 해.’

영혼 찢기가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하는 지금 내가 노릴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저런 무식한 녀석이랑 몸으로 맞부딪치고 싶지는 않으나 스킬도 함부로 쓸 수 없으니 최대한 비벼 보는 수밖에.

아무리 놈이라 한들 살아 있는 생명체. 내가 노릴 것은…….

-사각!

-사아아아악!

출혈.

저 거대한 덩치 안에 있을 피를 빼 내는 것이다.

재생력이 말도 안 되는 놈이라 걱정이 살짝 되기는 했으나 녀석 또한 근본은 마족.

신성력을 섞어 놈의 질긴 피부와 근육을 긁었으며.

-꾸르르륵.

그와 동시에 혼돈을 불러일으켰다.

신성력으로 뚫은 길로 마기를 침투시키고 혼돈으로 변형시킨다.

처음으로 겪었던 80층대 시나리오. 델버튼의 검은 비를 정화하며 혼돈을 사용하는 것 또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규칙을 어긋나게 하는 것이 혼돈의 힘.

특히나 나처럼 상황에 따라서 변형되는 힘이라면.

-주르르륵

녀석의 재생력을 억제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었다.

깊지 않은 상처였지만 피가 흘러내리는 건 분명하다.

“간지럽게 구는구나!”

놈이 기세 좋게 달려든다. 과연 야수라 이건가.

정상적으로 재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저돌적이고 공격에 거침이 없다.

끈질기게 달라붙어 결국에는 내 머리를 터트리겠다는 강한 집념이 느껴졌고, 난 그에 화답하듯 검을 휘둘렀으니.

“계속 덤벼.”

[검강]

-수걱!

갑작스럽게 늘어난 검이 놈의 팔 한 짝을 날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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