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512화 (511/740)

512화 쫓아온 자

[스킬 합성이 완료됩니다!]

녹턴과 데몬 스피어를 합성한 결과 떠오른 스킬.

난 입꼬리를 올렸다. 어떤 게 나올지 나도 예상하지 못한다. 다만 보통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

권능을 통해 보이는 빛무리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

그뿐일까.

[행운 스텟이 발동됩니다!]

그동안 잠잠하던 행운 스텟까지 발동했으니 결과는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찬란하게 떠오른 알림.

[잊히지 않는 창기사(SSS)]

무려 SSS급 스킬.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 중에 따져도 SSS급은 많지 않다. 기껏해야 파이어 밤 정도려나.

그것마저도 혼돈을 이용해 만들어 낸 것이었으니, 정석적인 방법으로 만들어 낸 SSS급 스킬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봐도 무방했고.

“끼아아아아아아!”

공기를 찢는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망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망령과도 같은 모습. 다만 연기나 다를 바 없던 몸에는 거무튀튀한 경갑옷이 장착되어 있었으며, 심연의 눈동자의 영향으로 보이는 큼지막한 눈 하나가 머리에 달려 있었다.

손에 쥐고 있는 건 최근 자주 사용하던 데몬 스피어. 그것마저도 녀석의 취향에 따라 외형이 변형되어 있었으니.

“가라! 망구!”

난 게드릭을 움켜잡은 채 소리 질렀다.

내게 화답하듯 비명을 지르며 창을 내지르는 녀석. 이전에도 창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건만, SSS급이 된 지금 보여 주는 찌르기는 궤를 달리하는 일격이었다.

‘깔끔하다’라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당연히 꿰뚫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성도 높은 찌르기. 그 기세에 나까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고.

“이 마기는 대체!”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마기에 게드릭이 머리를 돌리려는 찰나.

-콰드드득!

망구의 창이 녀석의 머리통을 뚫었다.

신성력을 담은 파이어 밤에도 어떻게든 모양을 유지했던 녀석의 두개골이 부서진다.

균열이 점차 벌어지더니 이내 내부에 담겨 있던 녀석의 영혼이 연기처럼 빠져나왔고.

“끄아아아아악!”

지금까지 질렀던 비명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에 물든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퍼렇게 번뜩이던 안광이 점차 잦아든다.

영혼에 타격을 주는 불길을 뱉어 내던 녀석이건만 정작 본인의 힘이 모인 머리통이 깨지니 참기 힘든 모양.

발작하듯 꿈틀거리던 몸도 이내 움직임을 멈추고.

-스스스스스

녀석의 몸이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끝을 인정한 것인가. 녀석이 마지막으로 날 내려다본다.

“네 정체가 무엇이냐.”

“알아서 뭐하게. 그냥 뒈져.”

답할 필요는 없었다. 좋은 인연도 아니었거니와 앞으로 볼일 없는 녀석이니까.

되려 몸에 힘을 줘 녀석이 부서지는 것을 앞당겼고.

“악마다운 놈이군. 다시는 보지 말자.”

[게드릭이 영원한 잠에 빠져듭니다.]

[마족의 낙인이 지워집니다.]

그 말을 끝으로 게드릭이 완전히 소멸했다.

남은 것이라고는 폭발에 휘말려 타 버린 대지와 매캐한 연기뿐.

창을 하늘 위로 올리는 망구는 덤이었다.

“고생했다.”

“끼아아아.”

“이제 들어가.”

“끼아?”

뭘 끼아야, 할 거 다 했으니 들어가는 거지.

역소환 당하는 망구가 평소와 같이 비명을 내질렀으나 무시했다.

도움이 되는 건 분명했지만 망구는 이번에 새롭게 생긴 나의 히든카드다. 언제 어떻게 적의 귀에 들어갈지 모른다는 말.

‘게드릭은 아니없지만 다른 숭배자들은 달라.’

이미 나에 대한 정보가 많이 퍼졌다. 그동안 겪어온 바로 봤을 때 이번 시나리오에 등장할 최고 등급 숭배자는 정해져 있었다.

유헤다와 경쟁을 벌이던 녀석, 데이본드.

등반가 출신 숭배자를 통해 처음 마주했던 녀석이었고, 동시에 나와 멤버들을 위기에 빠트렸던 괴물.

이미 유헤다를 잡아내기는 했지만 그건 운이 좋았던 거다. 상성이 좋기도 했고.

이번에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정황으로 봤을 때 군단장을 이끌고 있는 녀석이 데이본드일 가능성이 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마족도 따지고 보면 악마. 데이본드 역시 악마다.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뿐더러 숭배자인 흑마법사들이 계속해서 마족을 소환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놈들의 상관인 데이본드를 한시라도 빠르게 이곳에 데려오기 위함이지.

내가 보기에 흑마법사와 마족의 위에는 데이본드가 있다.

“그 녀석이랑도 악연이 길었지.”

악연이란 길고도 질긴 것. 끊을 수 있을 때 끊어야 하는 법이었다.

지금이야 직접 마주하지 않았으니 어떻게 할 방도가 없지만. 가능하면 앞으로도 볼 일 없이 시나리오를 끝내고 싶다.

그건 그건데.

‘이거 멤버나 다른 녀석들한테도 괜찮은 거 맞나?’

살짝 불안감이 생긴다.

나야 권능도 여러 개고, S급을 뛰어넘는 스킬들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태생 S급 이상인 스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드물뿐더러, 나보다 장비나 다른 부분에서 부족한 이들이 태반이다.

지금까지야 어떻게든 버티고 이겨 냈지만 앞으로 이어질 90층에서는 어떨까.

당장 나도 화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앞으로는 더 힘들 거야.’

솔직히 걱정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지.

S급 이하의 스킬은 태생적으로 SS급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

“이미 주력으로 쓰는 스킬이 정해져 있다 이거지.”

여기서 S급을 넘는 스킬을 얻더라도 바로 사용하기에 무리가 있지는 않을까.

아니, 무리가 없다 하더라도 SS급 이상의 스킬을 얻을 수는 있는가.

스킬이라는 것이 아무리 얻기 힘들어도 탑을 오르다 보면 생기기 마련이다. 상점에서 살 수도 있고 다른 NPC를 통해 얻을 수도 있고.

던전이나 유적, 혹은 우연한 계기로 생길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SS급 이상의 스킬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거의 없다.

숭배자나 NPC 중에는 종종 있는 거 같은데…….

‘하기야 그 녀석들은 그러니까 지금까지 탑에 있는 거겠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느끼고 있는 부족한 점을 다른 사람들이라고 느끼지 못하지는 않을 테니까.

오지혁이 밖으로 나가는 이유. 겉으로는 김소담이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같이 나가겠다고 했지만 실상도 그럴까?

난 아니라고 본다.

이미 습득한 스킬은 최대치로 숙련도를 쌓았을 거다. 더 이상 성장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에 나가겠다고 하는 거겠지.

내가 아는 오징혁은 야망이 있는 녀석이었으니까.

“이상해.”

이유는 여러 개겠지만 유독 우리한테 등급 높은 스킬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 확률의 차이? 어쩌면 정부와 대형 길드가 한 짓의 여파일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다른 부분이 엮여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고.

불쑥, 내가 가지게 된 무한 코인과 혼돈, 지금까지도 모든 정보를 뱉어 내지 않은 히든 퀘스트에까지 생각이 미쳤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한번 의심하고 고민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미래를 알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그거니까.

“어으으, 다른 놈들은 내가 다 정리했다.”

“그에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내게 샤일과 덕춘이가 다가왔다.

게드릭을 잡는 사이 나머지 언데드를 해치운 모양.

“고생했어. 수가 제법 됐을 텐데.”

“나름 할 만하던데?”

얼씨구, 허세는. 실력만 는 줄 알았더니만 허세는 더 늘었다.

지금도 지친 기색이 역력한데. 나도 크게 다를 건 없지만.

그만큼 게드릭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다시 상대하면 더 쉽게 이길 수 있겠지만. 내가 잡고 망구가 찌르고 혹은 그 반대로 하면서 교란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쓸 만한 스킬 하나가 더 는다는 것은 그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아으으, 죽겠다.”

힘이 빠졌는지 아무렇게나 엉덩이를 붙이는 녀석.

신성한 불로 일대를 태워 버려서 그런지 처음 이곳에 왔을 때까지만 해도 진동하던 악취가 사라졌다.

대신 탄내가 가득했지만 이 정도는 참을 만하다. 나도 적당한 곳에 앉았다. 체력적으로도 그렇지만 놈의 불길에 지져져서 몸이 안 좋다.

영혼을 태우는 불꽃. 내가 사용하는 영혼 찢기와 비슷한 효과다. 통증도 엄청 나지만 영혼 자체에 타격을 입힌다는 것이 중요했다.

영혼 찢기로 잘라 낸 부위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불길에 닿은 곳은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한 가지 의문인 게 있다면…….

‘생각보다 멀쩡하군.’

최악의 경우 이번 챕터가 끝날 때까지 타격이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빠르게 회복 중이다.

난 영물이 아니다. 당연하게 다른 재앙처럼 영혼을 수복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회복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

[혼돈이 일정 수치를 넘어섰습니다.]

[당신만의 규칙이 만들어집니다.]

[당신의 영혼은 굳건할 것입니다.]

“여러모로 대단하군.”

내가 가지고 있는 혼돈이 영혼을 태운다는 게드릭의 규칙을 일그러트렸다.

혼돈의 파편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올라간 혼돈. 녀석들이 자신만의 규칙과 힘을 지닌 것처럼 나에게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놈들과 달리 내가 가진 혼돈은 아직까지 명확한 형태를 띄지는 않는다는 것.

오히려 좋다. 상황에 따라 적절한 규칙이 생겨나고 있었으니.

‘우선 멤버들도 그렇고 다른 녀석들도 그렇고 혼돈 수치를 높일 수 있도록 해야겠군.’

그것만으로도 전력이 올라갈 거다. 치명적인 공격에 노출되더라도 버틸 수 있게 되니까.

다른 상위 헌터들은 모르겠지만 멤버들은 슬슬 혼돈 수치 100점에 도달했을 거다. 내가 200점부터 변화가 생겼었던가.

이제 88층. 이후 90층대도 있으니 멤버들의 혼돈 수치가 200점을 돌파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다.

“게드릭도 잡았으니 돌아가면 고급 여관에서 쉬자.”

“오오! 진짜냐? 그래, 우리가 야인도 아니고 언제까지 밖에서만 나돌아 다니냐. 가끔 쉬기도 하고 그래야지. 안 그러면 골병들어.”

내 말에 샤일이 반색한다. 나와 함께 움직이다 보니 강행군의 연속이었던 건 놈도 마찬가지라.

게드릭이 죽으면서 마족의 낙인도 사라졌다. 더 이상 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마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건 그거고.

“샤일, 마지막 드래곤에 대해 알아?”

“드래곤? 소문에 나오던 그거 아니야?”

녀석이 죽기 전에 했던 말이 걸린다.

마지막 남은 드래곤을 잡아 언데드로 만들기 위해 이곳에 있다고 했지.

샤일의 말대로 드래곤을 봤다던 목격담의 주인공이 아닌가 싶은데.

‘키포인트다.’

강한 확신이 들었다.

이번 시나리오의 제목은 용의 숨결. 마지막 남은 드래곤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애초에 그레이트 브릿지로 온 이유 중 하나 아니었던가. 게드릭을 처치하는 것으로 목표 하나를 달성했으니 남은 건 이 녀석뿐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레이트 브릿지로 돌아가 정비를 하고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는데.

“하아, 도저히 쉴 틈을 안 주는군.”

난 비척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저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강력한 살기와 마기.

숨길 생각도 없는지 본인의 존재감을 줄줄이 뿜어내며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다.

샤일도 녀석의 기운을 읽었는지 안색을 굳히며 몸을 일으켜 세운다.

“이거 상황이 안 좋은데, 이블아이.”

샤일이 작게 속삭인다.

나도 동의한다. 거대한 몸을 이끌며 이곳으로 다가오는 존재. 어림잡아도 게드릭과 동급이다.

단단한 근육으로 뒤덮인 몸. 길게 자란 털. 염소 발과 소와 사자가 뒤섞인 듯한 얼굴 위로는 커다란 뿔 한 쌍이 자라 있었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뚜벅뚜벅 걸어온 녀석이 손에 쥐고 있던 사람을 내 쪽으로 집어 던진다.

샤일의 눈이 커진다.

“펠리츠!”

펠리츠? 뭔가 익숙한 이름.

아.

그 녀석이네. 맨 처음 이곳에 떨어졌을 때 날 훔쳐보고 있던 무너진 마탑 출신의 마법사.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군단장급으로 보이는 저 괴물이 왜 지금 나타났냐가 중요한 거지.

“오는 길에 버러지가 하나 있더군.”

녀석이 콧김을 뿜는다.

한차례 전투가 있었는지 놈의 털에는 그슬린 흔적이 있었고 자잘한 상처로 피가 흘러내려 딱지가 앉았다.

“내 동생 데르카를 죽인 자가 네놈인가.”

데르카라면 설마 첫 번째 챕터에서 잡은 만인장?

그렇다는 건 설마.

난 권능을 발휘했고.

“…1군단장.”

녀석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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