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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10화 (509/740)

510화 뭔 방해?

부수고 뜯고 태운다.

-콰아아아아앙!

파이어 밤과 함께 뼛가루가 비산한다. 하나의 파편이 되어 주변에 있던 언데드를 휩쓸었으나, 온몸이 부서진 녀석들이 다시금 몸을 일으켜 세워 전진했다.

썩은 피와 살점을 흘리는 구울이 신성력을 담은 불길에 쪼그라들고, 내지른 검에 목이 잘린 데스 나이트가 쓰러지더니 듀라한이 되어 말 위에 올라탄다.

언데드와 싸우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오히려 많이 싸웠지. 이유는 모르겠는데 악마도 그렇고, 언데드도 그렇고 다들 날 좋아하더라고.

난 그다지 관심 없는데 말이야.

팔자려니 생각하면 좋겠다만.

“짜증 나 죽겠군.”

온갖 토사물과 썩은 피를 뱉어내며 달려드는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짜증이 밀려왔다.

단순한 오물과 피가 아니다. 닿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인 극독을 품고 있는 놈들이지.

그뿐일까. 언데드 중에는 사념에 가까운 존재도 있다. 레이스나 밴시 같은 녀석들. 여기 있는 놈들은 일반적인 몬스터와는 결이 다르게 강하고.

어디까지나 언데드 형태를 지닌 마족이니까.

-까아아앙!

내게 검을 휘두르는 해골의 공격을 튕겨 냈다.

뼈밖에 없는 녀석이 왜 이렇게 힘이 센지는 고사하고 하는 짓이 기가 막히다.

뒤로 밀려나는 것과 동시에 발을 치켜드니 발바닥 대신 붙여 놓은 짐승의 머리가 입을 쩍 벌려 나를 물어뜯으려 한다.

날카로운 송곳니에 팔을 뜯기려는 찰나.

“뭔, 튜닝 해골이야!”

[러브 앤 피스(S) Lv.10+]

[파이어 밤(SSS) Lv.5]

-콰아아아아앙!

내 몸에서 강렬한 열기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챕터가 지나고 어느덧 5레벨을 달성한 파이어 밤. SSS급에 달하는 만큼 위력을 보장되어 있었으며, 언데드와 상극인 신성력까지 쏟아 내자 놈이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

“전보다 더 강해졌군. 난 항상 네놈을 주시하고 있었다. 언제나 내 발걸음을 방해할 장애물이 될 거라고 말이지.”

“그것참 고맙군. 반질반질한 머리통을 다각형으로 만들어 주고 싶을 정도야.”

혓바닥도 없는 것이 어디서 입을 나불거려.

가뜩이나 마족의 낙인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언제 쳐들어올지 몰라 사람 많은 곳은 가지도 못했는데.

적어도 하루 이틀은 고급 여관에서 뜨신 물에 몸 녹이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푹 자고 싶었다.

저 망할 놈이 걸어 둔 마족의 낙인 때문에 대략적이나마 위치가 들통나서 번화가에 가지 않았을 뿐이지.

괜히 생각하니 화나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지만 확실히 놈의 머리통을 분쇄해야겠다.

그냥 쪼개서 버려 두면 재생할 수도 있으니 신성의 불길로 가루까지 남기지 말고 태워 버려야지.

“투구로 가렸어도 알 수 있다. 꽤 사나운 표정을 짓는군. 오히려 내가 그런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말이야. 이럴 땐 가죽과 피부가 없는 것이 아쉬워.”

“적당한 걸로 뒤집어써. 돌아다니는 거 많네.”

혼돈검을 까딱거리며 팔다리가 잘려 바닥을 기고 있는 구울을 가리켰다.

썩어 가서 그렇지 가죽이 있기는 하다. 역겨운 게 본인이랑 딱 맞을 거 같구만.

게다가 뭐?

“억울해? 네가? 왜 네가? 나 엿 먹으라고 옹기종기 모여서 언제 쳐들어올까 하던 녀석이?”

억울하고 싶었으면 하질 말았어야지.

가뜩이나 공략 진도가 안 나가서 답답하구만. 내가 여기까지 뛰쳐나온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거다.

예상보다 빠르게 마주치기는 했지만 오히려 나쁘지 않다.

어차피 혼자서 상대하려고 했고, 요새 꼴을 봤을 때 생존자는 거의 없는 것 같았다. 마음껏 날뛰어도 된다는 말.

그나마 생존자가 있다고 한다면 위장용으로 요새 앞에 놔둔 몇 명 정도?

그들도 생기가 빨리고 저주에 노출되어 사실상 반 시체나 다를 바 없다.

굳이 찾아가 죽이지는 않겠지만 애써 살릴 생각도 없는 게 솔직한 마음. 누가 뭐라 해도 페이검 왕국은 자칭 왕국이지 강도떼나 다를 바 없는 자들이라.

“망할! 망할 언데드 놈들!”

“그에에에.”

바람의 정령을 이용해 허공을 날아다니며 날카로운 칼날을 쏟아 내는 샤일.

덕춘이도 썩어 문드러진 놈들에게 혓바닥을 놀리고 싶지는 않은지 샤일의 머리카락을 고삐 삼아 잡고는 침을 뱉어 대고 있었다.

‘잘 싸우네.’

실력이 늘어서 그런지 게드릭이 수하로 부리는 놈들을 압박하고 있다. 제법 강한 놈들로 이루어져 있는데도 말이지.

어디까지나 압박하고 있는 거지 압도하는 건 아니지만.

‘상성이 안 좋아.’

샤일이 주로 다루는 건 바람의 정령.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정령들의 힘도 빌릴 수 있게 되었지만 바람과 비교하면 부족한 면이 있다.

바람의 특성상 날카롭고 변화가 빠르며 자유로운 장점이 있었으나.

-까드드득

-우득, 우드드득

언데들에게는 칼로 썰리나 송곳으로 찔리나 거기서 거기라서 말이지.

차라리 묵직한 망치에 머리통이 터졌으면 다시 일어나지 못했을 거다.

샤일 또한 그 사실을 알았는지 잠시 고도를 높이며 시간을 벌었고.

“뭉개져라!”

이내 하강과 동시에 양팔을 내뻗었으니.

-구구구구구궁!

거대한 바람의 장막이 망치가 되어 일대를 짓눌렀다.

한순간 중력이 늘어난 느낌.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거센 바람이 사방으로 나부꼈으며 땅에서 기어 나왔던 녀석들이 으깨져 도로 땅속으로 들어갔다.

착즙기에 넣은 토마토 같다고나 할까.

“실력이 많이 늘었어.”

불리한 부분을 메울 수 있는 센스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이곳에 와서 특히 늘어난 거 같은데.

시간이 그리 흐르지는 않았기에 마력이 늘거나 했을 리는 없고. 전보다 더 악착같이 움직인다고 봐야 맞겠지.

이전만 해도 감당하기 힘들면 적당히 내 뒤로 빠져서 힘을 비축하고 다시 참전하는 형식으로 싸웠으니까.

나도 그편이 편했다.

대부분이 폭발형 스킬이거나 광범위하게 쓸어버리는 것들이 많아서 어정쩡하게 옆에 붙어 있으면 신경 쓰이거든.

저쪽은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고.

“그때 못 봤던 끝을 봐야지.”

“질긴 악연이로다.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눈길도 주지 않는 건데 말이야.”

작게 한숨을 내쉰 녀석이 몸을 움직인다.

지켜보고 있어 봤자 손해만 커진다 이거겠지. 아무리 시간이 지나면 되살아나는 게 언데드라지만 이 이상의 피해는 부담스러울 거다.

오히려 지금까지 날 견제하기만 하는 게 이상할 정도.

“네 말대로 이쯤에서 결착을 짓자꾸나. 혹시나 했지만 설마 진짜 단둘이 왔을 줄이야. 오만함인가. 아니면 영악한 계략인가.”

“뭐라는 거야.”

“크흐. 그래. 후자겠지. 네놈은 그리 얄팍한 녀석이 아닌 듯하니.”

-쿠르르르릉!

게드릭이 손을 들자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진다.

내 손에 완전히 박살 난 조각과 뼛가루가 하나로 뭉쳐지며 형상을 갖추기 시작한다.

“어딜!”

그냥 두고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 몸을 날려 살덩이를 베어 냈다.

내가 지나간 자리.

-콰가가가가강!

한 박자 늦게 폭발이 일어난다. 등으로 느껴지는 반발력을 추진력 삼아 앞으로 돌진.

게드릭을 향해 검을 휘둘렀으나.

“어떻게 내 계획을 알고 방해하려 드는지는 모르지만 둘이서 덤빈 것은 실수였다, 이블아이. 비록 그 덕에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이곳까지 왔겠지만 말이다!”

녀석의 안광이 빛나는 것과 동시에 시퍼런 연기를 뱉어 내는 거대한 두개골 한 쌍이 허공으로 치솟아 입을 벌렸다.

쏟아지는 푸른 브레스!

저걸 브레스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모르겠다. 드래곤이 아니라 해골바가지가 뱉어 낸다는 것이 다르기는 했지만 분명한 브레스.

파괴력만 따지면 최상위권에 속하는 스킬이었다. 특히나 저 녀석이 뱉어 낸 푸른 불길은 일반적인 불길이 아니다.

“영혼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껴라!”

육체를 넘어 영혼을 연료로 타오르는 지독한 것이었다.

하여간 언데드 놈들은 하나같이 생명력이나 영혼을 노린다니까.

본인과 언데드들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으니 마음껏 남발하는 거지. 지금도 그렇다.

나를 직접적으로 노리기보다는 일대를 본인이 유리한 전장으로 만들려고 한다.

끊임없이 뱉어 내는 불꽃. 일대에 영혼을 태우는 불길로 채워 나의 움직임을 조금씩 제한하려는 것.

곱게 당해 줄 생각은 없다.

[오로라 빔(S) Lv.10+]

-찌유우우우웅!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

연달아 쏘아 올린 오로라 빔.

녀석의 주변에 방어막이 펼쳐지며 공격을 막는다.

나도 안다. 녀석은 언데드인 동시에 마법사. 강력한 마법을 부리는 건 물론이고 마법형 스킬에 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그건 이미 게드릭의 영혼 파편을 상대했을 때 알아차렸다.

미련하게 힘으로 몰아붙이려는 게 아니다.

-콰직!

놈에게 쏜 건 어디까지나 눈속임.

미묘하게 방향을 비틀어 허공에 떠오른 거대한 해골을 타격했다.

정확히 미간을 꿰뚫은 일격. 강력한 공격을 하지만 내구도는 그렇지 못한지 푸른 불길을 뱉어 내던 해골 하나가 격추된다.

“과연 이렇게 나오시겠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어. 내 일을 방해하는 게 목표니까!”

격노한 녀석이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후방에서 지원 사격을 하며 군당을 통솔하는 것이 놈의 스타일일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거 같다.

어쩌면 화가 많이 나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투구를 고쳐 쓰며 나도 뛰어들었다.

자신의 일을 방해해? 장애물?

이 녀석이 노리던 게 따로 있던 건가.

구석진 곳에서 병력을 모으다 때가 되면 총공세를 펼치려고 한 줄 알았다. 그레이트 브릿지는 어찌 됐든 제국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도시.

나를 노리는 녀석이라면 이곳부터 무너트리는 게 당연하다고 믿었으니까.

반응을 보니 정작 녀석이 하려던 건 다른 거 같지만.

‘뭘 노리는 거지?’

[검강]

[칭호, 부활한 교단의 성자가 빛납니다!]

[날개 없는 천사의 왼쪽 날개(SSS)를 장착합니다!]

[S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함께합니다!]

바로 날개를 장착하고 신성력으로 몸을 보호하며 검을 휘둘렀다.

녀석이 소환한 거대한 뼈검과 혼돈검이 맞부딪친다. 불똥 대신 시커먼 저주의 파편이 튀어 오르고 나를 집어삼키기 위한 마법진이 사방을 수놓는다.

-우우우웅!

그곳에서 뻗어 나오는 뼈로 만든 창과 검을 마법구.

바닥에서 솟구쳐 내 발목을 잡는 뼈다귀 손. 안개처럼 깔리는 영혼을 불태우는 불길과 독구름.

녀석 또한 단번에 나를 처리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조급해하는 느낌도 살짝 든다. 애초에 안전하게 날 상대하려 했다면 정면 대결을 하려 하지는 않았겠지.

“넌 죽으면 좋은 재료가 될 것이다!”

“네가 죽으면 훌륭한 쓰레기가 될 거고!”

-콰아아아아아앙!

일제히 떨어지는 마법을 피해 앞으로 내달렸다.

피할 수 있는 건 피했고 쳐 낼 수 있는 것은 쳐 냈다. 미쳐 막지 못한 것은 몸으로 때웠고, 사각으로 들어오는 공격은 펠라인 스킬로 상쇄시켰다.

[마법 무효화(S) Lv.10+]

[무지개 반사(S)]

[강철의 의지(S) Lv.10+]

[강체强體(S) Lv.10+]

[물리 공격 내성(S) Lv.10+]

[독 내성(S) Lv.10+]

[저주 내성(S) Lv.10+]

[어둠 내성(S) Lv.10+]

물량으로 상대하겠다는 건지 비처럼 쏟아지는 마법과 직접 내지르는 위협적인 검격.

보호 스킬이 미친 듯이 발동된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쏟아 내겠다 이건가.

-콰득!

전력을 다하는 공세에 몸에 대미지가 쌓인다.

빈틈을 파고든 공격에 격통이 올라왔으나 나 역시 쉽게 놈을 잡을 거라는 생각은 없었다.

[마그나로크의 왕관(SSS)을 장착합니다.]

[얼음과 불의 교단의 보고를 엿봅니다!]

날개에 이어 왕관을 착용했다.

-파아아아아앗!

눈부신 광채가 나를 감싼다.

머리로 몰려드는 수많은 정보와 기억. 난 놈을 노려봤고.

[무기를 내려놓은 팔라딘, 다칼의 기록이 전해집니다.]

“이거. 생각보다 간단한 방법이 있었군.”

망설임 없이 앞으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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