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506화 (505/740)

506화 88층

화면에서 보이는 그것.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드래곤을 비롯한 다른 종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족 어쩌구 할 때부터 알아보기는 했지만 이쪽 세계는 다른 차원과 인접한 모양. 당장 샤일도 정령 마법사 아니던가.

정령계도 어느 정도 연결이 되어 있다는 뜻이었고, 저기 보이는 건 수인족.

릴카가 있었던 대림원은 아니다. 거기다 이어서 보이는 건 엘프, 요정도 얼핏 보였던 거 같고.

중요한 건 이거다.

“드래곤이 진짜 있었군.”

그러고 보니 이번 시나리오 이름이 용의 숨결이었지 아마?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종족. 80층대 마지막 시나리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건가.

이상하지는 않다. 종족값이 높은 존재들은 상위층에 배치되어 있고는 했으니까. 당장 거인족도 위로 올라오기 전까지는 보지 못했었다.

“아무래도 이번 시나리오에서 중요한 포인트야.”

첫 번째는 용사. 그다음은 드래곤.

도대체 어떤 식으로 흐름이 이어지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거 하나하나 신경 쓰지 말자. 결국에는 다 엮이게 되어 있다.

괜히 세세한 부분에 정신 팔리다가 큰 그림을 보지 못할 가능성도 있고.

큰 그림은 어디까지나 흑마법사와 마족의 공격. 그에 따라 다가오는 멸망.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88층으로 전송됩니다.]

-우우우우웅

전송 마법진이 빛을 뿜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를 반긴 것은 허름한 집.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티 내지는 않았다. 첫 번째 챕터가 끝나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지 알 수 없으니까.

[88층]

[챕터Ⅱ- 하나의 큰 적]

“이번에는 바로 알려 주네 그래도.”

저번처럼 안 알려 주면 어쩌나 했는데.

일단 주변 정보부터. 일단 위험한 곳은 아닌 거 같다. 낡기는 했지만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집이다.

살기라던가 위협적인 기세가 느껴지지도 않고. 조심스럽게 집을 나서자 농가가 보인다.

그런 나를 본 한 남자가 손을 흔들었으니.

“일어났어?”

샤일이다.

설마 샤일의 집이었나. 전에 갔었던 곳은 골목에 있던 폐가였는데.

[기억이 생성됩니다.]

찌릿한 통증과 함께 기억이 생겨난다.

꽤 짜릿한 게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대략 10개월. 1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군.’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에 따라 이쪽 세계의 상황도 나빠졌으니 기어코 흑마법사들이 군단장을 소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 수가 어림잡아 4명. 아니지, 3군단장 게드릭까지 있으니 총 5명이군.

걱정할 건 없다. 그중 2명은 이미 죽었으니.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기억에 따르면 그렇다. 결과적으로 3명만 살아남아 있다는 건데.

‘인류의 영토 절반이 사라졌다.’

놈들을 잡기 위한 대가가 작지 않았다.

이미 많은 부분을 내준 시점에서 또다시 절반을 내주었으니 타격이 크다.

현재는 왕국이 추가적으로 5곳이 사라졌고 제국을 중심으로 인류와 타 종족이 모여 방어선을 구축한 상태.

상황이 이렇게 되는 중에 수많은 사건·사고가 있었는데 대략 요약하자면.

‘용사. 화합. 갈등. 마족의 땅. 드래곤.’

5개의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었다.

여전히 용사라고 설치는 놈들이 많았으나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만한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먼저 군단장을 잡으며 이름을 떨친 녀석이 하나. 구면인 녀석이다. 첫 번째 챕터에서 봤던 녀석이니까. 성검 비슷한 것을 들고 있었지 아마.

그 외에 방랑자들의 왕이라 불리는 녀석도 있고, 무슨 범죄자 신분인 녀석도 한 명 섞여 있다.

이들 말고도 가히 영웅이라고 불릴 만한 자들이 있었으나 용사에 근접한 건 이 3명 정도.

아, 아니다. 한 명 더 있다.

“무지개 용사나으리이이.”

“죽는다.”

“크흐흐. 이제 그만 받아들이지. 지금 와서 부정해 봤자 아무도 안 믿는다고. 나야 진작에 알아차리고 있었지만.”

바로 나.

본의 아니지만 용사 후보 중에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아니 대체 왜? 생각해 보면 군단장도 잡은 적이 없는데 너무 올려치는 거 아닌가?

애써 부정을 해 보았으나 새롭게 생긴 기억을 떠올리자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10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무엇을 하고 다녔나했더니만 흑마법사의 근거지를 6곳 정도를 박살 내고, 왕국도 하나 지키고, 사칭을 하여 껄그러워진 교단에서도 명예 칭호를 내려줬다.

그밖에도 자질구레하게 한 짓이 너무 많다.

대충 이야기하자면.

‘군단장이 넘어오기 전에 막아 버린 거네.’

이러니 사람들이 용사니 뭐니 헛소리를 하지.

에효.

왤까. 분명히 좋은 일인데 한숨이 나오는 건.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다면 다른 멤버들과 오징혁에 대한 소식도 있다는 것.

대륙 변방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나보다 활약이 적기는 했으나 각 소수 종족과 버려진 땅에서 세력을 모아 이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곳이 어디냐.

“제국이라.”

“내가 말했지? 제국 내에서도 무너진 마탑의 힘이 뻗쳐 있다고. 임시 거주지로 쓰기에는 충분한 곳이잖아?”

다름 아닌 제국이었다.

샤일과 함께 마족들의 땅이 되어 버린 곳을 버리고 다음 전투를 하기 위해 자리를 옮긴 것.

가능한 모습을 드러내고 움직이고 싶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고급지지는 않아도 여기저기 뿌려 둔 게 많은 무너진 마탑과 함께하게 됐다.

나쁘지는 않다. 내가 어디 잠자리 가려가면서 자는 스타일도 아니고.

아무튼 용사와 마족의 땅은 여기까지.

나머지 키워드인 화합과 갈등은 간단했다.

생존을 위해 다양한 종족이 힘을 합치고 있다. 이번 챕터 제목이 커다란 하나의 적이라고 했던가. 그게 뜻하는 바는 명확했고, 공동의 적 앞에서는 갈등이 있더라도 화합하기 마련이었다.

‘여기까지야 예상 범위 안이야.’

어떤 변수가 될지 모르는 건 하나, 드래곤.

왕국이 사라지든 어쩌든 별다른 반응이 없던 드래곤이지만 최근 오랜 침묵을 깨고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문이 있다.

단순히 소문은 아닐 거다. 구체적인 목격담을 말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으니까.

민간인을 제외하더라도 파병을 나갔던 병사나 기사들, 이 시대의 지식인이라 부를 법한 마법사들까지 떠들어댔으니 확실하겠지.

당장 나도 전송 대기실에서 드래곤의 모습을 보기도 했고.

“그래서 진짜 황제는 안 만날 거야?”

“생각 좀 해 보고.”

잠시 기억을 다듬고 있는데 샤일이 말을 걸었다.

황제. 대륙에 마지막 남은 제국의 기둥. 사실상 다른 왕국이 제국과 하나의 공동체가 된 지금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라고 볼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방어선이 구축된 것도 이 양반 덕분이기는 한데.

‘영 껄끄럽단 말이지.’

그런 놈이 나를 왜 부른단 말인가.

어떻게든 날 이용해 먹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여 초대를 거부하고 있다. 굳이 무너진 탑에서 제공한 농가에 머물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고.

조금이라도 많이 마족과 흑마법사를 잡는 게 중요한 시점에서 황궁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사실 나 말고도 갈 사람이 있고.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온다.”

“그래라. 난 마법 연습이나 해야겠다.”

대충 변명을 하고 자리를 떴다.

커뮤니티에 멤버들의 대화가 쌓여 있다.

[냥냥펀치]: 내가 바로 이 시대의 황금 마차다!

[니머리 탈모]: 오, 나도 황금 마차 많이 이용해 봤지. 특임대에 있을 때 종종 옴.

[정수리 핥짝]: 그 황금 마차 아니야 등신아…….

[니머리 탈모]: 아냐?

[냥냥펀치]: 아냥. 네 말이 다 맞아. 난 항상 응원행!

[정수리 핥짝]: 맞네. 그 마차가 맞았네. 파이팅!

[니머리 탈모]: 뭐지? 왜 당한 거 같지? 아니 뭔데! 나도 알려 줘!

어김없이 떠들고 놀고 있는 녀석들.

냥펀은 이곳에서도 물자를 관리하며 고립된 이들과 교류하고 제국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제국과 왕국 간의 교역을 책임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수준.

핥짝이와 탈모맨은 지금은 마족의 땅이 돼 버린 곳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던 소수 종족과 사람들을 끌고 오는 중이고 말이지.

[쁘띠공듀]: 냥냥! 펀펀! 황제가 자꾸 말 걸어욧! 혼내 주세용!

[냥냥펀치]: 뭐어어어? 우리 공듀를 괴롭히다니! 내가 대신 황궁에 들어가서 혼쭐을 내주징!

[니머리 탈모]: …그냥 황제한테 돈 뜯으려는 거 아니고?

[냥냥펀치]: 그걸로 혼내 줄 거임!

[정수리 핥짝]: 안 그래도 내 쪽에도 연락 오더라. 일단은 거부했지만.

[냥냥펀치]: 핥짝이도 괴롭혔다고? 이거 도저히 안 되겠넹!

[쁘띠공듀]: 맞아! 맞아! 본때를 보여 주라구요!

[냥냥펀치]: 간다앗!

황도는 냥펀한테 맡기자. 아무래도 정치적인 부분이나 그런 건 냥펀이 잘해서.

탈모맨은 소규모 부대를 이용해 임무를 수행하는 데 특화되어 있고, 핥짝이는 사령부에 가깝다.

지금도 1챕터 만에 세력을 모으지 않았던가.

반면에 나는…….

“직접 움직이는 쪽이 편해서 말이야.”

탈모맨이 방어선을 지키고, 핥짝이가 외부 인원을 끌어들여 전력을 증강한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놈들의 근거지 파악과 드래곤의 목적 확인.”

각자 잘하는 부분을 살려야 하는 것이 정답.

다른 상위 헌터와 루키 그룹, 요정 클럽도 곳곳에서 움직이고 있다.

오징혁과 김소담은 어떤 작전을 짜고 있는지가 궁금해져 쁘찡 연합이 놀고 있는 대화를 염탐했다.

[소담소담]: 오빠랑 군단장 잡으러 가요!

[오지혁_산군]: 밖으로 나가기 전에 뽑아낼 수 있는 건 다 뽑아내야지.

군단장을 잡으러 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좋네. 밸런스가 딱 맞다. 어차피 군단장도 잡아야 한다. 안 그래도 이놈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했는데 둘이서 잡아준다면 나야 좋지.

용사 후보들도 군단장을 잡기 위해 나서는 만큼 내가 짊어져야 하는 부담이 줄었다.

좀 더 자유롭게 움직여도 되겠지.

“가자.”

“어딜? 아아. 결국 황제 만나기로 결정했구나? 잘 생각했어. 가는 김에 무너진 마탑을 재건하는 것에 대한 것도 이야기해야지. 현시점에서 믿을 수 있는 마탑은 우리뿐이니까!”

“마족의 땅으로 갈 거야.”

“그래그래. 그거 좋, 뭐라고?”

“출발.”

난 녀석의 뒷덜미를 잡고 움직였다.

“아니, 아니! 갑자기 거길 왜! 그냥 왕국 쪽만 가도 마족 많잖아! 그놈들 잡으면 되지!”

“쫄따구만 잡아서는 끝이 없어. 핵심을 쳐야지. 드래곤에 대한 소식도 궁금하고.”

“드, 드래곤? 너 진짜 미쳤어?”

미치기는. 하루하루를 반듯하고 건실한 정신 상태로 살아가고 있구만.

“어차피 이동해야 돼. 게드릭이 있으니까. 내가 안전한 곳에 있어 봐야 좋을 게 없어.”

“그건 맞는데. 아오! 내가 왜 얘랑 엮였지?”

내가 외부로 나가야겠다고 결정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3군단장 게드릭. 내게 원한이 있는 놈이다. 마족의 낙인인지 모를 능력으로 내 위치를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고.

한곳에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위험해진다.

‘이왕 밖으로 나가는 거 놈도 처리할 수 있으면 좋겠군.’

언제까지 쫓길 수는 없으니 이번 기회에 정리하는 게 베스트다.

어디로 갈지는 이미 정했다.

내가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일까, 곳곳에서 정보가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통신망을 담당하는 건 샤일.

제국과 교단, 무너진 마탑에서 모은 정보를 건네주고 있다.

순수한 선의는 아닐 거다. 인력은 모자라고 본인들의 피해는 최소화하고 싶으니 내게 떠넘기는 거지.

세간에 퍼진 내 소문도 그렇다. 제국이 앞장서서 소문을 퍼트리는 중. 자연스럽게 내게 책임을 주는 거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응원하게 하고, 그 흐름에 따라 내가 억지로라도 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나야 그런 것 때문에 움직이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가야 한다. 윈윈 하는 거라고 보지 뭐. 시답잖은 거로 신경전을 펼칠 생각은 없으니.

“남부 그레이트 브릿지로 간다.”

드래곤을 봤다는 목격담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곳. 동시에 최근 언데드의 출몰이 잦다는 곳.

내가 원하는 놈들이 다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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