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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02화 (501/740)

502화 게드릭의 영혼 파편

시커멓게 죽은 땅. 저런 걸 본 적이 있다. 이전에 만났던 에이션트 몬스터, 망자왕인지 최초의 네크로멘서인가 하는 녀석이었는데.

‘놈이 사용하던 능력도 생명력을 흡수하는 거였어.’

이미 죽은 자신의 몸을 다른 대상의 생명력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 얻은 저주받은 망토도 가지고 있으니 확실하다.

형태는 다르지만 기능은 같은 만큼 얼마나 위험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고.

“불길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게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네! 정령까지 기겁할 줄이야.”

신성 마법사인 나그마와 정령을 다루는 샤일 또한 위험성을 눈치채고 달리기 시작했다.

마을 내부로 빠르게 침입해 오는 죽음의 기운. 목적지는 정해져 있다. 마을 곳곳에 설치된 묘비. 보랏빛으로 타오르는 글귀를 따라가면 되니까.

다음 비석에 도착하자마자 내용을 읽었다.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거 같다. 아까도 글귀를 읽고 나서야 다음 비석에 빛이 나지 않았던가.

아마 내용물을 읽으면 도망칠 수 있는 곳을 묘비로 알려 주는 형식인 거 같다.

누가 마족 아니랄까 봐 이딴 식으로 유적을 만들어 두다니. 이가 갈렸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당시에는 신성력으로 어떻게든 저지했지만 이번에는 형태가 다르다. 유적인 만큼 어떤 형식으로 작동하는지도 모르겠고.

어찌 됐든 마족이 만든 것이니 상극인 신성력으로 커버가 될 거 같기는 한데.

‘얘네는 어떨지 모르겠단 말이지.’

백 보 양보해서 신성 마법사인 나그마는 어떻게든 버틴다 치자, 그럼 샤일은?

무너진 마탑과의 연결망은 이 녀석이 전부다. 교단처럼 위세가 강하지도 않을뿐더러 교단과 사이도 나쁜지라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즉, 언제 또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뜻.

굳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겠지.

그것 말고도.

‘유적을 클리어하려면 준비해 둔 공략대로 진행해 주는 편이 좋아.’

무시하고 힘으로 해결하는 방법도 있다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마을 어디에 유적의 보물이 있을지 아무도 모르니까.

물론 최악의 경우 아무런 보상도 없을 가능성도 있었다. 애초에 유적의 보물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한테 넘어가서는 안 될 물건을 보관해 두었거나 유적을 지키는 무언가, 남들 몰래 숨겨둔 물건인 게 대부분이라서.

막말로 심보 고약한 놈이 만든 거면 그냥 함정만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여기는 아닌 거 같지만.

대놓고 망자의 고향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마계의 3군단장의 고향이다. 뭐가 있어도 있을 거다.

연달아 비석의 문장을 읽었다.

-죽음을 거스른 자, 고독함을 견뎌라.

-빠져드는 늪 바닥, 그 심연에 도달할지니.

-안배된 평온마저도 거부한 자, 내게로 오라.

이제 남은 비석은 하나.

마을의 중앙, 가장 커다랗게 만들어진 비석이었으며 마을 대부분이 검게 물든 상황. 안전한 곳은 이곳이 마지막이다.

“증명한 자, 내가 길을 인도하노니.”

망설임 없이 비석에 적힌 글귀를 외쳤으니.

-쿠르르르릉!

비석이 음산한 빛을 내뿜더니 주변이 흔들렸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땅이 가라앉는다. 지하로 내려가는 건가.

“정신 똑바로 차려. 뭐가 나올지 모르니까.”

“안 그래도 긴장 바짝 하고 있어.”

“이런 기능이 있었을 줄이야. 여기까지 알고 오신 겁니까.”

저마다 준비를 한다.

얼마나 밑으로 내려갔을까, 흔들림이 멈추고 내부가 비쳤다.

유령 마을 밑에 마련된 것은 흡사 성과 같았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바닥과 높이 솟은 기둥.

푸른빛을 띠는 등불이 저절로 타올라 공간을 비추었다.

“저거군.”

복도 끝에 보이는 것은 해골로 만들어진 제단. 정확히 말하면 관처럼 생긴 것이었는데 그 위로 복잡한 마법진이 구체 형상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불길처럼 솟아올라 천장에 닿아 있는 것은 불길한 검은 기운. 생명력을 뽑아 먹는 괴현상의 원인을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로라 빔(S) Lv.10+]

-찌유우우우웅!

곧장 오로라 빔을 쏘았다. 맹렬한 기세로 날아간 광선이 마법구에 닿으려는 찰나.

카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보호막이 번뜩였다.

그럼 그렇지. 아무런 대비도 없이 유적의 핵을 놔뒀을 리가 있나.

대미지가 완전히 안 들어간 건 아니다. 견고하게 짜여 있던 보호막에 균열이 갔으니까.

쉬지 않고 광선을 쏘아 냈다. 한 번으로 부족하면 뚫릴 때까지 들이부으면 그만. 파공성과 함께 터지는 충격파에 샤일과 나그마가 팔로 얼굴을 가린다.

-쩌적. 콰앙!

기어코 깨져 버린 보호막, 난 손끝을 핵에 겨누었고.

“어떤 놈이 오나 했더니 인간이로군.”

다시 한번 오로라 빔을 쏘려는 타이밍, 누군가가 나타난 광선을 쳐 냈다.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그래도 S등급의 스킬이다. 손 한 번 내젓는 걸로 튕겨 낼 만한 공격은 아니라는 말.

‘강한 놈이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 있는 것을 봤을 때 이 정도 공격은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는 실력자가 분명했다.

녀석이 후드를 벗자 새하얀 해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리치.”

평범한 리치는 아니다. 등급으로 따지면 6성급에 해당하는 몬스터지만 내게는 큰 의미가 없는 놈이니.

저건 리치가 아니라.

“마족이었어.”

“3군단장, 게드릭의 2번째 영혼 파편인 드렉이라고 하지. 이곳에 온 것을 환영한다.”

녀석이 양팔을 벌리자 허공에 수많은 마법진이 펼쳐졌다.

보랏빛으로 물든 마법진에서 튀어나오는 수십 개의 창날!

-파바바바박!

다짜고짜 날아오는 창날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옆으로 쳐 내는 것과 동시에 느껴지는 둔중한 감각.

무겁다.

단순하지만 확실한 위력. 마력으로 이루어진 창날이 비처럼 쏟아졌으나 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손이 어지러워진다. 아무리 검을 빠르게 휘둘러도 모든 공격을 막아 내는 것은 힘든 일.

-텅!

-카가강!

엇박자로 날아온 창 몇 개가 몸을 두들겼다.

펠라인 세트의 방호력 덕에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지는 않았으나 몸이 울리며 자세가 흐트러진다.

지금이라도 아공간에서 방패를 꺼내 들까도 싶었지만.

‘어차피 못 막아.’

A급 장비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파괴력이다. 아쉽게도 내가 만든 장비 중 방패는 A급이 최대치. 이럴 줄 알았으면 작정하고 준비하는 거였는데.

안개 질주를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만 놈이 어떤 공격을 추가로 해 올지 알 수 없다.

그런 나를 도와주기 위함인가 뒤에서 충격을 막아 내고 있던 샤일과 나그마가 움직였다.

“보조할 테니 앞으로 달려!”

“빛이여!”

정령의 힘을 담은 바람이 몰아친다. 자연적인 흐름을 벗어난 기류가 날아오는 창날의 궤도를 비튼다.

완전히 튕겨 내지는 못했으나 경로를 바꾸는 정도면 충분하다. 힘의 흐름이 바뀐 창날쯤은 얼마든지 치워 낼 수 있으니까.

게다가 나그마가 사용한 신성 마법이 내게 깃들었으니.

“이제야 좀 틈이 생겼네.”

살짝 여유가 생긴 난 그대로 버프 다이스를 사용했으며.

[3]

[충격파]

버프를 두른 상태 그대로 손을 뻗었다.

목적지는 나를 향해 날아오는 창날.

[파이어 밤(SSS) Lv.1]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창날 비에 대항한다.

비록 1레벨이지만 SSS급 등급. 오로라 빔을 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폭발이 전방을 감쌌고.

“크윽! 인간 놈이!”

마법 창날을 박살 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드렉까지 타격했다.

3군단장 영혼의 일부라고는 하나 본체는 아니다. 군단장보다 약한 게 당연하다는 것.

콰앙!

발을 박차며 앞으로 돌진했다. 놈 또한 지지 않고 손을 휘둘렀으니.

[침습하는 그림자 칼날(S) Lv.10]

허공이 갈라지며 반투명한 거대한 칼날이 덮쳐 왔다.

그림자 칼날이라는 이름답게 기척조차 없었으나 권능을 가진 내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위에서 아래로. 혼돈검을 내리쳤다.

[홍예참(SS)]

-카가가가가강!

잠시 버티는 듯했던 그림자 칼날이 깨진다. 이어서 재차 파이어 밤을 터트리고 프리즘 레인보우를 사용했다.

폭발로 시야를 차단하며 사용한 은신. 놈이 당황하며 거리를 벌린다.

허공에 새겨지는 수많은 마법진. 그림자 칼날 또한 무작위로 쏟아져 온다.

내 위치를 알 수 없으니 물량으로 견제하겠다는 판단이었으나.

‘그러면 안 됐어.’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 파편을 집어 놈에게 집어 던졌다.

“거기냐!”

바로 반응해 파편을 쳐 냈지만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

돌을 던지는 그 순간 시한폭탄을 설치했고 동시에 인챈트로 파이어 밤을 욱여넣었으니.

-콰아아아아앙!

파이어 밤보다는 못하지만 가공할 만한 폭발이 녀석을 집어삼켰다.

평범한 폭발이 아니다.

[러브 앤 피스(S) Lv.10+]

언데드인 녀석이 좋아 죽는 신성력을 잔뜩 넣은 폭발이지.

괴성과 함께 몸을 비트는 녀석. 무차별 난사를 했던 스킬들 때문에 역으로 내 위치를 더욱 파악하기 힘들어졌다.

조금만 주의를 했다면 내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자잘한 파편이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었을 텐데.

프리즘 레인보우가 완전 은신을 해 주기는 하지만 내가 움직여서 생기는 흔적까지는 어쩔 수 없어서.

-파각

지척까지 도달한 난 그대로 놈의 뒤통수에 검을 박아 넣었다.

신성력으로 뽑아낸 검강, 거기에 홍예참까지 더해진 일격. 아무리 놈의 머리가 단단해도 견딜 수 없는 공격이었고.

“크하아아아아!”

외마디 비명과 함께 녀석의 몸이 뼛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혹시나 부활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었지만 놈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

“후우.”

작게 숨을 내뱉으며 검을 거두었다.

어떻게 보면 무난한 승리였으나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좀 더 수월하게 해야 한다. 쓸 수 있는 것을 더 썼어야 했다.

당장 지금 되돌아봐도 할 수 있는 방법들은 더 있었다. 망령을 꺼내 놈의 시선을 끈다든지 아니면 전에 사용했던 것처럼 마그나로크의 왕관을 써서 얼음과 불의 교단의 지식을 끌어낼 수도 있었다.

“이전처럼 계속 싸우면 안 돼.”

이번에도 습관처럼 오로라 빔부터 쏘다가 말리지 않았던가.

물론 핵을 부수려고 쏜 거기는 했지만 받아들여야 할 건 받아들여야 했다.

3군단장도 아니고 그놈의 영혼 일부인 녀석도 S급 스킬을 받아쳤다. 그것도 수월하게.

만약 3군단잔 본인이었다면? 그놈은 더 심하겠지. 유독 마법 스킬에 강한 놈이라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걸지도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면 숭배자 골드 등급인 유헤다도 오로라 빔이 통하기는 했었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는 거지.’

혹시 아는가, 나중에는 마법이 아예 안 통하는 적이 나올지도. 반대로 물리적인 타격에 면역인 놈이 나올 수도 있고.

언제 어떤 놈이 나올지 알 수 없는 게 탑이다. 미리 놈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사실상 그건 불가능하다.

즉, 그때마다 상황에 맞춰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것. 그나마 권능이 있어 다른 사람보다는 편하게 대응은 할 수 있을 거다.

괜히 머리가 복잡해져 고개를 흔들었다. 어찌 됐든 적은 잡았으니 핵을 부술 생각.

-콰직

검을 휘둘러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는 마법구를 부수었다.

위로 솟구치던 기운이 흩어지며 마법구가 작동을 멈춘다. 그리고…….

[유적 클리어!]

[3군단장, 게드릭의 가호가 내려집니다.]

[망자의 기운이 휘몰아칩니다!]

유적 클리어와 함께 사이한 기운이 솟구쳤다.

아무래도 자신과 같은 언데드 계열의 존재를 위해 준비한 거 같은데 나한테는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신성력도 너무 많고.

망자의 기운 또한 내 몸에 침투할 수 없다고 느꼈는지 몇 번 더 내 몸을 건들고는 하나로 응축해 결정이 되어 떨어졌다.

[망자의 파편(S)]

-수천의 망자의 원념을 갈아 넣어 만들어진 결정.

-망자의 힘이 강화됩니다!

나쁘지 않은 물건이군.

대충 여기서 할 건 다 끝난 거 같고.

“다들 고생했다. 나가지.”

미련 없이 발을 돌리는데.

[게드릭이 자신의 영혼 일부가 사라졌음을 눈치챘습니다!]

[영혼이 찢기는 고통에 게드릭이 분노합니다.]

[게드릭은 자신의 영혼을 찢은 대상을 찾을 것입니다.]

알림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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