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화 유령 마을
난 잠시 샤일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고민하는 것을 숨기기 위함이었는데.
“으으읍! 왜! 왜!”
자연스레 얼굴을 벽에 밀착시키게 된 녀석이 이상한 소리를 낸다.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할까.’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무너진 마탑은 나를 용사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바이사와 함께 마족을 잡아서? 그럴 가능성도 있기는 하다만 그 당시 나는 신성 마법사라고 말을 해 뒀다.
거짓말을 눈치챈 건가.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용사랑 어떻게 이어지지?
모르겠다. 오다가다 들은 이야기인데 마법사라는 족속들은 대단히 이상적인 동시에 또라이인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세상의 섭리를 어기고 이능을 벌이는 만큼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한 존재들이라던가.
하기야 흑마법사들도 따지고 보면 마법사고, 하는 짓은 또라이니 마냥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해야 할 건 이런 오해가 이득이 되냐는 것.
고민은 짧았다.
“내 정체를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는 않았겠지?”
“그럴 리가. 너의 정체를 아는 건 우리뿐이야. 흑마법사와 마족의 귀에 들어가서 좋을 이야기는 아니잖아?”
“믿도록 하지. 물론 아니다 싶으면 그때는 좋은 꼴을 보지는 못할 거야.”
일단 넘어가자. 아직 첫 번째 챕터도 끝나지 않았다.
자잘한 것을 버리고 핵심만 보자면 구도는 명확하다.
숭배자인 흑마법사와 마족이 적. 그들을 적대시하는 무너진 마탑은 아군.
교단 또한 마족을 적대시하는 거 같기는 하지만 아직 제대로 만나 본 적이 없어 일단은 없는 셈 쳤다.
그밖에 더 고려해야 할 게 있었으니.
“무너진 마탑은 제국과 왕국과 우호적인가?”
“모든 곳과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제국과는 인연이 좀 있지.”
바로 제국과 왕국.
교단이니 마탑이니 말을 하지만 결국에는 국가 단위로 보자면 소수의 집단에 불과하다.
내가 해야 할 것은 단순히 소수의 적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다. 멸망을 비껴가게 만드는 것. 그게 핵심이지.
“좋아. 이야기를 들어 보마.”
손에 주었던 힘을 뺐다. 찧었던 이마가 아픈지 손으로 문지르던 샤일이 엄지로 골목을 가리켰다.
“여기서 이야기할 건 아니고 안으로 들어가지. 은신처가 있거든.”
그를 따라 들어간 곳은 허름한 건물. 폐가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는 곳이었는데 허름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나름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찌그러진 주전자를 덥혀 차를 내온 샤일이 마법을 부린다.
-사아아아
순식간에 정적이 감돈다. 골목길인 만큼 잡다한 종류의 사람들이 오가며 소음이 들려왔는데 말이지.
사일런스? 그건 아니다. 그거면 내가 권능으로 살필 수 있었을 테니.
내 낌새를 살핀 녀석이 어깨를 으쓱인다.
“아, 바이사 님이 말하더군. 뛰어난 신성 마법사라고. 교단 소속은 아닌 거 같지만. 눈치챘겠지만 난 정령 마법을 부리지.”
“그런 거 같군.”
사실 잘 모르겠지만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정령과는 꽤 접점이 있는 입장이라서. 정작 정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이 간접적으로 힘을 보태 주고 있는 거 같다.
“흐음, 정령 친화도도 제법 높은 거 같네. 다들 호기심을 보이고 있어.”
그야 그렇겠지. 정령의 친구 칭호를 가지고 있으니까.
은근히 느끼고는 있었지만 잡담이 많은 녀석이다.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으면 상관없지만 난 좀 급한 게 있어서.
아직까지도 챕터 이름이 안 나온 것도 그렇고, 오지혁이 언제 나갈지 모르는 상황이다.
녀석에게 남은 목숨은 하나. 그 목숨이 다하는 것을 기점으로 밖으로 나가게 되기에 그전까지 최대한 높이 올라가는 것이 목표였다.
이론상으로는 죽지만 않으면 100층까지 올라갈 수도 있기는 하다만.
‘그러지는 않을 거야.’
밖에 상황이 심상치가 않으니 너무 시간을 지체하는 것도 좋지 않았다.
멸망이 가속되며 바깥 시간과 탑의 시간이 점점 일치하고 있으니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세계가 엉망이 되기 전에 나가야 한다.
이미 비공식적으로 이야기가 나와 있다.
이번에 밖으로 나가게 되는 선발대에게 주어진 조건은 2개. 코인을 잃을 시 밖으로 나갈 것. 그러지 않더라도 최대 한 달이 지나면 자진해서 나갈 것.
탑에서의 한 달이면 밖에서는 대략 2주 정도 되니 나름 합당한 기준이었다.
그리고 80층대 마지막 챕터가 시작된 지는…….
‘보름이 지났어.’
시간이 많지 않다. 오지혁을 비롯해 멤버들과 다른 상위 헌터들 또한 속도를 높이고 있을 테지만 아직 별다른 신호가 없다.
흐지부지 시간을 보내다가 오지혁과 김소담이 밖으로 나갈 수도 있다는 말. 내가 무리해서라도 공략 속도를 높여야 한다.
샤일, 그러니까 무너진 마탑과 손을 잡는 것도 이 때문이고.
“유령 마을에 대한 정보. 그리고 혼령탑과 용사에 대한 것도 말해.”
“성격 참 급하군. 좋아. 우리도 적극적으로 움직여 준다면 나쁘지 않으니까.”
이미 정리해 둔 것인지 샤일이 지도와 수정 구슬을 펼쳤다.
“무너진 마탑이 예전과 같은 위세를 가지고 있지는 않는다 한들 다른 마탑보다 월등히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 고위 마법사 중 우리와 연이 없는 곳은 없어.”
“그런 것 치고는 열세한 느낌인데.”
슬쩍 샤일과 다 쓰러져 가는 집을 살폈다.
녀석도 민망한지 볼을 긁적거리고는 말을 이었다.
“과거의 이야기라서 그렇지. 흑마법사들 쪽으로 넘어간 놈들이 많거든. 어쨌거나.”
샤일이 지도를 가리켰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자세하게 그려진 지도.
눈에 잘 보이게 유령 마을과 혼령탑이 표시되어 있었고 그 옆으로 빨간색 선이 이어져 있었다. 안으로 진입하는 길을 표시한 거 같은데.
“길은 크게 2개야. 최단 경로와 안전한 경로. 봤다시피 요즘 제국군이 들어오면서 통제가 강화됐거든. 아무래도 우회하는 경로로 가는 게 좋아.”
“아까는 제국과 인연이 있다더니.”
“대놓고 우리를 밀어 주지는 않아. 제국은 교단의 영향이 더 크니까. 알다시피 우리와 교단은 그리 사이가 좋지 않거든.”
그건 몰랐던 사실이다. 똑같이 마족을 싫어하면 같은 팀이어야 하지 않나.
“진짜 어디 산골짜기라도 박혀 있다 온 건가. 아무것도 모르는군. 무너진 마탑이 성행할 때 교단을 무시한 전적이 있어서 그래. 애초에 교인들과 마법사는 사이가 나쁘지.”
잠시 곁가지 설명을 해 준 녀석이 우회 경로를 따라가는 루트를 읊었으나 손을 들어 막았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최단 경로로 간다.”
“응? 아니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그쪽으로 가면 무조건 막힌다니까? 신분이고 나발이고 완전 통제야. 그냥 막아 뒀다고!”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아.”
혹시 모를 흑마법사의 유입을 막기 위해 길을 폭파하고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다는 건 알겠다.
동시에.
“이곳 지키는 놈들은 안까지 들어갈 생각이 없어. 그랬다면 단순히 지키는 게 아니라 안으로 진격했겠지.”
“안으로 진격하려는 거 맞거든? 교단에서 파견된 성직자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지.”
“그래. 아직은 들어갈 생각 없다는 거잖아.”
말문이 막히는지 샤일이 입을 딱 벌렸지만 중요한 건 이거다.
“그냥 뚫어. 놈들이 쫓아와도 상관없어. 오히려 더 좋지. 그럼 흑마법사의 눈길을 끌 수 있으니까.”
어찌 됐든 제국과 교단도 이곳을 치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거 아닌가.
난 단지 선의로 그 시간을 좀 앞당기려는 거뿐이다. 겸사겸사 잠재적인 위협도 일찍이 치워 버리고.
“바로 간다. 준비해.”
“아, 아니. 진짜? 야! 잠깐만!”
생각을 했으면 행동으로. 꾸물거리고 있어서 좋을 게 있나. 바로 움직인다.
나름 소리를 지르며 저항하던 것도 잠시. 혹시 피곤한가 싶어 꾸욱 꾸욱 어깨를 눌러 주자 샤일이 비명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아아악! 알았어! 가면 되잖아!”
역시 피곤했던 게 맞았다. 종종 주물러 줘야지.
해가 떨어진 밤, 우리는 유령 마을로 향했다.
* * *
저기인가.
밤새 강행군을 한 결과, 동이 트기 전에 제국군이 지키는 통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기슭으로 들어선 후부터는 땅굴 이동을 통해 직진으로 이동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곳도 그렇게 지나가고 싶었지만.
“꿈 깨. 제국군이 멍청이도 아니고 그런 것까지 대비하지 않았을 리 없으니. 이미 마법으로 막아 뒀을 거야.”
샤일이 툴툴거린다. 빈말이 아니다. 내가 느끼기에도 그렇다. 그도 그럴 것이.
-우우우우웅
푸르게 빛나는 거대한 빛의 창이 땅에 꽂혀 있었고 창과 창 사이에 희미한 장막이 이어져 있었으니까.
어림잡아 위로 10미터 정도. 아마 지하에도 저 정도의 장애물은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땅 아래에 더 신경을 썼을지도 몰랐다.
위로 넘으려는 이들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밑으로 지나가려는 놈들은 파악하기 힘드니까.
“내가 말했지? 여기는 안 된다고.”
“아니, 돼.”
“어? 야!”
난 녀석의 뒷덜미를 잡고 당당히 앞으로 나섰다.
우리를 발견한 제국군이 일제히 검과 창을 우리에게 겨누었고.
“웬 놈들이냐!”
“정체를 밝히고 투항하라!”
[무지개다리(S)]
-촤아아아아아악!
누가 뭐라 할 새도 없이 무지개다리를 사용했다. 장벽 너머로 뻗어 나가는 무지개.
한밤중에 등장한 무지개에 제국군도, 샤일도 당황해 눈알을 굴린다.
재빠르게 샤일의 뒷덜미를 잡고 무지개에 올라탔다.
“잡아라!”
“마법사다! 활을 쏴!”
“창을 던져라!”
뒤늦게 나를 향해 화살과 창이 날아왔으나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이동 중에는 파괴 불가니까.
물론 무지개다리 위에 있는 사람은 무적이 아니다. 공격에 맞으면 맞는다는 말. 운이 나쁘면 눈먼 화살에도 목숨을 잃는 법. 샤일을 눌러 자세를 낮췄다.
나야 일반적인 공격쯤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어 가는 길에 특이점은 없나 살필 생각, 이었는데.
-콰아아아앙!
-까아앙!
“어우, 깜짝이야.”
갑작스레 느껴지는 진동과 굉음에 눈살을 찌푸렸다.
밑을 보니 마법사로 보이는 인물과 활과 화살에 푸르게 빛나는 오러를 두른 제국군이 보였다.
오, 활에도 저런 걸 할 수 있구나. 활 쪽은 다루어 본 적이 별로 없어서 모르고 있었다.
-쉬이이익!
-텁
“꽤 괜찮네.”
내 머리통을 꿰뚫을 기세로 날아온 화살을 붙잡았다.
시도 자체는 좋았으나 이 정도로는 안 되지. 궤도도 너무 정직하고. 나중에 실력이 더 쌓이고 기교를 부릴 수 있게 되면 훌륭한 궁수가 되지 않을까.
마법사 쪽은 거리가 멀어지자 마력을 아끼기 위함인지 지팡이를 내렸다. 길이 뚫렸으니 다들 징계는 면치 못할 거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라고 정면으로 뚫고 가고 싶었을까. 본인들 업보지.
“그러게 경계를 허술하게 했으면 조용히 옆으로 지나갔잖아.”
“…헛소리도 그 정도면 수준급이군.”
샤일이 질색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지만 무시했다.
난 진심인데. 정문에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비교적 경계 장치가 적었는데 다른 쪽은 허공이고 지하고 마법 지뢰를 잔뜩 깔아 둬서 좀 그랬다.
아무튼.
“저기가 유령 마을인가 보군.”
무지개다리를 타고 위로 치솟아 시야가 넓어지자 목적지가 보였다.
말 그대로 유령 마을.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기후에 맞지 않게 깔린 안개가 근처를 가리고 있다.
꾸물거리며 움직이는 존재는 유령인가 아니면 언데드인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유령 마을. 그 너머로 시선을 돌리자 보이는 곳은.
‘혼령탑.’
작고 완만한 민둥산이 여러 개. 그 위로 보이는 수많은 묘비. 음기의 영향인지 나무를 비롯해 주변 식생도 변질된 느낌이다.
거리가 멀어서 더 살펴봐야겠지만. 일단은 유령 마을부터.
-철컥
-촤르르륵
펠라인 세트를 착용했다. 이곳부터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까.
내 모습을 본 샤일이 감탄했으나.
“이게 바이사 님이 봤다던…….”
-콰아아아아앙!
뒷말은 폭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등 뒤로 느껴지는 화끈함. 순간적으로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었다.
난 천천히 몸을 돌려 공격한 대상을 확인했고.
“오호라.”
광채를 내뿜으며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녀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