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7화 그로핀 용병단
가장 먼저 들렀던 영지를 지나 이동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예상은 했지만 치안이 그리 좋지 못하군.”
곳곳에 게이트가 터지고 마계와의 문이 열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영주의 힘이 미치는 구간을 지나면 치안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뜬금없는 곳에서 몬스터가 등장하기도 하고, 터전을 잃고 산적으로 돌변한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간혹 상단으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으나.
“경계 먼저 했었지.”
혹시나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접근한 건 아닐까 하는 날 선 태도를 보였다.
나를 보자마자 호위로 보이는 이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드는 것과 상인들이 마차 뒤로 엄폐하는 걸 보고 기가 찼지.
움직임을 보니 한두 번 해 본 게 아니다. 물론 난 혼자였고 대화 몇 마디 섞지도 않은 채 지나가서 별다른 일은 없었지만.
적어도 이곳에서 낯선 상대라는 건 경계의 대상이 맞았다.
혼자라고 해도 그다지 믿음이 없는 게 나도 비슷한 형식으로 당하지 않았던가.
꼬맹이 한 명 내보내서 경계심을 누그러트리고 그때를 틈타 매복해 있던 산적들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이 시대에 있어 타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으으읏차. 오늘은 노숙하지 않아도 되겠어.”
괜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곳 위주로 움직이다 보니 노숙을 꽤 했다.
이제야 노숙이 일상이고 찬 바닥에서 자도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편하게 지낼 수 있으면 그러고 싶은 게 당연한 거 아니던가.
벌써 4일째 노숙하고 있었으니 멀쩡한 식사와 잠자리가 생각났고, 다행히 크지는 않지만 구색을 갖춘 마을에 들어설 수 있었다.
단순히 쉬고 싶어서 이곳에 온 건 아니고.
‘소식을 좀 들어야겠어. 내가 옳은 방향으로 온 건지도 확인해야 되고.’
누가 뭐라 해도 처음 겪는 세계. 현대처럼 네비게이션이나 지도 어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지도도 없이 물어물어 이동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그동안 쌓인 경험이 있어 길 찾는 건 자신이 있었으나 그것도 거리가 늘어나면 애매하다.
“거기, 외부자요?”
“보다시피.”
“좋지 않은 시기에 왔군. 뭐, 혼자인 걸 보아하니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거 같소만은 마을 내에서는 얌전히 있는 편이 좋을 거요.”
마을 입구를 지키던 이가 넌지시 말했다.
옷차림으로 봤을 때 기사는 아닌 거 같고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치안을 담당하는 자경단 같다.
입을 타고 길게 이어진 흉터를 봐서는 나름 실전 경험도 있는 거 같고. 그런 자의 충고인 만큼 관심이 갔다.
“마을에 무슨 일이 있는 거 같군요.”
“용병단 하나가 들어와 있어서 말이지, 쯧. 이 구석진 곳에 한두 명도 아니고 용병단 전체가 올 일이 뭐가 있다고.”
짜증 나는지 미간을 찌푸린 남자가 날 위아래로 훑었다.
“모험가인 듯한데 여관은 가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작은 마을이라 여관이 하나거든. 놈들이 차지하고 있으니 괜히 엮였다가 험한 꼴 보지 마시오.”
생긴 건 험악한데 은근히 친절하다. 이쪽 차원에 떨어지고 외부인인 나에게 이만한 친절을 보였던 사람은 없는 거 같은데.
“얼굴에 상처 하나 없는 게 풋내기 같아 그러오. 용병이라는 것들은 수틀리면 강도가 된다는 걸 잊지 마쇼.”
“잘 알고 있네요?”
“나도 한때는 용병이었으니까. 쯧. 영 잘 데가 없다면 촌장님에게 부탁하쇼. 나름 정 있는 사람이니까.”
“호의 감사합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말은 고맙지만 여관으로 갈 생각이다. 일면식 하나 없는 촌장한테 신세 지는 것도 좀 그렇고.
‘용병단이라고 하면 소문에 밝겠지.’
그동안 시나리오를 겪으면서 배운 게 있다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만큼 잡다한 정보를 모으기 좋은 곳이 없다는 거다.
소문이라는 게 과장되거나 거짓말이 많아 신뢰성은 좀 떨어지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겠지.
* * *
‘확실히 좀 사리는 분위기군.’
칼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 용병. 그것도 용병단 자체가 들어왔다 하니 마을 사람들 입장에서는 위협적으로 느껴질 거다.
무장 세력이 내부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니까. 몇몇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이들도 있었으나 여인들을 후드를 뒤집어써 얼굴을 가렸고, 남자들은 허리에 찬 칼을 내보이며 건들지 말라는 무언의 시위를 했다.
검이라고는 하지만 영 어색한 것이 급하게 호신용으로 들고 다니는 거 같지만.
‘오히려 역효과일 거 같은데.’
막말로 시비 털다 검 들고 한 판 붙자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해지니까.
그것까지 내가 신경 쓸 건 아니다.
크지 않은 마을이라 그런지 여관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시간은 초저녁. 가로등이 없는 세계인 만큼 노을이 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두워질 거다.
타이밍 잘 맞췄네.
-딸랑
문을 열고 들어서자 긴장한 얼굴로 분주히 음식을 나르는 종업원과 자잘한 상처로 얼굴이 도배된 이들이 보였다.
딱 봐도 용병, 산에 놔두면 산적이라 해도 믿지 않을까?
그들의 눈이 내게 쏠린다. 종업원 역시 당황한 기색이었으나 무시하고 카운터로 향했다.
“방 하나 주시죠. 1인실, 기간은 3일.”
다음 목적지로 향하기 전에 준비를 할 생각이라 넉넉히 3일을 기간으로 잡았다.
여관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흘낏 용병들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방이 없군. 미안하게 됐어.”
거짓말이다. 카운터 내부 벽면에 방 열쇠가 걸려 있었으니까. 아직 여유가 있다는 거다.
용병단 전체라고는 하지만 열댓 명. 여관이라는 이름을 달아 놓고 방이 그것밖에 없을 리가 있나.
그저 괜히 싸움이 날까 싶어 내보내려는 거다.
-스윽
품에서 은화를 꺼내 건넸다. 오면서 마주친 강도와 산적들이 선물해 준 돈이다.
“이건 방값이랑 식사값이고, 이건 머무는 동안 편의 좀 봐 달라 주는 팁입니다.”
은화 3개를 더 꺼내 내밀었다. 이쪽 세계에 대해 아는 건 많지 않지만 대략적인 시세는 파악해 놨다.
할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다들 말이 많았고, 길가에서 마주쳐 하루 동안 동행한 모험가 파티한테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금전 감각이라고는 없는 내게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아무튼.
“으음.”
눈살을 찌푸리며 고민하는 여관 주인. 걱정 어린 눈으로 날 바라보던 그가 고개를 저으려 하는 타이밍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장, 거 방도 남는 거 같은데 손님 안 받고 뭐 해?”
“거, 너무 팍팍하게 하면 장사 안 되지 않수! 하하하!”
용병들.
술을 좀 마셨는지 얼굴이 붉은 기가 도는 이들이 뭉개지는 발음으로 떠들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얼굴을 쓸어내린 여관 주인이 방 키를 넘기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방 밖으로 안 나오는 게 좋을게요. 식사도 내 따로 전해 드리지.”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아직 저녁을 못 먹어서 바로 준비해 주시죠.”
“아니, 사람이 걱정을 해 줘도……!”
울컥한 여관 주인이 뭐라 외치려다 본인 목소리가 큰 걸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마음대로 하라며 손을 내저은 그가 주방으로 들어갔고 난 용병들과 좀 떨어진 곳에 앉았다.
그런 내게 다가오는 용병 하나. 아까 방 내주라 말했던 녀석이다.
‘미묘한 놈이군.’
겉으로 보이는 건 주정뱅이인데 눈에 흔들림이 없다. 뭐라고 해야 하나. 술에 취한 척하고 있는 느낌?
“뭘 그리 혼자 있나? 잠깐이지만 같은 지붕 아래 있을 텐데 한잔하지?”
그러면서 내게 술이 담긴 컵을 내민다. 맥주인가.
일단 받아들였다. 단순히 친화력이 좋은 건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보초도 그렇고 여관 주인도 그렇고 과할 정도를 이들을 경계하는 거 같단 말이지.’
외부인인 나를 걱정해 줄 정도로 말이다.
“쭉 한잔하자고!”
그러면서 단숨에 술을 들이켜는 녀석. 나 역시 잔을 비웠다.
혹시 독이 든 건 아닐까 의심도 해 봤는데 그냥 술이 맞다.
“호쾌하구만그래!”
“잘 마시는군. 마음에 들어!”
주변에서 환호를 하며 분위기를 띄운다.
“그에에.”
“어허, 넌 안 된다.”
은근슬쩍 덕춘이도 술을 마시려 하길래 말렸다. 요놈의 개구리가 술만 마시면 고삐가 풀려서. 모두를 위해서라도 막는 게 좋았다.
불만스러운지 혀를 내두르면서도 더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고.
“특이한 동물을 키우는군. 펫인가? 테이밍? 일반적인 동물은 아닌데.”
녀석이 덕춘이에게 관심을 보이길래 손을 내밀었다.
“꽤 영리한 친구지. 통성명도 안 했네. 난 이블아이다.”
“아차, 그렇군. 그로핀 용병단장, 후카 그로핀이라고 하지.”
주제를 돌리자 녀석이 어깨를 펴며 뒤에 있는 이들을 가리켰다.
나름 자기 용병단에 자부심이 있는 거 같은데. 그로핀 용병단이라, 역시 모르겠다. 대충 이름을 기억해 두며 마침 주인장이 내온 음식을 입에 넣었다.
그런 나를 본 후카 그로핀이 눈을 빛내며 입꼬리를 올렸다. 잠시 침묵하던 이들 또한 한 박자 늦게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이름을 듣고도 태평하다니. 으하하! 이거 보통내기가 아니었구만!”
왜 이래, 이 녀석들.
“신나게 마시다가 정체를 알려 줄 때 놀란 모습을 보는 게 취민데 말이야. 이거 보는 내가 다 민망하군.”
“그만큼 자신감이 넘친다는 거겠지요, 단장님.”
“재밌는 친구가 있네요. 허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정도 깡은 있어야 안 합니까!”
아무래도 내게 술을 권한 게 단순 호의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놀라는 표정을 보는 게 취미라니. 성격 별로네. 나야 진짜 놈들을 몰라서 이러는 거지만.
‘살짝 궁금해지는군.’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난 조용히 물을 마시며 권능을 사용했고.
[후카 그로핀]
-중립 NPC.
-그로핀 용병단의 단장.
-펜휠 영지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칭 트레져 헌터. 타칭 날강도.
-명성보다는 악명이 높죠!
아무래도 강도와 용병단 사이 어딘가에 있는 녀석인 모양이다.
정보가 줄줄이 나오는 게 나보다 강한 거 같지는 않다.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게 있다면.
‘트레져 헌터?’
보물을 찾아다니는 이들을 말하는 거 아닌가.
그런 놈이 용병단 전체를 끌고 거점 밖으로 나왔다라. 살짝 흥미가 생긴다.
“놀려 먹으면서 술안주로 쓸까 했더니만 이렇게 나오니 영 별로군.”
“보통 그런 말을 면전에다 하나?”
“보통은 그렇게 되더라고.”
후카 그로핀이 술 냄새를 풍기며 그리 말했고 용병들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관 주인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며 머리를 쓸어넘기는 중.
질이 나쁜 놈들인 건 알겠다. 안 그래도 이것저것 정보도 모으면서 물어볼 게 있었는데.
“내가 이쪽 근방은 초행길이라 그러는데 말이야. 지금 나한테 시비 걸고 있는 게 맞지?”
혹시 모르니 확인 한번 해 주고.
“어, 맞아.”
“잘됐군.”
“뭐?”
-빠악!
곧장 나무 그릇으로 놈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박살 나 날아가는 나무 파편과 그대로 기절해 바닥에 엎어지는 용병단장.
놀라면서도 곧장 무기를 빼든 용병들이 달려든다.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 망설임 없이 급소를 향해 내지르는 검.
“초면에 칼질이라니.”
몸을 비스듬히 기울이며 공격을 피해 낸 후 손날로 검을 찔러 넣은 팔뚝을 가격했다.
빠득!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팔뚝이 제멋대로 돌아간다. 이어 손을 후려 턱을 치니 치아가 부러져 바닥을 나뒹군다.
이가 맞나? 하도 노래서 이빨인지도 몰랐네. 아무튼.
“지금부터 몇 가지 질문을 할 거야. 1초 안에 답 안 나오면 탈락.”
-파앗
용병 한 명에게 크게 한 걸음 다가갔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자 기겁한 녀석이 엉덩방아를 찌었고 난 친절하게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췄다.
“용사에 대해 아나?”
“네, 네?”
“탈락.”
-콰앙!
녀석의 머리를 바닥에 꽂아 넣었다. 잠시 꿈틀거리더니 축 늘어진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다음 대상을 골랐다.
용병들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