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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490화 (489/740)

490화 선발대라

오랜만에 열어 보는 스킬창. 그곳에는 내가 그동안 익힌 수많은 스킬들이 있었다.

50개가 훌쩍 넘어가는 스킬들. 처음 탑에 들어올 때만 해도 마땅한 스킬 하나 없었는데 많이도 익혔다 싶었다.

비교적 쓸 일이 적었던 거나 일상생활용 스킬들은 굳이 승급을 안 해 놔서 대단히 높은 등급은 아니었으나…….

‘대부분 S등급까지 올랐군. 이세계 스킬도 2개나 있고.’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가. 그래도 80층대 중반을 넘어섰으니 이 정도는 되어야지 싶다.

오히려 좀 부족한 감도 있다. 개고생이란 개고생은 다 하면서 등반을 했는데 어째 SSS급인 스킬이 정신 보호 하나밖에 없다.

아니지, 이제는 2개지.

[파이어 밤(SSS) Lv.1]

-혼돈의 힘으로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혼돈의 힘이 깃들었습니다.

-펑! 퍼버벙! 펑펑!

“이게 이렇게 되네.”

파이어 밤. 내가 가장 애용하는 스킬 중 하나.

지금까지 수없이 겪어 온 위기를 벗어나게 해 준 고마운 스킬이다. 가장 빠르게 MAX레벨에 도달한 스킬이기도 하고.

펠리인 세트를 제외하면 나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였다.

분명 스쿠룬타를 상대로 싸웠을 때 새로운 스킬로 바뀌었던 거 같은데.

-[억겹의 폭화]

분명 이런 스킬이었지.

버그와 함께 탄생한 스킬. 일시적이지만 혼돈의 파편에게도 유효한 대미지를 줬던 일격.

파이어 밤도 강하지만 이건 차원이 다른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막말로 레비아탄과 같은 괴물 형태의 재앙도 화력으로 찍어 누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살짝 아쉬운 느낌도 들었지만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워낙 찜찜했어야 말이지.”

“그에에.”

이상하지 않은가. 파이어 밤이 이세계 스킬도 아니고 등급이고 레벨이고 전부 사라져 버리다니.

칭호도 아니고 말이다. 하다못해 권능도 등급은 따로 존재한다.

유일하게 등급도 레벨도 붙지 않는 능력은 하나.

‘혼돈의 파편이 쓰는 힘.’

델버튼이 사용하는 역병의 안개가 그러했다.

온갖 질병과 독이 섞인 안개를 내뿜을 때도 이름만 떠올랐었지. 권능으로 확인했던 만큼 분명하다.

다르게 말하면 순간적이지만 나 역시 혼돈의 파편과 같은 힘을 썼다는 건데.

‘솔직히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모르겠군.’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다름 아닌 혼돈의 파편이 사용하는 스킬을 썼다는 거니까.

메시지도 떠오르지 않았던가.

-[당신은 혼돈의 파편이 아닙니다.]

-[스킬 합성 결과가 바뀝니다.]

이걸로 확실하다. 어쩌면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난 혼돈의 파편이 되었던 건 아닐까?

단순한 착각일지는 모르겠지만…….

‘혼돈의 파편에 가까워지는 느낌이야.’

버그.

카오스 속성의 영물.

정의할 수 없는 혼돈.

100층에 도전했던 혼돈의 파편과 무한 코인.

“신경 쓰지 말자. 나만 잘하면 되지.”

영 찝찝한 마음에 메시지 로그를 살폈다.

86층을 클리어한 건 확실하고 죽었던 것도 맞다. 결과야 어찌 됐든 다른 피해 없이 시나리오를 끝내서 홀가분한 건 사실이다만.

“혼돈의 파편이 내게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아무리 봐도 득보다는 실이 많아.”

안 그래도 수상한 초대를 받는 자라던가 잊힌 세계의 왕 같은 칭호 때문에 이상한 놈들이 꼬이는데 말이다.

괜히 머리가 아파 머리를 긁었다. 어째 주변에 정신 나간 녀석들만 꼬이는 기분이다.

문제는 망할 혼돈의 파편들은 앞으로 등반을 하며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다는 것.

괜히 70층 안전지대에서 혼돈의 파편 열화판과 전투 경험을 시켜 주는 게 아니다. 80층대서는 간접적으로나마 마주치게 되었고, 이런 흐름이면 90층대에서는 정면에서 맞이할 게 분명했다.

전력 증가가 절실하다. 비단 나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 거다.

-와, 드디어 벗어났다.

-지옥에서 올라온 놈들 더럽게 강하던데.

-아니… 딜이 안 박혀. 맞아 이게?

-그래도 나 S등급 스킬도 있는데 이럼.

-그게 다 쁘띠공듀 님의 은총이 부족해서 그런 겁니다. 이번 기회에 공듀 님을 섬기시고…….

└아아, 쁘☆맨.

└부족했던 건 스킬 등급이 아니라 신앙심이었고ㅋㅋㅋㅋㅋ.

이번에 나와 함께 86층을 공략하던 이들도 부족함을 느끼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왜 나오는지는 모르겠다만. 어이가 없네. 누가 보면 사이비 종교인 줄 알겠네.

것보다.

“어찌 됐든 새로운 가능성이 생긴 건 맞아.”

A급 이하 스킬은 아무리 강화해 봤자 S급까지 올리는 게 최대다. 레벨이야 MAX가 끝이고.

SS급 이상의 스킬은 좀 다르다고는 하지만 이건 확인해 본 게 없어서 모르겠다. 그리 다를 거 같지는 않지만.

비록 내가 사용한 건 없지만 다른 NPC나 재앙이 SS급 이상의 스킬을 사용한 걸 본 적이 있다.

그것들도 똑같이 MAX레벨까지 올라간다. 등급 변화도 따로 없고 말이지. 대신 스킬 옵션이 좀 더 붙는 거 같았다.

예로 들어 상처가 아물지 않는 옵션을 지닌 SS급 스킬이 최대 레벨까지 올라가면 상처가 쉬이 회복되지 않은 것과 동시에 괴사가 일어난다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어쩌면 소모되는 마력이 줄어드는 식으로 자잘한 효과가 생길 수도 있고.

문제는 SS급 이상의 스킬을 얻는 게 말도 안 되게 어렵다는 것. 당장 나도 장비는 SSS급에 달하는 것들이 여럿 있지만 스킬은 없지 않던가.

“나도 이 정돈데 다른 사람들은 더 심하겠지.”

스킬 합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거래처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한때 많이 샀던 스킬 랜덤 박스도 끽해야 S급이 최대나 마찬가지고.

그나마 가능성 있는 것이 특수한 퀘스트를 깨거나 유적과 같은 이벤트를 만나는 것인데, 나름 많은 유적과 던전을 겪어 온 나도 소득이 없었으니 다른 사람이라고 다를까 싶다.

뭐, 이제야 알 바는 아니지만.

[SSS급 권능, 스킬 합성을 발휘합니다.]

혼돈의 파편이 아닌 만큼 놈들이 사용하는 이능을 가질 수는 없지만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혼돈을 이용한 강제 초월. 없으면 만들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다행히 아직 스킬 합성이 잠기지 않았다.

이번에 상당히 많은 스킬북을 재료로 쓰기는 했으나 여전히 상당한 양의 스킬북이 남아 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스킬북을 구매하시겠습니까?]

[랜덤 스킬 박스를 구매하시겠습니까?]

.

.

.

추가적으로 상점창에서 스킬들을 구매했다.

이미 포인트는 차고 넘친다. 장비도 최종 세트로 맞춰 크게 돈 나갈 일도 없거니와 화조국을 비롯한 다른 곳과도 꾸준히 거래했더니 나름 부자라고 생각할 정도는 모았다.

어차피 탑 밖으로 나가게 되면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이 포인트.

물론 NPC가 된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그럴 일은 없다. 없어야 하고.

난 권능을 사용했다.

* * *

결과적으로 약간의 소득은 있었다.

먼저.

“무작정 되는 건 아니군.”

“그에엑.”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들을 가지고 실험을 해 봤는데 강제 초월은 아무 스킬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몇 가지 조건이 있는 거 같았는데, 그 첫 번째는 S등급까지 올렸을 것. 두 번째는 MAX레벨에 도달했을 것.

여기에 하나 더.

“아무래도 해당 스킬에 대한 이해도나 경험이 영향을 끼치는 거 같아.”

스킬창을 바라봤다.

혼돈을 이용한 스킬 초월이 우연은 아니었는지 다른 스킬 하나도 등급을 올릴 수 있었다.

[일레트릭 쇼크(SS) Lv.1]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 이걸로 스킬 합성을 시도해봤는데 SS급이 되었다.

재료가 부족한 건 아니고 저게 최대치였다. 메시지로 SS급이 끝이라고 떴으니 SSS급까지는 불가능한 모양.

아무래도 파이어 밤에 비해 숙련도가 좀 부족해서 생긴 결과가 아닐까 싶다.

충분히 강력한 스킬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최근에는 오로라 빔이라던가 절삭, 검강과 같은 스킬을 더 많이 써서.

비슷한 시기에 얻었던 프로즌 브레이크는 아직 MAX레벨에 도달하지도 않았다.

오로라 빔이야 이래저래 많이 썼지만. 일렉트릭 쇼크가 아니라 오로라 빔을 대상으로 했다면 SSS급이 되지 않았을까?

마음 같아서는 더 연구해 보고 싶지만.

[스킬 합성(SSS)- 비활성화]

이번을 끝으로 권능이 비활성화 돼서 한동안은 사용하지 못한다.

다 떠나서 재료로 사용하는 스킬북도 만만치 않고. 이번에도 중간에 재료가 모자라서 상점창에 있는 스킬북을 긁어모으다시피 했다.

포인트도 꽤 줄었다. 백만 단위로 사용했으니 어쩔 수 없나.

아무튼.

“조금은 더 강해졌겠군.”

스킬 레벨이 귀여워지기는 했지만 레벨이야 올리면 그만이니까.

그건 그거고.

“연락이 왔군.”

노블 나이트의 수장, 오필리아가 이준석을 통해 연락을 해 왔다.

빅스타 길드 쪽에서 1차 선발대가 준비돼서 이번에 밖으로 나간다고. 그중에는 노블 나이트 소속도 한 명 껴 있다고 한다.

바깥 상황이 악화된 만큼 상위 헌터들이 나설 때가 되기는 했다. 그러면서 제안을 하나 해 왔는데.

[이준석]: 한국의 쁘찡 연합이 만들어지는 걸 도와준다고 하더군요.

[이준석]: 일종의 지분을 만들겠다는 의미인 거 같습니다. 약간의 빚을 지우려는 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지원을 약속했는데 그게 꽤 파격적이다.

노블 나이트는 탑 공략을 위해 꾸려진 최종 결사대. 그 뒤를 받쳐 주고 있는 건 미국의 대형 길드 빅스타다.

한국에도 대형 길드는 여럿 있지만 명실상부 헌터 최강국인 미국의 대형 길드와 비교하면 한 끗발 밀리는 게 사실.

그런 곳에서 금전적인 것뿐만 아니라 인력 지원과 정치적인 영향력도 발휘해 준다 하고 있었다.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가.’

내가 탑에 들어올 때도 한국은 헌터 강국이긴 했다. 순위로 따지면 세계 8위 정도?

이게 참 애매한 게 결코 낮은 수치는 아닌데 그렇다고 엄청나게 높은 순위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당장 주변에 있는 중국과 일본이 꽤 치는 놈들이라.

그런 상황에서 아직 형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우리를 돕겠다고 나서는 이유?

“이미 아는 거지. 이쪽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는 순간 뒤바뀐다는 걸.”

최근에야 다른 나라 헌터들도 연합에 들어오면서 등반율이 올라고 있다지만 여전히 상위 헌터 비중은 우리가 높다.

당첨이 확정된 긁지 않은 복권이라는 뜻.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은 편이다. 다른 세력이라면 몰라도 빅스타는 우리랑 뜻이 맞는 부분이 있어서.

잘못된 공략법에 대한 반감. 초창기 헌터들의 구린 짓을 파고들고 멸망에 대해 경고하는 것.

고민은 길지 않았다.

[쁘띠공듀]: 전 좋아용!

[이준석]: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저도 나쁜 제안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준석도 같은 생각인지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여기까지만 보면 잘 흘러가고 있는 거 같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지원이든 뭐든 다 좋다 이거야. 그런데 그것도 받을 사람이 있어야지.”

핵심 인원은 전원 탑에 있었고, 밖에 나가게 된 연합 사람들끼리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얼마나 일이 진척됐을지는 알 수 없다.

아직 시작도 안 했을 가능성이 높고, 작업하고 있다 한들 대형 길드의 눈치가 보여 몸을 사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쁘띠공듀]: 구룬뎅 우리 쪽에는 사람이 없지 않나욧?

걱정을 담아 말을 남기자.

[이준석]: 아, 그 부분 말입니다. 연합 안에서도 밖으로 나갈 선발대가 잡혔습니다.

86층에서 구르는 동안 이준석도 뭔가 많이 한 모양.

난 녀석이 보내 준 명단표를 살폈고.

“호오.”

익숙한 이름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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