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5화 내게는 안 통해
검이 빛난다. 검강을 두른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땅이 뒤집히고 피하지 못한 숭배자의 몸이 반토막 났다.
엄청난 무위라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유헤다 저 녀석이 건방을 떤 이유가 있었군.’
무슨 좀비도 아니고 바닥에 쓰러졌던 천사들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생명체가 아니기라도 한 건가. 몸이 잘려도 내장이 튀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무기질적인 무언가. 아무래도 저 녀석이 속해 있는 천계의 천사들은 골렘 비슷한 몸을 가지고 있지 싶다.
그러니까 몇 번이고 몸이 날아가도 겁도 없이 일어서지. 아무리 몸을 회복시킬 수 있다 한들 고통까지 어쩌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몸을 일으키는 이유는…….
“오오! 신성이 차오른다!”
“유헤다 님을 위하여!”
“불굴의 전사들이여 몸을 일으켜라!”
놈들이 미치광이기 때문이다. 부활할 때마다 차오르는 신성력과 고양감. 고통을 덮어씌우는 쾌락과 넘쳐흐르는 힘이 저들을 부추겼으며, 광신도나 마찬가지인 충성심과 신앙심은 스스로를 망설임 없이 사지로 밀어 넣었다.
신.
저들에게 유헤다는 신이나 마찬가지. 그럴싸하기는 하다. 기적이나 다를 바 없는 능력을 보여 주는데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저 봐라.
-우우우우웅
“나의 병사들아, 생명을 불살라라!”
“으으으아아아!”
녀석의 천사링이 황금빛을 터트리자 방금 쓰러트린 천사가 괴성을 내지르며 부활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영혼에 직접 타격을 입는 것까지는 어쩌지 못한다는 것.
영혼 찢기로 다리 한쪽을 날린 덕에 발을 절뚝인다. 이것을 이용해 공략해 볼까도 했지만.
[유헤다의 축복이 내립니다!]
[신성의 육체를 얻습니다!]
-파아아아앗!
강렬한 빛과 함께 천사들의 몸에 황금빛 아우라가 머문다.
동시에 놈들이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했으니.
-콰직!
-촤아아아악!
영혼 찢기로 당해 불편한 신체 일부를 스스로 잘라 냈다.
그 자리를 신성의 빛이 대신 차지해 망가진 몸을 대신한다.
“지들이 무슨 도마뱀도 아니고 저러냐고!”
“몰라. 그냥 미친 놈들인가 보지. 효과 끝나면 완전히 병신 되는 거지만.”
정신 없이 싸우던 핥짝이도 질린 기색을 보인다.
지금이야 축복을 받아 움직일 수 있지만 끝나면 어떨까.
어떻기 뭘 어때. 그냥 팔다리 한 짝 없는 채로 살아가는 거지.
한 가지 위안 삼을 것이 있다면 영혼 찢기로 목이 잘린 이들은 끝내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것.
천사라고는 하나 영혼의 격이 다르지는 않다. 영물쯤 되면 영혼에 타격을 입어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지만 저들은 아니라는 말.
“읏차!”
어깨를 노리고 들어온 창을 피해 몸을 숙였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검이 날아온다. 아래에서 위로. 내 머리통을 짝수로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피하기 애매한 각도.
걱정은 들지 않았다.
“그에엑!”
외갑으로 몸을 단단하게 만든 덕춘이가 몸통박치기로 검을 튕겨 냈고 이어서.
-빠드드득!
혀를 내밀어 놈의 손목을 부숴 버렸으니까.
몸에서 날 수 없는 소리와 함께 돌아가 버린 손목. 검을 떨군 녀석의 몸에 검을 쑤셔 박았다.
-우드드득
확실히 일반적인 생명체는 아니다. 사람 몸통보다는 단단한 나무를 찌른 느낌이라서.
상당한 저항력에 조금씩 손목에 피로가 쌓이는 기분이다. 놈들도 그걸 아는지 어정쩡하게 공격을 막거나 피할 바에는 유헤다의 부활을 믿고 몸통으로 받아 냈다.
이게 어딜 봐서 천사야. 골렘 아니면 네크로멘서지.
“내게 살기 위해 발악하라던 이가 있었던 거 같은데 어째 조용하구나?”
유헤다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린다. 자신만만한 얼굴을 보니 주먹이 절로 쥐어지네.
나라고 이딴 사기적인 능력을 보일지 알았나.
스킬과 권능, 칭호 효과 모두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부활도 마찬가지. 당장 나도 죽은 대상을 살려 내는 아이템인 부활의 씨앗을 가지고 있고, 구사일생이라는 스킬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이런 강력한 것들은 분명한 제약을 가지고 있다. 부활의 씨앗은 1회용 아이템이고, 구사일생은 하루에 한 번만 쓸 수 있다.
죽음에 이르는 공격을 받았을 때 발동되는 만큼 견디지 못할 공격이 연달아 들어오면 답도 없이 당할 가능성이 크고.
반면에 저 녀석은…….
‘벌써 몇 번째 천사들을 되살리고 있지.’
이게 가능한가? SSS급 스킬이나 권능이라도 저건 밸런스가 안 맞는 거 같은데.
부활시키는 횟수, 주기 모두 납득 가능한 선을 넘어서고 있다.
분명히 약점이 있을 거다.
-콰직!
골드 주니어 등급의 천사를 걷어차며 권능을 사용했다.
[SS급 권능, 타락한 천사의 몰락이 발휘됩니다!]
[칭호- 예고된 신성의 종말이 신성을 갉아 먹습니다!]
[양심의 가책(SSS)이 천사링과 함께 합니다!]
떠오르는 수많은 메시지. 지금 녀석이 사용하고 있는 스킬과 권능, 칭호이다.
많기도 해라. 등급도 살벌하다. SSS급이 저렇게 많을 줄이야.
‘내가 할 말은 아니군.’
나 또한 일반적인 등반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SSS급 아이템을 가지고 있으니까.
당장 권능도 4개나 가지고 있다. 직접적으로 전투에 사용하기 애매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렇지.
-츠즈즈즈즛!
눈을 가늘게 떴다. 권능이 강화되며 추가적인 정보를 읽어 내자 놈이 어떤 식으로 기적에 가까운 힘을 보이고 있는지 눈치챌 수 있었으니.
“천사링을 노려! 저 녀석 능력을 쓰는 동안에는 공격 못 한다!”
우선 녀석은 천사들을 부활시킬 때는 움직이지 못한다. 지금까지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유.
그래. 아무런 제약 없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게다가…….
‘저건 만능이 아니야.’
모든 대상을 부활시킬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을 숭배하고 따르는 이들만 해당된다.
부활을 시킬 때마다 녀석의 신성력은 사라지고 타락하게 된다. 그 증거가 녀석의 천사링. 쓰러졌던 천사들이 몸을 일으키면 천사링이 순간적으로 빛을 잃으며 탁하게 변했다.
말 그대로 신성을 잃는 것이 대가. SSS급 아이템인 양심의 가책이 녀석의 천사링과 합쳐져 시너지를 내고 있었다.
다만…….
[SSS급 권능, 천사들의 유일신이 숭배자들의 신성을 흡수합니다!]
놈의 권능이 숭배자들의 신앙심을 흡수하며 다시 신성력을 채웠다.
그래도 완전히 회복은 못 하는지 녀석의 천사링은 조금씩 탁해지는 중. 자신의 신성을 걸고 싸우는 스타일이라 이거지.
아슬아슬하게 타락의 길 위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것. 위험하지만 강력한 방법이다.
녀석이 자신의 능력이 들통난 걸 깨닫고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눈치가 빠르구나, 이블아이. 시간이 더 걸릴 줄 알았는데. 무슨 수로 알아낸 건지 모르겠군.”
“하는 짓이 사이비랑 똑같아서 역한 냄새가 나는데 모를 수가 없더라고.”
이 대화로 알 수 있는 것. 아직까지 숭배자 놈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경험적으로 이런 능력이지 않을까 추측하는 단계.
모르면 맞아야지.
-콰과과과광!
핥짝이의 지원 공격에 맞춰 앞으로 몸을 날렸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부활이 신경 쓰인다? 그럼 그러지 못하도록 유헤다를 잡고 있으면 된다. 놈도 그냥 당해줄 게 아니라면 부활을 포기하고 몸을 피하겠지.
아무리 천사들이 좀비처럼 일어선다 하더라도 육체 전부를 잃으면 부활하지 못할 거다. 그러니.
“프로네! 내가 저 녀석을 잡는 동안 다 태워 버려!”
“그러마. 이들은 정말이지 불경하다. 마땅히 정화시켜야 하는 존재지. 가자꾸나, 카트란스.”
“흐음! 그러지. 불 지르는 건 네가 맡아라. 제압은 내가 하마.”
두 상급 정령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직!
카트란스의 전격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무기질 같아도 생명체이기는 한 건지 감전된 놈들이 일순간 몸을 멈춘다.
기껏해야 1초 정도의 시간이었으나 그거면 충분했다.
“사라져라.”
양손을 뻗은 프로네. 그녀의 손에서 업화의 불길이 피어난다.
느릿하게 덩치를 불리는 듯했으나 한순간 덩치를 불리며 일대를 집어삼켰고.
-부화아아아악!
층층이 쌓인 불의 장막이 오븐이 되어 내부에 있는 천사들을 녹이기 시작했다.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들. 프로네의 영역에서 벗어난 이들이 덤벼들었으나.
“계속해라, 프로네. 이쪽은 내가 붙잡을 터이니.”
“나도 있다고.”
“흐흐. 좋다, 파트너!”
“누구 마음대로 파트너야! 뭣대로 달라붙은 녀석이!”
카트란스와 핥짝이가 프로네를 지켰다.
놈들의 수가 많다. 프로네의 화력이 막강한 것은 사실이나 저들 역시 일반적인 수준은 넘어선 존재.
저쪽 천사들의 특징인가. 무기질적인 육체를 믿고 온몸이 녹아내리면서도 꾸역꾸역 기어 나온다.
유헤다의 부활을 믿고 있기에 더 그런 걸지도 모르지.
“그렇게 둘 생각은 없지만 말이야.”
파아아아앙!
파이어 밤을 터트리며 몸을 가속했다. 역시나 다시금 능력을 사용하려는지 유헤다의 링이 빛난다.
어림도 없지.
[오로라 빔(S) Lv.MAX]
-찌유우우우우웅!
곧장 광선을 쏘아 냈다. 이 정도는 예상했는지 피식 웃는 녀석.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 생겨난 쉴드가 오로라 빔을 막아 냈다. 움직이지는 못해도 스킬은 사용할 수 있다 이거지.
그뿐일까.
[신의 대행자(SS)]
[숨결로 빚은 환상(SSS)]
[전장의 수호성(S)]
[강철 천사의 날개(S)]
.
.
.
유헤다의 주변에는 수많은 성물이 놓여 있었다.
하나같이 방어에 특화되어 있는 성물들. 등급도 기본이 S급이었다.
-카아아아앙!
검과 보호막이 부딪치며 불똥이 튀어 오른다.
S급 성물은 힘으로, 힘이 안 되면 마기를 섞어 꿰뚫어 냈지만.
“각 성물은 시너지를 만들어 낸다. 너같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이들이 워낙 많아서 말이다.”
유헤다는 더 깊숙한 곳, 성물과 성물이 견고하게 엮이며 만들어낸 보호막은 굳건히 서 있었다.
혹시나 싶어 관통력이 좋은 오로라 빔과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파이어 밤을 난사해 봤지만 굉음만 울려 퍼질 뿐, 금조차 가지 않는다.
아무리 SSS급 성물이라도 이게 가능한 것인가.
[칭호, 성물의 선택을 받은 자가 빛납니다!]
그럼 그렇지. 성물끼리의 상호 작용에 이어 녀석이 가지고 있는 칭호 효과까지 합쳐져 있다.
말 그대로 철벽. 본인의 안전을 확보한 채 수하들을 이용해 찍어 누르는 단순한 전략이었지만 그 효과는 대단했다.
“제길!”
-콰앙!
세차게 보호막에 주먹을 후려쳤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는지 기세등등한 모습. 그 와중에도 녀석의 능력이 발휘되어 불타오르던 천사들이 몸을 일으켜 세우려 한다.
“스스로의 무력함에 한탄하거라, 버러지 같은 녀석아! 하하하하!”
신나서 웃어 젖히는 녀석.
분한 척 주먹을 연달아 내리쳤다. 그럴수록 녀석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방심을 한 그 순간.
[칭호, 성물 약탈자가 발휘됩니다.]
“어?”
[신의 대행자(SS)가 해제됩니다.]
[숨결로 빚은 환상(SSS)이 해제됩니다.]
[전장의 수호성(S)이 해제됩니다.]
[강철 천사의 날개(S)가 해제됩니다.]
.
.
.
칭호 효과를 사용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내게는…….
“그딴 건 안 통한다, 멍청한 녀석아.”
놈과 나 사이를 가르던 장막은 더 이상 없다.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래도 이건 아직 몰랐던 모양이네. 얼빠진 얼굴이 볼 만하다.
그러면.
[S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번뜩입니다!]
[검강]
[영혼 찢기(S) Lv.10+]
[절삭(S) Lv.MAX]
“죽어. 그냥.”
서걱.
깔끔한 호선을 그리며 그어진 검격이 유헤다의 목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