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화 숨바꼭질
나보다 위에 있는 놈들이 문제다? 그럼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다른 상위 헌터들의 도움을 받는 것. 많지는 않지만 나보다 높은 곳까지 오른 이들이 있다.
오징혁을 영입한 루키 그룹. 마그마 요정과 근육 요정과 함께하는 요정 클럽.
그 외에도 더 있겠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쁘찡 연합의 일원이라고 자청하는 녀석도 존재했고, 미국의 노블 나이트와 빅스타 길드와 연줄이 있는 상위 헌터도 있을 거다.
다행히 난 그들과 연줄이 있고. 상황의 심각성을 말하면 다들 도움을 주겠지. 적어도 탑 내부에서 내가 가지는 이름값도 작지는 않고.
본의 아니게 커뮤니티 인싸가 되어 스트레스 받은 적도 많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좋다.
바로 이준석과 오징혁에게 연락을 넣었다.
[쁘띠공듀]: 쭌석쭌석 님! SSeㅔㅔㅔㅔ상에 이런 일이!
[쁘띠공듀]: 연합 사람들을 괴롭히는 천하의 못된 것들이 있어욧!
[이준석]: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세상에 천인공노할 놈들이!
나의 외침 덕분인가. 이준석이 바로 반응을 보인다.
탈모맨도 상당히 커뮤니티 중독이지만 이준석도 만만치 않다. 물론 연합을 관리하는 입장인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감히 예상하건대 이준석이 아직까지 나와 같은 층에 있지 않은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언제 한번 보기는 해야 하는데.
아무튼.
[쁘띠공듀]: 제가 핥짝이한테 들었는데 상위 헌터 중에 숭배자들이 있답니당. 요놈들이 글쎄……!
빠르게 겪었던 일들을 적어 나갔다. 그 와중에도 콘셉트질은 굳건했으며 혹시라도 내 위치가 들통날까 핥짝이를 팔아먹는 치밀함을 보이기까지.
[이준석]: 과연 그렇군요.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입니다. 설마 80층대에 그런 이들이 있을 줄이야.
내 설명을 읽은 이준석이 진지한 반응을 보인다. 맞는 말이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큰일이지.
당장 나와 멤버들이 아니더라도 이후에 올라올 사람들도 휘말릴 수 있는 일이니까.
게다가.
[쁘띠공듀]: 등반가 중에 숭배자가 얼마나 있는지 아무도 몰라용. 어쩌면 밑에도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이놈들이 어디까지 손을 뻗고 있을지 확인할 방도가 있다.
우리를 상대로 효과를 검증하면 70층대에서도 수작을 벌일지 모른다. 시나리오는 70층대부터 시작하니까.
[이준석]: 노블 나이트와 빅스타 길드에도 연락을 넣어 두겠습니다. 그들도 상위 헌터와 연줄이 있을 테니까요.
[쁘띠공듀]: 좋습니닷! 진행하시와요☆
오케이. 이준석과는 이야기가 끝났고.
[쁘띠공듀]: 오징오징어! 호오오옥시 이야기 들었나요?
[오지혁_산군]: 뭔가 커뮤니티를 켜기 싫더라니 네 녀석이었군. 왜 아직도 안 뒈졌지? 얼른 뒈져라
[쁘띠공듀]: 우웅? 그러기에는 전 너무 강.한걸욧?
[오지혁_산군]: 만나면 정강이부터 부러트려 주지. 그리고 내 이름은…….
[쁘띠공듀]: 오징오징? 먹물 뿌우우우☆
[오지혁_산군]: 이런 ****잡히면 **버린다!
역시 이 녀석은 톡 쏘는 맛이 있단 말이야. 마음 같아서는 좀 더 놀려 주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타이밍이 아니다.
이준석과 이야기했던 것을 전달했다. 아무래도 루키 그룹과 이야기하는 건 이 녀석이 제격이라.
[오지혁_산군]: 알겠다. 이건 녀석들의 도움이 필요하겠군.
놈도 흥분을 감추고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오케이, 이걸로 루키 그룹도 끌어들였고, 이어 멤버들한테도 연락을 가했으니.
[냥냥펀치]: 마그마 요정한테 물어볼겡!
[니머리 탈모]: 근육 요정도 같이 말해 준다더라. 보송송이도 전에 연락하던 사람 있다고 도와준대.
[정수리 핥짝]: 나도 위에 있는 녀석들 아는 애 있는지 봐 보지 뭐.
커뮤니티에 한바탕 바람이 불었다.
누가 뭐라 하더라도 현재 탑에서 가장 많은 등반가를 보유하고 있는 세력은 쁘찡 연합이다.
애초에 소속이 뭐든 안 가리고 받아들였으니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 있는데 함 물어봐야겠다.
-와, 이 씨. 숭배자 놈들 전에만 해도 괴담인 줄 알았는데 실체는 더 하네.
└어허 무엄한 놈 같으니! 공듀 님은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거늘!
-그 사람 있잖아. 상위 헌터라고 말하고 다니던 양반.
└나?
└그래 너! 뭐 좀 해 봐
└ㅇㅇㅋ 같은 층에 있는 애들한테 함 말해 봄.
나랑 멤버들이 아니더라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였다.
개다가 자체적인 검증도 진행되었다. 지금 함께 올라오고 있는 자들 중에도 숭배자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
놈들이 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만들었으니.
-자자, 전우조는 뭐다?
-생명이다!
-쁘멘이다!
-앞으로 혼자 뻘짓 하는 놈이 있으면 유심히 지켜본다 실시!
-실☆시!
보다 안전한 등반을 위해 후발대로 올라오는 이들은 대부분 무리를 짓고 있다.
숭배자 놈들이 위험한 건 사실이나 어디까지나 소수. 무리에 섞이거나 감시를 받는다면 행동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압도적인 머릿수로 해결하는 방법.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예방은 어느 정도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상위 채널도 떠들썩해졌으니.
“상위 헌터들도 그냥 넘기기는 어려운 일들이라는 거지.”
“그에에.”
[찌리리 요정]: 감히 우리 마그마를 건드려! 언니, 보고만 있을 거야?
[근육 요정]: 나도 당했다.
[송곳 요정]: 절대 못 참지! 우리 겸둥이를 건들다니!
[근육 요정]: 나도 당했다…….
[찌리리 요정]: 이거 이거, 기강 한번 잡아야겠네!
[근육 요정]: …….
[마그마 요정]: 아, 언니! 좀 조용히 해 봐. 근육 요정 할 말 있대잖아.
[찌리리 요정]: 그래? 말해.
[송곳 요정]: 왜 말 안 하지?
생각보다 빠르게 반응이 왔다. 요정 클럽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마그마 요정이 직접적으로 당했기 때문인 거 같다.
근육 요정은…….
모르겠다. 그냥 넘어가자.
[스마일캡]: 이거 우리 막둥이 괴롭히는 애들이 있네?
[김조균_산군]: 나?
[초코쪼코]: ……? 너 이제 막둥이 아님. ㄲㅈ, 징그러.
[김조균_산군]: 꺼지라니… 누나 자꾸 그럼 나 서운해?
[화무선]: 오오, 사악한 자들이오. 마땅히 천벌 받아 마땅한 존재로다.
[오지혁_산군]: …이놈들은 좀 정상이길 바랐는데. 글렀군.
루키 그룹 또한 일에 동참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반응이야 어찌 됐든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움직이려는 모습이 보인다.
위쪽은 이들한테 맡기도록 하고.
[86층으로 전송됩니다.]
“이쪽은 우리가 처리하면 되겠군.”
-우우우우웅!
전송 마법진이 빛을 밝혔다.
* * *
다시 돌아온 정령계. 마지막 챕터에 이르렀기 때문일까, 기존의 모습과는 많은 부분이 달랐다.
그야 그렇겠지. 지옥이라는 곳이랑도 엮이고, 다른 차원이랑도 엮였으니. 혼돈의 파편도 이쪽으로 들어오려고 하고 있고 말이다.
이런 부분을 다 떠나서 신기한 점이 있다면.
[신비를 품은 차원이 중첩됩니다.]
정령계와 요정계가 합쳐지며 중첩 현상을 일으켰다.
나도 신비니 종족이니 차원에 대한 것은 자세히 몰랐기에 프로네의 이야기를 들었고, 대략적인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두 차원이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어 끊임없이 중첩되고 있었다.
거울과 거울을 마주 보면 거울 속에 거울이 이어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었고, 다르게 말하면…….
“마지막 챕터가 되니 기억이 온전해지는구나. 차원이 중첩되면서 세계선이 나뉘었다. 수없이 많은 세계 속, 어느 한 곳은 멸망을 이겨 낼지도 모르는 일이지. 우린 이것을 프렉탈 파크라고 부르기로 했다.”
하나였던 차원이 수없이 많은 하위 차원으로 쪼개져 중첩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프렉탈 파크가 이런 식으로 이루어져 있던 것이었나.
어째서 프로네가 멸망에 저항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는지 알 것 같다.
무한에 가까운 선택지 중 단 한 곳도 멸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거니까. 다른 누군가가 아닌 탑에 NPC로 있는 프로네가 그것을 증명했다.
손을 내려다봤다. 확실히 느낌이 이상하다. 굳이 의식하지 않으면 눈치채기 힘들지만 나라는 존재가 분열된 기분.
이건 마치…….
‘탑에 있는 NPC랑 비슷한 느낌인데.’
본의 아니게 탑의 구조를 따라간 것인가.
이건 아무래도 좋다. 그럴 수 있지. 좋게 생각하면 아직까지는 완전히 정령계가 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물론 개판 나기 직전인 상황이기는 하나.
“어디 한번 잡으러 가 볼까!”
“이예히! 요정계에는 그런 놈들 없더라. 다 이곳에 있는 듯.”
“숭배자 놈들이 섞여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거 한 명씩 다 잡아 봐야 하나.”
정령계와 합쳐진 요정계. 그곳에서 멤버들이 넘어왔다.
듣자 하니 탈모맨과 냥펀이 있던 요정계에는 숭배자들이 없었다는 모양.
이쪽에 있는 녀석들만 처리하면 대강 정리는 끝난다.
쉽지는 않을 거다. 놈들이 있다는 것만 알지 정확한 위치도, 얼굴도 모른다.
이렇게 흘러갈 것을 예상하기라도 했는지 일을 벌였을 때도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니까. 그나마 나는 권능이 있어 상관없다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다.
핥짝이를 비롯한 눈치 빠른 몇 명은 이상을 감지하자마자 대기실 화면에서 나온 숭배자들을 기억해 뒀다고는 한다.
얼굴은 몰라도 사용하는 무기나 스킬, 키나 체형 정도는 확인해 볼 수 있으니까.
“조를 나누는 거지. 숭배자 잡는 팀이랑 저기 계약의 문을 막는 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크게 두 가지.
숭배자를 처리하는 것과 지옥이나 멸망한 차원같이 연결돼서는 안 되는 차원의 접촉을 끊어 내는 것.
천계도 끊어 버리고 싶기는 하다. 다른 놈도 아니고 골드 등급인 유헤다가 있는 천계가 연결되어 있는지라.
다만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위험 순위가 낮다. 비교적 늦게 막아도 된다는 말.
이미 각자의 취향에 맞게 나뉘어 모인 연합 사람들과 다른 상위 헌터들.
몇몇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이들도 있었으나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본인이 뭘 하든 그 사람 자유니까. 그것 때문에 의심을 받게 된다면 그것도 본인 탓이고.
준비는 대충 끝난 거 같으니.
“갑시다.”
바로 움직였다.
대부분의 인력은 계약의 문을 닫으러 갔고.
“그놈들이 있을 거 같은 위치 짐작되냐?”
“놈들이 연 계약의 문을 중심으로 돌아보려고. 어디로 떨어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근처는 가 봐야지.”
“나름 합리적인 생각이군, 무지개. 이따 보지.”
나를 포함한 소수의 인원은 숭배자를 찾으러 움직였다.
나랑 핥짝이가 한 팀. 루키 그룹의 지원을 받은 오지혁과 김조균이 한 팀. 요정 클럽의 마그마 요정과 근육 요정이 한 팀.
나쁘지 않은 밸런스다. 이 녀석들이면 숭배자들이 뭔 짓을 하더라도 죽지는 않겠지.
“대략 추정되는 숭배자가 5명. 어차피 완전하게 색출하는 건 어려워. 놈들도 멍청이가 아닌 이상 커뮤니티를 봤을 테니까.”
“몸을 숨기거나 다른 사람들 사이에 숨어… 음, 그건 아니겠다. 네가 있으니까.”
핥짝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원치는 않았지만 숭배자들에게 꽤 관심받고 있는 나다. 나에 대한 정보를 꽤 많이 알고 있다는 것.
권능에 대해서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상대의 정체를 간파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놈들도 알고 있을 거다.
즉,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모습을 숨기는 건 불가능.
남은 선택지는 하나. 외진 곳에 박혀 모습을 감추는 것.
“숨바꼭질이군.”
술래는 나. 잡히면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