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8화 마그나로크의 왕관
그동안 많은 아이템을 얻었고, 그중에는 SSS급 아이템도 존재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날개와 검도 그렇고.
굳이 SSS급 아이템이 아니더라도 다양하게 사용해 왔다. 당장 펠라인 세트만 해도 부위별로 등급이 다 달랐어서.
딱 하나. 지금까지 명확한 등급도 모르고 효과도 모른 채 가지고 있던 물건 있었으니.
“이제야 써 보는군.”
무려 신성력 1,000을 착용 조건으로 내세운 아이템.
80층대를 넘으며 조건은 채웠다. 스테이터스에 있는 스텟 모두 999+로 표기되어 있으니 못해도 1,000은 넘었겠지.
게다가.
[칭호, 부활한 교단의 성자가 빛납니다!]
[얼음과 불의 교단을 대표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마그나로크의 왕관이 주인을 인정합니다!]
이 왕관은 얼음과 불의 교단의 유적에서 뺏어 온 성물.
과정이야 어찌 됐든 난 그곳의 성자다. 딱히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거 같지만.
아무튼 그 덕에 왕관이 날 주인으로 인정했다. 이건 있는지 몰랐던 옵션인데 아무래도 따로 표기되지 않았던 모양.
권능으로 자세히 확인해 봤다면 알았겠다만 그동안은 꺼낼 일이 없어서.
‘기본적으로 나와 있는 옵션도 딱히 전투에는 도움이 안 됐던 거고.’
위엄이 서린다거나 집단 통솔이 강화되는 정도?
왕의 자격이 주어진다는 효과도 있기는 하다만 그건 댄싱 마스터의 왕관에도 붙은 효과라 그다지 필요성을 느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지금은 어떨까?
[마그나로크의 왕관(SSS)]
-얼음과 불의 신전의 총체, 마그나로크의 왕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위엄이 서립니다.
-집단 통솔 강화.
-왕의 자격이 주어집니다.
-교단의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세간에 공개되지 않은 교단의 비밀 지식을 염탐할 수도 있죠!
“오오오.”
뭔가 효과가 많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만 SSS급 아이템이었던 건가.
-스스스스스!
머리로 흘러 들어오는 다양한 지식. 잠깐 정신을 놓으면 교단이 간직했던 온갖 비밀과 신비에 의식이 휩쓸려 떠내려갈 거 같다.
[정신 보호(SSS) Lv,10+]
[마그나로크의 왕관이 주인을 보호합니다.]
물론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위험했을 거다. 강력한 효과만큼이나 위험한 물건. 대비하지 않고 사용했다면 그대로 정신을 놓고 방치되었을 테니.
그나마 주변에 안전한 곳이라면 모를까.
“보통 놈이 아니다. 천천히 체력을 깎아라!”
지금은 전투 중. 내가 가지고 있는 막대한 신성력에 기네가 놀란 것도 잠시.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언데드 군단을 조종했다.
고대 몬스터만 해도 수십. 조금이라도 나를 붙잡기 위해 기어오는 놈들도 어마어마하다. 얼핏 보이는 것만 해도 수백은 될 거 같은데.
산을 타고 꾸역꾸역 모여드는 걸 보니 아직 한참 남은 거 같고.
“네크로멘서가 상황만 따라 주면 물량빨이 대단하기는 하지.”
특히 전장이나 게이트가 터졌던 곳에서는 엄청난 전력으로 평가받고는 했다.
죽었던 헌터들을 욕보인다며 질타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죽은 자의 인권이라, 본인들도 죽을 위기에 처하면 어떻게든 도와달라 할 거면서 위선은.
지금은 바깥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을 거다. 멸망이 가까워지면서 상황이 악화되고 있으니까.
-카아아아앙!
가볍게 검을 휘둘러 언데드의 공격을 막아 냈다.
이어 손을 뻗으며 파이어 밤을 터트렸으니.
[얼음과 불의 교단, 불의 교리가 함께합니다.]
-콰르르르릉!
왕관의 효과 덕분인지 훨씬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안에 신성력이 깃든 건 덤. 빛무리와 함께 터지는 폭발은 파괴적인 동시에 신성한 무언가가 있었고.
“그아아아아!”
“가으으윽!”
폭발에 휩쓸린 언데드가 뼈도 남기지 못하고 가루가 됐다.
머리통을 부술 때도 재생하던 녀석이건만 신성력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
이것 참.
“너도 내가 상극인가 보다?”
“이노오옴!”
기네가 분노에 차올라 호통을 질렀다.
사이한 기운이 퍼지며 망자들의 눈에서 귀기가 피어올랐고.
-슈우우우욱!
바닥을 타고 기어 온 그림자가 기습적으로 내게 팔을 뻗었다.
닿는 것만으로도 생기를 빨아들이는 괴악한 수법. 보통은 접근하는 것조차 꺼렸겠지만.
-텁
-치이이이익
난 몸에 신성력을 두른 채 그림자를 잡아 냈다.
연기와 함께 꿈틀거리는 그림자.
이거 기분이 묘하네. 실체가 없는 것을 쥐고 있는 감각이라니.
손아귀에 힘을 줬다.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지르던 그림자가 힘을 이기지 못하고 끊어진다.
거칠게 뜯긴 단면 사이로 영혼이 빠져나간다.
“크흐아아악!”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지르는 기네.
오호라, 이게 녀석의 생명줄인 건가.
시체나 다를 바 없는 몰골로 어떻게 살아 있나 했더니만 다른 생명체의 영혼과 생기로 연명하고 있었다.
“기생충 같은 녀석이네.”
내가 또 그런 놈들은 싫어하지.
놈을 향해 몸을 던지자 언데드 무리가 죽음을 불사하고 길을 막는다.
충성심이 대단한 건가. 아니면 뇌가 없어서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건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후웅
-콰아아아아앙!
다 부수면 그만이니까.
힘을 담아 휘두른 검. 직격당한 놈들은 가루가 되어 날아갔고, 이어 몰아닥친 풍압과 충격파가 뒤따라오던 녀석들을 분쇄했다.
잡스러운 놈들은 수백 마리가 몰려와도 무섭지 않다. 그저 팔 몇 번 더 휘두르면 해결될 문제라서.
짜증 나는 건 이놈들이지.
“기하아아악!”
“그르르륵!”
퍼스트 데스 워리어와 데스 나이트.
확실히 튼튼하다. 놈들 또한 언데드인지라 신성력에 취약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단번에 무력화되지는 않았다.
신성력 좀 닿았다고 녹아 버리면 나도 흥이 안 나지.
이왕 이렇게 된 거 놈들의 약점이나 좀 알아볼 생각이다. 이번에 개방된 왕관의 능력도 살펴보고.
여전히 전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건 아니었으나 신성력 강화, 불과 얼음 속성의 공격에도 보조값을 부여해 준다.
어디까지나 이건 부차적인 부분이고 진짜는 이거지.
[교단의 교리를 파헤칩니다.]
[순교자, 베네딕트의 지식을 탐구합니다.]
얼음과 불의 교단, 오랫동안 축적된 지식과 정보를 알 수 있다는 것.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었지만 성자라는 칭호와 왕관의 주인이라는 타이틀,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은 정신 보호 덕에 가벼운 두통 정도로 능력을 쓸 수 있었고.
[행운 스텟이 반짝입니다!]
“호오라.”
난 순교자 베네딕트라는 사람의 기억 일부를 가져올 수 있었다.
내가 처한 상황에 맞춰 정보가 떠오르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무의식적으로 원하는 것을 말한 걸까.
어쩌면 행운 스텟 덕에 딱 좋은 대상이 걸린 걸지도 모르겠다.
의식이 2개로 나뉘는 기분. 한쪽으로는 몸을 움직여 달려드는 몬스터를 부수고, 다른 한쪽으로는 독립적인 세계에서 지식을 습득한다.
살짝 멍하면서도 내가 내가 아닌 것만 같은 기분. 유체 이탈을 하면 이런 느낌일까. 돌고래는 좌뇌 우뇌가 번갈아 잠을 잔다던데, 이거랑 비슷하려나.
약간은 약에 취한 듯, 혹은 자아가 분열되는 기분. NPC들이 항시 느끼고 있는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베네딕트는 죽음의 안개를 종식 시킨 위대한 교인입니다.]
이 사람, 언데드 사냥의 베테랑이다.
하나의 일생을 통해 함축된 노하우와 지식, 행동 규칙과 언데드의 약점이 떠올랐고.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반응합니다!]
권능까지 힘을 보태자.
“여기군.”
놈들의 약점을 알아낼 수 있었다.
퍼스트 몬스터는 강하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강력한 객체인 동시에 보다 야생적인, 근원에 가까운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렇다 한들 본질을 바뀌지 않는 법.
-툭
섬광처럼 내지른 검이 데스 워리어의 목을 꿰뚫었다.
흔히 알려진 언데드의 약점은 머리. 하지만 머리가 날아가도 다시 재생해 대는 퍼스트 몬스터.
깔끔하게 들어간 찌르기에 당했다고 쓰러지는 건 말이 되지 않았으나.
-와르르
놈의 뼈가 무너져내렸다.
당혹스러워하는 기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노린 것은 머리와 같은 물리적인 것보다 핵심적인 부분.
음습한 주술과 마법으로 연결된 핵심이었다. 언데드의 영혼이 깃드는 심장과 행동의 주체가 되는 머리를 잇는 연결 부위를 끊은 것.
단순한 공격으로는 끊을 수 없다. 충분한 신성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지. 나야 신성력이 넘쳐 나는 사람이고.
“쉽구만.”
“그에에.”
방법을 몰랐다면 모를까, 이렇게 답안지까지 나와 버리면 그때부터는 내 차례지.
빙글 검을 돌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기세에서 지지 않기 위해 놈들이 괴성을 질러 댔으나 내 눈에는 겁에 질려 짖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금방 갈게. 기다려.”
수백 마리의 언데드의 장벽을 내세운 채 몸을 숨긴 녀석, 기네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 * *
예고했던 것과 달리 기네를 잡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징그러운 녀석들. 나중에는 지들끼리 합체까지 하더라, 무슨 변신 로봇도 아니고.
언데드가 이래서 짜증 난다. 생명체로는 하기 힘든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 버려서.
그것도 끝이 났지만.
“후우. 땀 흘리니까 상쾌하구만.”
사방에 흩어진 뼈의 잔해. 기네였던 것이 바닥을 구른다. 끝까지 저항했으나 결국 검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미 죽은 녀석이 생명에 대한 갈망이 어찌나 크던지. 깔끔하게 목 내밀었으면 나도 편하고 놈도 안 아프게 가고 얼마나 좋아.
영혼석에 봉인해 부활 사업 실험체로 써 볼까도 했지만 고개를 내저었다. 성질이 더러워서 호문쿨루스로 만들어도 귀찮은 일만 생길 거 같다.
아무튼 귀찮게 굴던 놈들은 정리했고 보상도 챙겼다.
“역시 몬스터는 죽었을 때가 가장 이롭단 말이야.”
부산물도 주고 가끔은 이렇게 선물도 준다.
에이션트 몬스터를 잡고 얻은 물건.
[망자의 그림자 망토(S)]
-에이션트 몬스터, 기네의 그림자 조각으로 만들어진 망토.
-망자들의 눈을 속일 수 있습니다.
-생명체가 두려움에 눈을 돌립니다.
-닿은 대상의 생명력을 흡수합니다.
-밤이 되면 망토가 더 넓어지죠!
-신성을 추구하는 자들의 분노를 받을 수도 있지만 그건 알아서 하세요!
S급 아이템이라 그런지 옵션이 좋다.
망자와 생명체의 눈을 피할 수 있다라.
게다가 생명력 흡수 옵션은 범용성이 좋았다.
사람인 이상 체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생명력을 뺏을 수 있으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다.
다만 내게는 그다지 쓸모가 없는 것이.
-파지지지직
사악한 물건이다 보니 신성력이 착용을 거부한다.
나도 은근히 꺼림칙한 느낌이 들고. 뭐랄까, 착용하면 기운이 좀 빠진다고 해야 하나.
아니나 다를까 권능을 사용해 보니.
[망자의 그림자 망토(S)]
-닿은 대상의 생명력을 흡수합니다.
-(주의!) 주인도 대상에 포함됩니다! 걱정 마세요. 주인이 죽어도 망토는 새로운 주인을 찾아 나설 테니까요.
“이런 함정 옵션을 봤나.”
그냥 저주받은 아이템이잖아. 기네, 그 자식은 애초에 죽은 녀석이라 페널티가 없던 거고.
작게 혀를 차며 인벤토리에 던져 넣었다. 괜히 좋아했네. 쓰지도 못하는 거.
전투는 이 정도면 충분히 했고.
“프로네, 이쪽이라고?”
“맞아, 불의 기운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