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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474화 (473/740)

474화 84층

“자자, 골라 골라. 지금 사야 싸다. 다음 기회는 영영 안 올지 모르는 절호의 찬스.”

손뼉을 치며 고객들을 불러 모았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호객 행위에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여기서 포션이랑 장비를 판다고?”

“상점에서 사도 되긴 하는데.”

“근데 포인트가 별로 없기는 해.”

상위 헌터들이 수군거린다.

등반가에게는 상점창이라는 만능 구매 창고가 있었다.

먹을 거면 먹을 거, 장비면 장비. 그 외에 몬스터의 부산물이나 약초 같은 것도 살 수 있었고, 개인 거래까지 사용한다면 개인이 만든 물건도 살 수 있었다.

사람이라는 게 적응의 동물이라 여건이 안 갖추어져도 어떻게든 원하는 걸 만들어 내고 만다.

당장 나도 가끔씩 김치찌개나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는 개인 거래를 이용하기도 하고.

다르게 말하면 굳이 나한테 아이템을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지만…….

“그냥 물건이 아니지. 상점창에서 안 파는 것들이 있다 이거야. 스킬북도 있으니 한번 골라들 봐.”

내게는 차별성이 있었다. 상점창에서는 취급하지 않는 포션과 스킬 합성으로 만들어 낸 스킬북이 있다는 것.

장비는 비교적 평범하기는 했지만.

“장비사면 몸에 맞춰서 커스터마이징 해 준다. 체형에 맞게 취향에 맞게 고쳐 줄게들.”

기성품인 상점창표 물건과 달리 내가 직접 만든 만큼 추가적인 작업이 가능하다.

일반적인 제작이라면 힘들지 모르겠지만 나야 장비 제작 스킬이 있어서.

거기에 더불어.

“상점창에서는 못 구하는 랜덤 박스가 있습니다, 여러분. 대박이 날지도 모른다니까?”

이게 핵심이다. 랜덤 박스.

이번에 내가 만든 건 기존에 만들었던 것과는 달랐다.

납품용은 멀쩡하게 제작했지만 그 외의 것들은 새로운 시도를 했다.

다름 아닌.

“혼돈의 깃든 아이템은 진짜 못 구한다?”

혼돈을 사용해서 만든 거니까.

아이디어의 시작은 하나. 혼돈은 그 자체만으로 별다른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면 다른 것에 응용하면 되지 않을까?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의외로 직관적인 게 정답일 때가 있는 법.

아직은 부족하지만 혼돈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일단 포션 제작.

[하급 혼돈의 물약]

-이 포션의 효과는……!

-뭐더라, 아무튼 있습니다.

-직접 써 보면 알겠죠!

“이것으로 말하자면 위급한 순간, 생명을 구해 줄 수도 있는 물약! 엘릭서 저리 가라 하는 효과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아님 말고.

나도 써 봤는데 진짜 효과가 랜덤이다.

아직 내 혼돈의 방향성이 안 정해져서 그런 건지 원래 이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짐작이 안 된다.

확률이 있나 싶기도 했지만.

‘딱히 없었지.’

내가 6개 정도 사용해 봤는데 다 다른 효과가 나와서. 그중에 엘릭서랑 비슷한 효과도 나왔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반대로 극독이 나오기도 했고, 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입 냄새가 사라지는 물약도 나왔다.

아니, 그건 그냥 구강 청결제가 아닌가 싶긴 한데.

다들 눈치를 챘는지 분위기가 묘하다.

“이건 그냥 완전 랜덤이라는 거잖아.”

“반대로 말하면 살 것도 죽을 수 있다는 거 아닌가?”

수군거리는 이들. 내가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그래서 준비한 이것.

“하하하하! 그렇지. 하지만 걱정 마시라. 하급 혼돈의 물약은 감정 스크롤로 확인을 할 수 있다는 말씀. 여기 냥펀에게 문의하시면 안전하게 가챠를 할 수 있다고.”

“으엥? 갑자기 나?”

자연스럽게 냥펀을 끌어들였다.

나 혼자 장사하는 것보다는 동업자를 데리고 오는 편이 좋지.

이러나저러나 나도 그렇고 냥펀도 그렇고 상인 자격을 가지고 있다.

항상 성과를 바라지 않았던가.

“감정 스크롤도 팔면 달달하잖아.”

“그건 그칭.”

“요즘 시나리오 진행하면서 성과도 못 냈을 거고. 이참에 땡겨야지 않겠어?”

옆에서 속닥이자 잠시 손가락을 두드리며 계산을 해 보던 냥펀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듯하다. 지금도 내가 만든 물건을 납품하고 부활 사업을 연결해 준 것으로 버티고 있지만 그 외 영업 성과도 있으면 좋은 게 사실이라.

“자! 어서들 사라구! 화조국에서 직접 뽑아와서 낮은 수수료! 상점창과 비교해도 500포인트가 싸당!”

“장비도 마찬가지. 랜덤 옵션이 달린 게 있으니까 대박이 날 수도 있어! 스킬북은 말할 것도 없지!”

포션에 이어 장비와 스킬북도 홍보했다.

스킬북은 상점에서도 랜덤 박스로 팔기는 하는데 뭐 어떤가. 이럴 때 끼워 팔기 하는 거지.

내가 혼돈을 사용해 본 결과, 생산에 관련된 것에 혼돈을 부여할 수 있었다.

포션 제작이나 장비 제작 같은 거. 랜덤 스킬북도 이런 부류라 만들어진 거 같고.

다르게 말하면 다른 공격 스킬이나 이동기, 방어 스킬에는 혼돈을 쓰기 애매했다.

나도 혼돈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만큼 억지로 불어 넣는 것까지는 할 수 있는데.

‘의미가 없지.’

정신적, 육체적 피로는 다른 힘을 사용할 때보다 배는 힘든데 효과는 별로다.

그냥 혼돈이 섞여 있다는 것 말고는 특별할 게 없다는 말.

어쩌면 아직 혼돈 수치가 부족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다른 스텟에 비해 점수가 낮기는 하니까.

일반적인 스텟과는 좀 다르기는 하다만서도.

아무튼, 나와 냥펀은 장사를 하기 시작했고.

“이거 하나만 사 볼까?”

“정체를 알 수 없어서 그렇지 대박이 터질 수도 있긴 하잖아.”

“가격 자체는 싸고.”

“그냥 멀쩡한 물건들도 파는 거지?”

“물론이지.”

등반가들이 하나둘 물건을 사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혼돈이 담긴 물건들을 많이 사 줬으면 좋았겠지만 평범한 포션이 제일 잘나갔다.

특히나 이번에 쁘찡 연합에 들어오게 된 상위 헌터들은 79층에서 직접 내가 만든 포션의 효과를 봤기 때문에 구매를 많이 했다.

반면 러시아 녀석들은…….

“이런, 꽝이군.”

“그 정도면 나쁘지 않네, 드미트리. 욕심을 버리라고. 아무 생각 없이 해야 좋은 게 걸려.”

근거 없는 방법을 내세우며 랜덤 아이템들을 감별하고 있었다.

이미 장비는 부족함 없이 갖추었으니 재미를 추구하는 거 같았고.

-파아아아아앗!

“어?”

“와! 와! 대박! 봤지? 이거라니까!”

아무 생각 없이 아이템의 효과를 확인하던 옥산나에게 화려한 이팩트가 터져 나왔다.

나도 처음 보는 이팩트.

순간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고.

[감정에 성공합니다!]

[혼돈의 힘이 밝혀집니다!]

[새로운 옵션이 추가됩니다!]

[튼튼한 손목 보호대(B) -> 튼튼한 손목 보호대(AAA)]

“와, 무슨 효과가 붙었길래 등급이 3개나 뛰냐?”

“저게 맞아? 저게 맞냐고!”

“나도 한번 질러 본다. 이거 줘요!”

실시간으로 대박을 이룬 옥산나를 보며 욕심이 생긴 이들이 아우성쳤다.

혹시 나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고.

“으음, 공블아이가 하는 거치고 정상적인 게 없긴 한데. 한 번만 속아 봐?”

“아직도 안 속냐! 난 이미 질렀는데.”

“야 이씨, 넌 또 언제 샀어. 아 몰라! 나도 해 보지 뭐!”

가만히 지켜보던 핥짝이와 탈모맨도 구매에 참여했다.

생각했던 것 이상의 뜨거운 반응.

한 번만 더를 외치던 이들이 포인트를 탕진하는 소리가 들려 왔고.

“이번 장사는 대박이군.”

“짭짤하다냥!”

나와 냥펀은 조용히 주먹을 맞댔다.

* * *

한바탕 랜덤 아이템 대란이 끝나고 희비가 엇갈린 녀석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옥산나를 비롯해 2명의 등반가가 AA급 이상의 아이템을 얻어 갔다.

옵션이 정해지지 않은 만큼 싸게 팔았으니 가성비가 괜찮기는 할 거다. 어디까지나 그거 하나만 샀다면 말이지.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사람 욕심이라는 게 지금까지 투자한 게 아까워서 더 사기도 하고, 한 번 더 행운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거든.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랜덤박스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으아아! 말도 안 돼!”

-콸콸콸콸

아, 정정.

머리를 붙잡고 용암을 쏟아 내는 마그마 요정을 보니 개인차가 심하군.

옆에 있는 근육 요정도 부들거리고 있는 것이 결과가 좋지 않은 모양.

생각해 보니 요정 클럽은 탑에 들어와서도 게임 길드 닉네임을 사용해 온 게임에 진심인 녀석들이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가챠의 매운맛에 정신을 못 차리는 중.

그건 그거고.

“이상한 놈들이 날뛰는군.”

커뮤니티에 나를 언급하는 게 늘었다.

정확히 말하면 쁘띠공듀가 아니라 이블아이를 언급하는 게 말이지.

특히나 상위 헌터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동안의 행적이 있기도 했고, 랜덤 아이템을 산 녀석들이 후기를 올리며 반응을 보이는 그룹이 있다.

첫 번째로 요정 클럽.

[찌리리 요정]: 나도 할래, 가챠!

[송곳 요정]: 이게 진짜 가챠지! 좀 사서 보내 봐!

[마그마 요정]: 이미 다 깠는걸…….

[근육 요정]: 당했다. 한국의 가챠를 얕봤다

얘네야 그렇다 친다. 애초에 제정신인 집단이 아니라서.

눈여겨볼 건 다른 녀석들.

루키 길드도 그렇고, 몇몇 낯선 닉네임이 보였다.

아무래도 러시아 녀석들이 뭔가 말을 한 거 같은데.

[버거맨]: 혼돈의 기운이 섞여 있다라. 흥미가 생기긴 하네?

[라플레시아]: 히히. 이히히. 연구할 가치가 있군. 히히히.

아무래도 내가 판매한 물건에 혼돈이 섞인 것에 주목한 거 같다.

상위 헌터쯤 되면. 그것도 80층대 이상을 오르고 있다면 혼돈에 관심을 가지게 되니까.

역시나.

“이블아이, 앞으로도 이런 물건을 계속 만들 건가?”

“몇 개 더 구매하고 싶은데. 개인 거래는 안 해?”

드미트리와 옥산나가 말을 걸어왔다.

앞으로도 만들 생각이 있냐고 묻는다면.

“만들기는 할 거야. 다만 언제 다시 만들지는 모르겠군. 쁘찡 연합에 이준석이라고 있어. 걔한테 이야기하도록 해. 난 개인 거래는 안 하거든.”

“흐음? 개인 거래가 편하지 않나?”

“공략할 때 커뮤니티를 잘 안 봐서. 그쪽 신경 쓰다 죽으면 억울하잖아.”

“그것도 그렇네. 좋아. 그렇게 하지. 혹시 만들어진 거 있으면 바로 이야기해 줘.”

적당히 이준석에게 일을 넘겼다.

이걸로 대충 할 일은 끝났고.

‘몇 가지 더 실험해 볼 게 남아 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얼마 없네.’

다음 시나리오로 넘어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들 컨디션을 위해 휴식을 취했고, 나 또한 지금만큼은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으며.

[대기 시간 종료]

[84층에 진입합니다.]

허공에 떠올라 있던 타이머가 0이 되는 것과 동시에 발밑에 전송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다음 시나리오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려나.

이전과는 좀 다른 느낌일 거 같은데.

‘올라가는 사람이 많아.’

거인계 시나리오는 내가 먼저 움직였지만 이번에는 다 같이 움직인다.

인원이 많은 만큼 초반부터 치고 나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멤버들과 요정 클럽, 루키 그룹, 연합에 들어온 상위 헌터들까지.

옥산나와 드미트리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혹여나 트롤짓을 하더라도 커버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뭐든 직접 해 봐야 알겠지만 말이지.

-파아아앗!

빛과 함께 바뀌는 시야.

난 잠시 감았던 눈을 떴다.

훅, 끼쳐오는 열기. 사막이라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으나.

“…여긴 또 뭐야.”

내가 탑을 너무 쉽게 봤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불구덩이. 말 그대로 사방이 불로 뒤덮인 공간이었다.

멋대로 일렁거리며 신기루처럼 펼쳐진 필드.

[84-86층 단 하나의 세계]

[챕터Ⅰ- 부조화不調和]

새로운 시나리오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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