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473화 (472/740)

473화 훠이

이준석이 보내 준 메시지. 보고서에 가까운 그것에는 많은 이야기가 적혀 있었지만 간단히 요약을 하자면.

“멸망이 가속되고 있는 게 실감 나는군.”

탑 바깥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거였다.

먼저 내가 상위층을 등반하는 동안에 새로운 사람들이 탑의 초대를 받았다고 한다.

대한민국 같은 경우에는 도합 16명으로 추정된다고. 많다면 많은 숫자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니다.

탑의 초대를 받은 이들 중 헌터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자가 몇인지 알 수도 없거니와, 오르고 싶어도 본의 아니게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

그나마 공략법을 풀어서 생존 확률이 올라가기는 하겠지만…….

“또 모르지. 새로 올라온 입장에서는 연합 사람들이 말하는 공략이 거짓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여전히 밖에서는 잘못된 공략법을 알려 주고 있다고 하는 거 같으니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교육받은 정보를 신뢰할 가능성이 크다.

빌어먹을 놈들. 이쯤 되면 본인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고쳐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이러고 있다. 나중에 감당 어떻게 하려고.

본인들이 살아 있을 때까지는 괜찮을 거라 착각하며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는 건가.

안일하고 멍청한 생각이다. 멸망이란 건 인지하기도 전에 성큼 다가오는 것이니까.

당장 밖에서 새로운 종류의 몬스터 등장했다고 한다. 게이트도 많아지고 있고.

저번에 이야기 들었던 정체불명의 무언가도 재앙으로 밝혀졌으며, 한동안 잠잠했던 레비아탄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런 놈들이랑 싸우게 될 등반가 수는 계속해서 줄어들 거고.”

노블 나이트와 빅스타 길드가 보내 준 자료.

그쪽도 신규 등반가의 수가 줄었다. 감소 추세를 봤을 때 1년 정도 후에는 한두 명이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최악의 상황은 아무도 안 들어오는 거고. 사실 그때면 끝을 봐야지. 새로 생기는 헌터는 없는데 죽어 나가는 이들은 많을 테니까.

그나마 한 가지 희망적인 이야기가 있다면…….

“신인류.”

헌터들이 낳은 아이들 중에 각성자가 섞여 있다는 것.

반쯤은 루머라고 생각했는데 증명이 됐다. 일반인에 비해 신체가 튼튼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기존의 인류에게는 없었던 힘, 마력을 지니고 있다.

신성력이나 마기와 같은 독특한 힘을 가진 아이는 아직까지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해당 스텟을 가지고 있는 헌터들이 자손을 가진다면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탑이 등장하면서 세계 자체가 바뀌었다.

몬스터와 헌터. 게이트와 등반.

그 영향력은 인류라는 종에게까지 미쳤다.

“아직까지는 알려지지 않은 게 너무 많아서 예측이 안 돼.”

신인류라는 것도 그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을 했기에 확인이 가능했던 거라 이제 막 연구하는 단계다.

등반을 한 게 아니기에 스테이터스도 스킬도 없다. 칭호는 당연히 없고.

다르게 말하면 기존에 탑을 올랐던 이들이 스킬을 익히고 그것을 기술로 만들어 전수해야 한다는 뜻.

워낙 생소한 이야기라 벌써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안 든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바뀌고 있으니 혼란은 가속될 것이고 그 말은 곧…….

‘멸망도 가까워진다는 거야.’

안 그래도 비정상적일 정도로 오랫동안 멸망의 과도기를 미루어 왔다.

그에 다른 반작용이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심각성을 느낀 노블 나이트와 빅스타 길드는 한 가지 결단을 내렸으니…….

[이준석]: 곧 1차로 밖으로 나가는 이들이 생길 겁니다.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겠죠.

희망자 몇 명을 뽑아 밖으로 보내기로 했단다.

더 이상 등반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나 바깥세상이 걱정되는 이들이 주를 이룬다고.

나야 밖에 나가도 가족이 없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니까.

가족이나 친구, 혹은 다른 무언가가 마음에 걸릴지도 몰랐다.

이미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세력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알 수 없다.

자고로 자기 위치를 위협한다 싶으면 무슨 수를 써서든 싹을 자르려는 이들이 나오기 마련. 마찰은 피할 수 없다.

[이준석]: 쁘찡 연합도 동참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쁘띠공듀]: 그걸 결정하는 건 제가 아니에요. 연합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아시잖아욧!

우리의 도움도 원하는 거 같다만 이 부분은 내가 강제할 수 있는 게 없다.

애초에 길드 같은 강제성이 있는 집단도 아니었고, 그렇기에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섞여 있는 거다.

이준석도 그 부분을 알고 있을 터. 아무 생각 없이 말을 꺼냈을 리가 없다. 나도 몇 가지 아이디어는 있고.

[이준석]: 상위 헌터, 못해도 60층대에 올라선 이들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건 동의합니다.

이준석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결국 바깥 세상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연합 사람들은 결국에 밖으로 나가게 될 거고. 개인마다 시간차가 있을 뿐.

현재 분위기상 대형 길드와 정부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 무언가 행동을 할 게 뻔했다.

그 형태가 어떤 식일지가 문제지. 냉정하게 말하면 아무도 모르게 처리될 가능성도 있다.

사람인 이상 취약해지는 타이밍이 있으니까. 뭐하면 인질을 사용해도 되고.

놈들이 작정하고 시간과 인력을 투입한다면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히 놈들은 대비하고 있을 거야.’

나와 멤버들, 연합 사람들이 처리해서 밖으로 나가게 된 대형 길드 출신 등반가가 한둘이 아니다.

우리에 대한 경고를 했을 거고, 명백한 적의를 가지고 있는 만큼 수작을 부리겠지.

이러니저러니 말은 했지만 나 또한 이준석의 의견에 동의한다.

[쁘띠공듀]: 부탁을 해 보자구용.

강제로 이렇게 행동하라 할 수는 없지만 부탁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다른 건 아니고.

[쁘띠공듀]: 여러부운~ 아직 있나요? (빼꼼)

있자나요… 만약에… 호오옥시이이 밖에 나가게 되면 그때도 지금처럼 다들 사이좋게 지낼 수 있나용?

힘들 때 도와주고 누가 괴롭히면 같이 혼내 주공.

요거슨 비밀인데 대형 길드랑 기타 등등이 밖으로 나올 연합 사람들을 벼르고 있다는 소문이……! (소근소근)

일단 글을 올렸다.

이후에는 각자의 판단이다.

-아니이이잇!

-공듀 님, 우리를 뭘로 보시는 겁니까!

-한번 쁘찡 연합은 평생 쁘찡 연합!

-옆에 가족이 있고 연인이 있어도 외칩니다. 쁘☆멘!

└그건 쫌……;

└그건 쫌? 그건 쪼오오오옴?

└반역자다! 반역자를 잡았다!

└숙청이다아아아아!

-근데 밖에 나가면 티 못 낼 거 같긴 했음 ㅇㅇ 길드 놈들 있어서.

-고건 ㅇㅈ. 우리가 내보낸 애들이 몇 명인데.

-아아, 다들 이쯤에서 다시 합니다. 공듀 님 가라사대.

-쁘띠!

-사랑!

-평화!

글을 올리자마자 올라오는 반응.

피식 웃었다. 여전히 정신 나간 사람들 같지만 단합력은 있는 거 같아서 좋다.

커뮤니티 내에서만 이러는 것도 아니고, 오프라인에서도 서로 연합 사람인 걸 확인하고 서로 도와가며 등반을 하고 있지 않던가.

[이준석]: 공듀 님 말씀에 이어 몇 가지 바깥 상황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오오! 회장님!

-3회 팬클럽 오프라인 모임은 언제입니까!

-다음 쁘공페스티벌 때 새로운 굿즈가 나온다면서요?

[이준석]: 쉿! 그건 다음에. 오늘은 뉴스를 들으시죠.

나를 이어 이준석도 글을 올렸다.

아니 잠깐만, 얘들 지금 뭐라는 거야. 모임? 뭔 페스티벌?

심지어 여러 번 한 거 같은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이준석 이 자식!”

순간 욱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팬클럽을 하든 파티를 하든 본인 자유지.

화두는 던졌다. 바깥 상황도 알렸고, 찬찬히 연합 사람들의 댓글을 보았다.

빠르게 올라가는 댓글창. 각자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자유롭게 떠들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게 연합의 장점. 벌써 뜻이 맞는 이들이 함께 움직이려 하고 있었고.

-나가면 연합 사람인 거 말 안 하고 따로 보기 ㅇㅋ?

-일단 머릿수 좀 채운 다음 가자.

-개인 메시지로 전화번호 교환하고 지역별로 일단 모이는 거지.

-나 상위층인데 조만간 나갈 듯. 미리 가서 판 깔아 둔다.

-오오오! 좋지. 나 66층임. 70층 트라이해 보고 안 되면 나도 감.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계획도 짜고 있다.

물론 이 자리에서도 대형 길드의 첩자가 섞여 있을 가능성은 있다.

비밀글도 아니고 모두에게 오픈되어 있으니까. 그래도 별로 걱정되지 않는 게 사람이 워낙 많아서 어떤 것을 신경 써야 할지 판단하기 힘들 거거든.

말만 던지고 실제로는 안 움직일 수도 있고, 진짜 한다 하더라도 점조직처럼 움직이게 될 거라.

이 부분은 이걸로 오케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시간을 가지고 지켜봐야겠다.

커뮤니티를 끄고 위를 올려다봤다.

대기실 하늘에 타이머가 떠올라 있다.

“아직 여유가 있군.”

다음 시나리오로 넘어가기 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준비할 생각이다.

그동안 밀린 작업도 하고.

일단 포션부터 채울까. 화조국에 납품할 장비들도 좀 만들고.

“이번에는 좋은 게 걸렸으면 좋겠는데.”

스킬 합성도 계속 써 볼 생각이다.

운을 초반에 몰아 쓴 건지 최근에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 스킬북만 만들어져서 팔고 있었다.

종종 쓸 만해 보이는 것도 나오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지금 가지고 있는 스킬의 하위 호환인 경우가 대부분.

진지하게 새로운 스킬을 조합하지 말고 스킬 레벨 올리는 용도로만 쓸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느낌이 좋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고 거인계 시나리오를 깨면서 행운 스텟이 늘지 않았던가.

거기에 더불어 따로 연습하고 싶은 게 있다.

손끝에 집중했다.

내면에 있는 에너지가 응축된다. 이질적이면서도 강렬한 무언가.

혼돈.

“마력이나 다른 힘처럼 형태화되지는 않아.”

분명 손끝에 혼돈이 모이는 느낌은 드는데 신성력처럼 빛이 터지지도, 마력처럼 푸른빛이 나타나지도 않는다.

직접적으로 쓸 수 없는 건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방식이 있나.

생각해 보면 재앙이 사용하던 규칙도 그렇고, 델버튼이 사용하던 역병의 안개도 그렇고, 혼돈을 직접 사용하는 게 아니라 다른 형태로 변형시켜서 사용하고 있었다.

거기에 힌트가 있나? 알려 줄 사람도 없으니 내가 알아서 방법을 찾아야지.

‘이번에는 운이 좋았지만 다른 시나리오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혼돈의 파편과 직접 싸우는 일은 없을 거다. 시스템이 밸런스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배치해 두지는 않을 테니까.

델버튼도 따지고 보면 완전히 혼돈의 파편이 된 게 아니라 진행 중이었던 거였고 중간에는 날 도와주기까지 했다.

“읏차차.”

생각은 여기까지. 누워서 생각만 해 봤자 머리만 더 복잡해진다.

일단은 할 수 있는 것부터 처리하자.

난 포션 제조와 장비 제작에 필요한 물건들을 꺼냈다.

반복적이면서도 집중하게 되는 작업들.

기계적인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잡생각을 몰아내는 데는 효과적이었다.

얼마나 했을까.

“후우, 좀 과했나.”

납품하고 내가 사용하고도 남을 만큼의 물량이 나왔다.

땀도 좀 나네. 기분 좋은 개운함이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장비와 포션을 분류하는데.

“이것들 팔기도 해?”

“응?”

이제야 시선이 느껴졌다.

대기실이라서 오랜만에 긴장을 풀고 있다고는 했지만 나름 은신 스킬도 사용…….

아, 망치질하고 솥 끓이는데 은신 스킬이 뭔 소용이냐.

이준석이랑 이야기하다 정신이 딴 데 팔렸다.

뒤를 돌아보니 대기실에서 본 러시아 헌터들과 멤버들, 상위 헌터 몇 명이 내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괜히 민망하네.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는 타이밍.

“연금술사 계열이 여기까지 올라올 줄이야.”

“장비도 만드는 게 생산 쪽에 특화된 거 같은데?”

러시아 헌터들이 나름 논리적인 추론을 해 댔고.

“어? 뭐라는 거야. 얘 폭탄마야.”

“그냥 이상한 놈이라구!”

“하하! 뭘 많이 만들기는 하지! 사고라던가 사건이라던가.”

멤버들이 방해하기 시작했다.

하여간 이 녀석들은.

고개를 저으며 앞으로 나섰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훠이. 훠어어이. 안 사는 녀석들은 가라. 방해하지 말고.”

장사나 좀 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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