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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471화 (470/740)

471화 조언

헬그레이트에게 받았던 퀘스트.

그것을 훌륭하게 클리어 해냈다. 델버튼을 막은 건 물론이거니와, 녀석을 보고 싶어 하던 헬그레이트의 바람까지 이루어졌으니까.

클리어 방식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된다고 되어 있던 만큼 어느 정도 기대한 것은 사실인데.

“이건 또 뭐람.”

“그에에.”

설마 이런 걸 받을 줄은 몰랐다.

화려한 이팩트와 함께 내 손에 들어온 물건은 다름 아닌 심장.

그것도 헬그레이트 본인의 심장이었다.

[헬그레이트의 심장 결정(SS)]

-거인계의 고대 영웅, 헬그레이트의 심장으로 만들어진 영약.

-육신은 썩어 사라졌으나 그의 힘이 담긴 심장은 아니었습니다.

-강력한 주술과 자연의 힘이 응집되어 만들어진 귀한 물건입니다.

-강인한 종족, 거인!

-모든 스텟이 상승합니다.

-어쩌면 숨겨진 스텟도 상승할지도?

영약 자체는 여러 번 받았었지만 SS급 영약은 또 처음이다.

고대 영웅쯤 되면 죽어서도 심장이 저절로 영약이 되고 그러는 건가.

S급만 돼도 효과가 엄청난데 SS급이면 눈 뒤집히는 사람도 있을 거다.

무엇보다 마지막 설명.

“숨겨진 스텟이라.”

이 부분이 끌렸다.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스텟은 힘, 민첩, 체력, 마력. 4개.

70층대를 거친 등반가라면 여기에 추가로 신성력이나 마기 스텟이 생겨난다.

물론 나는 예외. 상위층에 오르기 전부터 신성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후에는 마기를 얻었으니까.

이것만 해도 스텟 종류가 6개나 되고, 상위 헌터들은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하나의 스텟을 더 가지게 되었으니…….

“혼돈 수치도 따지고 보면 스텟이란 말이지.”

다만 그 특성상 표시가 되지 않고 일정 수준이 넘어가지 않는다면 별다른 효과도 없다.

이것까지 합치면 7개.

다른 상위 헌터들과 비교해도 많은 종류를 가지고 있건만 난 하나의 스텟이 더 있다.

“행운 스텟.”

자그마치 행운이 공식적으로 올라가는 신기한 스텟.

일반적인 경로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고, 스텟을 올리는 방법 또한 칭호 효과를 적용하는 거밖에 없다.

지금까지 이런 스텟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들어 본 적도 없고, 내가 아는 한 장비에도 행운 스텟이 옵션으로 달린 건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남들은 가지지 못한 특별한 스텟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약간 계륵 같단 말이야.”

“그에에.”

짧게 혀를 찼다.

행운이라는 게 마력처럼 조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진짜 제멋대로 발동됐다가 안 됐다가 그래서.

특히 요즘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그냥 없다고 생각하고 살다가 가끔 반응을 보이면 땡큐인 느낌?

좋다. 일단 먹자. 뭐든 도움이 되겠지.

탑에 있는 등반가에게 팔거나 미래에 밖으로 나가게 됐을 때 팔아 버리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일단은 내 등반이 우선이라.

이번에도 느끼지 않았던가. 골드 등급은 강하다. 혼돈의 파편은 말할 것도 없고.

90층대까지 올라간다면?

‘그곳에도 온갖 괴물이 득실거리겠지.’

고대 영웅, 헬그레이트와 델버튼의 힘을 두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골드 등급을 손쉽게 몰아붙이던 헬그레이트.

바닥을 내려친 것만으로 골드 등급을 처치하고 일대를 정화시킨 델버튼.

숭배자 무리에는 골드 등급보다 강한 놈들이 있다. 다이아 등급. 그놈들도 헬그레이트나 델버튼 정도의 무력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꿀꺽

영약을 삼켰다.

심장을 먹는다는 것이 살짝 꺼림칙하기는 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보석처럼 바뀌어서 그런지 비리거나 물컹한 느낌은 없었다.

물로 만들어진 것처럼 사르르 녹아 몸속에 스며드는 영약.

“오오오오!”

온몸에 힘이 넘친다.

스테이터스가 높아지면서 어지간한 영약은 먹어도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했는데 이건 달랐다.

그뿐일까.

[올 스텟 상승!]

[표시되지 않는 스텟들이 상승합니다!]

예상 적중.

혼돈과 행운 스텟 또한 올라갔다.

그게 아니면 스텟들이라고 말할 리가 없을 테니까.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당장 효과는 잘 모르겠지만 전보다 강해진 거 같다.

이걸로 얻을 건 다 얻었다고 생각한 찰나.

[잊힌 영웅이 당신을 찾습니다.]

[혼돈의 파편이 당신을 찾습니다.]

-우우우우웅

어두운 공간에 더욱 어두운 공간이 나타났다.

나를 찾는 이가 있다는 메시지.

놀라지는 않았다. 대기실에서 이런 식으로 나를 부르는 경우가 처음이 아니라서.

히든 가든도 이런 식으로 들렸었다. 이번에는 그 녀석 같지만.

망설임 없이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 * *

-우웅

나를 반기는 건 완벽한 어둠.

어떻게 되먹은 공간인지 야간 시야 스킬도 반응하질 않는다.

눈앞에서 손을 움직여 봤지만 전혀 안 보인다. 앞뒤 좌우. 내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이블아이.”

“델버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묘하다. 방금 전에도 들었던 목소린데 지금은 좀 낯설다.

환경 때문일까?

아니, 녀석의 음성에서 느껴지는 진득한 혼돈의 기운 때문일 거다.

나를 부른 건 아마도.

“혼돈의 파편이군.”

“완전히 그 상태는 아니다. 네 덕에 말이지. 두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녀석이 혼돈의 파편이 되는 걸 막았지만 어디까지나 시나리오 안에서의 이야기일 뿐. 본체를 바꾼 건 아니다.

잠깐만…….

“너, 프램버그에서도 나한테 한번 죽지 않았냐? 생각해 보니 어떻게 살아 있냐?”

“우스운 질문을 하는구나. 혼돈의 파편은 탑에 종속된 존재. NPC도 망자도 아닌 존재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나, 멍청한 녀석.”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난 등반간데. 꼬우면 본인도 등반가 하던가.

혼돈의 파편 상태가 중첩되어 있어서 그런가 갑자기 싸가지가 없어진 느낌이다.

혼돈이 인성에도 영향을 주나?

모르겠다. 시나리오 때도 혼돈에 침식될 때는 다른 인격체 같았으니까. 본인 친구도 몰라보고.

더 소름 끼치지는 건…….

‘혼돈의 파편이 처음부터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

한때는 거인계를 구하려던 영웅이었으니까.

궁금한 게 많다. 놈 또한 그걸 알고 있는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등반가. 가기 전 몇 가지 조언을 해 주지. 시간이 많지 않다. 시스템의 눈을 피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거든.”

혼돈의 파편쯤 되면 시스템의 눈도 속일 수 있는 건가.

하기야 탑에 종속되어 있다고는 했지만 NPC도 아닌 존재다. 어느 정도 허점은 있겠지.

“예상했겠지만 나와 헬그레이트는 높이 올랐다. 녀석은 95층까지 올랐었지.”

95층. 결코 낮은 층수가 아니다. 90층대에 오른 녀석들은 모두 괴물이니까.

하긴, 그러니 골드 등급도 밀어붙일 수 있던 걸 거다. 호문쿨루스로 부활해 살아 있을 때의 80퍼센트 정도밖에 힘을 못 쓰는 상황에서 말이지.

“그리고 나는 정상에 올랐다.”

“그렇군. 이해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델버튼이 보여 준 걸 생각하면 100층 정도는 충분히 이해가…….

“어? 100층?”

내가 잘못 들었나? 되물어봤지만 대답은 없었고.

-파직! 파지지지지직!

[비정상적인 격리 발견]

[긴급 시스템이 발동됩니다!]

대신 스파크와 함께 잔뜩 찌그러진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버그 메시지랑은 느낌이 다르다. 강제로 델버튼이 만든 공간에 비집고 들어오느라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거에 가까웠다.

“빠르군.”

덤덤하게 중얼거린 녀석이 나를 바라본다.

시커먼 공간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지만 델버튼의 시선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100층을 목표로 하는가.”

“어, 오를 거야.”

“실패하지 마라. 나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할 수 없다면 99층에서 나가라. 어쩌면 그편이 더 가능성…….”

-치지지지지직!

녀석의 말이 이어질수록 노이즈가 커진다.

뒤에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머리에서 직접 울리는 소음이 커졌고.

-파아아앗!

빛과 함께 난 다른 공간에 떨어졌다.

* * *

[시스템이 정상 가동합니다.]

[강제로 전송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대기실- 꿈동산]

[시나리오 진입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대기합니다.]

멀쩡하게 변한 알림.

분위기가 바뀌었다. 꿈동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푸른 초원에는 알록달록한 꽃과 푸른 하늘.

하늘 위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아름다운 새가 날아다닌다.

마치 방금 전의 일은 잊고 여유를 즐기라고 강요하는 듯한 느낌.

나 또한 순간적으로 잠깐 꿈을 꿨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혼돈의 파편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그다지 친해지고 싶지 않은 존재들의 호감이 올랐다는 메시지에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스템도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참 정직해.

그나저나.

‘100층에는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

자세한 건 모른다. 중간에 시스템이 끼어들어 방해해서 모든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100층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경우 혼돈의 파편이 된다는 것.

어째서 릴카를 비롯한 알리오스, 킬더레스 등이 99층에서 빠져나왔는지 알 거 같다. 혼돈 수치가 부족해서 오르지 못한 걸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99층에서 빠져나가는 게 멸망을 막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한 거야.’

내가 착용하고 있는 장비의 주인, 펠라인 또한 같은 생각이었던 건 아닐까.

성공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실패하면 혼돈의 파편이 된다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

구하려던 세상을 본인이 파괴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델버튼은 실제로 그렇게 했었고.

머리가 아파 온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선택지에 불과하지만 난 아니다.

빌어먹을 무한 코인 때문에 무조건 100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강제된 등반.

‘이거 일부러 100층까지 올려 버리려고 시스템이나 뭔가가 나한테 수작 부린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 정도니 말 다 했지.

나한테 왜 이런 시련을 주는 거냐고.

푹, 한숨을 내쉬는 타이밍.

“그에에.”

“음?”

덕춘이가 나를 잡아당겼다.

배고프면 대충 보물 주머니에서 뭐라도 꺼내 먹어라. 심란하다.

“그에에엑!”

“아, 왜애애애애.”

자꾸 잡아당기는 덕춘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대체 뭘 자꾸 보여 주려는 거야.

그냥 평범한 초원에 푹신해 보이는 방석 같은 것도 있고, 저 뭐야 조그만 나무랑 땅에 묻힌 사람이랑 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솜사탕 있는 게 전부구만.

“이봐, 거기 친구. 도와줘.”

어째서인지 턱까지 수직으로 땅에 묻혀 있는 녀석이 말을 걸었다.

무시하고 솜사탕이 꽂혀 있는 갑판으로 향했다. 밑에 공짜라고 적혀 있다.

“덕춘아, 먹고 싶으면 말을 하지. 나도 이거 오랜만에 먹어 보네. 당 충전도 해야 돼.”

“그에에.”

솜사탕을 받아든 덕춘이가 흘낏 땅에 묻힌 사람을 힐끔거렸지만 그것도 잠시, 솜사탕에 정신이 팔렸다.

“읏차차. 애들이나 찾으러 가 볼까. 여기 어디 있을 텐데.”

“어이! 무시하지 말고 나 좀 도와줘!”

“피곤해라. 좀 쉬어야지.”

“야아! 나쁜 놈아! 사람이 묻혀 있는데! 머리 없는 녀석이나 되라 인정머리 없는 놈아!”

우뚝.

녀석의 외침에 멈춰 섰다.

좀 치네? 암만 그래도 그건 아니지.

정체불명의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화색이 도는 녀석.

“그래그래. 아직 세상의 정은 남아 있는 법이지. 볼 좀 긁어 줘. 아까부터 너무 가려워.”

“응. 그렇구나.”

“머리도 좀 긁어, 뭐, 뭐 하는 거야!”

뭐 하기는, 조용히 하라고 묻어주는 거지.

주변의 흙을 끌고 와 사뿐히 덮어 줬다. 이래도 되나? 라는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지만 자고로 이상한 놈에게 꼬이면 이상한 일을 겪는 법이다.

좋게 생각하자. 난 지금 사람을 덮은 게 아니라 위험을 피한 거다. 암 그렇고말고.

애써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는데.

“오, 범죄 현장 발견.”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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