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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467화 (466/740)

467화 찾는 사람이 많네

자이언트 폴리스와 언더 시티. 두 집단의 사이가 좋아진 지 얼마나 되었을까.

끊임없이 들어오는 이주민들과 시시각각 찔러 들어와 신경을 쓰이게 하는 숭배자들.

게다가 저 멀리 떠나갔던 검은 먹구름이 이곳을 향해 다가오자 분위기는 금방 어수선해졌다.

특히나 새롭게 들어온 이들의 반응이 격했으니.

“이곳은 안전하다고 했잖아! 왜 저게 이쪽으로 오는 건데!”

“종말을 거부하는 자는 어디에 있는 거냐! 다른 난쟁이는 필요 없어!”

“오오, 멸망이 다가온다.”

이들 역시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온 자들이었다.

이주민들을 이곳까지 몰아낸 원흉이 다가오고 있었으니 패닉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거인계에는 검은 비를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고 소문이 난 상황.

희망을 가지고 들어선 이들에게 이블아이의 부재는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탈모맨과 핥짝이, 냥펀. 그 외에 상위 헌터들이 있었으나 그들을 진정시키는 건 힘들었다.

멸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이블아이에게 있었으니까.

이것만 해도 정신이 없으련만…….

“돌겠네. 자이언트 폴리스가 격리에 들어갈 줄이야.”

“어쩔 수 없징. 전염병에 걸린 원로가 있으니까. 그것도 좀 구린내가 나기는 하지만.”

핥짝이의 중얼거림에 냥펀이 어깨를 으쓱였다.

현재 자이언트 폴리스는 전염병을 이유로 이동 통로를 봉쇄했다. 원로 중 한 명이 병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했기 때문.

긴장감과 불안감이 이는 가운데 자경단장이 와서 정보를 전해 줬다.

“지들이 뭘 한다고 봉쇄를 하냐, 에잉.”

작게 혀를 차는 핥짝이.

이주민을 수용하는 건 어디까지나 언더 시티다. 자이언트 폴리스 또한 더 이상의 내부 지역을 내줄 생각이 없었고, 대신 이주민들을 받아들이는 데 지원을 줬다.

일종의 협력 관계. 자이언트 폴리스와 언더 시티가 공존하며 생긴 변화였다.

멸망이 다가오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파트너. 위기 앞에 힘을 합쳐야 하는 동료.

그 계기가 된 존재 역시 이블아이였다.

“공공아이가 없으니까 여기서 문제가 생기네.”

“오면 밟든가 해야지.”

탈모맨의 말에 핥짝이가 콧김을 내뿜는다.

협력 관계, 공생.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자이언트 폴리스가 주류인 건 사실이었고, 아닌척해도 은연중에 언더 시티를 깔보는 이들 또한 존재했다.

소수이기는 했으나 언제나 물을 흐리는 건 몇 마리의 미꾸라지.

그들이 대놓고 떠들거나 차별하지 않는 건 유일하게 검은 비를 정화할 수 있는 존재가 언더 시티 소속이기 때문.

이블아이가 모습을 감춘 지금 다물고 있던 입이 열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뒷배경에 숭배자가 있다는 건 부차적인 이야기.

-투둑, 툭

-쏴아아아아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검은 비가 바닥을 적시기 시작했고.

“비가 온다!”

“다들 안으로 들어가!”

“교대로 수로 파고 역류하지 않게 관리해!”

“움직여라 덩친 큰 녀석들앙!”

냥펀의 주도하에 재정비된 언더 시티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블아이가 없는 관계로 우선 수로를 확장하고 저수지를 넓히기는 했으나 아직 일이 많았다.

우비를 입은 거인들이 서둘러 삽질을 한다. 화조국에서 들여온 거인용 삽. 포크레인이나 다를 바 없는 속도로 땅을 파 냈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비의 양이 상당했다.

“으으, 끈적여.”

“일단 대기하고 있자고.”

핥짝이와 탈모맨 역시 우비를 챙겨 입고 현장을 관리했다.

덩치는 거인에 비해 작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움직이기 더 수월했다.

검은 비에 노출된 면적이 넓을수록 달라붙는 힘이 강해졌으니까.

일을 하는 거인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안으로 들어간 상황.

-저벅, 저벅

-차르릉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후드로 얼굴을 가린 이들. 탑이 그려진 망토는 그들이 숭배자임을 뜻했다.

평소에도 주기적으로 일을 저질렀기에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핥짝앙, 탈모맨, 쟤네 좀 다른데?”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숭배자들 또한 거인. 지금은 밖을 돌아다니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밖으로 나왔다?

-구구구궁

-자박자박

발소리가 점점 커진다.

수로를 판다고 비운 골목, 그곳에서 숭배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수가 40명가량. 아니, 그 이상. 숫자는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검은 비가 흩어지고 있어.”

일전, 숭배자들이 만든 희석한 검은 비. 그때 사용했던 주술을 옷에 새긴 건지 녀석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거인들은 쉽게 나설 수 없는 상황.

등반가들이 가득 모여 있는 이때, 외곽도 아닌 언더 시티 본진을 친다는 것은…….

“멸망을 향해!”

“이제 그만 받아들여라! 구원자는 없다!”

“종말을 거부하던 이는 죽었다! 농간에 놀아나지 마!”

이번 기회를 노려 모든 것을 확실히 끝내겠다는 뜻이었다.

우아아아아!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오는 녀석들. 바람에 후드가 뒤집힌다. 드러나는 얼굴. 그중에는 숭배자에 동조하는 원로들의 모습까지 보였다.

심지어 중립을 고수하던 이들까지. 멸망을 거부하던 원로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냥펀, 저 양반 병에 걸렸다던 그 녀석 아니야?”

“엉? 맞네. 잠깐만 그럼?”

냥펀과 핥짝이가 서로를 바라본다.

전염병에 걸렸다던 원로가 멀쩡하게 숭배자와 함께 덤벼든다?

다른 반대파 원로들은 보이지 않고?

병을 핑계로 봉쇄된 통로. 그 이후로 그동안 이어지던 지원이 끊겼고, 연락은 닿질 않았다. 유일한 정보망은 자경단장.

“안으로 파고들어라!”

그자 또한 숭배자들 사이에 섞여 움직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뜻하는 건 하나.

“제길! 이미 자이언트 폴리스는 먹혔어!”

“자경단장 저 자식, 생긴 것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고.”

그동안 숭배자들이 끊임없이 시비를 걸며 시선을 분산 시킨 이유?

단 하나였다. 자이언트 폴리스에서 벌어진 일을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함.

“놈들이 덤벼 온다아아!”

“힘을 모으는 거 같기는 했지만 이때 올 줄이야.”

“야야야! 저놈들 저수지로 간다! 막아!”

언더 시티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탈모맨과 냥펀, 핥짝이를 비롯해 삽을 들고 있던 이들이 나섰으며.

“대기조 데리고 와! 아냐 아냐. 반만 남기고 와!”

“싸우다가 비 묻으면 닦고 다시 참전해!”

곧 두 세력이 맞붙었다.

그런 둘을 향해 모습을 드러낸 이가 있었으니.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블아이가 없는 지금이 기회지.”

“이번에는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축복이 걸려 있는 동안 네 가치를 증명해라.”

한 명은 챕터Ⅱ 막바지에 조현수를 공격했던 골드 시니어급의 거인.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는 것은…….

“내 이름을 윗분들에게 알릴 수 있겠군. 유헤다와 데이본드, 두 건방진 놈들의 콧대도 꺾고 말이야.”

거인계에 자리 잡은 숭배자들의 우두머리.

그라함이었다.

뺨을 타고 흐르는 검은 비를 핥은 그라함이 입가를 비틀었다.

* * *

“겨우 빠져나왔네. 아오, 쟤네 관리자 맞아? 왜 네 얼굴도 못 알아보냐? 솔직히 말해. 너 영웅 아니지? 그치?”

“너 같으면 알아볼 거 같나?”

나의 핀잔에 헬그레이트가 얼굴을 구겼다.

일단 만든다고 만들기는 했는데 뭔가 잘못된 거 같다.

보통 호문쿨루스가 되면 외모가 출중해지기 마련인데 이 녀석은…….

‘진짜 무섭게 생겼네.’

영혼일 때도 보통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꿈에 나올까 무섭다.

왜지? 분명 설명서대로 만든 거 같은데.

물론 처음 만들어 보는 거라 부품 몇 개를 잃어 버려서 비슷한 거로 대충 때우고, 얼굴 덮을 걸 실수로 밟아서 찌그러트리기는 했다. 아니면 머리털로 쓸 재료를 불태워서 저러나?

에이, 고작 그 정도로 저렇게 될 리가 있나. 그냥 심성이 고약한 게 얼굴로 티가 난 거다.

아무튼 거인의 무덤에서 나올 때, 헬그레이트를 본 관리자들이 그를 적인 줄 알고 공격해서 약간의 소란이 일어났다.

녀석들 입장에서도 난감했겠지. 못 보던 강철 거인이 자신이 고대의 영웅이며 강력한 주술의 힘으로 되살아났다고 말했으니까.

관리자라고는 하나 무덤에 있는 모든 영웅을 실제로 봤을 리가 있나. 오해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비겁하게 말로 설득하기는 힘들 거 같아서 평화롭고 정당하게 주먹으로 해결하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헬그레이트도 어지간히 잘 싸우던데.

“어때? 지금 상태면 살아 있을 때랑 비교해서 어디까지 힘을 낼 수 있겠어?”

“흐음, 기대했던 것 이상이기는 하다만 진짜 몸과 비교하기는 어렵겠군.”

“네가 거인이라 더 그런 것도 있어.”

아무래도 커다랗게 만들다 보니까 관절이든 부품끼리의 유기적인 상호 작용이든 작게 만들 때보다 제한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프램버그에서 몸체를 만들었으니까 이 정도인 거지 다른 곳이었으면 아예 못 만들었을 거다.

“대략 전성기의 80퍼센트까지는 어떻게든 될 거다. 무리하면 90퍼센트까지도 가능할 거 같다만 그럼 몸이 버티지 못하겠지.”

“그러냐.”

머리를 긁적이며 프램버그에서 준 설명서를 읽었다.

다른 건 몰라도 영혼 안착만 제대로 됐으면 상관없다.

‘프램버그에서도 이렇게 크게 만들 줄은 몰랐는지 안전장치를 마련해 둔 거 같고.’

드워프의 공학 능력이란 어마어마하다.

그건 그건데…….

“비까지 내리고 저놈들은 또 왜 난리인지.”

“바로 가지.”

거인의 무덤에서 벗어나 바로 언더 시티로 향했건만, 오자마자 난장판이다.

사방에서 들리는 소음과 비명.

저 멀리 멤버들과 연합 사람들이 숭배자들을 상대하는 것이 보였다.

검은 비를 흩뿌리며 무기와 주먹을 휘둘렀으며 그중에는…….

“골드 등급.”

저번에 만났던 녀석 또한 있었다. 검은 비를 흡수하느라 체력이 떨어져 있던 때를 틈타 공격을 해 온 녀석.

놈과 탈모맨이 싸우고 있다. 종족 값의 차이 때문인가 아니면 골드 등급이 생각 이상으로 강한 걸까. 격렬하게 맞부딪치고 있었으나 자세히 보면 탈모맨이 밀리고 있다.

어째서 혼자 놈을 상대하나 했더니만.

“저놈이 진짜야.”

냥펀과 핥짝이는 다른 놈을 공략하고 있었다.

권능을 사용했다.

[그라함]

-탑 숭배자입니다.

-거인계의 숭배자들의 정점!

-골드 시니어 등급입니다.

거인 숭배자들의 위에 있는 존재.

“좀 더 발악해 보아라!”

놈이 일대를 뒤집으며 압박해 온다. 그에 따라 냥펀과 핥짝이도 대응했으나 검은 비로 인해 움직임이 평소와 같지 않다.

반면 숭배자 놈들은 무슨 수를 썼는지 좀 자유롭게 움직이는 거 같고.

다른 이들은 꾸역꾸역 몰려드는 숭배자들을 상대하는 데 정신이 없다.

오지혁과 김조균, 용암 요정이 어떻게든 빠져나와 멤버들을 도우려 했으나, 적들이 끈질기게 달라붙어 방해한다.

멤버들 먼저 없애겠다 이거지. 그럴 수는 없지.

“헬그레이트!”

“아, 무슨 소린지 안다. 일단 방해물 먼저 치워야겠군. 더러운 숭배자 놈들 같으니.”

뭐라 말할 필요도 없이 내 뜻을 알아차린 헬그레이트가 발을 박찼고, 나 또한 폭발을 일으키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목적지는 탈모맨.

“즐거웠다, 등반가. 이만 죽어라!”

점차 거세지는 빗줄기. 온몸이 비로 뒤덮여 기동성이 떨어진 탈모맨을 향해 거인이 검을 내려쳤다.

빠른 기동력과 근접 전투 능력으로 승부를 보는 탈모맨에게는 최악의 상황. 급하게 옆으로 몸을 날리려 했으나 끈적한 검은 비 탈모맨의 발을 붙잡았고, 검에 직격당하려는 순간.

-콰아아아앙!

찔러 들어간 혼돈검이 놈의 검을 쳐 냈다.

순간 검이 밀려 팔이 돌아간 녀석에게 오로라 빔.

-찌유우우우우웅!

눈을 노리고 쏜 공격에 녀석이 한발 물러섰고.

-꾸르륵

-스아아아아

그 틈에 혼돈을 움직여 일대를 정화했다.

혼돈 수치가 올라가서 그런가. 이전보다 수월하게 더 넓은 범위를 정화할 수 있었다.

언더 시티 전체까지는 아니지만 전투를 벌이는 이들이 움직일 정도는 된다.

“오오오! 이블아이!”

“공블아이 왔냐구!”

“야, 이 짜식아! 일찍 일찍 안 다녀?”

격하게 나를 반기는 멤버들.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다들 나 찾았어?”

[델버튼이 또 다른 혼돈의 기운을 발견했습니다.]

[혼돈의 파편이 되어 가는 존재가 애타게 당신을 찾습니다!]

어?

아무래도 나를 찾는 건 멤버들뿐만이 아닌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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