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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461화 (460/740)

461화 혼돈에 반응한 자

때가 다가왔다. 예측했던 대로 내리기 시작하는 검은 비.

의지라도 가지고 있는 걸까, 근처에 올 때까지만 해도 먹구름만 흘러가더니 자이언트 폴리스에 도달하자 비를 쏟아 낸다.

-쏴아아아아아

세상을 뒤덮는 끈적하고 시커먼 액체.

강한 점성에 이파리에 비가 쌓이니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가 부러진다.

바닥을 기어 다니던 벌레들 또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죽어 나갔으며, 짐승들마저도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최대한 비에 맞지 않도록 몸을 웅크렸다.

거인들은 어떨까.

“창문이고 굴뚝이고 다 막아!”

“내가 벽 갈라진 건 빨리 메꾸라 했었지? 왜 말을 안 듣냐!”

“수로 다 팠어? 얼른 움직여!”

“아 씨, 망할 우비 같으니. 속에 다 들어왔네.”

검은 비에 대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전부터 준비하기는 했지만, 자이언트 폴리스와 언더 시티 전체를 대상으로 수로를 만들고 건물을 수리하는 건 많은 시간과 인력을 필요로 했다.

애초에 거인족은 몸뚱이가 튼튼한 녀석들이라 집 안으로 바람이 들어오든 물이 새든 별 신경을 안 써서.

게다가 언더 시티는 이주민들이 모여 만들어진 곳. 버려진 건물이나 조잡하게 만들어 낸 판잣집이 대부분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할 게 많건만…….

“골목에 있는 사람들까지 데리고 오려니 쉽지가 않군.”

“조금만 더 고생해 줘, 그레고리.”

“어차피 네가 하는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언더 시티와 자이언트 폴리스. 어느 쪽에도 가지 못하고 골목에서 살아가는 빈민가 인원들까지 데리고 오느라 고생 좀 했다.

언더 시티에도 들어오지 못했다는 건 노약자, 혹은 어딘가가 아프다는 뜻.

예전이었다면 방치된 채 살아갔겠지만 언더 시티가 통합된 지금은 아니다.

단순히 인류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골목을 수로로 사용할 생각을 하다니. 정말이지 무식하기 짝이 없군.”

“이편이 편하잖아. 경사 좀 만들어 두고, 어중간한 건 건물 사이 막으면 바로 만들어지는데.”

이번에 언더 시티뿐만 아니라 자이언트 폴리스에서 흘려 보내는 검은 비도 전부 해결하기로 했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을 찾다 보니 이렇게 된 거뿐이다. 원활한 작업을 위해서라도 골목을 비울 필요가 있었다.

그 사람들한테도 좋은 일이고. 그래도 지붕은 있는 곳에서 살아야지.

아무튼.

“비가 점점 심해진다! 급한 거 아니면 다들 철수해!”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수! 이거야 원, 몸에 달라붙어서 움직이기도 힘들구먼.”

“늪지대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썩을.”

대략적인 공사는 다 끝났다. 골목을 타고 빗물이 흘러내리는 걸 보면 자이언트 폴리스도 어느 정도 일을 마친 거 같다.

그쪽이야 사정이 좀 나으니 알아서 잘했겠지.

남은 건 나.

급속도로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작게 혀를 찼다.

“이거 되려나.”

“그에에.”

막상 하려고 하니까 감당 안 될 거 같은데.

모르겠다. 비를 피해 거인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사이, 난 언더 시티 입구에 마련한 간이 저수지로 향했다.

말이 저수지지 그냥 땅을 엄청 파서 만든 구덩이다.

비가 많이 오기는 하는지 빠르게 물이 차오른다.

거인들조차 움직이기 쉽지 않은 환경. 거대한 건물 사이, 시커먼 액체로 가득 찬 웅덩이에 들어가는 건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으나.

“차라리 잘됐어.”

이렇게 혼자 있는 편이 나았다.

검은 비가 내리는 환경에서도 거인들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면 숭배자 놈들이 방해하려 들지도 몰랐으니까.

뭐, 완전히 손 놓은 건 아닌 거 같다만.

[독 내성(S) Lv.10+]

-치이이이익

옷이 녹아든다.

필시 숭배자 놈들이 수로에다가 독을 탄 거겠지.

방해를 해도 이런 식으로 하냐. 어차피 별 효과도 없을 텐데.

이미 독 내성이 높아 어지간한 거에는 피해를 입지 않는 것도 있는데, 신성력도 높아서 저항력이 강하다.

조금 간질거리는 정도.

찝찝하기는 해도 펠라인 세트를 입고 들어오길 잘했다.

이미 안에 입은 건 넝마나 마찬가지라.

“하여간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

웅덩이 중앙을 향해 헤엄쳤다.

팔과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끈적한 액체가 몸을 휘감고 끌어당기려 했으나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덧 검은 비가 임시 저수지의 절반까지 차오른 시점.

“후우.”

난 마기와 신성력을 운용했다.

곧바로 혼돈을 빨아들이는 방법도 있지만 이번에는 정화해야 할 양이 너무 많아서 보호 장치를 마련할 생각.

-파하아아앗!

신성력을 몸에 둘렀다. 정화하는 힘을 지닌 만큼 어느 정도 충격을 완화해 줄 거다.

여기에…….

-스르르르륵

마기를 운용해 웅덩이에 고인 검은 비를 컨트롤 하기 시작했다.

한 번에 모든 걸 끝낼 수 없는 만큼 마기를 이용해 적당량의 검은 비를 끌어모아 순차적으로 흡수할 생각.

준비는 끝났다, 남은 건.

-부그르르르

“크흠!”

검은 비에 담긴 혼돈을 빨아들이는 것!

순간적으로 뒤통수에 짜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

혼돈.

아무리 검은 비에 섞인 혼돈이 적다 한들 이만한 양이면 결코 적지 않다.

온몸을 통해 혼돈이 들어온다.

손끝과 발끝. 말단 신경까지. 거칠면서도 정형화되지 않은 힘이 몰려들었고.

-쿠웅!

“크하합!”

신성력이 내부를 보호하고 있음에도 충격이 느껴졌다.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힘.

일정 수준이 되지 못하면 컨트롤조차 불가능한 에너지가 전신에 흐른다.

아찔할 정도의 통증이 느껴진다.

“후우. 훅!”

숨을 고르며 익숙해지려 했지만, 망할 혼돈은 적응하는 것을 원치 않는지 익숙해진다 싶으면 다른 스타일로 날뛰었고…….

으드득!

난 이를 악물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흡수하는 속도를 좀 더 늦춰 볼까 고민도 했으나.

-쿠르르릉

저수지로 흘러들어오는 검은 비의 양을 봤을 때 지금 속도보다 늦출 수 없다.

까짓것 해 보자.

내가 무슨 수를 써서든 하고 만다!

[날개 없는 천사의 왼쪽 날개(SSS)를 착용합니다!]

[마왕의 오른쪽 날개(SSS)가 돋아납니다!]

-콰아아아앙!

순간적으로 상승한 신성력과 마기.

강력한 통제력으로 혼돈에 고삐를 씌웠다.

조금씩이지만 내가 유도한 경로를 따라 혼돈이 움직인다.

빠르게. 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혼돈 수치가 상승합니다!]

[혼돈 수치가 상승합니다!]

[혼돈 수치가 상승합니다!]

.

.

.

연달아 떠오르는 메시지.

한번 흐름을 타자 속도가 붙는다.

죽을 맛이었지만 나를 중심으로 검은 비가 정화된다.

깨끗하게 정화된 물. 그걸 보고 있을 수 없다며 몰려드는 검은 비. 아직 부족하다.

“덕춘아!”

나 혼자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남은 건 덕춘이.

“그에에에.”

싫은 내색을 하던 녀석이 풍덩, 웅덩이 안으로 들어왔다.

검은 비에 대해 연구하며 알아낸 것 중 하나.

춘이는 카오스 속성의 영물이었으며 다르게 말하면…….

[덕춘(카오스 개구리)가 혼돈을 흡수합니다!]

혼돈에 관해서는 나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사아아아악!

빠른 속도로 정화되는 빗물. 나 또한 지지 않고 정화 과정을 반복해 나갔고.

“된다. 무조건 돼!”

몰려오는 것보다 빠르게 혼돈을 흡수할 수 있었다.

혼돈 수치가 올라갔기 때문인가. 혼돈을 사용하는 실력이 향상되었고 이내 무아지경에 빠졌으니.

[검은 비가 빠르게 정화됩니다!]

[혼돈 수치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시스템 또한 변화를 예고했다.

게다가.

[덕춘(카오스 개구리)의 속성이 강화됩니다!]

[등급 상승!]

[AAA등급 → S등급!]

[특성이 강화됩니다!]

[고유 능력이 강화됩니다!]

[새로운 고유 능력이 개화합니다!]

덕춘이 또한 변화가 생겨났다.

그동안 등급 상승이 더뎠는데 이번 기회에 상승한 모양.

개화되지 않았던 고유 능력까지 해금되었으니 지금보다 강해졌을 건 분명했다.

마음 같아서는 정보를 확인해 보고 싶었으나.

[혼돈 수치가 일정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혼돈에 더욱 가까워집니다!]

[칭호, 수상한 초대를 받는 자의 효과!]

[당신에게 흥미를 느끼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칭호, 잊힌 세계의 왕의 효과!]

[잊힌 존재들이 당신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내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혼돈에 더욱 가까워졌다? 이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그동안 잠잠하던 칭호들이 발휘되는 거야 그렇다 치는데 말이야.

“이게 맞나? 저 새끼는 또 뭐야.”

혼란스러운 와중에 보이는 한 인물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거리, 검은 비를 맞으면서 내게로 오는 존재.

“설마 이런 식으로 일을 벌일 줄은 몰랐구나, 이블아이.”

“숭배자로군.”

보통 놈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단순한 폭우도 아니고 검은 비가 내리는 곳에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움직일 수 있는 놈은 많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저놈은 태연하다. 놈을 덮치는 비가 달라붙지 않고 흘러내리는 것만 봐도 뭔가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아마도.

“검은 비를 희석한 놈이군.”

“알아봐 주니 영광이구나.”

숭배자의 문양이 그려진 우비. 골드 등급을 나타내는 표식.

지금까지 겪어 온 놈들과는 다른 압박감.

‘제대로 된 골드 등급이야.’

우뚝. 저수지에 멈춰선 녀석이 흥미로운 눈으로 주변을 바라봤다.

어느덧 웅덩이는 투명하게 정화되어 있는 상황.

여전히 밀려 들어오는 검은 비. 혼돈 수치는 빠르게 오르고 있지만 반대로 신성력과 마기는 바닥을 긴다.

정신적인 피로감과 혼돈이 내부를 헤집으며 체력도 떨어진 상황.

덕춘이라도 상태가 괜찮으면 좋으련만…….

“그에에.”

나를 돕느라 덕춘이 역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아무리 카오스 속성을 지니고 있다지만 혼돈이라는 건 정형화할 수 없는 힘이라서.

비겁한 녀석, 꼭 약해졌을 때 찾아온다.

“솔직히 인정하지. 네놈은 보통 놈이 아니다.”

스릉.

녀석이 검을 꺼낸다.

“더 성장하기 전에 끝을 봐야지. 억울하다 생각하지 마라. 네놈이 자초한 일이니.”

말대꾸할 힘도 없다.

천천히 위로 떠올랐다. 날개 아티팩트를 달면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떠오를 수 있다.

정화된 저수지.

그 위로 떠오른 난 놈을 향해 혼돈검을 들어 올렸다.

그래. 어떤 식으로든 방해가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로에 독을 푸는 것 정도로 끝낼 정도로 매너가 좋은 놈들이 아니지.

놈을 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질 수도 있겠지. 그래도 상관없다.

죽으면 다시 올라오면 그만이다. 적어도 탑에서 난 완전히 죽지 않는다. 끊임없이 되살아날 수 있다.

그러나…….

“네놈은 죽으면 끝이지.”

-콰아아앙!

폭발을 일으켰다.

물보라가 튀어 올랐고, 나는 놈에게 달려들었다.

“그라함 님을 위해!”

녀석 또한 내게 검을 내리쳤다.

그라함? 놈이 따르는 녀석의 이름인가.

-카아아아아앙!

정면으로 맞붙은 일격.

굉음과 함께 터진 충격파로 일대가 무너졌다.

손목이 욱신거린다.

이 녀석, 강하다.

정상 컨디션이라 할지라도 상대하기 껄끄러울 수준.

지금 상태에서는?

-콰앙!

“크흑!”

더 상대하기 짜증 난다.

놈의 발길질에 바닥을 굴러 자빠졌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녀석이 쇄도해 온다.

거력을 품은 일격이 내리꽂힌다.

막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해봐야 아는 거니까.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혼돈으로 인해 대미지 일부가 상쇄됩니다.]

생각보다 들어온 충격이 작다.

혼돈에 가까워졌다더니 이걸 말하는 거였나. 혼돈의 파편을 상대했을 때처럼?

한계가 분명한 내성 스킬.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혼돈.

난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공격을 향해 검을 내밀었고.

그 순간.

-콰르르릉!

번개가 쳤다.

아니, 번개처럼 뭔가가 날아와 놈을 날려 버렸다.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

[당신의 혼돈에 반응한 존재가 있습니다.]

[잊힌 영웅, 델버튼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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