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화 이러면 작전을 바꿔야지
권능을 사용했다. 말로는 뭐든 못할까. 진짜 녀석이 숭배자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확인해보자. 난 놈을 향해 권능을 사용했고.
[베르타]
-82층, 거인계 시나리오의 NPC.
-자이언트 폴리스의 자경단장을 맡고 있습니다!
-혼혈 출신. 다양한 힘을 사용합니다.
-숭배자와 만난 적이 있네요?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이 정보는.
애매하다. 일단 숭배자는 아니다. 접촉한 적이 있다고는 하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
애초에 이 정보도 권능 등급이 올라가지 않았다면 보이지 않았겠지만.
이전이었으면 ‘숭배자를 만난 적이 있다’ 같은 정보는 뜨지 않았을 거다. 아무래도 내 상황에 맞는 정보를 추가한 거 같은데…….
“그래, 천천히 이야기 나누자고.”
찝찝하기는 하지만 숭배자가 아닌 건 증명했다.
놈들과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거짓말을 하고 있군.’
숭배자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중립 NPC인 척 활동해 왔다고 하는데 접촉한 적이 있다는 걸 보니까.
우리에게 정체를 밝힌 의도를 알 수 없다. 진짜로 같이 움직이고 싶어서 그런 건가.
그럴 거면 거짓말은 왜 한 거지?
자고로 꿍꿍이가 있는 녀석은 좋은 목적으로 접근했다 하더라도 거리를 두는 게 맞았다.
나름의 목적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뿐더러 어떤 식으로 나올지 알 수 없어서.
괜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겉으로 내색할 생각은 없지만.
“지금은 원로들과 대화를 좀 해야 해서. 너도 티 내면 안 되잖아? 대화가 끝나면 우리는 언더 시티로 돌아가야 하니까.”
“맞는 말이군. 한 가지 조언을 해 주지. 각 부족의 연합체를 대표하는 원로는 5명. 그중 2명은 숭배자들과 결탁한 상태, 멸망을 부정하는 이가 2명. 남은 한 명은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
그 말을 끝으로 베르타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대충 숭배자들이 자이언트 폴리스를 절반 정도 먹었다고 보는 게 좋겠군.
내가 여기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중립을 유지하고 있는 원로를 설득하는 데 달렸고.
뭐, 나를 보러 몇 명이나 올지는 모르겠지만.
-퉁, 퉁
정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하이머가 문을 연다.
그의 안내를 받아 들어오는 인물이 3명.
“페리우스 원로님과 슈겐타 원로님은 불참하셨다.”
하이머가 정문을 등지고 경계를 선다.
그래도 3명이면 생각보다 많이 왔네. 약속하고 찾아온 것도 아닌데.
“반갑네, 카한타라고 하네.”
“자네가 소문의 소인이로군, 아이오스다.”
“흐응. 언더 시티에서 올라온 놈들이 어떤 수작을 부리는 건지 궁금해서 찾아왔다. 퓨네라고 한다.”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은 원로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척 봐도 어떤 사람들인지 알겠다.
처음 들어온 이가 중립이고, 소문 어쩌구 하는 사람이 멸망에 부정적인 사람, 마지막에 들어온 녀석이 숭배자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자다.
혹시나 싶어 권능을 사용해 체크도 했다. 내가 공략해야 할 사람은 스스로를 카한타라고 소개한 인물.
특이점이 있다면 셋 모두 중립 NPC라는 점이었다.
“이블아이라고 합니다. 종말을 거부하는 자이죠.”
“산맥 출신 그레고리다.”
“언더 시티 대표로 온 디레트지. 내 얼굴은 다 알겠지?”
디레트의 말에 원로들의 얼굴이 구겨진다. 왜 모르겠는가. 언더 시티가 만들어질 때부터 본 얼굴일 텐데.
들어 보니 처음 언더 시티가 만들어지고 구역이 나뉠 때 자이언트 폴리스에서도 개입했다고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경계지. 그때 언더 시티의 무력을 확인했고, 자경단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니지만 뭐 어쩌겠는가. 지금은 협력 관계가 될지도 모르는 사이인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저에 대한 소문은 이미 들은 거 같으니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미 여러 번 시연한 적 있는 검은 비 정화 과정을 보여 줬다.
원로들의 눈이 빛난다. 멸망 옹호론자인 퓨네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더니…….
“잠깐, 이게 속임수인지 어떻게 믿지?”
“샘플 더 드리죠. 직접 확인하세요.”
이 정도 질문은 이미 예상했던바. 샘플을 주고 재검증을 했으나 이내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다.
“이 정도는 숭배자들 또한 할 줄 알아.”
“그건 처음 듣는 소리군요.”
“그야 어젯밤 내게만 알려 준 사실이니까.”
씨익, 입꼬리를 올린 녀석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처럼 완전히 정화하는 건 아니지만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로 희석하는 건 가능하다. 멸망을 받아들인 자에게 주어진 축복이라더군.”
퓨네가 가지고 온 상자를 꺼내 열었다.
숭배자가 만든 희석된 검은 비.
불순물이 섞여 있기는 했지만 나름 정화가 되기는 했다. 내가 한 것과는 비교하는 게 무례할 정도기는 했지만.
다른 이들도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작게 혀를 찬다.
“퓨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사이한 술법을 쓴다. 믿어서 좋을 게 못 돼.”
“나도 중립적인 입장이네만 이블아이가 보여 준 것이 더 쓸모 있어 보이는군. 이제 곧 여기도 비가 내릴 걸세. 난 자이언트 폴리스를 지키는 방향으로 갈 거야.”
“말 잘했군.”
퓨네가 다리를 꼰다.
“예언에 등장하는 자라. 말은 좋아. 그런데 말이지 숭배자들은 검은 비를 희석하는 능력을 갖춘 이들이 많거든. 그쪽은 어떤가?”
“저만이 정화할 수 있죠.”
“그렇지.”
퓨네가 입꼬리를 올린다.
“자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나? 난 믿기지 않는군.”
“숭배자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더 많은 인력이 있으니 더 빠르게 진행될 거라고 생각한다.”
뭐, 그럴 수 있기는 하지.
숭배자들이 어떤 식으로 이걸 정화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놈들 중에도 혼돈 수치를 가지고 있는 놈이 있을 테니 비슷한 방법을 쓴 걸까.
확인해 보자.
-츠즈즈즈즈
권능을 사용했다.
[희석된 검은 비]
-숭배자의 기술로 정화된 검은 비입니다.
-마시지는 못하겠지만 생명력이 강한 짐승과 몬스터, 식물은 버틸지도?
-일시적으로 정화되었습니다.
-30일 후, 독성이 강해집니다.
“하이고.”
가볍게 이마를 쳤다. 혹시나 했더니만 완전히 정화한 게 아니었던 건가.
눈치를 보아하니 원로는 모르는 거 같고.
이거 내가 한 선전에 맞서려고 급하게 만든 거다.
아직 30일이 지나지 않아서 들키지는 않았지만.
숭배자 입장에서는 이 정도면 충분했겠지.
‘어차피 30일이 지나기 전에 챕터가 끝날 거고, 끝나지 않더라도 혼란이 가중돼.’
어느 쪽으로든 놈들에게는 좋은 쪽으로 흘러간다는 것.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보여 줘야지.
“이거 정화한 거 아니네요. 잠깐 희석된 거지.”
“무슨 헛소리냐.”
“그니까 이런 거죠.”
테이블에 액체를 부었다.
손끝을 대고 혼돈을 움직였다.
이것도 하다 보니까 적응이 되더라고. 여전히 신성력이나 마력 같은 것보다는 컨트롤하기 힘들지만…….
-꿀렁
“이렇게 자극을 주면 보십쇼.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단순히 어딘가에 불어 넣는 정도는 가능했다.
이것도 이미 실험해 봤다. 정화하는 과정을 반대로 하면 어떨까 싶어서.
결론만 말하면 완벽히 검은 비와 같게 만드는 건 불가능했지만 흉내 정도는 낼 수 있다.
이것처럼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거라면 더 쉽고.
“이, 이런!”
“퓨네, 이걸 어떻게 설명할 거지?”
순간 말문이 막혔는지 퓨네가 입을 다문다.
자연스럽게 안에 가미된 혼돈을 흡수해 정화했다. 기존에 있던 것까지 완벽하게.
그때.
[혼돈 수치가 증가합니다.]
[혼돈 수치 +1점]
“음?”
알림이 울렸다.
이건 또 뭐야. 혼돈 수치가 증가해?
지금까지는 반응이 없었는데 설마.
‘방금 걸로 점수가 오른 건가?’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치직, 치지지지직!
홀로그램이 깨지기 시작한다.
버그.
시스템의 의도와는 다른 행동을 했을 때 생겨나는 탑의 의지.
하필 NPC들이 모여 있을 때 이러다니. 속으로 긴장을 했으나 다행히 이번 버그 메시지는 금방 끝났다.
[혼돈 수치가 100점을 초과했습니다!]
[대상자의 유형은 정의할 수 없는 혼돈입니다.]
[해당 행위에 정당성이 붙습니다!]
[전 서버 최초! 검은 비로 혼돈 수치를 획득했습니다!]
[혼돈 수치 +20점]
“엉?”
20점? 엄청난 수치다.
순간 나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레고리와 디레트, 원로들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흠흠, 아닙니다. 잠깐 사레에 걸려서.”
100층에 진입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혼돈 수치와 버그로 인해 생겨난 유형 덕분에 적당한 선에서 넘어간 거 같다.
그건 그거고.
‘이렇게 된다 이거지?’
버그 메시지도 끝났고, 시스템이 공인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 말한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면은?
“저를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기회를 주시죠.”
작전 변경이다.
“예측이 맞다면 내일 오후부터 검은 비가 내리기 시작할 겁니다. 여러분도 나름의 대응 방법이 있겠죠?”
“건물을 포함해 가능한 많은 곳을 방수포로 덮을 생각이다.”
“크흠! 숭배자들의 도움을 받아 정화를…….”
“퓨네, 방금 원래대로 돌아가는 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그러면? 그냥 당하고 있을 건가! 누가 아는가 방금 이 자가 보여 준 것도 나쁜 의도가 섞인 것일지!”
쾅!
테이블을 내리친 퓨네가 몸을 일으켜 세운다.
“막말로 이 자가 종말에 저항하는 자가 아니라 멸망을 불러오는 자라면! 그렇게 봐도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는가!”
호통을 지른 녀석이 날 가리킨다.
“영웅의 무덤에서 예언을 본 적도 없는 자들이! 내 기억이 맞다면 예언에 종말에 맞서는 자는 없었어!”
아하.
어쩐지 지랄, 아니지. 반발이 크다 했더니만 예언이 적힌 벽화를 본 사람이었구만.
이건 몰랐네. 나도 아직 영웅의 무덤에 들어가지 못해서 벽화를 조작하지 못했다.
덕분에 서두를 이유가 생겼다.
아무튼 내일 당장 비가 올 예정인 만큼 이쪽부터 처리하자.
“뭐, 좋습니다. 의심하는 거? 이상하지 않죠. 그러니 직접 보고 결정하십시오.”
따로 준비해 온 지도를 펼쳤다.
원래 계획은 다른 거였지만 상황이 바뀐 만큼 조정을 해야겠지.
테이블에 놓인 펜으로 선을 그었다.
“방수포를 덮는 건 알아서 하시고 하는 김에 수로를 파세요. 비가 내리면 언더 시티로 흘러오도록.”
“이블아이!”
“그게 무슨!”
그레고리와 디레트가 놀랐지만 손을 들어 막았다.
다짜고짜 작전을 바꿔서 미안하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게 더 빠른 해결책이기는 하다.
“자이언트 폴리스와 언더 시티. 양쪽에 수로를 파서 한곳에 모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모두 정화하죠.”
가능할까?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 한 번에 많은 양의 비를 정화한 적이 없어서.
그렇지만…….
‘해 봐야지. 어차피 비슷하게 하려고 했어.’
원래는 도로와 지붕 밑에 땅을 파 웅덩이를 만들고 돌아다니면서 정화를 하려 했다.
여러 번에 나눠서 해야 할 일을 한 번에 처리하는 것뿐이다.
혹여나 문제가 생겨도 괜찮다. 내게는 보험이 있으니까.
“그에에에.”
내 생각을 읽은 덕춘이가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별 수 있나. 그러기에 주인을 잘 만났어야지.
찌릿. 덕춘이가 날 노려보길래 반사적으로 가드를 했다.
그래도 보는 눈이 있어서 그런지 때리지는 않았고.
“게흐으으.”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끝냈다.
탑 공인 혼돈 흡수 가능자인 나와 태생부터가 혼돈인 덕춘이의 콜라보.
챕터의 마무리가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