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화 자경단장
언더 시티의 통합을 위한 전투.
이쪽도 어느 정도 피해를 입을 것을 감안하고 벌인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피해는 크지 않았다.
숭배자들과 자이언트 폴리스에서 개입한 게 변수기는 했지만 우리에게도 변수가 있는 건 마찬가지라.
나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지원군이 왔다. 기껏해야 멤버들만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상위 헌터들을 비롯해 오징혁과 김소담과 같은 연합 사람들도 올 줄이야.
아, 상위 헌터들도 이제는 쁘찡 연합인가.
늦바람이 무섭다고 했던가. 한번 쁘찡 연합의 맛을 보더니 정신줄을 놓은 거 같다.
“흐흐흐, 으흐흐. 이놈들. 우리는 이미 핥짝이와 냥펀, 탈모맨과 무지개랑 함께 있지.”
“이거 커뮤니티에서 이야기하는 거 보다가 다시 보니 느낌이 색다른데?”
“보통 놈이 아닌 건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온갖 짓을 저질렀더군.”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쁘찡 연합 사람들 대부분은 나와 멤버들을 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연합이라는 것도 내가 공략을 뿌리면서 생겨난 거라, 대부분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이들 아니면 후발대가 많아서.
우리보다 먼저 올라왔던 이들도 나와 멤버들의 등반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까 금세 따라잡혀서 공략을 보고 따라 올라오고는 했다.
그에 반해 이 녀석들은 상위 헌터인 만큼 나와 멤버들과 같은 곳에 있는 거고.
그거 가지고 지금 기존의 연합 사람들한테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
“히힛! 짜릿해!”
“다들 열심히 올라오란 말이야. 우리가 길을 닦아 둘 테니까.”
“뉴비, 뉴비를 보고 싶다!”
어째 연합에 들어오는 녀석들은 정신 상태가 이상한 거 같다.
연합 사람들이랑 뒤섞이면서 안 좋은 영향을 받는 건가, 아니면 원래 그런 녀석들이 성격을 숨기고 있다가 동류를 만나 본색을 드러내는 것인가.
탑의 가혹한 생태계와 정신 나간 NPC들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커뮤니티 중독자들 같으니, 현실을 살지 못하고…….
“왜? 부럽냐?”
옆에 있던 핥짝이가 옆구리를 찌른다.
이건 또 뭔 소리래?
“부럽지? 넌 NPC들이 닉네임 볼까 봐 커뮤니티 못 켜잖아. 깔깔깔!”
“오, 제법 날카로운 지적인걸. 오늘이야말로 승부를 겨루면 되는 건가?”
“할 수 있으면? 와라.”
“덤벼랏!”
“아니 아니, 넌 왜 자연스럽게 핥짝이랑 편 먹는데.”
공격 태세를 갖춘 핥짝이의 옆에 서는 냥펀.
혹시나 나를 도와줄 탈모맨이나 쫄쫄이가 없을까 싶어 고개를 돌려 봤지만.
“내가 심판할게!”
“그래, 잠시나마 기대했던 내가 등신이지.”
언제 준비했는지 탈모맨은 의자에 앉아 점수판을 들고 있었다.
어이가 없네. 나중에 핥짝이한테 밟히면 나도 같이 밟아야지.
“오늘은 컨디션이 나쁘니 봐주지.”
“천하의 무지개 용사가 쫄? 쫄?”
“하하! 정의 승리닷!”
핥짝이와 냥펀이 도발을 했지만 이 정도로 넘어갈 내가 아니다.
SSS등급의 정신 보호를 얕보지 마라.
아무튼.
“예상 밖이야. 난 지금쯤 챕터가 끝날 줄 알았거든.”
“그건 맞지. 뭔가가 더 있는 거 같은데.”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 아냥? 숭배자 잡는 게 아니라 중립 NPC 많이 모으는 게 목표라며.”
“따지고 보면 이제 막 토대를 쌓은 거나 마찬가지지.”
멤버들 말이 맞다. 이번 전투로 1번과 3번 구역을 흡수하는 동시에 숭배자 세력에게 타격을 입힌 건 맞다.
다만 문제는…….
“언더 시티 놈들! 언젠가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는데, 크흑!”
“우리를 어떻게 할 생각이지? 후환이 두렵지 않느냐!”
여기, 포로로 잡은 자이언트 폴리스의 자경단.
중립 NPC는 언더 시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자이언트 폴리스에도 있지.
숭배자들이 자이언트 폴리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투를 하기 전에 미리 말해 놨다. 혹시나 자이언트 폴리스에서 온 병력이 있다면 가능한 죽이지 말고 제압하는 쪽으로 가자고.
‘악랄한 숭배자 놈들, 더럽게 놀고 있어.’
놈들이 자경단을 데리고 온 이유? 별거 없다. 언더 시티에 대한 반발심을 만들려는 수작.
안 그래도 이주민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이들이 많았다. 불만도 적지 않게 들려오고.
여기서 대규모 병력을 일으켰으니 경계심이 생겨나는 건 당연했고, 만약 그 싸움에서 자경단까지 죽었다면?
‘그때는 뭐, 자이언트 폴리스와는 완전히 척을 지는 거지.’
가만 생각해 보면 이번에 덤벼든 숭배자들도 미끼 느낌이 강했다.
진짜 일을 벌일 거였으면 주니어급이 아니라 진짜 강한 골드 등급이 모습을 드러냈어야 했다.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조심성이 있는 놈이다. 머리도 좀 돌아가는 거 같고.
차라리 치고받고 싸우면 편할 텐데. 음흉하게 뒤에서 흉계를 꾸미고 있는 놈을 상대해야 하니 머리가 아프다.
그나마 그레고리나 다른 NPC들이 적에 대해 알고 있으면 좋을 텐데, 시스템적으로 기억 일부가 봉인되어 있어 알 수가 없었다.
결국은 계획대로 움직이는 게 답이다. 그래도 지원군이 생겨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타이밍 나쁘지 않겠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날이 흐리다,
시커먼 구름에 가려진 태양. 불길한 기류가 흐르고 간헐적으로 터지는 번개는 음산함을 더 했다.
검은 비가 찾아올 시간이 머지않았다.
다르게 말하면…….
“포로를 데리고 가지. 협상할 시간이다.”
자이언트 폴리스에 영향력을 끼칠 때가 찾아왔다는 뜻이다.
* * *
자이언트 폴리스 역시 도시화가 되기는 했지만 부족 사회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각기 다른 부족이 영역을 정해 살아가는 것.
부족 간 교류가 많고 영토 전쟁을 벌일 이유가 없어서 서로의 문화에 융화가 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었고, 그 결과…….
“혼혈로 보이는 이들이 제법 있군.”
“점점 각 부족의 색이 흐려지는 것이지. 나쁘다고만 보기는 힘들다.”
“부족끼리 합쳐지는 경우도 드물지만 없는 건 아니니까. 이곳은 그런 경향이 더 크기도 하고.”
서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합쳐진 연합체가 가까운 느낌이 되었다.
각 부족에겐 특유의 주술이 있었고 그것으로 전통성을 유지해 왔으나, 이곳에는 여러 주술이 섞인 힘을 쓰는 이들이 꽤 있었다.
우리가 상대한 자경단들도 그런 쪽이었고.
‘장단점이 확실하지.’
다양한 주술을 쓸 수 있다는 장점과 주술이 분산된 만큼 고도화된 힘을 쓰기 어렵다는 단점.
물론 사람마다 타고난 게 다르다 보니 이 중에는 괴물 같은 녀석들도 있다고 한다.
예로 들어 우리 앞에 있는 녀석.
“언더 시티가 여기까지 무슨 일이지.”
“손님이 왔는데 길을 잃은 거 같아서 데려다주러 왔다.”
“흠!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자경단의 부단장, 하이머.
[하이머]
-탑에 완전히 종속된 NPC입니다.
-자이언트 폴리스 자경단의 부단장.
-자수정 동굴 부족과 나무 위 부족의 혼혈입니다.
-강력한 주술을 자유자재로 부립니다!
탑에 종속된 NPC.
확실히 위로 올라갈수록 탑에 종속된 NPC가 많아지는 거 같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인 게, NPC는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포인트를 지급하지 못하면 자아를 잃고 탑에 완전히 종속된다.
괜히 안전지대에서 NPC가 장사를 하는 게 아니라는 말.
80층대는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만큼 제 역할을 하기가 힘들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종속된 이들은 많아질 것이고.
‘뒤이어 등반하는 이들은 올라가기가 더 힘들어질 거야.’
옆에서 보조해 줄 NPC들이 줄어들 테니까.
당장 지금도 산맥 거인들을 제외하면 자아를 지닌 NPC가 거의 없다.
아무튼.
“모른다면 말고. 그럼 이 녀석들은 우리가 알아서 해도 된다는 뜻인가?”
“전쟁을 원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우리도 명분이 생기니 나쁠 거 없군, 난쟁이.”
녀석이 인상을 구기며 나를 노려본다.
모른다고 했다가 협박하고 뭐 어쩌자는 건지.
반응을 보아하니 나에 대한 정보가 여기까지 풀린 거 같다. 놀라지 않고 난쟁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까.
“전쟁을 하러 온 건 아니야. 너희가 우리를 공격한 걸 따지려고 온 것도 아니고.”
내 말에 하이머가 움찔한다.
명분이니 뭐니 말하고는 있었지만 정작 공격받은 건 우리니까.
이게 살짝 애매하다. 따지고 보면 이들 입장에서는 언더 시티는 멋대로 넘어와 자리를 차지한 것들이나 마찬가지라.
서로 껄끄러운 부분이 하나씩 있다는 거다.
싸우려고 온 게 아닌 만큼 그 부분은 건들 생각이 없다.
그저…….
“곧 검은 비가 내릴 거야.”
“멸망의 신호 말이군. 그게 어쨌다는 거냐.”
“너희는 아직 제대로 겪어 본 적 없잖아. 대책은 있어?”
“마치 네놈은 있다는 것으로 들리는군.”
“이미 나에 대한 소문은 들었을 텐데?”
언더 시티에서 선전한 게 있는 만큼 녀석도 알 거다. 내가 검은 비를 중화했다는 사실을.
보는 눈이 많은 만큼 확실하겠지. 속임수를 썼을지 모른다는 의심은 있겠지만 그거야 증명하면 될 일이다.
내가 원하는 건 하나.
포박되어 있는 자경단 대원들을 그에게 넘겼다.
“이들을 넘기는 대가라 말하기는 뭐하지만, 원로들과 대화할 자리를 마련해 줬으면 좋겠어.”
한발 녀석에게 다가갔다.
“가능한 빠르게. 저걸 막으려면 나도 시간이 필요하거든.”
낮임에도 흐릿한 하늘.
하이머가 입을 다물더니 부하에게 턱짓한다.
포로들을 이끌고 빠지는 이들.
나와 언더 시티 주민들을 바라보던 하이머가 손가락을 든다.
“너 포함 3명만 함께 가도록 하지. 그 이상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판단하겠다.”
“그러지. 아, 그런데 말이야.”
척.
주먹을 위로 들자 수신호를 받은 거인들이 야영 준비를 한다.
“우리도 나름의 보험은 있어야 하니까 이 정도는 괜찮지? 경계선은 넘지 않을 테니 걱정 마.”
“…지켜보겠다.”
서로 칼 한 자루씩은 쥐고 있어야지.
이미 같이 움직일 사람은 정해 놨다. 그레고리와 디레트.
그레고리가 나의 신분과 업적을 증명해 줄 것이고, 디레트가 언더 시티의 의견을 전달할 거다.
앞장서는 하이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 * *
우리가 있는 곳은 자이언트 폴리스와 언더 시티의 경계선.
길게 이어진 골목을 기준으로 분위기가 바뀐다.
비교적 험악하고 거친 분위기였던 언더 시티와 달리 이곳은 나름 정돈되고 평화롭다.
가면을 쓴 채 그를 따라갔다.
“연락을 넣었다. 초대는 했지만 응하는 건 원로들의 선택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아무도 모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정도는 이해하지. 우리도 미리 말한 건 아니니까.”
-끼이이익
얼마나 이동했을까.
층은 낮지만 거대하게 지어진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원형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거인이 한 명.
“소문으로만 듣던 자로군. 종말을 거부하는 자. 자경단장 베르타라고 한다. 원로들이 오기 전까지 대기하도록.”
“그러지.”
자경단장이 서 있었다.
“하이머, 이쪽은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 정문에서 원로들이 오시는 걸 맞이해라.”
“알겠습니다.”
그의 명령에 하이머가 밖으로 나간다.
의외다. 자경단장쯤 되면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건가.
그래도 나랑 그레고리, 디레트가 작정하고 날뛰면 막는 건 쉽지 않을 텐데.
약간의 흥미가 생기는 타이밍. 녀석이 내게 다가오더니 작게 속삭였다.
“반갑다, 등반가여. 자네가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NPC?”
“쉿, 내가 NPC인 건 아무도 모른다. 발설하지 말도록.”
놀란 눈으로 그레고리를 바라보자 녀석도 몰랐는지 고개를 흔든다.
시스템적인 제약 때문인지 디레트는 NPC라는 말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자이언트 폴리스에는 숭배자가 많아 중립 NPC인 척 행동하고 있었다. 아주 긴 시간이었지.”
“갑자기 정체를 드러낸 이유는?”
“그동안 만났던 등반가들과는 다른 전개가 펼쳐지고 있다. 너에게 가능성을 봤어. 함께하고 싶다.”
그렇구나.
그 말이 진심이기를 바란다.
다만 내가 탑에 있다 보니 의심병이 좀 생겨서.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츠즈즈즈
확인을 좀 해야 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