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7화 플랜B까지 필요할까?
3번 구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숭배자들. 혹시나 했더니만 역시나.
놈들과 완전히 척을 진 이상 앞으로의 등반에 계속해서 마주칠 것은 예상했다.
그동안 잠잠하기도 했고. 자이언트 폴리스에 함께 있었는데 지금까지 싸우지 않은 게 더 신기할 정도였다.
한 가지 예상하지 못한 게 있다면…….
“이블아이, 저들은 자이언트 폴리스에서 온 놈들이다.”
“언더 시티를 경계해서 자경단을 꾸렸다더니 사실이었군.”
숭배자들과는 별개로 자이언트 폴리스에서 온 이들이 있다는 것.
아무래도 우리가 대규모로 움직인 만큼 저쪽에서도 경계하는 것 같은데.
저럴까 봐 속전속결로 해결하려 했더니만.
아니 그보다…….
“그건 알겠는데 왜 쟤들이 저기서 나오냐 이거지!”
자이언트 폴리스가 완전히 숭배자들한테 먹혔나? 그건 아닐 거다. 아무리 놈들이 세력을 넓히고 있다고는 하지만 주류라고 보기에는 부족함이 있어서.
지금도 보면 둘 사이에 경계가 있다. 숭배자 무리는 그들끼리, 자경단은 자경단끼리.
그 와중에 3번 구역 소속으로 보이는 놈들은 숭배자들과 함께 있었다.
대략 상황을 알겠다.
“저놈들 숭배자랑 손을 잡았어. 자이언트 폴리스에는 우리가 전쟁을 벌이려 한다고 바람을 넣었겠지.”
“내가 봐도 그런 거 같군. 언더 시티에 대한 경계는 예전부터 있었으니까.”
“그래도 직접적으로 병력을 보낸 적은 없는데.”
“300명이 몰렸는데 그럴 수도 있지.”
우리가 많이 모으기는 했다. 저쪽도 따지고 보면 3개의 세력이 합쳐진 건데 숫자만 보면 그렇게 차이 나지는 않는다.
물론 저쪽이 더 많기는 한데.
‘100단위로 차이가 나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 한들 방심할 생각은 없다. 우리 쪽 산맥 거인들이 NPC인 것처럼 숭배자들 역시 NPC니까.
전투력으로 압도할 수는 없다는 것.
정면으로 부딪치면 우리도 큰 피해를 입을 거다. 게다가 저들에게는 유리한 점이 하나 있었으니.
“이블아이다! 저놈을 해치워라!”
“저놈만 잡으면 끝이다!”
숭배자들이 나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
게다가 챕터는 등반가가 있어야만 진행이 되니 놈들에게 있어 필승 전략은 나를 잡는 거겠지.
그동안 당해 왔던 것의 복수도 하고 말이야.
난 그것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혹여나 숭배자들이 개입했을 때를 대비한 안전장치. 그 첫 번째가 나다.
목표가 분명하다는 건 달리 말해 컨트롤하기 쉽다는 뜻.
“숭배자 놈들은 내가 유인한다. 플랜B 기억하지?”
“기억하고 있지.”
“네 역할이 크겠군.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우리도 우리의 역할을 다하마. 모두 늪지대 녀석들을 도와라!”
가마에서 내린 난 숭배자들을 향해 손가락을 겨누었다.
신나서 내게 달려오는 녀석들.
“하여간 단순하단 말이야.”
[오로라 빔(S) Lv.10+]
-찌유우우우우우웅!
나도 반갑게 한 방 날려 줬다.
거인계 시나리오라 그런가 숭배자들도 전부 거인들이다. 내게는 맞추기 좋은 과녁으로 보였다.
“크흐읍!”
“이 정도는 소용없다!”
머리에 적중당한 녀석은 피 철철 흘리면서 인상 쓰고 있는데 옆에 있는 놈이 떠드네.
재밌는 녀석들 같으니. 마음 같아서는 더 쏘아 주고 싶지만 굳이 놈들에게 놀아날 생각은 없다.
“그레고리, 가자.”
“좋지.”
그레고리와 산맥 거인 2명을 데리고 달렸다.
나의 역할은 간단했다. 가장 견제해야 할 대상은 숭배자 집단.
나머지 자이언트 폴리스에서 온 병력과 3번 구역의 조직원들은 다른 녀석들이 해결해 줄 거다.
그때까지 난 시간을 버는 것.
여유가 된다면…….
“붙잡아! 어윽!”
“저놈 저, 으아아악!”
놈들을 잡는 것.
파각! 미리 파 둔 함정에 빠진 숭배자 한 명이 땅속으로 사라졌다.
2번 구역을 전장으로 삼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이거다. 보다 적은 피해로 전투를 끝내기 위해 함정을 파 두는 것.
혹시나 마력에 민감한 녀석들이 있을까 봐 고전적인 함정도 만들어 뒀고.
[시한폭탄(S) Lv.10+]
[시한폭탄(S) Lv.10+]
[시한폭탄(S) Lv.10+]
.
.
.
-콰아아아아앙!
화력을 위해 스킬을 활용한 함정도 마련해 뒀다.
불길에 휩싸여 날뛰는 모습을 보니 마음에 들어하는 거 같다. 노력이 헛되지 않았군.
뿌듯한 마음을 느끼는 것도 잠시.
-스스스스스!
놈들의 몸에 문신이 번졌다. 주술을 쓰는 징조 현상.
이곳에 있는 숭배자들 역시 거인이다. 본인이 속한 부족의 주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게다가.
[거인의 발 구름(S) Lv.MAX]
-쿠르르르릉!
스킬까지도 사용한다는 거였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일대가 흔들린다.
파 두었던 함정이 매몰되었고, 충격에 마법진이 깨져 멋대로 폭발했다.
80층대라고 시작부터 MAX 레벨 스킬 사용하는 거 봐라.
누구는 아직 숙련도가 다 차지 않아서 +레벨의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데.
뭐, 나도 나중에는 MAX 레벨의 스킬을 사용하게 되겠지만 당장은 아니라서.
그래도 괜찮다.
“커버할 수 있어.”
대미지가 부족하다? 그럼 뚫릴 때까지 두드리면 되는 거 아닌가?
스테이터스로 표시된 능력치는 놈들보다 낮을지 모른다. 나보다 먼저 초인의 영역에 들어선 놈들이니까.
하지만 그동안 쌓아 온 칭호 효과와 장비 옵션까지 합친다면?
그때는 또 다르지.
챕터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서인지, 시스템적인 제한인지 숭배자 놈들의 장비는 다른 거인들이 사용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체 스펙으로 따지면 밀리지 않는다. 그건 이미 디레트와 싸우면서 확인했다.
-쿠우우우웅!
-파아아앙!
나를 향해 온갖 스킬과 투척 무기가 날아온다.
나무 기둥이나 다를 바 없는 창이 땅을 부수며 박힌다.
불덩이나 바위가 날아오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이크!”
“아무래도 도망치는 건 여기까지인 거 같군.”
“그런 거 같네.”
영악하기도 하지.
직접 맞추는 게 어렵다고 판단한 놈들이 장애물을 퇴로 방향으로 던졌다.
통과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잠깐의 시간이 지체되는 건 당연한 일.
어느새 놈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저 멀리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이 보인다.
우리가 밀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조금씩 밀어내고 있지.
숭배자들이 이쪽으로 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한테 어그로 끌린 녀석이 어디 보자.
“와, 징그러워라.”
얼추 세어 봐도 50명이 넘는다. 더 많나? 아닌가?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서로의 몸에 가려져 정확히 셀 수가 없다.
수십 명 단위라는 건 확실하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넘치는 그레고리와 산맥 거인들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많긴 많군.”
“쫄리나, 그레고리?”
“그럴 리가, 아주 마음에 든다.”
괜히 대화를 주고받으며 긴장을 푸는 녀석들.
어깨를 으쓱하고 놈들을 바라봤다.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호오.”
작게 감탄했다.
숭배자의 3분의 2가 실버 등급. 그것도 최상위.
여기까지는 그럴 줄 알았다. 전원이 골드 등급이었다면 이렇게 쉽게 도망쳤을 리가 없으니까.
그런데…….
“같은 등급끼리도 나뉘는 게 있을지는 몰랐는걸.”
[카푸네]
-탑 숭배자입니다!
-이제 막 골드 등급에 올랐네요.
-골드 등급, 주니어입니다.
-세력을 만들 권한이 없습니다.
-훌륭한 일꾼이죠!
주니어라, 골드 등급이라고 다 같은 골드 등급은 아니다 이건가.
하긴 이 녀석에게는 데이본드와 같은 중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상대 못 하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안 들고.
20명 정도가 골드 주니어급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군.
주니어라고 하니까 뭔가 깜찍하다. 덩치는 산만 해가지고.
-철컥
혼돈검을 뽑았다. 혹시 몰라서 안전장치를 더 마련해놨는데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검을 돌리며 옆을 바라봤다.
무작정 도망친 건 아니다. 함정이 있는 곳으로 유도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눈속임.
4번 구역 근처로 이동했다.
왜냐…….
-띠링
-띠링
“왔나 본데.”
이곳에서 지원군을 만나기로 해서.
커뮤니티 알람이 울린다.
거인계 시나리오, 두 번째 챕터.
이곳에 올라온 지도 벌써 3주가 지났다.
그 말은 곧…….
“멤버들이 첫 번째 챕터를 깨고 자이언트 폴리스까지 도달하기 충분한 시간이라는 거지.”
2, 4, 5번 구역을 통합하고 전투를 준비하며 가장 먼저 한 것. 그동안 올리지 못했던 공략을 올리는 것이었다.
덕분에 멤버들한테 욕을 꽤 먹었지. 치사하게 혼자 올라가냐고 말이다.
어쩔 수 없었다. 당시에는 마음이 조급했어서.
아무튼.
1챕터를 클리어하고 위로 올라왔다는 소식을 들은 게 6일 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바로 진입하지 말고 숭배자들이 나타나면 4번 구역을 통해 합류하기로 했다.
다들 나름의 준비를 하고 온다는데 나도 자세한 건 모른다.
80층은 70층과는 다르다. NPC들도 그렇지만 다른 등반가가 합류하는 방식도 달랐다.
70층대에서는 먼저 위에 올라가도 챕터가 진행 중이면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들어갔었는데, 여기는 그런 게 없다.
먼저 위로 올라간 사람을 기준으로 챕터가 결정되고 거기에 합류한다.
솔직히 그리 마음에 드는 방식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이쪽 챕터를 잘 끝낸다 하더라도 내 위에 있는 놈이 개판으로 해 놨다면 그걸 기준으로 공략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이거야 뭐, 나중에 겪어 보면서 해결할 일이고.
“지원군이 올 때까지 날뛰어 보자고.”
“흐흐흐. 이거 잘하면 죽겠군.”
“목숨 걸어야지. 죽더라도 걱정하지 마. 중립 NPC로 다시 태어날 테니까.”
“그게 제일 끔찍해.”
“그러니까 죽지 말라고. 자! 가 보자!”
저마다 기합을 내지르며 숭배자들을 향해 돌진한다.
나도 마찬가지.
권능을 발휘했다.
[SSS급 권능, 차원 상인의 무자본 혜택이 발휘됩니다!]
손에 들어오는 작은 상자.
난 그것을 위로 던졌고.
[맥시멈 밤(SS)을 획득합니다!]
“이야. 웬일로 멀쩡한 게 나왔냐.”
“그에에.”
딱 좋은 물건이 나왔다. 소비형 아이템이기는 하지만 자그마치 SS급.
적어도 한 번은 SS급 스킬에 버금가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럼.
“시작해 보실까.”
-후우우우웅!
힘껏 폭탄을 던졌다.
위험을 감지했는지 숭배자 한 녀석이 들고 있던 몽둥이를 휘두른다.
나이스 샷.
-콰과과과과과과광!
거대한 폭발과 함께 땅이 진동한다.
폭발의 영향력에 있던 숭배자 3명이 나가떨어졌다.
그 외에도 부상을 입은 놈들이 더 있고.
산맥 거인들도 놀라서 날 바라봤으나.
“앞에 봐! 아직 한참 남았어!”
“그, 그렇군. 죽여! 그냥 죽여 버려!”
내 외침에 정신을 차리더니 주술을 사용한다.
만만히 볼 대상이 아니라는 거겠지. 나도 처음 본다. 산맥 거인들이 주술을 쓰는 건.
생각해 보니 운석 막을 때도 안 썼던 거 같은데. 신체 강화 계열이 아닌 건가.
-스스스스스!
녀석들의 몸에 푸른 문신이 번진다.
그와 함께 청아하면서도 강력한 기운이 번졌고.
“이런 거였구만.”
푸른 안개가 퍼지듯 기류가 흐르더니 각기 다른 짐승의 형태를 구성한다.
혼령.
영격을 가진 산맥의 짐승들이 연기를 흩날리며 숭배자들을 덮친다.
이어 거인들도 주먹과 발을 뻗었고.
[S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번뜩입니다!]
[검강]
나 또한 거인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은신을 사용하며 어지럽게 움직이는 놈들의 다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절삭(S) Lv.10+]
-서걱
소름 끼치는 소리.
기우는 몸뚱이.
마력을 폭발시키며 놈들 사이를 휘저었다.
오로지 발목만. 집요하고 섬세하게.
-서걱
-서걱!
살과 근육, 뼈를 갈랐다.
놈들이 하는 공격? 은신 상태인 나를 온전히 맞추는 게 가능할까?
가뜩이나 체고도 8미터 이상 차이 나서 확인하기 힘든데?
그것도 산맥 거인들이 날뛰는 환경에서?
-서걱!
못 할걸?
입가를 비틀며 버프 다이스를 굴렸다.
[버프 다이스(S) Lv.10+]
[4]
[가속]
빠르게.
[칭호, 어둠을 부르는 자가 발동합니다!]
[밤이 찾아옵니다!]
[칭호 효과! 스텟이 상승합니다!]
더 빠르게.
난 검을 휘둘렀다.
완전히 자르지 못 해도 상관없다. 발목의 반이라도 가져갈 생각이다.
-츠츠츠츠츳!
어두워진 공간,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빛만이 가득했고.
“이, 이게 무슨!”
“크하아아아악!”
“움직여! 쉬지 말고 움직여!”
[거인이 공포를 느낍니다!]
[칭호, 발목 수확자가 생성됩니다!]
[새로운 칭호가 생겨날 가능성이 열립니다.]
내 위로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