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화 언더 시티
딸랑.
방울 소리가 들렸다.
대체 어디서? 트랩이 있었나?
아니다. 거인계는 기본적으로 다 크게 형성되어 있어 세밀하게 설치한 함정도 내 눈에는 다 보인다.
단순히 눈썰미만으로도 그럴진대, SSS급 권능인 별을 주시하는 눈을 가지고 있는 내게 함정은 사실상 아무런 효과가 없다.
한 가지 더 이상한 것은…….
‘그레고리는 못 들은 눈치야.’
덕춘이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거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주파수의 소리 같다.
툭.
그레고리의 다리를 쳤다.
“무슨 일이지?”
“쉿, 티 내지 말고 있어 봐.”
시선이 느껴진다. 그레고리가 이상 행동을 하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모른다.
골목 깊숙한 곳, 경계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알 수 없는 경계심이 느껴지니 내가 움직이는 수밖에.
“와아! 여기 신기하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지금의 나는 거인족의 아이인 척 행동하는 중.
대충 5살 정도라는 콘셉트니, 한창 호기심이 많고 돌아다닐 때다.
움직여도 별다른 의심은 사지 않을 거다. 어떤 놈들이 어디서 우리를 지켜보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경계하지는 않겠지.
골목을 구경하는 척 방울 소리가 들린 곳을 확인했다.
‘있다.’
2층짜리 건물.
유리가 다 깨진 창문, 그곳에 달려 있는 방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그늘 안에 숨어 있지만 안에는 거인이 한 명 있다.
덩치는 커다란 주제에 인기척이 거의 없다. 모습을 감추는 데 능숙한 녀석.
스쳐 지나가듯 놈에게서 시선을 뗐다.
트랩이 아니라 감시자가 종을 울린 모양.
“어? 이게 뭐지?”
골목 틈, 놈의 사각지대로 들어갔다.
이어서 외톨이의 길과 프리즘 레인보우를 사용했다.
두 은신 스킬이 사용되자 마치 증발한 듯 몸이 사라진다.
다시 사용해 봐도 이상한 기분.
서둘러 움직이기로 했다. 프리즘 레인보우가 효과가 좋기는 하지만 지속 시간이 엄청 길지는 않아서.
-사사사사
담벼락을 넘고 건물을 기어올랐음에도 소음이 나지 않는다.
감시자가 있는 창문에 걸터앉아도 눈치채지 못하는 걸 보니 효과는 확실하다.
놈에게 권능을 사용했다.
[하칸]
-82층 챕터를 위해 만들어진 중립 NPC.
-암시장에서 활동하는 조직, 검은 쥐 소속이다.
이놈도 중립 NPC라 이건가.
그것보다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NPC라 그런가. 골목 입구에 있던 녀석들도 그렇고 어째 설명이 삭막하다.
평소에는 장난스러운 설명도 많고, 말투도 좀 부드러웠던 거 같은데.
권능도 상대를 가리나? 모르겠네.
됐다. 권능도 컨디션이 있나 보지. 굳이 중립 NPC가 아니더라도 이런 식으로 설명창이 뜰 때가 있다.
지금은 공략에 집중하자.
‘건물 안에 있는 건 이 녀석 혼자군.’
다른 인원은 보이지 않는다. 방 안이 정돈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흔적도 있는 걸 보니, 교대로 감시를 하거나 잠시 동료가 자리를 비운 거 같다.
귀에는 보청기 같은 뭔가를 착용했는데 아무래도 저걸로 방울 소리를 듣는 모양.
하긴 거인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장치로 썼는데 본인들도 못 들으면 소용없지.
-타악
방울을 잡아챘다.
“이런!”
녀석이 당황했지만 그것도 잠시. 모습을 드러내기 껄끄러운지 다시 몸을 숨긴다.
방울은 내가 가져간다. 혹시나 나중에 사용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내려와서 은신을 거두었다.
‘이상하긴 하군.’
거인족은 덩치가 워낙 크고 무거워서 높은 건물은 잘 짓지 않는다.
튼튼하게 만드는 데 드는 자재도 많고, 신경 쓸 것도 많으니까.
땅도 넓어서 굳이 고층 건물을 지을 필요도 없다. 그냥 조금 떨어진 곳에 지으면 그만이니까.
거인의 중심지라는 자이언트 폴리스 정도는 되어야 2층 이상의 건물이 늘어선 걸 볼 수 있다.
그마저도 나름의 목적이 있지만.
과시하기 위함이든, 아니면 주술적인 상징이 있든. 혼잡한 공간이라 옆으로 증축할 수 없어 위로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어떤 경우든 판자촌에 있을 건물은 아니라는 것.
말이 골목이지 이쪽부터는 단층 건물이 오히려 적다.
지금은 난민들이 모여 살지만 원래는 다른 목적으로 구성된 단지일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안에 있는 놈들이 점거해 버린 걸지도 모르고.’
왜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했는지 알 거 같다.
권능도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를 감시하던 녀석은 암시장에서 활동하는 조직의 일원이라고.
검은 쥐라고 했던가. 아무래도 이쪽 골목에서 영향을 끼치는 놈들인 거 같은데.
“그레고리, 검은 쥐라는 세력을 알아?”
“들어 본 거 같군. 과거에 그런 놈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을 거다. 컸다면 나도 자세히 들었을 테니.”
“과거에는 그럴지 몰라도 지금은 아닐 거 같아. 이쪽 골목을 담당하는 놈들이 그놈들인 거 같거든. 암시장도 있어.”
“…운석을 막은 영향이 이렇게 흘러가는군. 운석이 떨어졌을 때는 암시장이 따로 없었다.”
잠시 입을 다물었던 그레고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자이언트 폴리스로 이 정도로 많은 거인들이 모이지도 않았군. 과거의 기억을 토대로 움직이면 안 될 거 같다. 주의하지.”
“들어가자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쓰레기가 아무 데나 방치되어 있었으나 악취는 느껴지지 않았다.
바닥에 무방비하게 누워 있는 사람도 없고, 건물도 허름하지만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보인다.
그뿐일까.
“어이, 그쪽은 누구지?”
“애랑 같이 다니는 놈은 본적이 없는데.”
“새롭게 들어온 거 같은데. 새로운 곳에 왔으면 새로운 법을 따라야 하지. 와 봐.”
조잡하지만 무장을 한 녀석들도 있다.
목소리는 높았지만 덩치가 커서 그런가. 나름 박력이 있다.
나야 살짝 웃기다고 느꼈지만. 이쪽 분위기가 어떤지 이렇게 알려 주네.
한 발 앞에 서자 그레고리가 손을 내려 막았다.
자기가 알아서 한다 이거겠지.
순순히 물러섰다. 괜히 내가 나서는 것도 이상하다.
그 모습이 자신의 아이를 보호하려는 걸로 보였는지 양아치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야야, 옆에 애도 있는데 다짜고짜 그러면 어떻게 하냐?”
“원래 험난하게 자라야 나중에 큰일도 하고 그러는 거지. 안 그래?”
“흐흐흐. 맞는 말이기는 한데, 살살하자.”
놈들이 웃거나 말거나 그들에게 다가선 그레고리가 어깨를 푼다.
“불러서 왔다. 왜 불렀지?”
“어깨에 힘 빼는 게 좋아. 자식 앞에서 강해 보이고 싶은 건 알겠지만 여기서 그러고 다니면 죽어.”
“보호자가 사라지면 고달픈 건 아이잖아. 나쁜 의도는 없어.”
자연스럽게 협박을 한 놈들이 그레고리를 둘러싼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그레고리의 어깨에 손을 얹은 녀석이 한쪽 입꼬리를 올린다.
“우리가 친절히 설명해 주지. 많은 걸 원하는 게 아니야. 적당한 안내 비용 정도면 충분해.”
“적당한 비용?”
녀석이 손끝으로 그레고리의 머리를 가리키더니 주욱 아래로 내린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들고 있는 거 전부.”
“이곳까지 들고 오느라 고생이 많았어. 무겁잖아. 우리가 대신 들어 줄게. 흐하하하!”
와,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어쩜 말을 이렇게 줘패고 싶게 잘할까.
같은 마음인지 그레고리가 짊어지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는다.
별다른 다툼없이 넘기려 한다고 착각할 걸까. 놈들의 표정이 밝았지만 내 눈에는 말이지.
“안내, 좋다. 부탁하지.”
“그래. 잘 생각……!”
-콰아아아앙!
좀 더 편하게 싸우려고 배낭을 벗은 거다.
역시나. 껄렁거리는 녀석의 멱살을 잡더니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는다.
“이, 이놈이 좋게 이야기하니까!”
“나도 최대한 정중히 모시지.”
투박한 검을 지르는 놈의 검을 맨손으로 잡은 그레고리가 손에 힘을 준다.
-파창!
악력만으로 검을 부순 그레고리가 주먹을 뻗었고.
“크하아압!”
충격에 얼굴이 뭉개진 녀석이 건물을 뚫고 박히더니 축 늘어졌다.
마무리로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일어서려는 놈의 뒤통수를 밟아 기절시킨 그레고리가 하나 남은 양아치에게 오라고 손짓한다.
“나, 나는 딱히 악감정이 없어.”
“나도 없다. 그저 안내원은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뿐.”
“하하, 아하하. 그래?”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다른 사람을 찾아보겠다.”
주먹을 슥 들어 올리자 남은 한 명이 손사래를 친다.
“아냐, 아냐. 내가 이쪽에서 굴러먹은 지 오래됐다고. 나만 한 안내자가 없다니까? 진짜로. 뻥 안 치고!”
빠르게 소리치던 녀석이 날 바라본다.
왜 날 봐? 언제 봤다고 내게 시선으로 구조 요청을 하냐.
살짝 어이가 없었지만 안내원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이쪽 상황을 모르는 만큼 정보를 말해 줄 녀석이 필요해서.
분위기도 좀 살피고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보다 먼저 이곳으로 온 이들과도 합류해야 하고.
골목 외곽에는 없었으니 안쪽에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맡겨 볼까?”
“그러지.”
내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양아치가 눈을 부릅뜨더니 날 노려본다.
“아니, 그런데. 아빠한테 반말을. 씁! 버르장머리 없게!”
-빠악!
내가 나설 것도 없이 그레고리가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잔말 말고 안내해라.”
“하하하. 가정사에 내가 너무 간섭했지? 가풍이라는 게 있는 건데. 난 듀렉이라고 하지.”
“그레고리다.”
통성명은 이쯤이면 됐다. 그레고리가 턱짓하자 녀석이 안내를 시작한다.
“우리 말고도 이방인이 들어왔다는 걸 안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말해라. 안내 비용은 주겠다.”
“이방인이라… 사실 대부분이 이방인기는 한데. 다른 곳으로 이동한 녀석도 있고, 거진 다 골목 입구 쪽에 자리를 잡았지. 그래도 몇 명은 이쪽에 있다고 들었어.”
원래 말이 많은 성격인가. 안내하면서 입이 쉬질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정보가 쌓이면 좋은 일이다.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인지는 검증해 봐야겠지만.
묵묵히 녀석을 따라 걷다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 녀석 봐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떠들고 있는 게 아니다.
-딸랑
수다로 신경을 딴 데 쓰게 유도하면서 허리춤에 단 방울을 흔든다.
귀에 아티팩트를 꽂지 않은 걸 보니 본인은 못 들을 테고 근처에 있는 다른 조직원들을 부르는 건가.
덕분에 대충 알았다.
‘이놈같이 양아치 같은 하급자는 방울 소리를 못 듣는군.’
소리 탐지기를 가지고 있는 놈들은 어느 정도 계급이 있는 모양이고 말이야.
그 증거로 듀렉을 향해 권능을 사용하자 하급 조직원이라는 설명이 떠올랐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건물이 높아진다.
내 입장에서는 건물에 가려 하늘도 잘 안 보일 지경.
그레고리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보는지 이곳저곳을 살핀다.
특이한 점이 있다. 하나같이 무작위적으로 건물이 세워졌다는 거? 누더기처럼 증축에 증축을 반복한 느낌이다.
“자자. 어때? 분위기가 다르지? 자이언트 폴리스의 음지! 그렇다고 완전히 무법천지는 아니야. 그건 말 안 해도 알겠지만 말이야!”
자신이 활동하는 곳으로 왔다 이건가. 눈에 띄게 기분이 좋아진 녀석이 주변을 가리킨다.
“…오.”
“이런 건 처음 보는군.”
눈앞의 풍경을 보고 작게 감탄했다.
골목은 입구에 불과했다. 높이 세워진 건물? 위장이다.
이곳.
“자이언트 폴리스를 양분하는 뒷세계, 언더 시티에 온 걸 환영한다!”
언더 시티를 가리기 위한 장애물.
씨익. 팔을 벌린 녀석이 입꼬리를 올린다.
“생각해 보니까 이 넓은 곳을 나 혼자 안내해 주기는 힘들 거 같더라고. 나머지는 이분들이 친히 알려 주실 거다.”
녀석의 주변으로 쥐를 형상화한 마크를 단 녀석들이 몰려왔다.
우리가 들어온 입구가 막힌 건 덤.
“환영식을 시작하지.”
포위하듯 둘러싼 거인들이 10명.
옆에 선 그레고리를 올려다봤다.
“좀 도와줄까?”
뚜둑. 손가락을 푼 녀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정도면 몸풀기로 적당하군.”
그럼 말고.
가방에서 팝콘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