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6화 거인계의 예언
산맥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고속으로 이동하는 운석.
그 크기와 무게 때문에 기껏 준비한 레일이 망가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앙!
“크으으으읍!”
파이어 밤을 이용해 운석의 각도를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가공된 공도 아니고 운석인 만큼 모양은 제멋대로였고, 빠르게 미끄러지는 만큼 언제 어디로 튕겨 나갈지 알 수 없었다.
만약 튕겨 나가게 된다면?
“그대로 쓸려 나가는 거지!”
[파이어 밤(S) Lv.10+]
-콰아아아아앙!
폭발을 더 했다.
지금까지 고생한 게 있는데 이제 와서 포기할 생각은 없다.
당장 운석이 뒤집히거나 굴러 버리면 내가 깔리기도 하고.
이 악물고 운석의 방향을 조절했기 때문일까, 처음보다는 안정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안도하면 안 된다. 아직 할 게 남았다.
산맥을 따라 들어오는 나를 보며 쇠사슬을 끌어당기는 거인들.
레일이 있는 방향에 수백 개의 쇠사슬이 올라오는 것은 꽤 장관이었으나…….
“최대한 버텨!”
“충격에 대비하라!”
-촤르르르르륵!
-콰아아앙!
“크하아아아악!”
“아아악! 내 팔!”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거인들조차 운석의 힘을 온전히 받아 내는 건 불가능.
맨 처음 쇠사슬을 잡고 있던 녀석들이 하늘로 치솟는다.
애초부터 이럴 거라고 생각했다.
이놈들의 목표는 단 하나. 운석의 속도를 늦추는 것.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부상자가 생겨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게 최선이다.
“커흐으윽!”
“으아아아!”
버티다 팔이 빠진 건지 부러진 건지 이상한 각도로 돌아가 버린 거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튕겨 오른다.
운석을 잡기 위해 당겨졌던 쇠사슬이 어지럽게 얽히며 넝쿨처럼 운석을 휘감았으며, 그때마다 반동이 생겨 컨트롤이 힘들어졌다.
애초에 나 혼자서 운석을 컨트롤한다는 거 자체가 웃기는 일이었지만.
“으아아아! 멈춰어어어!”
[시한폭탄(S) Lv.10+]
[시한폭탄(S) Lv.10+]
[시한폭탄(S) Lv.10+]
.
.
.
나라고 어설프게 대비를 했을까.
이미 레일에 시한폭탄을 심어 뒀다.
연쇄적으로 폭발이 일어나며 운석을 때린다. 속도를 늦추는 동시에 다른 곳으로 튕겨 나가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 주는 것.
당연히 그 안에 있는 거인들은 그대로 폭발에 노출되었지만…….
“버텨라! 저 작은 이블아이도 하고 있지 않냐!”
“우리의 세계다! 세계의 주인다운 모습을 보여!”
“이 정도쯤은 할 수 있잖아!”
거인의 박력은 그 정도로 죽지 않았다.
최대한 버티기 위해 장비도 착용하고 있었고.
당연한 말이지만 저것들 역시 프램버그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콰르르르르릉!
운석이 산맥 일면을 뒤집으며 내려가고, 하늘로 거인들이 날아가며 쉴 새 없이 폭발이 휘몰아치는 광경!
비현실적인 모습에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 헷갈릴 지경이었지만.
“그에에엑!”
“덕춘아, 숨 막혀!”
“그엑!”
내 뒤에 딱 붙은 채 소리를 지르는 덕춘이를 보자니 현실이 분명했다.
무식하게 운석에 달라붙을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덕춘이.
혹여나 부상을 입거나 정신이 날아갈 거 같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 회복도 회복이고, 지금처럼 목 잡고 흔들어서 정신 차리게 하거나.
-쿠르르르르릉!
우리들의 노력이 통했는지 점차 운석의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됐다. 여전히 빠르지만 제법 안정권 안에 들어왔다.
이대로 땅에 박혀도 커다란 크레이터 하나 생기고 말 정도.
물론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 쇠사슬을 들었던 거인들은 이미 모두 나가떨어진 상태.
각 부족의 에이스들이 모인 만큼 무방비하게 있을 때 충격이 오면 크게 다칠 수 있었다.
정확히는 죽을 거 같기는 한데 거인들의 생명력이 워낙 질겨서 대충 살아남겠지.
‘죽든 반병신이 되든 안 좋은 건 마찬가지지만.’
대비를 하며 거인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거인족은 수가 많지 않다. 종족 특성인지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교류가 있는 거인족의 부족은 30개가 조금 넘는 수준.
여기서 떼거리로 당하면 앞으로가 문제다.
그래서 준비했다.
“공성추 준비해!”
“타이밍이 중요하다! 한 박자라도 늦으면 팔다리 날아가는 거야!”
“호수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저 멀리, 레일 끝에 보이는 녀석들.
원래는 공성전에서 성의 문을 부수기 위해 만들어진 공성추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운석을 쪼개 충격을 줄이기 위한 용도로 쓸 거다.
사이즈도 거인에게 맞게 만들었으며 공성추를 들고 있는 인원만 20명이다.
단 한 번.
적절한 타이밍에 운석을 때리고 피할 거다.
이후에는 저기, 산맥 아래에 위치한 거대한 호수가 남은 충격을 감당할 예정.
처음 거인계에 왔을 때, 그레고리가 강을 뛰어넘는 것을 보았고 호수의 존재에 대해 들었기에 짠 계획.
-쿠콰콰콰콰!
“지금!”
“때려어어어!”
막바지. 난 온몸에 힘을 줬고 공성추를 든 녀석들이 다리에 힘을 줬다.
-콰아아아아앙!
-파가가가각!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충격이 몸을 타고 전해진다.
거인들의 비명이 들린 것도 같았지만 모르겠다. 가슴을 강하게 치는 충격과 함께 이명이 들렸으니까.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종이 인형처럼 날아가는 거인족 몇 명과 부서진 운석.
제대로 쳤는지 3조각으로 나뉜 운석 파편이 호수를 향해 떨어졌다.
-푸화아아아아악!
호수에서 해일이 친다.
거인족의 입장에서 거대 호수인 만큼 일반 사람이 내게는 바다와 같은 풍경.
여전히 열기를 머금은 운석에 물보라가 튀고 수증기가 폭발하듯 쏟아진다.
넘치는 물에 나무가 휩쓸렸으며,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흔들렸지만.
“아.”
그게 전부였다.
거대한 크레이터도, 폭발로 뒤집힌 땅도, 하늘을 뒤덮는 잿가루도 없다.
반쯤 사라진 산맥과 요동치는 호수가 전부.
거인계를 멸망에 접어들게 했던 첫 번째 원흉. 두 번째 태양이 떨어진 결과라고 하기에는 소소한 피해에 불과했다.
“성공, 성공이다.”
호수에 위에 둥둥 떠 하늘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새침한 파란색으로 뒤덮인 하늘에는 하나의 태양만이 떠올라 있었다.
긴장감이 풀려서인가. 뒤늦게 통증이 찾아왔지만 그 정도는 무시할 수 있었다.
무사히 일을 마쳤다는 만족감과…….
“태, 태양이 하나다!”
“성공했어! 성공했다고!”
“제기랄. 뒈지게 아프지만 기분은 최고군!”
-우오오오오오!
-와아아아아아!
울부짖음과도 같은 거인들의 함성이 메아리치는 광경에 마음이 들뜰 뿐이었다.
다들 고생이 많았다.
정말이지 거인들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는 방법이었으니까.
무리하게 움직인 만큼 어디 한두 곳쯤은 맛이 갔을 테지만 그냥 죽는 것보다는 백배 나으니까.
“이블아이!”
“무지개!”
“개구리를 태운 무지개!”
풍덩!
거인들이 호수로 뛰어들더니 엄청난 속도로 내게 헤엄쳐온다.
팔 한 짝이 너덜거리는 놈들이 뭐 저리 빨라.
반사적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놈들이 더 빨랐다.
“하하하하! 믿고 있었다!”
“작은 친구, 위대한 친구!”
“아악! 놔! 놔, 이 자식들아!”
신나서 날 끌어안는 녀석들.
솔직히 말하면 끔찍하다. 피땀 가득한 상태로 뜨끈하게 달아오른 호수에서 얼싸안고 있으니.
말이 얼싸안은 거지 워낙 커서 틈바구니에 낀 기분이다.
‘아… 집 가고 싶다.’
진짜로.
그러기 위해서는 이 빌어먹을 탑의 꼭대기에 올라야겠지.
진작 탈출한 덕춘이가 혀를 차며 나를 바라보는 시점, 그나마 멀쩡한 모습인 그레고리가 놈들을 물리치고 날 호수에서 건져 줬다.
“다들 기쁜 마음은 알겠지만 이블아이도 피곤할 거야, 안 그런가?”
“어. 많이. 매우.”
“하하하! 엄살은! 아무튼 예언에 나온 두 번째 태양은 확실히 없앤 거 같구나!”
엄살? 이런 씨.
순간 욱한 것도 잠시.
“예언?”
놈이 한 말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
예언이라니, 그런 소리는 못 들었는데.
그제야 내가 모르는 눈치라는 걸 깨달았는지 그레고리가 날 바닥에 내려놓고 쪼그려 앉는다.
“아, 모르겠군. 거인족은 주술적인 문화가 짙어. 온갖 신비와 신화, 전설. 그중에는 종말에 대한 예언도 있다.”
“우리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말이야. 위대한 영웅들을 모신 곳에 그려져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이후 멸망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되었거든.”
그레고리의 말에 다른 거인들도 설명을 덧붙인다.
가늘게 눈을 떴다. 신화니 예언이니 크게 관심은 없다. 망할 탑을 겪어본바 저런 것들이 진짜여도 이상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다만…….
‘영웅들을 모신 곳이라면 그걸 사용하는 곳 같은데.’
예전에 얻었던 아이템. 거인의 무덤 열쇠.
영웅, 헬그레이트의 무덤에 진입할 수 있다고 했던가.
한 가지 내 생각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영웅이 한 명이 아니었구나. 영웅들이라고 하는 걸 보니.’
하기야.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세계에 영웅이 하나일 리가 있나. 여럿 있었겠지.
안 그래도 찾아가 보려 했다. 유적은 위험할지는 몰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잔뜩 있으니.
거인족의 영웅이 남긴 보물이라면 모르기는 몰라도 대단하지 않을까.
당장 여기 있는 놈들도 보통이 아니다. 종족값 자체가 높은 세계에서 영웅이라 불릴 정도면 말 다 했지.
좋다. 슬쩍 어디에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예언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고 했으니 그걸로 살살 꼬드기면 되겠지.
“예언이라, 흥미롭군. 자세히 알 수 있을까?”
“오오. 너도 관심이 가나 보군. 이게 그림으로 그려져 있어서 정확한 뜻을 알아내기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그림도 워낙 대충 그렸고 말이야.”
“수차례 멸망을 겪고 나서야 그 내용을 일부나마 이해할 수 있었지.”
예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거인들이 제법 되는지 나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푼다.
“가장 먼저 그려진 것은 거대한 탑이다. 그게 뭔지는 알겠지?”
알다마다, 탑이겠지. 나와 거인들이 있는 이곳.
“이어서 하늘에 뜬 태양 두 개가 그려져 있었다.”
“그 옆에는 세상이 검게 칠해져 있었는데 태양이 하나더군. 하나가 떨어졌다는 뜻이지. 검은색은 밤을 뜻하는 건지 뭐를 뜻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잿가루일 거다.
운석이 떨어진 충격으로 먼지가 올라가 하늘을 덮는 것.
적어도 내가 아는 과학 상식으로는 그렇다.
“무슨 괴물 그림도 있지 않았던가.”
“아아, 나도 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여기가 그쪽이잖아.”
멸망하면 운석이니 괴물이니 나올 수 있지. 그럼 그럼.
잠깐만, 그전에.
“여기?”
“이곳 호수는 우리 세계에서도 꽤 유명한 곳이다.”
“하늘이 울어서 생긴 호수. 전설적인 그런 이야기가 있지.”
“이게 참 느낌이 있긴 하다. 멸망을 불러오는 운석, 하늘이 울어서 생긴 호수!”
“멸망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지만 운치가 있달까.”
기분이 좋아서일까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데 말이야. 내가 탑을 오르면서 느낀 게 있거든?
투구를 벗고 심각한 표정으로 녀석들에게 물었다.
“자세히 말해 봐. 운석을 막지 못하면 어떻게 됐지?”
“그야 뭐, 호수가 통째로 날아가며 환경이 바뀌었다.”
“급격한 변화에 태풍이 불고, 흙이 떠올라 세상을 뒤덮었지.”
“아, 진흙 비. 점성도 강해서 진흙에 빠져 죽은 생물이 많았다. 우리 중에도 있었고.”
그러니까 너희가 하는 말은…….
“원래는 여기가 사라졌었단 말이지? 예언이니 뭐니 하는 벽화에는 여기가 그려져 있었고?”
“그렇다!”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겪어 봤는데 말이야. 이 빌어먹을 탑에서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는 건.
[두 번째 태양이 사라졌습니다.]
[하늘의 눈물 호수가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충격에 고대의 존재가 잠에서 깨어납니다!]
“하 씨, 그래. 이럴 줄 알았다.”
-쿠구구구구구구
난 천천히 호수 쪽으로 눈을 돌렸다.
[예언된 멸망의 재앙이 눈을 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