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4화 부족원들이 모이다
이미 탑에 귀속되어 멸망을 수차례 겪은 거인들이 어떤 방법을 찾았을까.
축적된 경험만큼 중요한 정보가 없다. 특히나 운석과 같이 직접적으로 관측 가능한 재앙의 경우는 더 그렇고.
떨어지는 날짜, 시간, 날씨, 위치, 가용할 수 있는 수단 등등.
뇌 용량은 그대로고 몸만 커진 게 아니라면 거인들 역시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대비를 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맞나.”
“그에에.”
공터에 있는 장비들을 보고 있자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운석이 떨어지기 전에 부순다고 했던가.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너희 멍청이지?”
“하하하! 농담이 과하군!”
“아니, 진심이야.”
어떻게든 위로 날아가 보겠다고 준비한 게 발리스타랑 대포, 거대 새총? 그런 것들이라 할 말이 없다.
저건 또 뭐야.
커다란 포탄 끝에 두꺼운 줄이 엮여 있다.
“설마 저거 빙빙 돌려서 날려 버리려는 건 아니지?”
“맞다! 원심력을 이용한 과학적인 방법이야.”
“…상식적으로 운석이 있는 곳까지 던질 수 있을 거 같아?”
“그건 해 봐야 아는 거지!”
탁탁. 손을 털어 낸 그레고리가 어깨에 힘을 주며 앞으로 나아간다.
“내가 시범을 보여 주마. 어이, 쏘아 올려.”
“준비하지.”
그레고리의 손짓에 다른 거인들이 대포를 하늘을 향해 조준했다.
퉷. 손에 침을 뱉은 그레고리가 포탄에 달린 줄을 잡고 몸을 돌리기 시작한다.
자이언트 스윙.
말 그대로의 의미다. 진짜 거인이 포탄을 돌리고 있었으니까.
이어서.
- 콰아아아앙!
대포가 불을 뿜으며 거대한 쇳덩이를 하늘을 향해 쏘았고.
“흐읍!”
타이밍에 맞춰 그레고리가 줄을 놓았으니.
- 빠가가가각!
하늘 높이 날아가던 쇳덩이가 박살 나는 게 보였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한지 저 멀리 날아가는 포탄.
멀리 가네.
몸이 나쁘면 머리가 고생한다고 했던가. 거인들을 보니 그 말이 딱 맞다.
좋다. 어떻게 운이 좋아서. 거인들의 힘이 예상보다 무식해서 운석까지 포탄이 닿는다 치자.
그럼 뭐 할까.
“운석에 맞았다 쳐. 운 좋게 부서지기도 했어. 그다음은?”
아무리 힘이 좋다 한들 성층권이니 뭐니 하는 걸 뚫고 우주까지 포탄이 날아가지는 않을 거다.
다르게 말하면 이미 행성에 진입해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 격추하겠다는 거지.
한마디로.
“수십, 수백 개. 어쩌면 그 이상의 작은 운석들이 덮쳐 온다는 거야. 알아?”
“안다!”
“그래, 모를 수도… 어?”
그레고리를 비롯한 거인들이 콧김을 뿜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작은 운석쯤이야 떨어져도 괜찮지.”
“그럼, 그 정도야 떨어져 봤자 큰 피해는 못 줘.”
“끽해야 작은 동물들이나 죽을걸?”
“그 정도는 다들 맞아도 괜찮잖아?”
아하.
생각해 보니 이놈들도 그렇고 거인계 몬스터도 그렇고 한 덩치 하지?
대형종이 동네 강아지처럼 돌아다니는 곳인데. 운석이 뭐야. 얘네 입장에서는 우박이지.
그랬구나. 거인계가 이 꼴이라서 망했구나. 아니, 운석 맞고도 바로 안 멸망하고 버틴 거구나.
모르겠다.
한마디 하고 싶은데 계속 듣다 보니 설득될 거 같다.
탑에서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게 한두 번은 아니지만 왤까, 보고 있자니 스트레스가 쌓이는 건.
“후우, 아예 날아가서 부순다고 하지?”
“안 그래도 그것도 준비하고 있다.”
짝짝.
그레고리가 박수를 치자 거인들이 바닥에 깔아 뒀던 천을 치운다.
안에 보이는 커다란 구덩이.
구덩이가 맞나? 안이 철로 되어 있는데.
“일회용 거인 발사기다.”
“이쪽으로는 기술이 없어서 한 번 쏘면 망가지지.”
“나름 그래도 최신식이라고.”
그러면서 사용 방법을 알려 주는데.
“안전장치 착용 완료!”
충격을 방지하기 위함인가 거인 한 명이 거대 대포에 화약을 깔고 그 위에 두꺼운 철판 방석을 깔더니 그대로 앉는다.
이어 다른 거인들이 불을 붙이더니.
“하나! 둘! 셋! 발사!”
“크오오오오!”
- 쿠구구구구과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거인이 하늘로 치솟았다.
인간 포탄이구나.
저만한 덩치가 날아가는 게 신기하기는 하다만 정말 쓸데없어 보인다.
- 파삭.
거기에 충격을 이기지 못한 대포가 망가지는 건 덤.
대충 수십 미터 정도 날아간 거인이 추락한다.
“아쉽게도 아직 화력이 부족하다.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지.”
“그니까 말이야. 그나마 가장 가벼운 녀석을 날렸는데도 저 정도니 원.”
“이럴 때면 작은 사람이 있었으면 싶다니까. 하하하!”
“어?”
엉덩이에 불이 붙은 동료가 바닥을 구르든 말든 평가를 내리던 거인들이 우뚝 멈춰 선다.
동시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녀석들.
“그, 실례지만 몸무게가 어떻게 되나?”
“그레고리, 듣자 하니 한바탕했다면서? 꽤 튼튼한 사람인 거 같긴 한데.”
“분명 아까 적극적으로 멸망을 막는 데 도움을 준다고 했었지?”
아이, 설마.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오지 마. 경고했다. 저리 꺼져.”
급한 대로 혼돈검을 꺼내 내밀었지만 이미 눈이 뒤집힌 거인들을 말릴 수는 없었다.
“한 번만, 한 번만 들어 보자!”
“잠깐이면 돼!”
기대감을 품은 거인족들이 달려들었다.
* * *
“흠흠, 작은 희생이 있었지만 성과가 있었군.”
퉁퉁 부은 얼굴을 문지르던 그레고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주변 어디 한 곳씩 다친 거인들이 누워 있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후우, 훅. 썩을 거인 놈들.”
기어코 나를 잡아 무게를 확인했다.
곱게 당해 줄 생각은 없어 날뛰기는 했지만 80층대에 머무는 놈들답게 완전히 찍어 누르기는 힘들어서.
비겁한 놈들, 떼로 몰려들다니.
진짜 싸우려고 한 건 아니라 적당히 끝났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놈들을 날려 보내는 것보다는 내가 날아가는 편이 좋을 거 같기도 하고.
이후 몇 가지 실험을 했다.
인간 포탄은 대포가 부서져서 일단 패스.
대신 포환 대신 나한테 줄을 묶은 다음 날려 버리는 실험을 했는데.
“확실히 가벼워서 그런가 멀리 가더군.”
“음음, 조준만 잘하면 성공적으로 운석에 닿을 수 있겠어.”
“닿은 다음이 문제기는 하지만. 정면으로 부딪치면 몸이 남아나지 않을 거야.”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새로운 공략 방법을 찾은 거인들이 의견을 모았다.
방금 한 말이 맞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만큼 운석의 속도는 엄청날 터.
대기권에 들어온 후 저항을 받아 속도가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동시에 불타오르는 효과가 생겨날 거다.
작은 운석쯤은 신경도 안 쓰는 놈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만큼 거대할 거고 그런 걸 정면에서 맞는다면 아무리 나라 해도 몸이 박살 나지 않을까.
심지어 위로 날아가는 속도까지 더해지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난 이미 경험이 있다는 거다.
재앙, 옥토선생이 사용했던 달의 눈물.
‘완벽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경험은 경험이지.’
이동 중 파괴 불가 옵션을 가지고 있는 무지개다리.
운석조차 상품으로 받아들이는 차원 상점.
날아가는 동시에 무지개다리를 설치한다면 다리에 부딪친 운석이 박살 나지 않을까.
차원 상점은 일단 패스했다.
왜냐.
‘그때는 운이 좋았어.’
정식적인 절차를 거쳐 운석을 판매한 게 아니었다.
당시에 나는 차원 상인도 아니었고 차원 상점도 이용권을 사용해 열었다.
그 과정에서 차원 상인과의 거래를 하지도 않았고.
지금은 다르다. 나 역시 차원 상인인 만큼 정식적인 거래를 진행해야 한다.
차원 상점을 열고 함께 나타난 차원 상인을 통해 운석을 팔아야 한다는 것.
간단히 말하면.
‘못 팔 수도 있다는 거지. 팔아도 늦게 팔게 되거나.’
위험 부담이 있다는 것.
성공한다면 대박이지만 실패했을 경우에는 답이 없다.
가능하면 조절 가능한 플랜을 짜야 한다.
남은 시간은 8일. 조금씩 해가 지고 있으니 대략 7일 정도 남았다.
짧다.
제대로 준비된 거라고는 거인족 특유의 강인한 육체밖에 없다.
“다른 부족원들이 찾아왔다.”
“올 때가 되기는 했지.”
“다들 준비하고 있었을 테니까. 다들 오라고 해.”
다른 부족의 방문 소식에 어수선해지는 분위기.
그러고 보니 연락을 보냈다고 했었지.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머릿속으로 몇 가지 계획을 짰다.
부족한 시간. 있는 거라고는 인력뿐.
마중을 나가는 녀석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다들 모였군! 환영한다!”
“이번 등반가는 좀 특이하다지?”
“그동안 왔던 녀석들보다 쓸 만해. 강하더군.”
“녹색 수염 부족은 아직인가?”
“거기는 좀 멀잖아. 새벽에나 도착할 거야.”
각기 다른 부족원들이 모여 있자 공간이 가득 찬다.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느껴지는 열기와 존재감이 상당해서.
모여 있는 사람이 대략 100명 정도 되나?
덩치가 워낙 커서 체감상으로는 더 많아 보인다.
서로 안부를 묻는 사이 건물 위로 올라갔다. 밑에 있다가 괜히 다리에 치일 거 같아서.
놈들의 이목을 끌 생각이기도 하고.
“그니까 등반가가. 아! 저기 있군!”
“오오, 생김새부터 범상치 않은걸.”
“흠! 제법 느껴지는 기세가 강하군. 이제 막 올라온 사람 같지 않아.”
놈들 역시 나를 찾고 있었는지 내게 모인다.
호기심 어린 눈길. 이미 나와 한바탕한 붉은 머리 부족이야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지만 다른 부족은 의문이 있겠지.
정말 같이 움직일 정도의 힘이 있는가. 멸망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가.
만약 그들의 기준에 충족되지 못한다면 나를 잡아 가둔 후 멸망에 대비하자는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어디 넣어 놓아야 하는 거 아냐? 괜히 중간에 죽으면 곤란한데.”
“얕보는 건 아니지만 운석이 떨어지면 쓸려나갈 수도 있잖아.”
당장 작게 속닥이는 놈들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할 생각이다. 내 가치를 증명하고 계획에 동참하도록 근거를 제시할 것이다.
아아.
목소리 체크 하고.
“다들 반갑다. 이블아이라고 한다.”
큰 목소리로 말했다.
마력을 섞어 안 들릴 일은 없었다.
“다들 운석을 막고 싶을 거라고 믿는다. 나름대로 준비한 거 같기도 하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거인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한마디로 쓰레기더군.”
내 말에 놈들의 얼굴이 구겨진다.
가뜩이나 험악한 놈들이 대놓고 인상을 쓰니 심약한 사람이 보면 오줌을 지리지 않을까 싶다.
은근히 느껴지는 살기에 공기까지 일렁거렸지만 무시했다.
이 정도의 압박감은 우습다.
“지금까지 운석을 막은 적이 있나?”
“피해를 최소화한 적은 있다.”
“없다는 거군.”
내 말이 맞는지 뭐라 외치던 거인이 입을 다문다.
“즉, 지금까지 해 왔던 것으로는 운석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야. 너희의 기술력이 문제일 수도 있고 운이 없던 것일 수도 있지. 실력 부족일 수도 있고.”
“네가 뭘 알아!”
“겪어 본 적 없다고 쉽게 말하는데 이건 네 상상을 뛰어넘는 위협이다.”
“건방진 소리를 하는구나, 등반가. 우린 너보다 월등히 많은 경험이 있다.”
피식. 저마다 항변하는 놈들을 보며 웃었다.
급격히 식는 분위기.
그레고리가 어정쩡하게 다른 거인들을 말렸지만 난 손을 내저었다.
혹여나 덤빈다면 이 자리에서 무력도 증명할 생각이다.
물론 그 전에 다른 걸 증명할 거지만.
놈들과 나의 차이점. 내가 앞에 나설 수 있는 이유.
“겪어 본 적이 없다? 경험이 많다? 난 이미 운석을 막은 경험이 있다. 그레고리.”
“어? 어.”
내게 다가온 그레고리를 향해 계약서를 건넸다.
다른 건 없다.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지. 앞으로 10초간 내가 하는 말에 거짓말이 없다는 내용이야. 어길 경우 난 바로 무장 해제가 된다. 가두든 말든 알아서 해.”
꾸욱. 계약서에 지장을 찍었다.
“만약 내가 한 말에 거짓이 없다면, 그레고리, 박수 좀 쳐 줘. 간단한 계약이잖아?”
“어, 그치.”
[계약이 성사됩니다.]
그가 계약에 동의하는 것으로 계약서가 활성화되었다.
건물 옥상에서 거인들을 바라봤다.
“다시 말하지. 난 이미 운석을 막은 적이 있다.”
난 그렇게 외쳤고.
10초 후.
- 짝짝짝짝.
그레고리가 박수를 쳤다.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나를 도와. 그럼 운석을 막을 방법을 알려 줄 테니까. 두 번째 태양이 떨어지는 일주일 뒤. 우리는 멸망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을 내디딜 거다.”
내 말이 진실임이 증명된 시점.
눈치를 보던 거인들이 조금씩 손뼉을 치기 시작했고.
이내.
- 우아아아아!
함성과 함께 천둥처럼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