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화 81층
릴카와 함께 차원 상점을 열 준비를 했다.
여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으나 보안을 위한 작업을 했으니…….
“이 정도면 애들도 못 들어오겠지.”
“당연하징! 내가 했는데.”
[신기루(S) Lv.MAX]
[사일러스(S) Lv.MAX]
[금고화(SS) Lv.MAX]
[비밀엄수(S) Lv.MAX]
.
.
.
방 안에 사용한 스킬만 10개에 달했다.
대부분 MAX 레벨까지 찍은 스킬들. 이 정도면 잠깐은 내 방이 가장 안전한 곳이 아닐까.
밖에서 진입하는 것부터가 불가능할 거 같은데.
반대로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밖에서 알 도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혹시 모를 문제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카르카가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고, 혹여나 들어온 멤버들에게 카르카가 수작을 부릴 수도 있어서.
이런 좋은 물건이 있다며 접근할 가능성도 있었다.
특히 냥펀. 냥펀의 경우 상인 자격도 가지고 있어서 더 위험하다.
“그럼 해 볼깡.”
“좋아, 연다.”
[차원 상인 자격 확인]
[차원 상점이 열립니다.]
-우우우우우웅
공간이 비틀리며 차원 상점이 열렸다.
거래를 진행하는 중이기 때문일까. 비틀린 공간, 카르카와 연결된 것을 느꼈고 그것에 집중하자.
“이런, 이런. 혹시나 불운의 사고를 당하지는 않을까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러진 않은 모양이군요.”
차원 상인, 카르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 너무 노골적으로 말하네. 얼마나 펠라인의 망토를 주기 싫었던 거야. 왕관도 미리 받아 놓은 녀석이 말이야.
“잔말 말고 내놔. 이미 왕관은 기한 내에 줬고 여기 참관인도 있잖아.”
릴카를 들어 녀석에게 내밀었다.
“여전히 잘 지내나 보네요, 릴카.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차원 상인으로 일하는 게 어떻습니까? 그쪽이 적성에 맞을 거 같은데.”
“절대 안 갈 거거등? 에베베베.”
덕춘이한테 배웠나. 바로 메롱을 하더니 내 옆에 선다.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던 카르카가 어깨를 으쓱인다.
“뭐, 괜찮습니다. 시간은 많고 기회는 계속 있을 거니까요. 게다가…….”
턱에 손가락을 올린 채 눈알을 굴리던 녀석이 입꼬리를 올리며 나를 바라본다.
“지금은 애지중지하지만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물건이 망가지는 경우는 흔하니까요.”
“카르카.”
릴카가 인상을 찌푸리며 나서려 했지만 말렸다.
왜냐…….
“그에엑.”
매너 없이 나오는 녀석한테는 인성 교육자 덕춘이가 나서기 때문.
당당히 중지를 든다. 한 손으로는 부족한지 양손으로.
옳지 잘한다. 이래야 내 개구리지.
“탑 밖으로 나갈지도 모르고, 나가서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 아닌가요. 보니까 바깥 상황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던데.”
“네가 뭘 알아?”
“적어도 고객님보다는 잘 알죠. 궁금하시다면 바깥 정보를 팔 수도 있는데요.”
녀석의 눈이 펠라인 세트로 향한다.
아직도 포기 못 했다 이건가. 바깥세상에 대한 정보가 궁금하기는 하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막상 들어 보니 쓸데없는 정보일 수도 있고, 녀석에 대한 신뢰도 적다.
물론 차원 상인인 만큼 거짓말을 하지는 않겠지만.
“시끄럽고 물건이나 내놔.”
“아쉽네요. 정말 중요한 정보들이 있는데. 예로 들면 이런 거?”
녀석이 손가락을 튕기자 서류 봉투가 내 앞으로 날아온다.
“그거 열지 마. 열면 반품 불가라면서 강매할지도 몰랑.”
“불신이 그 정도라고?”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나 싶었으나.
“이번에는 안 그럽니다. 순순히 제가 가진 정보의 가치를 보여 주는 맛보기로 드린 거니까요. 차원 상인의 자격을 걸고 장담하죠.”
카르카의 행동을 보니 이미 몇 번 사용한 수법인 거 같다. 대단한 녀석.
공짜 정보라면 안 받을 이유가 없지.
봉투를 열자 사진과 서류가 나온다. 낯이 익은 얼굴이다. 그도 그럴 것이.
“데미 다이얼? 김한성?”
내가 탑에 들어오기 전, 나의 선망의 대상이나 다를 바 없던 헌터들이었으니까.
바깥 기준 가장 높이 올랐다고 전해지는 미국의 자존심 데미 다이얼. 그의 사망 소식이었다.
-데미 다이얼 사망 확실시. 애도에 잠기는 미국. 흔들리는 국제 안보.
-떠오르는 희망, 김한성! 세간의 이목이 쏠리는 가운데 다음 행보는?
-멸망이 다가온다! 신흥 종교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비판.
-근 1년간 새롭게 발견된 몬스터 급증. 게이트 발현율 현저히 올라.
-새로운 재앙? 도시 전설인가 탑의 존재인가.
뉴스 기사들이 정리되어 있다.
적어도 밖에서는 정점이라 불리던 데미 다이얼이 사망했다.
반사 이익으로 한국의 S급 헌터 김한성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데미 다이얼을 죽인 몬스터는 아직 확인 중이라는 말만 나와 있었다. 현장 일대를 완전히 통제했다나.
그 외에도 자잘한 정보들이 보인다. 도시 전설 어쩌구 하는 건 보나 마나 재앙 중 하나일 거다.
‘생각보다 빨라.’
아니, 어쩌면 당연한 내용일지도 모른다.
이미 내가 탑에 들어오기 전에도 메스토카와 레비아탄 두 재앙은 밖으로 나온 상태였다.
이 정도 시간이 흘렀으면 다른 재앙도 충분히 나올 만하다는 것. 오히려 이 정도인 게 다행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하나 더.
‘바깥은 최소 1년 2개월이 지났어.’
뉴스 기사에 적힌 최근 날짜를 확인해 봤을 때 그렇다.
많아 봐야 8개월 정도 흘렀을 거라고 예상했다.
탑에 들어오고 정확히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1년 정도라고 생각했으니까.
1년 2개월이면 예상치에서 6개월이나 어긋난다.
릴카가 했던 말이 맞았다. 바깥세상과 탑의 시간이 점차 맞물리고 있다.
“어때요? 표정을 보니 꽤 관심이 생긴 거 같은데. 말했다시피 지금 본 건 맛보기에 불과합니다.”
이 정보들이 고작해야 맛보기라.
“우선 하던 거래 먼저 마무리하지.”
“그러죠. 차근차근 진행하는 것도 상인의 덕목이니까요.”
싱긋 웃은 녀석이 손가락을 튕긴다.
[거래가 완료됩니다.]
[펠라인의 초록색 망토를 획득합니다.]
가벼운 빛과 함께 망토가 손에 쥐어졌다.
[펠라인의 초록색 망토(S)]
-펄럭펄럭!
-‘초록초록’합니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멋지게 휘날릴 수 있죠!
펠라인 세트의 마지막 세트.
80층에 접어들어서야 완성된 세트 아이템.
-펄럭!
가볍게 펼치는 것만으로도 멋들어지게 휘날린 망토를 어깨에 둘렀고.
-파아아아아앗!
[펠라인 세트의 모든 파츠가 모였습니다!]
[펠라인 세트가 온전한 모습을 갖춥니다!]
[‘펠라인의 무지개 세트(SSS)’로 통합됩니다!]
일곱 개의 파츠에서 각기 다른 빛이 뿜어져 나왔다.
“으이이잇!”
강렬한 빛의 향연에 릴카마저 눈을 가릴 정도.
각기 다른 속성이 휘몰아치는 것이 느껴진다.
세트 아이템이 통합되며 등급이 올랐다고 했던가.
혼돈검과 날개들을 포함해 4번째 SSS급 아이템을 획득하는 순간이었고.
[펠라인의 무지개 세트를 눈치챈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적개심이 올라갑니다!]
경고 문구와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무지개 세트의 등장에 경계심을 가지는 이들이 있다?
어떤 놈들인지는 몰라도 상관없다.
“덤비면 다 잡으면 돼.”
그럴 자신이 있다.
80층, 초인의 영역에 들어오며 스펙이 급격하게 올라갔으니까.
장비는 거의 졸업한 수준. 남은 건 스킬의 레벨을 올리는 것뿐이다.
더불어.
[펠라인 세트 스킬이 추가됩니다.]
마지막 파츠를 획득하는 것으로 또 다른 스킬이 생성되었다.
[펠라인 세트 스킬 목록]
-아스트랄 레인보우(S)
-무지개 반사(S)
-무지개다리(S)
-홍예참(SS)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스킬이다.
파츠 5개를 모았을 때 2개. 6개를 모았을 때 2개가 생겨났다.
지금까지 과정을 생각했을 때 이번에도 2개 이상의 스킬이 생겨날 게 분명했으며, 7개의 색으로 이루어진 무지개의 특성을 생각했을 때 이번에는…….
[신규 스킬 3개가 추가됩니다.]
“그렇지!”
3개의 스킬이 생겨났다.
그래, 무려 7개의 세트 아이템을 맞췄는데 3개는 생겨야지! 믿고 있었다.
아이템이 통합되며 스펙도 올라갔다.
올스텟 증가와 자잘한 보조 효과, 완전 수복 등등. 옵션을 읽어 내려가는 것만 해도 시간이 걸릴 거 같다.
슬쩍 내가 가진 검을 바라봤다.
[이블아이의 혼돈검(SSS)]
-프램버그의 영웅, 이블아이를 위해 베힐탄이 심혈을 기우려 만든 검.
-혼돈의 파편, 델버튼을 감싸고 있던 역병의 알로 만들어졌습니다.
-단단합니다.
-혼돈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보니까 왜 쓰레기 같지?
됐다. 비교해서 뭐 하나. 잘 쓰고 있으면 됐지.
흠흠.
-짝!
잡생각을 하는 사이 카르카가 손뼉을 쳐 분위기를 환기한다.
“펠라인 세트를 얻은 걸 축하해요.”
“다 내가 잘난 덕이지.”
“하하하. 겸손함이 없기도 해라. 아무튼. 그럼 거래를 계속해 볼까요?”
녀석이 또 다른 서류 봉투와 수정 구슬을 꺼낸다.
“바깥에 대한 정보가 필요할 거 같은데.”
“아니, 관심 없어. 꺼져.”
“네?”
[차원 상점을 닫습니다.]
“자, 잠깐! 잠깐만요!”
뒤늦게 카르카가 소리쳤지만 손을 흔드는 것으로 끝냈다.
거래는 개뿔. 대충 정보는 얻었으니 볼일 없다.
정 필요하면 다른 차원 상인 알아보지 뭐, 지구 쪽에 연관이 있는 상인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걸로 볼일은 끝났고.”
“위로 올라갈 생각이징?”
“어. 가능한 다른 애들이랑 일정을 맞추고 싶기는 한데 상황이 좋지 않으니까.”
상위 헌터들은 준비 기간이 필요했고, 멤버들도 나름대로 위로 올라가기 전 만반의 태세를 갖추려 하고 있었다.
상승한 등급에 적응할 시간도 있어야 하고, 스킬 레벨도 올려야 하니까.
나 역시 시간에 여유가 있었으면 릴카랑 같이 장비도 만들고 포션 개발도 하려 했지만, 그건 잠시 미루어둬야 할 거 같다.
“애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메시지 남기면 되겠지.”
펠라인 세트를 해제하고 밖으로 나섰다.
가뜩이나 눈에 띄는데 모든 파츠가 모이니 가만히 있어도 어그로가 끌린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나도 그렇게 느끼는데 다른 사람은 오죽할까.
“80층은 NPC도 조심해야 해. 알았징?”
“조언 고맙다.”
슥슥 릴카의 머리를 쓰다듬고 밖으로 나왔다.
포탈의 위치는 이미 알아뒀다.
[쁘띠공듀]: 여러분~ 저는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위로 향합니닷!
짤막한 메시지를 남긴 난 위로 향했다.
* * *
[80층대는 챕터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81-89층의 테마는 멸망에서 벗어나려는 세계입니다.]
[80층대의 NPC에게는 새로운 조건이 적용됩니다.]
[81층에 진입합니다!]
-우우우우우웅
빛무리가 사라지며 새로운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산맥이 뻗어있는 공간.
먼 과거 고생대에는 거대 곤충들이 돌아다녔다고 했던가.
“워, 이게 다 뭐야.”
내가 보고 있는 이곳이 그런 느낌이다.
하나같이 크다. 나무나 풀뿐만이 아니라 다른 잡다한 곤충과 동물들까지도.
저기서 날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쥐의 체고가 1미터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마치 거인들의 세계에 떨어진 것만 같다.
[81-83층, 거인의 시대]
맞네. 진짜 배경이 거인이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온 난 펠라인 스킬을 사용했다.
이번에 생긴 3개의 스킬, 그중 첫 번째.
[프리즘 레인보우(SS)]
-빛의 굴절!
-완전 은신이 가능합니다.
스스스스스.
내 몸이 투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