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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437화 (436/740)

437화 계약 성공

카르스타의 제단은 클리어됐다. 오픈 던전이 된 만큼 다른 사람들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처음부터 딱히 진입과 퇴장에 제약이 있던 던전은 아니었지만 말이지.

물론 보물은 더 이상 없겠지만 상관없다.

적어도 79층에 갇힌 상위 헌터들에게는 이만한 보물이 없었으니까.

바로 제단 그 자체. 신성력을 마력으로 전환해 주는 신기한 장치.

혹시나 골렘과의 전투 중에 망가지지는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문제는 없었다.

-우우우웅

작동도 정상적으로 되는 거 같고.

시커먼 마기가 호스를 타고 흘러내린다.

이제 이걸 어떻게 몸에 흡수하냐가 문제인데.

“그냥 무식하게 몸에 꽂아야 하나?”

주삿바늘 같은 거에 연결해서 몸에 넣는다던가.

이건 뭐 생체 실험 하는 것도 아니고 감이 안 잡힌다.

나도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처음이라.

해 보자. 머리로 생각만 해서 답이 나오나. 모르면 일단 생각나는 것부터 시도해 보는 거지.

[주삿바늘을 구매합니다.]

상점창에서 구매한 주삿바늘을 호스 하나에 연결한 뒤 팔에 꽂았다.

이게 하도 몸이 엉망진창이 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간단한 치료나 응급 처치 하는 게 익숙해졌다.

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말이 맞겠지.

혈관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고.

-푹

망설임 없이 찔러 넣었다.

살짝 뻐근한 느낌.

“오오, 들어온다.”

마기가 내부로 침투하는 것이 느껴졌다.

새롭게 들어온 마기를, 경계하듯 몸속에 누적되어 있던 마기들이 툭툭 건드린다.

일단은 같은 마기니 금방 동화될 거라 생각했으나.

“끄아아아아악!”

바로 부작용이 나타났다.

혈관이 부풀더니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 뇌리를 찔렀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의 마기가 들어오며 생긴 반발력.

팔이 괴상하게 부풀어 오른다.

-푸화아아악!

급하게 바늘을 뽑자 검게 물든 피가 쏟아진다.

김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드는 팔.

영양분이 쏙 빠져나갔는지 묘하게 얇아진 느낌이다.

“와 씨, 죽을 뻔했네.”

진짜 계속 버텼다가는 팔이 터지지 않았을까.

일단 이 방법은 아닌 거 같고.

오케이. 입으로 직접 먹어 보자. 생각해 보면 영약 같은 것도 입으로 먹지 않던가.

소화하는 시간도 있으니 몸에 직접 꽂는 것보다는 흡수가 늦을 거고, 부작용도 나름 적을 거 같다.

마기라는 것이 음식처럼 소화 과정을 거치는지는 모르겠지만.

“후우. 후.”

이게 뭐라고 긴장되는지 모르겠다만 이미 한 번 당해서일까 긴장감이 몰려온다.

떨지 말자. 살다 보면 시커먼 뭔가도 먹어 보고 그러는 거지.

그래. 이건 자장면이다. 연기로 된 자장면이다.

-쭈우우욱

한때 면치기 좀 했던 숙련자로서 호스를 물고 마기를 쭉 빨아들였다.

무리할 필요는 없으니 적당히 빨고 상태를 지켜볼 생각.

꿀꺽 마기를 삼키고 반응이 오기를 기다렸다.

1분.

10분.

30분.

“이거였나? 멀쩡한 느낌이우우웁! 끄어아아악!”

복통과 구토감에 바닥을 굴렀다.

물고기 수백 마리가 뱃속에서 몸을 갉아 먹는 듯한 감각!

헛구역질이 나오는 건 기본이요, 순간적으로 혈압이 올라 시야가 흐릿하다.

목구멍이 부었는지 숨쉬기조차 쉽지 않다.

“게에에.”

덕춘이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보지만 말고 도와줘, 이 녀석아.

띠꺼운 표정을 짓던 녀석이 한숨을 내쉬고는 목을 핥아 준다.

부어오른 기도가 가라앉으며 숨이 트인다.

“후욱! 훅!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몸에 힘이 빠져 바닥에 엎어졌다.

오케이. 이걸로 확실해졌다. 주사나 먹는 것처럼 직접적으로 몸에 넣는 건 문제가 있다.

애초에 제단을 통해 만들어진 마기는 일반적인 마기가 아니다. 신성력을 재료로 변환시킨 마기지.

사람이나 악마가 아니라 골렘을 작동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에너지기도 하고.

겪어 보니 차이점을 알 수 있었다.

“자연적인 마기보다 더 독하고 강해. 난폭하기도 하고.”

적당히 중화시킬 필요가 있다. 술도 만들 때 공업용 알코올을 때려 붓지는 않지 않던가.

지금이 딱 그 모양이다.

-촤르르륵

히든 가든에서 얻어 온 레시피와 약초, 그동안 내가 만들어 낸 물약들을 바닥에 깔았다.

내 머릿속에 있는 모든 지식과 조합법으로 방법을 찾아내자.

자랑은 아니지만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NPC들과 교류하며 포션 제작만큼은 여타 등반가와는 궤를 달리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재료 오케이. 마기 오케이. 포션 오케이. 생명줄 덕춘이 오케이.”

-덩그렁

솥을 꺼내 올린 난 망설임 없이 물약을 쏟아부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머리를 스쳐 지나간 제조법만 48개.

“흐흐흐흐. 딱 기다려라.”

마기를 흡수할 수 있는 포션을 만들기 시작했다.

[독 내성(S) Lv.10]

쓸데없는 알람이 떠올랐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 * *

-띠링

커뮤니티 알람이 울렸다.

바닥에 누운 채 메시지를 확인했다.

[정수리 핥짝]: 야야, 다 왔어.

[냥냥펀치]: 그동안 뭐 하나 했더니 기특한 짓을 하고 있었냥!

[정수리 핥짝]: 구라 친 거면 알지? ^^

“구라는 무슨.”

피식 웃으며 커뮤니티를 껐다.

몸을 일으키자 계단 쪽에서 소음이 들려온다.

발소리가 겹치는 것이 상위 헌터들도 제대로 온 모양.

“야! 나왔다!”

“내가 왔노라! 두 팔 벌려 환영해라!”

당당히 안으로 들어오는 핥짝이와 냥펀.

나 없는 동안 잘 먹고 잘 쉬었는지 얼굴에서 윤기가 돈다.

누구는 골방에 틀어박혀 셀프 생체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와, 이게 다 뭐야?”

“여, 연금술사?”

“그것보다는 사악한 마법사의 연구실 느낌인데.”

“순간 보스몹인 줄 알았어.”

“언데드? 아, 사람이구나.”

두 녀석을 따라 안으로 들어온 상위 헌터들이 순간 멈칫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있는 던전 내부 상태가 영 말이 아니라서.

여기저기 유독 가스를 내뿜는 포션이 굴러다니고, 피 섞인 뭔가가 바닥에 흥건하다.

제단에는 불길한 마기가 피어오르고, 솥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푸르스름한 연기를 내뿜으며 끓고 있다.

게다가 다크서클이 가득한 내가 흐흐흐 웃고 있었으니…….

“공블아이, 드디어 정신 줄을 놓은 거냐구.”

“정신 줄 놓은 건 평소에도 그런데?”

“아하!”

“그래도 얼굴이 좀 상하기는 했네. 홀쭉이가 됐어.”

장난감 다루듯 내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던 핥짝이가 측은하게 바라본다.

“이거라도 먹을랭?”

냥펀도 주섬주섬 빵을 꺼내는 것이 상태가 안 좋아 보이기는 하나 보다.

“땡큐, 야야.”

“궥!”

받기도 전에 냉큼 빵을 받아먹는 덕춘이. 누가 보면 굶긴 줄 알겠다.

내 생각을 읽은 녀석이 찌릿 노려본다. 눈빛으로 욕을 할 수 있다던데 진짜네.

흠흠. 내가 좀 부려 먹기는 했지.

어쩔 수 없다. 실험 대상자가 없으니 만든 포션을 전부 내가 먹었는데 실패할 때마다 덕춘이가 치료해 줘서.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완성했다.

천천히 국자로 완성된 포션을 떠 컵에 담았다.

“후후. 우후후후. 80층으로 올라갈 위대한 방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 다들 일로 오라고. 아주 짜릿할 거야.”

“오. 완전 악당 같아.”

“…뭔지는 몰라도 정말 먹기 싫은걸?”

냥펀이 감탄하고 핥짝이가 질색한다.

에헤이, 너무 그러지 마라. 어차피 너희는 먹지도 않는데.

“이야기는 들었어. 진짜 이게 마기를 올려 주는 그거야?”

“맞아.”

“처음 만났을 때도 범상치 않기는 했는데 별걸 다 하네. 와아.”

루키 그룹의 김조균과 상위 헌터 김선혜가 감탄한다.

둘 다 체력을 많이 회복했는지 처음 봤을 때 비해 상태가 좋아 보인다.

다른 상위 헌터들도 마찬가지. 핥짝이와 냥펀이 잘 먹였는지 앙상했던 몸은 어디 가고 건강한 모습을 되찾았다.

확실히 상위 헌터쯤 되면 회복을 금방 한다. 며칠 됐다고 저렇게까지 몸이 좋아지나.

숭배자랑 싸울 때만 해도 서 있는 게 고작인 양반들이었는데 지금은 어디 보디빌더 대회에 나가도 될 거 같다.

“일단 한잔해. 마기가 늘어나는 게 느껴질 테니까. 흐흐흐흐.”

“어, 그래. 고맙다. 그런데 원래 웃음소리가 그래?”

“흐흐. 으흐흐흐. 이 맛을 나만 느낄 수 없지. 흐흐흐흐.”

첫 번째 타자는 김조균. 녀석은 마기를 사용한다.

그가 물끄러미 컵을 내려다본다.

점성 있는 시커먼 액체 위로 푸르스름한 연기와 기포가 올라온다.

“…먹는 건 맞겠지?”

“그럼 그럼. 비틀린 황천의 마기 활력 포션이야.”

“아니, 이름부터가 글러 먹었잖아. 장난치지 말고.”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포션 이름이 그렇다.

세상에 없던 포션! 나의 노력과 연구의 성과!

[비틀린 황천의 마기 활력 포션]

-끔찍합니다!

-한 모금이면 꿈틀거리는 마기에 몸부림치지 않을까요?

-목 넘김부터 맛까지 굉장합니다! 우욱!

친절히 설명해 주자. 내가 이걸 만들기 위해 겪었던 여정을.

“세인포티아 이파리에 하급 정화의 물약, 맛없어 포션에 진하게 우려 낸 황천 두꺼비의 발 지느러미 진액과 기타 등등을 섞었지. 몸에 좋은 거라고.”

“마, 맛없어 포션?”

“히이익! 핥짝아, 사탄이야. 사탄! 얼른 해치워 줘!”

특정 단어에 뒤로 물러나는 핥짝이와 냥펀.

눈에 경계심이 가득하다.

괜히 억울하네. 내가 일부러 먹인 적도 없는데 예전에 한 번 먹었다고 이러기냐.

아무튼.

“자자. 마기가 필요한 사람은 이쪽으로. 신성력이 필요한 사람은 여기 찐하게 농축한 생명수가 있으니 한잔하자고.”

짝짝. 손뼉을 치며 가져가야 할 포션을 가리키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80층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진짜다. 난 그들의 바람을 이루어 줄 능력이 있고.

마기 포션은 아직 병에 담은 게 없어서 컵에다가 떠 줬다.

“신성력으로 가서 다행이야.”

“응응. 맞앙.”

안도하는 멤버들을 무시한 채 컵을 들어 올렸다.

나도 먹어야 한다. 실험을 하며 마기가 제법 오르기는 했지만 아직 살짝 부족해서.

벌써 식은땀 나네. 먹어도 먹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맛이다.

“건배사 한번 올리겠습니다, 여러분. 80층을 위하여!”

“위하여!”

힘차게 답한 이들이 포션을 들이켰다.

점차 표정이 딱딱해지는 이들. 정확히 말하면 마기 포션을 먹은 사람들만 그런 거였지만.

“우우우욱!”

“아, 암살을! 믿고 있었는데!”

“토, 토할 거 같아.”

바닥에 엎어진 이들이 꿈틀거렸지만 어림도 없다.

가장 근처에 있던 김조균의 멱살을 잡았다.

“약한 소리 하지 마! 80층으로 올라가겠다는 각오가 고작 이 정도였나! 마셔! 마셔! 아직 포탈이 열리지 않았다!”

“우웁! 웁!”

강제로 입을 벌리고 포션을 들이부었다.

스스로 마실 수 없다? 그럼 내가 친히 먹여 줄 것이

다.

-우우우우웅

[조건 충족]

[포탈이 생성됩니다.]

목을 부여잡고 발버둥 치는 김조균의 옆에 포탈이 생성됐다.

그대로 발로 밀어 포탈에 집어넣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고.

“다들 봤지? 효과는 확실해. 다들 마셔!”

“그, 그래! 까짓것 먹으면 되잖아!”

“이블아이!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

“살아 있으면 반드시 은혜를 갚도록 하지!”

“이따위 포션 얼마든지 마셔 주겠어! 으아아!”

결의에 찬 상위 헌터들이 포션을 삼키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우우우웅

계속해서 생성되는 포탈.

신성력을 채운 이들이 가장 먼저 사라졌고 마기를 채우는 녀석들은 거품을 물고 펄떡였다.

내가 이래서 바로 안 넘어가고 대기하고 있었지. 누군가는 이놈들을 케어해 줘야 하니까.

“눈 딱 감고 먹자. 금방 끝나.”

“으그그그극. 사, 살려…….”

“어허. 씁!”

친절하게 하나하나 붙잡고 포션을 먹인 결과 모든 상위 헌터들을 포탈 너머로 밀어 넣을 수 있었다.

북적였던 던전에 남은 건 나 혼자.

기지개를 켜고 솥에 남아 있는 포션을 병에 담았다.

제단을 가지고 갈 수는 없으니 이후에 마기 포션을 만드는 건 쉽지 않을 테니까.

그런 내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계약 조건 달성!]

[김선혜와의 계약이 활성화됩니다.]

“맞네. 상위 헌터 다 80층에 데려가면 소원권 받기로 했었지.”

아찔한 포션맛에 잊고 있었다.

좋아. 그럼 계약도 얻었겠다 나도 올라가 보실까.

쭈욱 포션을 들이켰다.

[조건이 충족됩니다.]

[포탈이 생성됩니다.]

당당히 포탈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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