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6화 오른쪽 날개
육중한 골렘의 주먹이 내리꽂혔다.
피하기에는 애매한 상황. 빠르게 검을 놓고 뒤로 빠졌으나 늦었다.
-콰아아아앙!
“크읍!”
[독자무강獨者武强(S) Lv.10]
[강철의 의지(S) Lv.10]
[강체强體(S) Lv.10]
[물리 공격 내성(S) Lv.10]
방어 스킬이 활성화되며 대미지를 경감했으나 원체 무거운 놈이라 그런지 압박감이 대단하다.
내가 사용한 마기를 흡수해서 그런지 파워도 더 세진 거 같고.
조금만 긴장을 놓치면 다리든 허리든 꺾일 거 같다.
“으아아아압!”
순간적으로 몸에 힘을 넣어 놈의 주먹을 튕겨 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 역시 기본 스텟은 모두 최대치에 도달한 상태.
아무리 특수하게 제작된 골렘이라도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았다.
-쿠웅
뒤로 골렘이 물러난 틈을 타 안으로 파고들었다.
일단 검부터 챙기자. 덩치가 큰 놈이라 그런가, 바로 반대 발을 들어 날 깔고 뭉개려 한다.
“두 번은 안 당하지.”
-콰아아앙!
폭발을 일으켜 속도를 높이며 옆으로 빙 돌았다.
무식하게 놈이랑 파워 게임을 할 생각은 없다. 힘에서 밀리지는 않겠지만 난 사람이고 이 녀석은 골렘이다.
즉, 녀셕은 연료가 다 되기 전까지는 똑같은 힘을 유지한다는 것. 반면 난 조금씩이라도 체력이 깎일 거고.
[달라붙기(S) Lv.8]
-터업!
혼돈검 손잡이를 잡았다.
달라붙기를 사용한 만큼 손에 착 감긴다. 이대로 비틀면…….
-까드드드득!
거칠게 검을 비틀어 뽑았다.
갑옷이 꺾이며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것도 잠깐. 마기가 흘러나오더니 갑옷이 원상 복구됐다.
내구성이 대단히 좋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복구되면 좀 곤란하다.
다행히 무한정 재생되는 건 아닌 거 같지만. 충전된 마기를 이용하는 거 같다.
-파앗
검을 회수하고 뒤로 빠졌다.
녀석도 내가 위험한 놈이라 판단했는지 바로 쫓지 않고 전열을 가다듬는다.
짧게 숨을 내뱉었다.
“진짜 작정하고 악마를 막으려고 만들었구만.”
징그럽다. 징그러워.
악마들은 기본적으로 마기를 사용하는 종족. 이건 뭐 천적이나 다를 바 없다.
생각해 보면 천계에서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빛의 성소에서 만났던 천사 동상. 놈들도 일정 수준 이하의 신성력으로는 파괴할 수 없었지.
천사도 그렇고 악마도 그렇고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같은 종족을 엿 먹일 수 있는지 알고 있다.
나야 상관없지만.
애초에 악마도 아니거니와, 최근 만난 적들이 신성력과 마기를 사용해서 이것들을 주로 사용했지 원래는 마력을 주력으로 썼다.
간단히 말해…….
“결국에는 나한테는 똑같은 골렘일 뿐이야.”
뭐, 인정하긴 하다.
좀 크고 무겁고 위험한 골렘이라는 걸.
놈의 주변을 돌며 빈틈을 찾았다. 녀석 역시 검을 들어 올린 채 날 주시한다.
저, 저, 치사한 거 봐라. 덩치도 산만 한 놈이 양심적으로 먼저 들어오지는 못할망정 카운터나 노리고 있고.
됐다, 나도 바로 들어갈 생각은 없으니까.
찾고 있는 게 있다.
‘일단은 골렘이니 핵이 있기는 할 거야.’
마기를 동력원으로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에너지.
놈을 움직이는 소프트웨어가 담긴 핵이 존재할 거다.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권능을 사용했다. 탐색 능력으로는 이만한 게 없으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지어 놈이 들고 있는 검까지 자세히 살핀 결과 깨달을 수 있었다.
“…없네? 이건 아니지!”
“그에에.”
정녕 이 시대의 양심은 다 뒈졌단 말인가.
10미터가 넘어가는 골렘이 핵도 없이 움직이는 게 말이 돼?
놈에게 쌓인 마기를 모두 소모할 때까지 갑옷을 부숴야 하나?
어느 세월에 그러고 있냐. 아니면 신성력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때려 부술까?
여러모로 골 아프게 하네. 그냥 천천히 공략하는 게 답인가.
안전하게 가는 것도 방법이다. 굳이 조급해했다가 일이 꼬이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조각상 하나 만든다 생각하고 아래부터 깎아 버리…….
“잠깐.”
앞으로 달려가려다 멈춰 섰다.
눈을 깜빡였다. 내가 잘못 봤나?
정신을 차리고 다시 확인했다. 맞다, 다시 봐도 맞다.
놈과 신경전을 벌이느라 빙글빙글 돌지 않았다면 알아보지 못했을 그것.
[악마의 원격 핵]
-악마의 얼굴을 형상화한 핵입니다.
-골렘이 안전했으면 좋겠나요?
-핵이 부서질까 걱정되나요?
-그럼 골렘 밖에 빼 두면 되죠!
-대신 골렘 안에는 또 다른 에너지원이 있어야 합니다. 아주 많이요.
계단과 제단을 가르는 문.
문의 손잡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핵이었다.
제단 안으로 들어오고 눈앞에 제단과 골렘이 있으니 문 쪽은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저게 핵이었다니.
“와, 진짜 약았다.”
이제 감탄밖에 안 나온다.
심리전의 달인 그런 건가?
던전에 있던 문 전부가 악마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것과 천마대전이 그려진 벽화로 위화감을 줄인 것. 이 모든 것이 빌드업이었단 말인가.
악마 모습을 한 핵을 숨기기 위한?
굳이 제단을 이용해 골렘에게 마기를 불어넣은 구조도 저 핵을 사용하기 위해서고?
원격 핵을 사용하려면 골렘 내부에 에너지원이 있어야 하니까.
-짝짝
검을 집어넣고 박수를 쳤다.
카르스타, 이 대단한 놈.
“만약에 NPC로 남아 있다면 적으로는 만나기 싫다.”
진짜로. 싸우면 스트레스받을 거 같아.
온갖 더럽고 치사한 수법은 다 쓰지 않을까.
마계 선정, 가장 얍삽하고 짜증 나는 악마 카르스타에게 경의를 표하며.
[오로라 빔(S) Lv.10]
-빠각!
문고리를 향해 오로라 빔을 날렸다.
골렘이 뒤늦게 반응하려 했지만 한발 늦었다.
이미 원격 핵은 부서져 떨어졌으니까.
“자격, 을 시험, 하리, 라.”
-푸화아아아악
갑옷 사이로 마기가 영혼처럼 빠져나오더니 힘을 잃은 골렘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자격을 시험하기는 뭘 시험해. 곱게 보물이나 내놔라.
탁탁, 손을 털고 갑옷 골렘을 향해 걸어갔다.
“이것도 챙겨가야지.”
갑옷형 골렘이 희귀하기도 하고 마기를 통해 자체 수복되는 기능까지 있다.
일단 챙겨가면 어딘가에는 수요가 있지 않을까.
녹여서 재료로 사용해도 괜찮고, 상점창이나 차원 상점에 처분해도 꽤 괜찮을 거 같은데.
아니면 릴카한테 넘겨서 쓸 만한 NPC한테 팔아도 되고.
13미터 크기의 풀 플레이트 아머. 사람은 못 쓰겠지만 탑에는 거인족이 있다.
54층에서 만난 벨자트도 거인족 아니던가.
저주에 걸려 해골인 상태기는 했지만.
“어? 그러고 보니 걔한테 받은 물건이 있었는데.”
계속 일이 있다 보니 잊고 있었는데 녀석에게 맛없어 포션을 먹이고 아니, 인정을 받고 받은 물건이 있다.
[거인의 무덤 열쇠]
-고대 거인족 전사, 벨자트는 위대한 영웅의 무덤을 지키는 수호자였습니다.
-비록 타락했지만 열쇠만큼은 지니고 있었죠.
-위대한 거인족의 영웅, 헬그레이트의 무덤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거인족, 헬그레이트의 무덤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
어떻게 봐도 유적이다. 79층까지 올라왔는데도 발견하지 못했으니 80층 너머에 있다고 보는 게 맞겠지.
“하기야 아직까지는 멀쩡한 거인족을 본 적도 없잖아.”
나중에 거인족이 나오는 필드에 가면 있지 않을까.
아직 탑에는 내가 보지 못한 종족들이 있다.
79층. 꽤 높이 올라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100층까지 갈 길은 멀었고, 그 사이에 어떤 종족과 필드가 있을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미리 생각한다고 해결할 수도 없는 거 지금은 일단 넘어가자.
골렘의 갑옷을 인벤토리에 넣고 안으로 들어갔다.
놈이 앉아 있던 왕좌. 그곳에서 마기가 느껴진다.
혹시 또 다른 함정이 있는 건 아닐까 긴장했지만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시험에 통과했습니다.]
[카르스타의 제단 클리어]
[카르스타의 제단은 다회차 클리어가 불가합니다.]
[오픈 던전으로 전환됩니다.]
골렘을 잡은 것으로 던전을 클리어했으니까.
한 번 보물을 찾으면 끝인지 다회차 플레이는 안 된다고 한다.
나 이후로 들어온 사람들은 보물을 얻지 못한다는 뜻.
당연하긴 하다. 카르스타가 훔친 물건이 무한정 복제될 리는 없으니까.
-쿠구구구궁
왕자의 뒤편에 있던 벽이 돌아가더니 숨겨져 있던 물건이 드러났다.
-스아아아아!
지독하게 짙은 마기를 흩뿌리는 시커먼 날개 한쪽.
따로 떨어진 날개임에도 당장이라도 움직일 거 같은 역동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거…….
“설마, 아니지? 그치?”
어째 벽화에서 봤던 그거랑 똑같이 생겼다?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며진 벽에 걸린 날개.
그 아래 편지가 하나 놓여 있었으니.
-존경하고 흠모하는 두 세계의 지배자, 킬더레스 님!
-오오! 진정한 악마이자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업적을 이루어낸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존재! 그야말로 마왕.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 오는…….
-…그리하여 하고 싶은 말은 저는 결코 다른 사특한 생각으로 킬더레스 님의 날개를 훔친 게 아닙니다. 보관한 겁니다. 먼지와 피를 닦아 냈을 뿐입니다.
-물론 약간, 아주 티끌만큼 가공을 하기는 하였으나 이 또한 상처가 아물어 날개를 봉합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장착 아이템으로 만든 것이옵고…….
-제가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옵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마왕님의 충실한 종, 카르스타 올림.
“구구절절하게도 써 놨네.”
“그에에.”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렇다. 녀석이 마계에 가지 못하고 연옥계에 숨겨 놓은 마지막 물건.
마계에 가져가면 100퍼센트 확률로 문제가 생길 그 물건.
[마왕의 오른쪽 날개(SSS)]
-위대한 악마! 제7 마계의 주인 킬더레스의 날개.
-제1 천계의 대천사장과의 대접전 끝에 승리했지만 날개가 뜯겨 나갔죠.
-생체형 귀속 아이템.
-왕의 자격이 있는 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킬더레스의 일부입니다. 날개의 선택을 받아야 합니다.
-마기 스텟 1,000점 이상 활성화 가능.
킬더레스의 날개였다.
기어코 자신이 모시는 왕의 물건 아니지, 신체 일부까지 훔쳐 버린 녀석.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다 나오네.
그래, 마음 졸일 바에는 내가 가져가는 게 좋은 거지. 그럼 그럼. 분명히 그럴 거다.
착용 조건이 좀 까다롭다. SSS등급 아이템이라 그런가.
일단 왕의 자격이야 가지고 있으니 그렇다 치는데.
“마기 스텟 1,000점 이상이라. 거기다가 선택?”
그냥 그러려니 한다. 스텟 1,000점 이상 시 장착 가능한 아이템은 하나 더 있으니까.
선택이라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조건을 가진 아이템을 본 적이 없어서.
날개에 손을 얹었다. 뭐가 됐든 챙겨 갈 거다. 혹여나 내가 못 쓰면 탈모맨한테 바가지 씌워서 팔아야지.
-꾸드드드득
“음?”
꾸드득? 이런 소리가 왜 나?
의아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킬더레스와의 호감도가 높습니다.]
[‘마왕의 오른쪽 날개(SSS)’가 당신을 선택합니다!]
[마기 스텟이 부족합니다!]
[‘마왕의 오른쪽 날개(SSS)’가 신체에 잠복합니다!]
-콰드드드드득!
“크하압!”
날개가 응축하더니 손을 타고 몸속에 흡수되었다.
거친 뭔가를 강제로 몸속에 집어넣는 감각.
나도 고통에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가시로 이루어진 팔뚝만 한 기생충이 몸속에 기어 다닌다면 이럴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몸부림치는 와중에도 날개는 내 몸속 곳곳을 누볐고, 기어이 오른쪽 어깻죽지에 멈춰섰으니.
[생체 아이템, ‘마왕의 오른쪽 날개(SSS)’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조건 만족 시 활성화 가능합니다.]
알람과 함께 아이템이 귀속되었다.
“아, 진 빠져.”
짧지만 강렬한 통증이 지나가고 난 바닥에 드러누웠다.
지금도 묘하게 이질적인 느낌이 나지만 아까보다는 덜하다.
자, 그럼 보물도 다 모았겠다.
“상위 헌터들 데리고 위로 올라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