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화 카르스타의 제단
마물의 머리에 꽂았던 검을 뽑아 들었다.
이게 마물이 맞기는 한가? 물컹하게 생긴 게 슬라임 같은데 세게 치면 딱딱해진다.
몬스터라면 나도 공부한 게 있어서 많이 아는 편인데 마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서.
대충 마기를 품고 있으니까 마물이라고 생각하지 뭐.
“진짜 나중에 마물이나 다른 차원의 몬스터도 게이트로 나오면 난리 나겠네.”
“그에에.”
몬스터에 대한 거야 우리 세계도 겪은 게 있어서 아는 게 많지만, 마물이나 그런 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다.
나야 상위층에 올라와서 알고 있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은 고작해야 60층대 초입까지 올라간 게 전부니까.
심지어 이 망할 마물들은 몬스터보다 높은 등급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마기를 품고 있어서 큰 대미지를 주기 위해서는 신성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일단은 생명체라 일반 스킬이나 무기도 휘두르다 보면 잡을 수는 있겠지만, 재앙도 제대로 못 잡는 수준이라 10급 마물만 나타나도 대재앙이다.
당장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니까 넘어가고.
“이걸로 2개째로군.”
난 마물이 있던 곳으로 들어가 상자를 꺼냈다.
일종의 던전. 내부에는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를 12급 마물이 있었다.
오랫동안 굶주렸는지 생각보다는 약하긴 했지만 6성급 몬스터랑은 궤를 달리하는 괴물이었다.
보물을 숨길 거면 적당히 숨기고 끝내지 마물까지 넣어두고 있어, 찾는 사람 귀찮게.
인벤토리에 넣어 둔 영약을 확인했다.
[페트루카의 마기 결정(S)]
-대악마의 반열에 오른 페트루카의 마기를 응축해 만든 영약.
-천마대전에서 전사한 페트루카에게 애도를!
-그의 흔적을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들른 곳에는 마기를 올릴 수 있는 영약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대악마의 핵이었지만.
천마대전에 참가한 대악마라… 그런 존재의 힘을 뽑아 만들었으니 유족들이 알게 되면 눈이 뒤집히지 않을까.
전사한 것도 억울한데 마기까지 뽑혔으니.
이러니까 마계에 못 가져가고 연옥계에 숨겨 놨지.
카르스타라는 악마도 제정신이 아니다. 어떻게 참전용사로 영약을 만들 생각을 하는지.
하기야 이런 짓을 하고 다녔는데도 살아 있으니까 대공의 자리에 오른 거겠지.
아무튼 영약은 내가 잘 사용하도록 하고.
“여기에는 뭐가 있으려나.”
상자를 열었다.
혹시 상자에도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까 걱정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오, 오?”
내용물을 확인한 난 눈을 가늘게 떴다.
뭐야 이거.
아니, 뭔지는 아는데 왜 이런 게.
상자에서 나온 건 다름 아닌 딸랑이…….
그 있지 않은가. 아기랑 놀아 줄 때 사용하는 장난감.
[플레타가 준비한 딸랑이(S)]
-제1 천계의 배반자, 플레타가 마계로 넘어오며 준비한 딸랑이.
-미래의 아이를 위해 특수 제작한 물건입니다!
-훔쳤다는 사실을 들키면 플레타와 그녀의 남편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아이에게 흔들면 원기가 회복되고 악한 것이 물러나며 건강해집니다.
딸랑이 주제에 S등급인 건 둘째치고.
“플레타면 그 천사잖아.”
지금도 종종 사용하는 무기, 타락한 천사의 검의 주인.
천마대전의 종지부를 찍게 만든 제1 천계의 배반자.
34층 경기장의 주인이자 담당 NPC.
그리고 무엇보다…….
“킬더레스의 전 부인.”
둘 사이에 자식 계획이 있었었나? 아니, 그거야 그 양반들 사생활이니 그렇다 치고.
“와… 얘는 진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킬더레스 와이프 물건을 훔치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이건 진짜 대공이고 나발이고 목숨 걸고 훔친 거 아닌가?
그렇게 훔친 게 고작해야 딸랑이인 것도 웃기기는 한데 이 정도의 도벽이면 대도다, 대도.
자그마치 두 세계의 주인의 분노를 살 수 있는 짓을 하다니.
막상 훔쳐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연옥계에 숨겨 둔 것도 웃기다.
그럴 거면 도둑질 자체를 하질 말지.
이것도 일단 챙겼다. 다른 건 몰라도 S등급 아이템이니까 어떤 식으로든 써먹을 수 있겠지. 어딘가에는 수요가 있을지도 모르고.
영약에 딸랑이.
이제 남은 건 하나.
보물 지도를 살폈다.
“마물의 영역으로 들어가야겠군.”
그곳에 마지막 보물이 잠들어 있다.
상위 헌터와 멤버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안으로 들어가기는 해야 한다.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이 보물이 제일 위험할 거 같단 말이야.”
지도에는 보물이 숨겨진 위치와 함께, 그림과 간략한 설명도 있었다.
내가 방금 얻은 딸랑이가 있던 곳에는 괴물의 그림이 그려져 있던 것처럼.
마지막 보물에는 척 보기에는 수상해 보이는 제단이 있고 그 옆에 위험하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여백에 휘갈겨 쓴 글씨도 있고.
-봉인. 없애야 하나? 언젠가는 찾아가리라. 난 최고야! 죽을지도 몰라. 악마들이 들어갈 수 없도록. 천재적인 발상이 떠올랐다!
꽤 고민이 깊었던 것 같은데. 딸랑이도 그렇고 사서 고생하는 타입인가.
“긴장 좀 해야겠군.”
지도를 챙기고 마물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 * *
마물의 영역은 악마들도 가능한 발을 들이지 않는 곳.
괜히 시나리오를 마친 등반가들을 이곳에 놔두는 게 아니다.
새롭게 들어온 등반가의 시나리오에 되도록 개입할 수 없도록 제약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심층부의 마물을 관리하는 기능도 한다.
상위 포식자들이 자리를 잡아 생태계의 균형이 잡힌 곳이니까.
“영역이 확실하네.”
마물의 영역에 들어오고 이틀이 지난 시점. 난 조금씩 이곳에 적응하고 있었다.
처음에 들어올 때만 해도 쉬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놈들 때문에 개고생을 했다.
한 놈 잡으면 다른 놈이 덤비고, 소란이 일면 자극받은 마물들이 발광을 하고.
그나마 포식자에 해당 되는 놈들을 잡으면 그 아래에 있던 놈들은 얌전해지는데 그것도 잠깐이다. 비어 버린 포식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열 싸움이 벌어졌으니까.
잠시도 가만히 못 있고 난리를 친다고 해야 하나.
연옥을 차지하겠다고 박 터지게 싸우던 악마들이랑 다를 게 없다.
“이래서 마계에서 넘어온 것들이 문제야.”
상위 마물의 피를 뒤집어쓰기도 하고, 도주하기도 하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으니, 이름하여 경계선 줄타기.
포식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최상위 포식자의 경우에는 그 경계가 확실히 구분되어 있다.
피식자인 마물들은 괜히 영역을 침범했다가 잡아 먹힐까 싶어 얼씬도 하지 않는 곳.
몇 번 겪어 보니 대략적이나마 그 경계선을 알아볼 수 있었고, 각 영역의 경계를 따라 이동할 수 있었다.
덕분에 목적지까지 빙빙 돌아가야 했으나 괜히 힘 빼는 것보다는 이편이 나았다.
그것도 이제는 끝.
드디어 지도에서 말하는 구조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뼈 기둥.”
초대형종 마물의 갈비뼈가 입구처럼 솟은 곳.
다른 곳에서는 모르겠지만 심층부에서는 초대형 마물의 사체나 뼈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지도에서 말하는 것을 찾기가 까다롭기는 했는데 이번에는 확실하다.
지나가듯 보면 모르겠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인위적으로 뼈에 세긴 무늬가 존재한다.
역오망성.
악마의 상징.
숨을 가다듬으며 마기를 살폈다.
악마가 뭔가를 숨겼다면 필연적으로 마기가 느껴질 거다.
침입자를 막기 위해 만든 장치가 있든 보물에서 새어 나오는 기운이 있든 할 테니까.
마물의 영역에 숨긴 것도 같은 이치고. 마물도 마기를 가지고 있으니 그 사이에 있으면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어디까지나 보물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때는 말이지.
“뭔가가 숨겨져 있다는 걸 알고 찾으면 모를 수가 없거든.”
느껴진다.
미약하지만 고정되어 있는 마력이.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면 신성력도 느껴진다는 것.
희미해서 착각인가 싶었지만 신성력이 맞다. 신성력이 강화되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을 정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찾아온 건 확실해졌다. 이곳에서 자연적으로 신성력을 띄는 뭔가가 있는 건 말이 안 됐으니까.
-카가가가가각
검을 박아 넣었다.
저항감 없이 들어가던 검에 뭔가가 닿았다.
쭉 긁어 보니 꽤 단단한 거 같기는 한데.
“그래 봤자지.”
[디그(AA) Lv.2]
-드드드드드득
일단 땅을 파내 밑을 드러냈다.
모습을 보이는 문.
악마의 형상이 양각된 두꺼운 금속 재질의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악마 모습의 손잡이.
난 그곳으로 손을 뻗었고.
[던전, 카르스타의 제단에 진입하겠습니까?]
“오호라. 던전?”
입가를 비틀었다.
진짜 던전이 나타나네?
그래, 그동안 던전이나 유적을 못 보기는 했다. 슬슬 모습을 보일 때가 됐지.
사전 정보가 거의 없다는 게 살짝 걸리기는 하다.
던전은 어떤 제한과 위협이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전에 겪었던 미궁도 그러지 않았던가. 상점창이 봉인되어 음식을 살 수 없는 구조.
나야 요리 스킬이 있기는 하지만 던전에 마물이나 다른 생명체가 없을 가능성도 있다.
갑자기 스킬이나 칭호가 봉인되지 말라는 법도 없었고.
특히나 이번에는.
“입장 조건도 없지.”
누구나 부담스럽지 않게 들어갈 수 있다는 뜻.
물론 들어가는 게 자유롭다는 거지 나가는 것도 자유롭다고는 안 했다.
혹시 아는가, 들어간 이후에는 특정 조건을 달성하기 전까지는 밖으로 나갈 수 없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들어갈지 말지. 지금의 난 충분한 준비가 됐는가.
인벤토리와 보물 주머니, 아공간 팔찌 등등 내가 가진 장비와 물품을 확인한 후 깊고 진지하게 10초간 고민한 결과.
“입장한다.”
-쿠르르르르릉
[서버 최초, 카르스타의 제단에 입장합니다.]
[10,000포인트가 주어집니다.]
난 들어가는 것을 택했다.
어차피 들어갈 거라면 망설일 필요가 없지.
서버 최초 타이틀과 함께 들어온 10,000포인트는 덤.
내가 노리는 건 안에 숨겨진 보물이다.
-스스스스스스
몸이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드는 것도 잠시 난 던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 * *
바닥에 발이 닿는 느낌이 들자마자 검을 빼 들었다. 던전 진입 직후만큼 공격에 노출되기 쉬운 때가 없으니까.
반쯤은 반사적인 행동이었고.
“음?”
뭔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런 기척이 없다. 그냥 서늘한 공기만이 감돌 뿐.
혹시나 함정이 있나 싶어 둘러 봤지만 함정도 없다. 권능으로 확인해도 마찬가지.
그냥 텅 빈 복도다.
게다가 뒤편을 보니 내가 들어왔던 입구가 그대로 있다.
살짝 손을 데자.
[던전에서 퇴장하겠습니까?]
밖으로 나갈 거냐는 문구가 떠올랐다.
이게 던전이냐. 자동문이지.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 아무런 제약이 없나?
스킬, 칭호, 상점창 모두 살펴봤지만 정상적으로 작동된다.
살짝 김이 빠진다.
안에는 뭐가 있을까.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 나가 골목 몇 번을 돌자 던전 끝이 보인다.
텅 빈 공간. 잡동사니 몇 개가 올라간 선반이 전부다.
손가락을 쓸어보니 먼지가 수북이 쌓였다.
이거 그냥 다 털려서 빈 던전…….
“일 리가 없잖아.”
왜냐, 내가 처음 들어왔으니까.
애초에 던전 이름이 카르스타의 제단이다. 그런데 여기엔 제단이 없고 즉,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와, 약은 거 봐라. 첫 진입자가 아무것도 못 찾고 나가면 이후 침입자들은 이미 털린 던전으로 생각하도록 꾸며 놨네.”
그래 진짜 숨기고 싶은 게 있으면 이렇게 해야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속이거나 가짜 보물을 배치해 진짜인 것처럼 꾸미거나.
좋은 시도였지만 내게는 안 통한다.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찬찬히 선반이 쌓여 있는 공간을 살폈다.
여전히 숨겨진 공간이나 그런 건 없다. 함정이나 투명화시킨 뭔가도 없고.
대신…….
[평범한 물병]
-물건 자체는 평범합니다.
-진법에 적용되어 있습니다.
-잘 맞추면 진법이 발휘될지도?
평범으로 위장한 물건들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진법.
물건을 배치해 마법진과 같은 효과를 내는 일종의 주술.
-츠즈즈즈즈즈
권능이 강화되며 희미한 빛의 선이 이어진다.
무슨 진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풀어줄게.”
입꼬리를 올리며 물병을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