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3화 보물을 찾으러 가 볼까
둠칫둠칫 춤을 추자. 보물 지도 쥐고 춤을 추자.
[칭호, 불과 춤의 화신이 발휘됩니다!]
모닥불까지 피우고 칭호 효과까지 누리며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
왜냐?
“난 연옥계의 왕… 아니, 잊힌 세계의 왕이다!”
잊힌 것들이 관심을 보인다고 했나?
생각해 보면 연옥계에 묻힌 보물들도 잊힌 것 중 하나 아닌가?
그렇다. 내 영원한 친구, 연옥계는 이 보물 지도를 주기 위해 칭호를 업그레이드해 준 것이다!
…라고 일단 생각하기로 했다.
단순한 정신 승리는 또 아닌 게, 그동안 여러 시나리오를 겪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보상을 우르르 주지는 않았다.
도전의 대가로 보상을 주는 것이 탑이기는 하지만 정도라는 게 있다.
일종의 편법이라고 보면 된다. 시스템에게 난 보상 하나만 줬다며 뻗댈 수 있으니까.
실제로는 내가 하는 것에 따라 훨씬 많은 보상을 얻어갈 수 있지만.
“그에에에.”
“그런 눈으로 봐도 소용없다, 덕춘아. 지금의 나는 아무도 막을 수 없어.”
“그에?”
슬며시 옆에 굴러다니는 돌을 집어 드는 녀석.
가볍게 휙휙 휘두르며 내 머리를 바라보는 것이 뚝배기를 날려 버려도 멈추지 않을까? 하는 표정인데.
허허, 이것 참.
“춤을 열심히 췄더니 좀 힘드네. 응응, 그렇고말고.”
얌전히 불을 끄고 자리에 앉았다.
절대 덕춘이한테 맞을까 봐 그러는 게 아니다.
이상하다. 예전에 덕춘이가 나를 동급으로 인정한다는 메시지를 들었던 거 같은데 왜 바뀐 게 없는 거 같지?
오랜만에 덕춘이를 향해 권능을 사용해 봤다.
그래도 생사를 오가며 함께한 시간이 있는데 충성심이 조금은 오르지 않았을까?
[덕춘(카오스 개구리- AAA)]
-속성: 카오스
-특성: 산성(S), 회복(SS), 독(S), 화염(S), 외갑(S), 괴력(SS)
-고유 능력: 뺨치기(SS), 폭식(S), (???)
-새로운 고유 능력이 탄생의 계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인을 좀 모자라지만 나름 착한 친구 정도로 여기고 있습니다.
-충성도: 3점
“…오.”
시나리오를 겪으며 강해진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언제 올랐는지 덕춘이의 등급이 상승했다. 전에는 AA 등급이었던 거 같은데.
등급 상승에 맞춰 특성과 고유 능력도 강화됐다.
그동안 많이 사용한 회복과 괴력, 뺨치기의 등급이 SS등급까지 올라갔으니까.
나도 권능을 제외하면 스킬들은 S등급이 최대인데.
어쩐지 손이 더 매워진 거 같더라니. 저러니까 몬스터 뺨이고 숭배자 뺨이고 날리고 다니지.
것보다.
“진짜 이거 버그 아닌가? 아직도 3점이라고?”
사실 30점인 걸 잘못 표기한 게 아닐까 유심히 살폈지만 다시 봐도 3점이 맞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3점이 어디야. 전에는 2점인가 그랬는데.
괜히 보고 있으면 현타 올 거 같아서 정보를 껐다.
애초에 주종 관계보다는 파트너 느낌이 더 강한 녀석이라.
“아무튼 확인을 좀 해 봐야겠군.”
지도를 펼쳤다.
누군가 손으로 그린 것처럼 조악하기 그지없는 지도.
제작자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날림으로 그어진 선과 그림들 때문에 알아보기가 어려웠지만 나 역시 연옥계에서 꽤 시간을 보냈다.
대략적인 지리와 특징은 알고 있다는 말.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도가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추정할 수 있었다.
“일단 3개 정도가 있네.”
지도에서 표시된 보물은 3개.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다.
위치와 몇 가지 메모만 있지 보물에 대한 정보는 없었으니까.
척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뭔가가 그려진 곳도 있다. 던전? 아니면 마물?
어쩌면 천마대전 당시 만들어져, 적의 모습을 과장해 그린 걸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보물 지도가 아니라 위험한 장소. 접근해서는 안 되는 금지禁地를 표시해 둔 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카르스타의 보물 지도]
-제7 마계의 대공, 카르스타가 남긴 보물 지도.
-천마대전 때 얻은 보물을 숨겨 두었다고 전해집니다.
-마계에서 유명한 개새… 도둑입니다!
-마계로 가져가면 안 될 물건을 숨겼다는 소문이 있죠.
보물 지도인 건 확실하다.
카르스타라.
자세히는 모른다. 나도 연옥계에 있었지 마계에 있던 건 아니니까.
대신 나를 따르던 악마들이 제7 마계 출신이지.
“들어는 봤어.”
시나리오가 진행되며 시간의 경과에 따른 잡다한 기억이 생겨났고, 그중에는 그리가와의 대화도 있었다.
천마대전에 참전했던 만큼 당시 전쟁에 참여한 대공들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었는데, 그때 녀석이 뭐라 했더라…….
“얍삽하고 짜증 나는 새끼라고 했었나.”
어떻게 하면 대공의 자리에서 있으면서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나 했었는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럴 만했다.
기본적으로 도벽이 있는 놈이었고, 훔치는 대상과 물건의 귀천을 따지지 않았다.
전쟁 중 막사에 있는 소소한 물건, 예로 들어 숟가락이나 신발 끈, 국자. 뭐 이런 것을 훔쳐 가는 건 기본이요, 아예 무기를 가져가기까지 한다 했다.
문제는 녀석이 대공이라 잡기도 애매하고 잡고 나서도 어쩌기 힘들어서 짜증 난다 했다.
얍삽한 이유는 하나.
“경쟁 대상이 사용하는 무기나 장비를 훔치는 경우도 있다고 했지.”
나로 따지면, 내게 정정당당히 결투를 신청한 뒤 펠라인 세트를 훔쳐 가는 거라고 보면 됐다.
상상만 해도 화가 나는군.
악마들이 얍삽하며 치를 떨 만하다. 적한테만 그러면 모를까 아군한테도 그러고 자빠졌으니.
인성은 개판일지 몰라도 도둑질 실력만큼은 확실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런 놈이 특별히 지도까지 만들어 숨겨 둔 보물은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한 가지 걸리는 건 정보에 나와 있는 소문인데.
“못 챙겨 간 게 아니라 마계로 가져가면 문제가 될 수 있어 놔두고 갔다라. 뭘 놔둔 거야?”
단순히 소문이라며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권능을 통해 보인 정보. 정말 쓸데없는 거였다면 굳이 알려 주지는 않았겠지.
저 소문이라는 것도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뭐든 상관없다. 결국 찾아내면 내 거니까.
찾아내야 하는 보물은 3개.
내가 있는 곳은 마물 영역에서 조금 벗어난 곳. 여기서 가장 가까운 건.
“위쪽에 하나 있군.”
그다음에는 중립지대. 마지막 하나는 마물의 영역 내부에 있다.
어차피 마물의 영역에 들어가기는 해야 한다. 상위 헌터들이 그쪽에 있어서.
김선혜와 계약한 것도 있으니 그들을 도와줄 생각이다.
그전에 내가 할 일 먼저 하고.
함께 싸우며 어느 정도 신뢰 관계를 형성하기는 했지만 보물 앞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조용히 내 할 일 다 끝내고 만나는 편이 좋을 거 같다.
목적지를 정하고 움직이려는 때.
-띠링
커뮤니티 알람이 울렸다.
멤버들도 대기실에서 나온 모양.
여유도 좀 생겼겠다 천천히 커뮤니티를 확인했고.
“와, 탈모맨 이 녀석. 코인이 많나?”
작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니머리 탈모]: 80층 왔다아아아! 얘들아, 어디 있어!
[니머리 탈모]: 서, 설마! 나 혼자 두고 다른 곳으로 가 버린 거야?
[냥냥펀치]: ㄴㄴ, 우리 79층임.
[니머리 탈모]: 우리……? 그 말은 세상에서 제일 뛰어나고 잘났으며 모두의 선망의 대상인 핥짝이도 밑에 있다는 거군! 하하하하하!
[니머리 탈모]: 아, 내가 1등을 해 버렸지 뭐야. 괜찮아. 분발하면 2등 정돈 할 수 있을 거야^^.
[정수리 핥짝]: 너, 이쉨… 쫌만 기다려ㅎㅎㅎㅎ.
[니머리 탈모]: 아니, 숨을 건뎁? 꼭꼭 숨을 건뒈에에.
[정수리 핥짝]: 아냐 아냐, 보고 싶어서 그렇지ㅎㅎ 딱 있어^^.
[냥냥펀치]: 팝콘… 팝콘을 사야겠어!
도발을 제대로 걸고 있다.
그 와중에 냥펀은 팝콘이나 찾고 있고. 에휴, 나도 사야지.
아무튼.
“탈모맨 혼자 위로 올라간 거 같네.”
그럴 만하다. 우리와 달리 탈모맨은 10층대부터 마기와 신성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힘이나 민첩, 체력, 마력 같은 기본 스텟은 진작에 최대치를 찍었을 거고.
먼저 올라가 있으면 좋지. 나중에 올라갔을 때 80층을 안내해 줄 수도 있고.
일단 가 보실까.
지도를 확인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크르르르륵!”
중간에 마물이 종종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덕춘이, 고.”
“그에에.”
-빠아아아악!
나와 덕춘이 앞에서는 별 볼 일 없는 장애물에 불과했다.
숲길을 걸으며 작게 혀를 찼다.
시나리오가 끝나기 전에는 악마랑 천사들도 같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다음 등반가가 79층에 오기 전까지는 기존에 형성했던 무리는 사라지니까.
시나리오가 끝나도 무리가 남으면 상위 헌터들도 고립되지는 않았을 거다.
인기척 없이 마물만 튀어나오는 숲.
업데이트를 위해 모든 유저를 로그아웃 시킨 게임 속에 들어오면 이런 기분이려나.
어깨를 으쓱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 * *
80층, 안전지대.
조건을 충족시켜 위로 올라온 탈모맨이 커뮤니티를 보며 웃음을 흘린다.
“이야, 이렇게 놀려 먹을 기회가 생기네.”
그동안 탑을 등반하면서 멤버들보다 먼저 위로 올라갔던 적이 있었던가.
등반 경쟁에 별로 관심 없는 탈모맨이었지만 그걸 가지고 놀리는 것에는 진심이었기에 빠르게 채팅을 쳤다.
그러다 문득 위기감이 느껴졌으니.
“너무 많이 놀렸나?”
79층과 80층.
물리적으로 안전했기에 더욱 까불었건만 생각해 보면 핥짝이도 머지않아 80층에 올라올 게 뻔했다.
핥짝이와 냥펀 모두 세 번째 챕터로 넘어올 때 신성력 스텟이 800대라고 했다.
챕터Ⅲ가 끝난 지금은 못해도 900대에 진입하지 않았을까.
특히나 이블아이가 같이 있다면 신성력은 더욱 빠르게 올라갈 게 분명했다.
열심히 머리를 굴린 탈모맨은 깨달았다.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봐줄까?”
스스로 위험을 자초했음을!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라 했던가 탈모맨이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니머리 탈모]: 하하하! 80층에 먼저 올라온 건 사실 대단한 일이 아니지.
[니머리 탈모]: 운이 좋았던 것뿐, 실제 능력은 핥짝 님이 최고인 걸 알고 있습니다요, 헤헤…….
[정수리 핥짝]: 넌 뒈졌다, 진짜^^ 잡히면 목을 @@@서 @@@를 그냥!
[쁘띠공듀]: 와! 필터링! 탈모맨 좀 치는군욧!
[냥냥펀치]: 팝콘으로는 부족하다. 콜라! 콜라가 필요행!
역효과가 났다.
진짜 숨어야 하나? 아니면 뇌물을 준비해?
아니면 빠르게 방어 스킬을 강화시켜 덜 아프게 맞는 것도 방법이었다.
뭐가 됐든 80층은 초인의 기준. 권능과 등급을 초월시킬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그렇게 하자.
빠르게 판단을 내린 탈모맨이 80층을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인물이 있었으니.
“그 모습, 쁘찡 연합의 탈모맨이 맞나?”
“…누구?”
제법 덩치 있는 탈모맨이었지만 그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거한.
근육으로 뒤덮인 포니테일의 남자가 팔짱을 낀 채 탈모맨을 노려봤다.
외국인.
느껴지는 기세가 상당하다. 보다 거칠고 야생적인 기운.
“광장에서 막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그마 요정이라고 아나?”
“어, 알긴 하지? 같이 싸웠으니까?”
“오오오! 알고 있는가! 어떤가! 마그마 요정은 무사한가!”
급 표정을 밝힌 녀석이 탈모맨의 어깨를 붙잡는다.
그러다 자신이 흥분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헛기침을 한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손을 내밀었다.
“흠흠, 실례했군. 인사 먼저 하지. 반갑다. 요정 클럽의 근육 요정이다!”
탈모맨은 물끄러미 손을 바라보면 생각했다.
‘얘들아, 빨리 와! 여기 이상한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