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432화 (431/740)

432화 연옥계는 최고다

연옥계를 제패할 빛과 어둠의 탈모블…….

대충 우리가 이루어 낸 무리 중 천사들이 합류함으로써 전투는 확실히 우리 쪽으로 기울었다.

애초에 천사들이 오지 않았더라도 멤버들이 온 시점에서 끝난 거였지만 덕분에 시간을 좀 아낄 수 있다고 해야 하나.

“성스러운 불꽃은 결코 죽지 않으니!”

“사악한 무리에게 천벌을!”

“물러서지 마라! 우리 뒤에는 대천사가 있다!”

아주 광신도가 따로 없다.

누구보고 대천사라는 건지. 뭐, 사기가 오른다면 상관없나.

것보다.

[믿음은 곧 신앙!]

[신성력이 상승합니다!]

[신성력이 최대치입니다.]

[신성력의 격이 상승합니다!]

[얼음과 불의 교단이 탑 전역에 존재감을 내뿜습니다!]

이건 또 뭐람.

신성력이 올랐다는 메시지는 종종 봤으니 그러려니 하는데, ‘믿음은 곧 신앙’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

그뿐인가, 신성력의 격이 상승한다라.

스텟상으로 올라갈 수가 없어서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 거 같다.

“확실히 좀 더 농도가 짙어진 느낌이긴 하네.”

정확히 어떤 효과를 내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신성력을 운용하자 기존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이전에도 신성력이 옅은 느낌은 아니었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좋은 거 같으니 그냥 그러려니 했다.

교단의 이름도 널리 퍼졌다고 하니 휴고와 마그네타가 좋아하지 않을까?

19층과 29층에서 만난 교단의 두 기둥.

잘 지내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특별한 이벤트가 생긴다면 만날 수 있겠지.

그건 그거고.

“나도 가만히 있을 때는 아니군.”

-콰아아아악!

냅다 달려가, 어물쩍거리는 악마 숭배자의 얼굴을 무릎으로 찍었다.

코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저 멀리 날아가는 녀석.

멈추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목표는 탈모맨과 싸우고 있던 트라할. 털이 뽑혀 볼품없어진 녀석이 기겁하며 머리를 젖혔다.

아쉽네. 깔끔하게 목을 벨 수 있었는데.

“이런 비겁한!”

“너도 둘이서 덤볐거든?”

놈이 으르렁거렸지만 코웃음만 나온다.

지가 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 당하니까 비겁하다고 난리네.

검을 돌리며 빈틈을 찾았다.

옆으로 탈모맨이 다가온다.

“쟤랑 싸우게? 몸 괜찮냐?”

“정상은 아닌데, 저놈은 내가 잡고 싶어서. 마기도 챙겨야 하고.”

“아, 맞네. 내가 양보할게. 난 마기 이미 다 채워서.”

놈에게 시달렸던 것을 복수하려는 것도 있지만 마기를 뽑는 것도 중요해서.

신성력은 다 채웠지만 아직 마기는 부족하다.

저놈을 잡으면 어느 정도는 채워지겠지.

숭배자 놈들과 싸워서 좋은 점이 있다면 마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정도?

이미 전투를 치르며 마기를 꽤 얻었다. 여전히 모자라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뽑을 건 다 뽑아 먹을 생각.

탈모맨이 잘 다져 놔서 막타만 치면 될 거 같다.

이렇게 쉽게 갈 때도 있어야지.

검을 세우며 숨을 골랐다.

자세를 만들자마자 찌르기.

-카가가가각!

놈 또한 손톱을 휘둘러 막더니 손바닥을 뒤집어 검을 잡았다.

손가락이 잘려 나가도 할 말 없는 행동이었지만 놈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으니.

“크흐흐. 내가 쉽게 당해 줄 거라고 생각했나?”

본인의 털을 장갑 삼아 검을 잡고 있었다.

그치, 녀석 입장에서는 검이 가장 신경 쓰이겠지.

그런데 난 굳이 검에 집착하지 않는다.

-스륵

미련 없이 검을 놓았다.

반사적으로 놈이 검을 움켜쥐는 순간 안으로 파고들었고.

[데몬 스피어(S) Lv.10]

-우우우우우웅!

마기로 이루어진 악마의 창이 손에 잡혔다.

[검강]

평소에는 투척 용도로만 썼지만 쥐고 사용해도 괜찮잖아? 검강도 제대로 적용되고.

녀석의 눈동자가 굴러가는 게 보였지만 이미 늦었다.

-푸국!

힘차게 찔러 넣은 창이 놈의 복부를 꿰뚫었으니까.

여기에 더불어.

“궁금했단 말이야. 상반된 힘을 동시에 넣으면 어떻게 되는지.”

“자, 잠깐!”

[러브 앤 피스(S) Lv.10]

마기로 이루어진 창에 신성력을 불어 넣었다.

거센 반발력이 느껴지는 찰나.

-콰아아아아앙!

밀려드는 신성력을 견디지 못한 데몬 스피어가 산산조각 났다.

날카로운 마기의 파편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고, 그 중심에 있던 트라할은 말해 뭐 할까.

“빌어, 먹을.”

마지막 말을 남기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놈에게서 흘러나온 마기가 내게 흡수된다.

“확실히 상위권이라 그런지 많이 주네.”

이 정도면 고생한 보람이 있다. 한 명 잡은 거로 스텟이 60이나 올랐으니.

이걸로 마기 스텟 역시 800대. 조만간 900대에 진입하지 않을까.

그건 그거고.

“저쪽도 다 끝났네.”

“흑흑, 불쌍한 악마 녀석. 하필 핥짝이를 만나서.”

“지 팔자지 뭐.”

데하일도 잡았고 남은 숭배자들도 모두 정리됐다.

물론 이곳에 있는 놈들이 전부가 아닌 만큼 심층부 곳곳에 숭배자 놈들이 남아 있기는 할 테지만, 중요 전력이 전멸했으니 사실상 연옥계의 주인이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

시스템도 그렇게 판단한 걸까.

“아.”

[79층 클리어!]

시야가 암전되며 대기실로 이동됐다.

* * *

방금 전까지 울려 퍼지던 소음이 사라지며 적막이 찾아왔다.

“아고고, 죽겠다.”

털썩, 준비된 소파에 몸을 기댔다.

긴장감이 풀려서 그런가. 온몸이 쑤신다.

멤버들이 오지 않았다면 죽음을 가정하고 싸웠을 테니까.

다구리도 정도껏 해야지 실버 등급 최상위권 2명이랑 숭배자 100명이 말이 되나.

“결국 이겼지만.”

씨익, 입꼬리가 올라간다.

화면을 바라보자 심층부가 보인다.

연옥계에서 함께했던 익숙한 얼굴들의 악마. 후렌 키아노와 루나르.

심층부에 들어가기 전부터 같이 돌아다닌 무지개단 녀석들과 백터.

제법 쿨했던 그리가와 녀석의 부하들.

나름 훈훈하게 끝났다.

중간에 숭배자 놈들만 아니었어도 좀 더 깔끔했을 텐데.

하여간 마기 얻을 때 빼고는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놈들이다.

-촤르르르르륵

화면이 지나간다.

악마와 천사들이 한데 모여 있다. 이전과 같은 경계심은 보이지 않았고 공생하는 모습.

천마대전의 후유증은 사라졌으며, 심층부에 자리를 튼 녀석들이 중앙부를 비롯해 변방까지 영향력을 끼쳤고.

아직까지 내부 소식을 알지 못했던 천족 잔당들을 양지로 끌어올렸다.

처음에는 기습인지 알았던 이들도 악마들과 함께 움직이는 천사들의 설득과 증언으로 합류했다.

적응하는 데까지 시간이 좀 흐르긴 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동화되겠지.

다시금 화면이 빠르게 움직인다. 시간의 흐름을 알려 주기 위함인지 해가 뜨고 지고, 날씨가 변화하는 모습이 이어지더니 제법 그럴듯한 성을 지은 놈들의 모습이 보였다.

좋다. 자연인처럼 땅바닥에서 구를 만큼 굴렀으니 번듯하게 살 때가 되기는 했다.

그런데…….

“…이런 망할 놈들 같으니.”

왕궁에 중앙에 있는 저건 또 뭐냐.

나와 멤버들의 동상을 웅장하게 세워 놨다.

색까지 입혀서 멀리서도 눈에 띄는 디자인. 일종의 랜드마크라고 할까.

프램버그에 이어 또다시 이런 만행을 지켜봐야 하다니. 뒷골이 당겼지만 괜찮다.

이번에는 나 말고 멤버들도 박제됐으니까. 마그마 요정도 있고.

동상도 동상이지만 옷차림도 제정신이 아니다.

“다들 왜 저럴까, 덕춘아?”

“그에에.”

우리를 기리기 위함인지 아니면 하나의 문화가 된 것인지 알록달록하게 입고 다니는 건 물론이고, 헬멧이나 금괴를 매달고 다니는 놈도 있다.

의도치 않게 한 차원의 문화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지만 어쩌겠나. 내가 시킨 것도 아니고 지들 업보지.

우리가 사라져서 그런지 최측근이었던 녀석들이 공화정으로 운영하는 거 같다.

만약 진짜 우리가 저 때 있었다면 연옥계는 저런 모습으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결국에는 탑에 의해 재현된 세상. 작게 혀를 찼다.

-촤르르르르

이걸로 영상은 끝.

회색빛으로 물든 화면이 이어지고 그 위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챕터Ⅲ- 연옥계의 주인 클리어]

[보상이 지급됩니다!]

[위대한 업적!]

[혼돈 수치 +30]

“오오오오!”

30점?

이렇게 많이 준 건 처음이다.

그만큼 이번 시나리오를 통해 이룬 업적이 많다는 뜻.

하기야, 작기는 해도 차원 하나를 차지했는데 이 정도는 돼야지.

멤버들도 비슷한 수준으로 받지 않았을까?

나야 이미 혼돈 수치가 100점을 넘긴 지 오래지만 멤버들은 아니다.

100층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혼돈 수치가 100점을 넘겨야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재앙의 규칙을 벗어나거나 혼돈의 파편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혼돈 수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79층 클리어.

다르게 말하면 80층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

80층부터는 초인의 영역. 등반가들이 강해지는 만큼 상대해야 하는 몬스터와 상황도 험난해질 거다.

이놈의 탑은 까도 까도 위험한 것들이 계속 나오니까.

속으로 마음을 다잡고 있는 사이에도 보상은 계속해서 들어왔다.

[연옥의 주인이 탄생했습니다!]

[왕의 자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칭호, 연옥의 왕이 생성됩니다!]

“연옥의 왕이라.”

트라할이 가지고 있던 칭호 같은데.

왕의 자격이라고 하는 건 아마 이거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왕관. 댄싱 마스터의 왕관이랑 마그나로크의 왕관.

두 아이템 모두 왕의 자격을 준다고 했었지.

“진짜 왕이 될 줄은 몰랐지만.”

피식 웃음이 나오는 찰나.

메시지창이 흔들렸다.

[찰나지만 불안한 차원이 안정감을 느낍니다.]

[잊혀진 세계의 의지가 전해집니다.]

[연옥의 왕 칭호가 바뀝니다.]

음?

여기서 칭호가 업그레이드된다고?

시나리오가 끝나고 차원이 보상에 개입하는 건 처음이 아니다.

제2 천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까. 그때는 신성력 스텟을 얻을 수 있는 영약을 얻었었지.

다르게 말하면 이번에도 역시 그에 준하는 보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난 기대감을 가지며 메시지를 바라봤다.

[칭호, 잊혀진 세계의 왕이 생성됩니다!]

[당신은 모든 잊혀진 것들의 관심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은 모든 잊혀진 것들의 대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모든 잊혀진 것들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오오! 오오?”

감탄하다 멈칫했다.

잊혀진 것들의 관심? 좋은 건가? 좋은 거겠지?

뒤에 이어진 설명들이 뜻하는 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래도 차원이 직접 개입해 준 보상이니 범상치 않은 거긴 할 텐데.

왠지 모르게 찝찝하던 것도 잠시.

[연옥계에 숨겨진 보물이 주어집니다.]

또 다른 보상이 내려왔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아이템을 주는 것이 낫다.

흙 묻은 상자가 내려온다. 크기는 작다. 반지함 정도?

그러고 보니 전에 후렌 키아노와 루나르가 말했었다.

천마대전이 끝나고 빠르게 철수하면서 남기고 간 보물이 연옥계 곳곳에 숨겨져 있다고.

챕터가 진행되고,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아서 미처 찾아보지는 못했는데 이렇게 얻을 수 있다면 좋지.

영약일까? 아니면 반지 같은 아티팩트?

바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스테이터스 스텟이 부족합니다.]

[80층에 진입할 수 없습니다.]

[79층으로 이동됩니다.]

-우우우우우웅

정산이 끝나며 이동됐으니까.

* * *

상위 헌터들을 만났을 때도 예상했지만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79층에서 머물러야 하는 모양.

[79층에 진입했습니다.]

[79층을 클리어했습니다.]

[시나리오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시나리오는 다음 참가자 진입 시 진행됩니다.]

[스테이터스가 최대치에 도달할 시 포탈이 생성됩니다.]

연달아 떠오르는 알림.

빛이 사라지고 주변을 둘러보니 익숙한 공간이다.

연옥계 심층부.

어쩔 수 없이 한동안은 이곳에서 머물러야 할 거 같다.

“그건 그거고 마저 확인이나 해 볼까. 후후후.”

아직 보상을 확인하지 못했다.

난 기분 좋게 상자를 열었고.

“종이 쪼가리?”

접혀 있는 종이 하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더 없나 싶어 상자를 뒤집어 봤지만 없다. 이게 전부다.

연옥계 이 녀석 나한테 사실 악감정이 있던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을 품은 채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 깨달았다.

“연옥계 최고다!”

내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모두 준비했다는 것을!

종이 쪼가리. 그 안에는 연옥계에 숨겨진 보물들의 위치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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