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화 얘들아!
내게 달려드는 트라할과 다른 숭배자 사이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막는 데하일.
악마끼리는 뭔가 통하는 걸까. 두 녀석의 협공은 대단했다.
트라할이 자신의 방호력을 믿고 무작정 공격해 왔고, 데하일은 나와 정면으로 싸우는 것을 피하면서 퇴로를 차단했다.
다른 놈들이었으면 트라할의 공격에 휩쓸려 날아갔을 테지만 데하일 역시 실버 등급 최상위권이었기에 중간중간 다른 곳으로 튀려 하는 트라할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었다.
이후로 반복.
‘이거 짜증 나는데.’
나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놈의 방호력을 없애기 위해 검으로 찔러도 보고, 폭발도 일으켜 봤지만.
-콰아아앙!
“그 정도로는 날 막을 수 없다!”
치명상이라 할 만한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다.
그나마 효과가 있는 건 신성력을 불어 넣은 공격이었다만.
[‘탐욕스러운 천사의 손아귀(S)’가 신성력 일부를 흡수합니다.]
저놈들은 숭배자. 천사와 악마가 뒤섞인 집단이었으며 신성력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도 가지고 있었다.
악마 주제에 성물을 사용하다니. 치사하기 그지없었으나.
[데몬 스피어(S) Lv.10]
[러브 앤 피스(S) Lv.10]
[오로라 빔(S) Lv.10]
-콰르르르릉!
나 역시 신성력과 마기를 같이 사용하는 건 마찬가지라 뭐라 할 말은 없다.
홍예참이 있었다면 뚫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이미 사용해 버렸고.
‘아스트랄 레인보우가 있기는 한데 후유증이 너무 커.’
마력을 많이 잡아먹는 건 둘째치더라도 10초라는 시간 동안 확실히 잡지 못하면 내가 당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나 아스트랄 레인보우 때 사용한 스킬들은 한동안 제 기능을 하지 못하니 어떻게 한 놈을 잡더라도 남은 한 명을 상대하기가 껄끄러운 것이 사실.
-파앙!
“이제 그만 시도할 때가 되지 않았나?”
기습적으로 데하일을 향해 덤벼들었지만 놈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자리를 피했다.
그나마 공격이 통하는 데하일을 노리는 것도 쉽지 않다.
“실버 등급이면서 자존심도 없냐? 그냥 시원하게 붙자, 어?”
“중요한 건 네놈을 확실히 처리하는 거다. 그따위 도발은 통하지 않아.”
피식, 비웃음을 던진 데하일이 여유롭게 팔을 벌린다.
어디 빠져나갈 수 있으면 빠져나가 보라는 제스처.
덩치는 산만 한 게 신중하다. 차분하기도 하고.
‘한 놈씩 상대하면 별거 없는데 같이 있으니 까다롭군.’
두 놈 다 장점과 약점이 분명하다.
문제는 둘이 같이 움직이니 장점은 강화되고 약점은 사라진다는 것.
슬쩍 눈을 굴려 상위 헌터들의 상황을 살폈다.
“너무 앞으로 들어가지 마! 체력을 아끼면서 버티는 거다!”
“굳이 목을 날릴 필요 없어! 팔다리 하나만 날린다 생각해!”
“확인 사살은 나중에 하고 전투 불능을 유도하는 거야!”
상위 헌터로서의 짬이 있어서 그런지 영리하게 적들을 상대하고 있다.
옳은 판단이다.
절대적으로 인원이 적은 상황. 하나하나 확실히 처리하면 좋겠지만 괜히 무리했다가 고립되면 그게 더 곤란하다.
10명도 되지 않는 전투 인원. 한 명이라도 잃으면 뼈아픈 손해다.
다만.
-카아앙!
-푸화아아아악!
“조금씩 갉아 먹어! 결국 우리가 더 많다!”
“체력 빼는 것만 집중해! 교대! 교대해라!”
“놈들은 뒤를 봐줄 힘이 없어!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승리다!”
숭배자 놈들 역시 바보는 아니라서 느리지만 확실히 승기를 잡아 나가고 있다.
교대로 끊임없이 공격하며 체력을 보충할 수 있는 놈들과 달리 상위 헌터들은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없으니까.
즉, 숭배자들은 날 붙잡고만 있어도 이득이다.
상위 헌터들이 쓰러진 이후에는 내게 집중 화력을 쏟아부으면 그만이니까.
데하일 역시 그걸 노리고 있는지 히죽 웃는다.
“왜? 네놈의 미래가 보이나?”
“어, 찬란하게 빛나고 있더라.”
-콰가가가각!
다시금 돌진하는 트라할의 옆면을 긁으며 답했다.
돌도 계속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는 깨지는 법.
열심히 깎아 내려간 덕분에 놈 역시 정상은 아니다.
피로 붉게 물든 털. 듬성듬성 털이 빠진 곳에는 화상자국과 자상이 가득하다.
숨도 꽤 거칠어졌고.
전투 불능에 빠질 정도의 상처가 아니라는 게 아쉬울 뿐이다.
회복력이 워낙 좋은 놈이라 한 번에 큰 대미지를 줘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반면에 데하일은 비교적 상태가 멀쩡하다.
“좋은 검이군. 지금쯤이면 부러지거나 이가 나갔어야 정상인데.”
“다른 건 몰라도 튼튼한 건 최고거든.”
자그마치 혼돈의 파편을 잡고 얻은 부산물을 프램버그의 대표가 직접 가공해 만든 물건이니까.
등급도 무려 SSS등급.
혼돈의 파편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라 특별한 스킬이나 옵션이 달려 있지는 않다만 내구도 하나는 차원이 다르다.
검을 빙글 돌리며 상황을 정리했다.
좋게 보면 내가 가장 위험한 2명을 상대하고 있는 거였고, 나쁘게 보면 2명을 제외한 숭배자들을 놓치고 있는 거였다.
‘귀찮네.’
구사일생도 써 버려서 무작정 덤비기는 좀 그렇고.
역시 화력이 더 있어야 한다. 얼른 80층으로 넘어가 MAX 레벨의 스킬을 얻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건 그거고.
‘누가 연락한 거지?’
커뮤니티 알람이 울렸던 거 같은데.
확인을 못 하겠다. 그러기에는…….
“흐아압!”
“깊숙히 찔러!”
트라할과 데하일이 가만히 있지 않았으니까.
지치지도 않나. 공격 자체는 단순한 느낌인데 계속해서 달려드니 나도 조금씩 대미지가 쌓인다. 피로도도 올라가고.
나도 문제지만 상위 헌터도 한계에 가깝다.
‘어떻게든 탈출하는 편이 낫겠는데.’
계획은 있다.
일단 놈들에게서 벗어나 상위 헌터들과 합류한 다음 무지개다리를 사용할 생각.
이동 중에는 파괴 불가이고 내가 지정하지 않은 대상은 탑승하지 못한다.
물론 외부에서 이동하는 걸 방해할 수는 있으니 일정 높이까지 이동하기 전까지는 내가 놈들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
‘차라리 그편이 편해.’
나도 그럼 목숨 걸고 행동할 수 있다. 어차피 무한 코인. 숭배자 놈들도 목이 잘리면 죽는다.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나와 달리 놈들은 죽으면 끝. 까짓것 놈들이 싹 다 죽을 때까지 계속 들이박는 것도 방법이겠지.
결정을 내렸으면 행동을 해야 하는 법.
[어스 월(A) Lv.7]
[땅굴 이동(S) Lv.7]
-콰드드득!
정면에 흙벽을 세우는 동시에 땅굴 이동을 사용했다.
애매하게 시간을 끌 바에는 다른 숭배자들 먼저 처리하는 게 어떨까 싶어서 한 행동이었으나.
“도망치게 두지는 않는다.”
데하일이 바로 방해한다.
콰앙!
땅을 내리치자 대지가 뒤집히며 내 위치가 드러난다.
무식한 녀석.
“덕춘아!”
“그에엑!”
내 외침에 덕춘이가 달려든다.
나도 혼자 싸우는 게 아니다. 킹갓 영물님과 함께하는 거지.
혼자서 돌파하기 힘들다면 같이 움직이면 그만.
-휘이이익!
힘차게 달려든 덕춘이가 그대로 손을 휘두른다.
어지간한 놈들은 일격에 목이 돌아가 버리는 뺨 때리기.
덕춘이의 덩치를 보고 얕보던 놈들은 다 죽었다.
놈 또한 적당히 몸을 때우려 했으나.
“읍?”
뺨을 맞기 직전, 전력으로 몸을 돌려 피해 냈다.
감이 좋은 녀석이군.
그런데 말이지.
“덕춘이가 한 대만 때릴 거 같냐!”
우리의 덕춘님의 무시무시함은 단순히 뺨 때리기만 있는 게 아니다.
“카악, 퉤!”
산성과 독성을 뒤섞인 침이 놈에게 닿았다.
연기와 함께 녹아드는 피부.
“크아아아아악!”
어떻게든 털어 내려 했지만 한 번 접촉한 이상 한동안은 계속될 거다.
내가 겪어 봐서 안다. 저거 엄청 아프다.
자극이 강한 만큼 놈의 움직임 또한 제한 될 터.
-촤아아아악!
신성력을 담은 검강을 휘둘렀다.
옆구리를 베인 녀석이 급히 뒤로 빠진다.
상처가 얕다. 움직임 하나는 날렵하다.
몰아붙일 때 확실히 해야 하는 법.
-콰앙!
폭발을 일으켜 가속했다.
“트라할!”
“알고 있다!”
트라할이 가공할 기세로 내게 달려든다.
여기까지 예상했다. 물론 내가 노리는 건 따로 있었지만.
[파이어(A) Lv.8]
-푸화아아아아아악!
마력을 한껏 집어넣어 광범위하게 불을 피워 올렸다.
그동안 내 폭격에 시달린 놈들인 만큼 방어 태세를 취했고.
“그엑!”
“잘했어!”
그 잠깐의 찰나, 덕춘이가 혀를 길게 뻗어 내게 달라붙었다.
그대로 턴. 은신 스킬을 사용하며 상위 헌터를 향해 내달렸다.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 덕에 시야가 막힌 상황.
눈 가리기에 불과하다. 일반적인 불길로는 놈들에게 어떠한 대미지도 입힐 수 없으니까.
견고하게 유지되던 포위망을 뚫을 수 있으면 된다.
“도망친다!”
“제길! 또 같잖은 수나 쓰다니!”
불길에 놀란 것도 잠시. 평범한 불이라는 것을 파악한 놈들이 내게 달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파이어 밤(S) Lv.10]
[파이어 밤(S) Lv.10]
[파이어 밤(S) Lv.10]
.
.
.
-콰아아아아앙!
“크아아악!”
“뒤다! 놈이 왔다!”
연달아 폭발을 일으키며 숭배자 놈들을 밀어냈다.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상위 헌터로 향하는 길을 만드는 게 목적이지.
평범한 실버급 따위는 지금의 내게는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에 불과하다.
“이블아이!”
“괜찮냐!”
만신창이인 김선혜와 김조균이 나를 반긴다.
녀석들 주위에 쓰러진 숭배자 수만 수십.
열심히 싸워 줬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위험했겠는데.’
그사이 둘만 남았다. 나머지는 전부 쓰러졌다.
기절하지 않은 이들도 있기는 했지만 서 있는 것이 고작.
망설임 없이 무지개다리를 사용했다.
가능한 멀리. 이곳에서 떨어질 수 있는 산맥 꼭대기를 향해 이어지는 무지개다리.
“부상자 데리고 타! 움직일 수 있는 놈들은 최대한 많이 데리고 가! 내가 시간을 끈다!”
내 외침에 상위 헌터들이 부상자들을 끌어안고 무지개다리를 탔다.
“놓치지 마라!”
“잡아! 잡으라고!”
“저리 꺼져!”
-콰아아아앙!
끈질기게 덤비는 놈들에게 몸을 던졌다.
나도 체력이 떨어진 만큼 모든 공격을 막아 내지는 못했다.
날카로운 뭔가가 어깨와 복부를 찌르는 것이 느껴졌다.
으득. 이를 악물며 뿌리쳤다.
[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몸을 지탱합니다!]
[절삭(S) Lv.10]
권능이 발휘되며 체력이 돌아온다.
굴하지 않는 검귀. 검술에 대한 보정치가 붙는 건 물론이요, 한계에 도달해도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힘.
괴성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들어오는 공격은 보호 스킬과 펠라인 세트를 믿고 받아 냈다.
곧 있으면 트라할과 데하일이 온다. 상위 헌터들이 빨리 움직여야 한다.
-채애애애앵!
-서걱!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고 폭발을 일으키는 타이밍.
내 의지가 통한 걸까, 김선혜와 김조균이 소리쳤다.
“부상자 다 탔어!”
“걸리적거릴 녀석들은 다 보냈으니 걱정 말라고.”
“잘했, 어?”
잠깐만.
“너희는 왜 안 갔어?”
“왜냐니? 부상자들 확실히 넘어갈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지.”
“너 혼자 버티려 했어?”
오히려 뭔 소리를 하냐며 되묻는 녀석들.
아니.
“따지지 말고 앞이나 봐.”
김선혜가 턱을 까딱인다.
어느새 트라할과 데하일이 도착했다.
“후우. 어지간히 귀찮게 구는군.”
“멍청한 놈들. 그렇게 놈들을 빼내면 무사할 줄 알았나?”
트라할이 쯧쯧, 혀를 찬다.
“방금 네놈이 보낸 놈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아나? 우리들의 본거지 중 하나다.”
“마물의 영역에 고작 우리만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허세를 부리는 거라고 믿고 싶었지만 거짓말을 하는 거 같지는 않다.
급한 대로 멀리 보이는 곳을 향해 무지개다리를 사용했더니만 놈들이 있던 곳이었나.
제기랄. 운이 없어도 더럽게 없지.
“덕분에 수고를 덜었군. 그만 포기해라.”
“지금쯤이면 이상을 감지한 부하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을 테니. 봐라.”
데하일이 산맥을 가리켰다.
녀석의 말마따나 다리가 이어진 방향으로 빛이 번쩍인다.
불길이 솟아오르고 뭔가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흐하하하하! 제법 볼만한 표정을 짓는구나!”
“크흐흐흐. 걱정 마라. 너도 곧 저렇게… 음?”
호쾌하게 웃던 놈들이 눈을 가늘게 뜬다.
나도 마찬가지.
산맥에서부터 시작된 소음과 불길이 빠르게 이쪽으로 오고 있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들리던 쇳소리와 고함 소리가 점차 분명해진다.
빈사 상태나 다를 바 없는 상위 헌터들이 저렇게 싸울 수 있나?
의문이 이어지는 찰나.
-두두두두두두!
몇 개의 인기척이 엄청난 속도로 이쪽으로 다가왔고.
-촤아아아악!
수풀이 갈라지며 4명의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아는 얼굴.
멤버들과 마그마 요정이었다.
구조 요청이 제대로 들어갔구나!
“얘들아!”
난 반가운 마음에 양손을 들었고.
“얘들아는 개뿔! 빛 보고 겨우 찾았네! 죽어! 죽어!”
“내가 아티팩트 범위 짧다고 얘기했징! 말을 안 들어!”
“하하하하! 다들 밟는 분위기니 나도 같이 밟을게!”
“오면서 숭배자들을 몇 명이나 만났는지 알아! 찾느라 개고생했다고!”
그대로 달려온 녀석들이 날 넘어트리더니 밟기 시작했다.
머리, 몸통 할 거 없이 무자비하게 들어오는 발길질.
뭐지? 도와주러 온 게 아니었나? 왜 날?
“도, 도와…….”
간절한 마음으로 손을 뻗었지만 김조균과 김선혜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