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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423화 (422/740)

423화 진짜 본거지는?

숲은 조용했다. 그래도 심층부에서는 마물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사라지거나 한 건 아니고.

“최근에 우리가 난리를 많이 피우기는 했지.”

“그에에.”

숭배자의 난입. 악마와 천사의 연합.

크고 작은 전투가 연달아 이루어진 만큼 마물 입장에서는 꽤 위협적이었을 거다.

시끄럽기도 하고, 괜히 근처에 얼쩡대다가 전투에 휘말릴 수도 있고.

터를 잡고 나서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사냥까지 해 댔으니, 그나마 남아 있던 마물들까지 자취를 감췄다.

다르게 말하면 이 구역을 벗어나 마물의 영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는 거지만.

“마물 영역도 변화가 있겠는걸.”

새로운 놈들이 몰려오면 기존에 있던 마물들이 놀라기 마련이니까.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든, 잡아먹기 위해서든 싸울 거다. 그 결과가 어떤 식으로 영향을 줄지는 나도 모르겠고.

몬스터 웨이브 같은 형태로만 안 나왔으면 좋겠다.

-스스스스스

바위가 널리 깔려 있는 지역에 진입하며 외톨이의 길을 사용했다.

인기척이 사라졌으나 조심히 움직였다. 외톨이의 길은 어디까지나 상대가 인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스킬이니까.

실제로 몸이 투명해진다든가 하는 건 아니었다. 몬스터나 마물 같은 괴물들을 상대로는 효과가 좀 떨어지기도 하고.

놈들 중에는 후각이나 특이 감각으로 적을 인지하는 경우도 많아서.

“슬슬 근처 같은데.”

처음 와 봐서 확신은 안 들지만 지도로 봤을 때는 이곳부터가 마물 영역의 경계선이다.

평소 같았으면 이쯤에서 노숙을 하든지 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미 해가 지고 있다. 숲을 비롯한 온갖 환경이 뒤엉켜 있는 곳이 심층부인 만큼 밤은 빨리 찾아왔다.

야행성 마물이 움직일 가능성도 있었으나 그건 둘째치고…….

“숭배자들의 흔적이 아직은 안 보인단 말이야.”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숭배자들의 본거지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겸사겸사 대략적인 인원과 무장 상태도 확인하고.

이곳이 본거지라면 워낙 위험한 곳에 자리를 잡았으니 보초를 서는 놈들도 있을 거다. 보초 서는 놈들 빼고는 밤이면 자겠지.

뭐가 됐든 몰래 잠입하기에는 낮보다는 밤이 낫다. 조금이라도 경계가 허술해졌을 테니까.

[야간 시야(AAA) Lv.1]

그새 깜깜해진 하늘. 스킬을 사용하자 시야가 밝아진다.

서두를 필요 없다. 천천히, 조심해서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혹시 모를 함정을 파악하기 위해 손을 내밀어 허공을 휘젓고 권능을 통해 일정 거리마다 정보를 얻는다.

반복적이고 지루한 작업이었으나.

-사아아

‘뭐가 있군.’

덕분에 놈들이 쳐 놓은 경계 장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꽤 고전적인 방법. 팽팽하게 당겨진 투명한 줄이 나무와 나무 사이에 이어져 있다.

그 끝에 설치된 건 마나석으로 만든 폭탄.

싸구려로 만든 거라 위력은 별로지만 꽤 요란하게 터질 거다. 그거면 충분하다. 난 혼자고 이상을 감지한 숭배자들은 떼거리로 올 테니.

스킬뿐만 아니라 아날로그적인 방법도 같이 쓰고 있는 거로 봐서는…….

‘제대로 찾아온 게 맞군.’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대비를 하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

툭. 줄을 끊었다. 폭탄 상태를 봤을 때 방치해 둔 것도 아니다. 애초에 밤에 설치하는 방범 장치는 낮이 되면 회수가 기본이다.

놈들의 본거지 중 하나를 확인한 거까지는 좋은데.

‘살짝 좀 걸리는 부분이 있어.’

이곳은 마물의 영역 경계선. 이런 요란한 물건을 쓰면 침입자를 막는 건 좋을지 몰라도 마물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을 텐데.

당장 나도 생각해 낼 수 있는 걸 놈들이라고 모를까.

이유가 있을 거다. 난 그 이유를 찾아내면 되고.

-톡톡

덕춘이가 내 어깨를 두드린다.

한쪽을 가리키는 녀석.

미세하지만 인기척이 느껴진다.

자세를 낮추고 접근했다.

“이렇게까지 준비하는 건 또 오랜만이군.”

“그야 최근에는 이곳까지 온 놈들이 없었잖아. 등반가 놈들, 곱게 죽어서 밖으로 나갈 것이지.”

“그래도 덕분에 심심하지는 않잖아?”

“차라리 심심한 게 낫지. 이번에는 죽을 수도 있다고.”

떠들면서 순찰을 돌고 있는 놈들.

2명이 한 조. 악마와 천사로 이루어져 있다.

권능을 발휘했다.

[지니]

-탑 숭배자.

-브론즈 등급입니다.

-유헤다를 따르는 천사, 펠의 수하입니다.

[레테]

-탑 숭배자.

-브론즈 등급입니다.

-연옥의 왕, 트라할의 수하입니다.

눈을 찌푸렸다.

브론즈 등급인 건 알겠다. 이번 시나리오가 이상하리만치 실버 등급이 많지만 모든 구성원이 실버 등급일 리는 없으니까.

낮은 등급의 숭배자들이 불침번이나 허드렛일을 할 거 같았다. 이놈들도 등급에 따른 대우가 확실한 집단이라서.

신경 쓰이는 건 악마 녀석에게 보인 정보.

‘연옥의 왕, 트라할이라.’

나도 안다. 숭배자라고 다 같은 마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걸.

세력이 나뉘어 있고, 내가 알고 있는 골드 등급인 유헤다와 데이본드도 각자의 세력을 가지고 있다.

또 모른다. 놈들도 본인들보다 높은 등급, 다이아 등급 숭배자들의 부하일지.

그거야 나중에 알면 되니까 패스하더라도.

‘연옥의 왕이라고 한다면 그거야. 연옥계가 멸망하기 전에 연옥을 통일했던 악마.’

설마 시나리오의 배경이 되는 세계관과 직접적으로 연관 있는 놈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생각해 보면 의심할 부분은 있었다.

숭배자들이 다른 악마들과 천사들의 눈에 띄지 않고 심층부에 자리를 틀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뭐긴 뭐야. 악마들 이상으로 연옥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놈이 있었다는 거지.

이걸 이제야 눈치채다니.

쯧. 속으로 작게 혀를 차며 놈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움직이는 방향으로 봐서는 마물의 영역 직전까지 움직이는 거 같다.

불침번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 그들이 왔던 방향으로 이동했다.

한번 순찰을 돌았으니 다음 순번이 오기까지는 텀이 있을 터.

불침번이 움직인 경로에는 함정이 없을 테니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난 빠르게 움직였고.

‘찾았다.’

오래지 않아 놈들의 근거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침입자를 경계하기 위함인지 비교적 높은 고지에 자리 잡은 방벽.

이쪽 방향에서 전체를 보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옆으로 빙 돌아 산을 탔다.

어느 정도 위로 올라오자 보인 광경은…….

“예상보다 더 큰데.”

“그에에.”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요새였다.

구조 자체는 단순하다. 빙 둘린 울타리. 내부 막사로 보이는 건물이 네다섯 개.

전부 숙소는 아닐 테니 물자창고나 조리시설, 회의실 등이 섞인 걸 감안하더라도.

“500명은 머물 수 있겠는걸.”

너무 많다. 당장 천족과 악마들을 모두 합친 우리 전력이 300명이 안 된다.

500은 300의 2배 가까이 되는 숫자. 여기 말고도 놈들의 본거지로 의심되는 곳이 2개 더 있다.

그곳도 만약 이곳과 같은 수준이라면 말도 안 되는 전력이 대기 중이라는 뜻.

얼른 돌아가 이 사실을…….

“잠깐만.”

이상한데?

숭배자가 한 층에 그렇게 많이 있을 수는 있다. 없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단순한 내 바람으로 숭배자가 적기를 바랄 정도로 난 멍청하지 않다.

미심쩍은 건 다른 부분.

그 정도로 규모가 컸다면 진작에 우리를 공격했으면 됐다. 다른 챕터라면 몰라도 이번 챕터는 연옥계의 주인을 가리는 장이다.

우리 빛과 어둠의 탈모블, 그냥 우리 무리와 숭배자 무리가 정식으로 경쟁 상대로 지정된 거라면 시스템 제약 없이 덤빌 수 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건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거다.

눈을 가늘게 떴다. 마력이 운용되며 시야가 한층 뚜렷해진다.

모닥불 근처에 모여 있는 불침번들. 불이 꺼진 막사.

이어 권능까지 사용해 자세히 살핀 결과 진실을 알 수 있었다.

“비어 있어.”

더 거대한 규모의 요새에는 병력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불침번을 설 인력만 남기고 텅 비어 있다.

그저 야영지 규모를 비정상적으로 크게 잡은 빈껍데기.

거기에 하나 더.

“이쪽이 아니야.”

불침번을 교대하는 루트가 이상하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막사에서 자고 있는 인원과 교대를 해야 했지만 이놈들은 외부에서 들어온 인원들과 교대하고 있다.

겉보기용 요새. 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진짜 놈들의 본거지는?

“마물의 영역.”

산맥 너머, 마물들의 보금자리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내가 맨 처음 마주쳤던 녀석들. 그놈들은 순찰을 나선 게 아니었다.

순찰을 마치고 본진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거지.

어떻게 할까.

돌아갈까 아니면 마물의 영역까지 들어갈까.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구름에 낀 달이 희미한 빛을 내뿜는다.

날은 여전히 어두웠고 밤은 길다.

그리고 난.

[칭호, 밤을 부르는 자가 요동칩니다.]

밤에 강했다.

그래도 말은 해 두는 게 좋겠지.

냥펀에게 받은 GPS 아티팩트를 땅에 박고 커뮤니티를 켰다.

[쁘띠공듀]: 저는 간악한 숭배자 무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마물의 영역으로 갑니닷! 뿅☆

* * *

빛과 어둠의 탈모블아이 파티의 진영.

1차 수색을 나섰던 탈모맨이 돌아오고 각 부대를 재편성한 핥짝이가 일과를 마치고 공동 회의실로 들어왔다.

이미 안에 있던 냥펀과 마그마 요정이 전략 테이블에 앉아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으아아. 죽겠다. 악마 놈들은 무슨 생각으로 부대를 이렇게 짠 거야.”

“왜? 악마들 좋던데. 일단 하고 보는 게 아주 좋아! 하하하하하!”

“그게 문제라고 탈모 자식아.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 봐야 알아.”

“너, 바보구나? 그런 건 안 먹어도 알 수 있어!”

“…됐다. 왠지 빡치는데 더 말해 봤자 나만 골 아프지.”

피곤한지 의자에 늘어지는 핥짝이와 탐색을 마친 성과를 말해 주는 탈모맨.

“지도에 표시된 것 중에 오류가 살짝 있기는 한데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니더라. 미개척 지역도 한 바퀴 둘러보고 왔지.”

“잘했노라. 내 친히 그 공로를 높이 사 먹다 남은 쿠키를 주지. 얼른 업데이트한 지도를 넘기도록.”

“예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넙죽 냥펀에게 쿠키를 받아 간 탈모맨이 지도를 건넨다.

아티팩트를 사용해 회의실의 대형 지도와 연결, 업데이트를 진행하자 보다 구체적이고 넓은 면적의 지도가 완성된다.

“이 정도면 심층부의 42퍼센트 정도는 완성됐다고 봐야겠군.”

“아! 그거 내 건데!”

“뭐, 이 씨.”

자연스럽게 탈모맨의 쿠키를 뺏어 먹은 핥짝이가 간략한 평가를 내렸다.

악마들이 있는 구역은 거의 다 완성되었고, 중립지역과 숭배자들이 있는 구역도 대략적인 관측이 끝났다.

그럼에도 완성도가 절반도 되지 않는 이유는 하나.

“저쪽은 아예 모르겠지만 말이징.”

악마들도 들어가기를 꺼리는 곳, 마물의 영역. 그곳에 대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크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구역.

상식적으로 이용하기 힘든 곳이었다. 득보다 실이 많았으니까.

“저기 깜빡이는 게 이블아이가 있는 곳?”

“맞아. C 포인트 근처까지 갔넹.”

숭배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구역은 3곳. 각각 A, B, C 포인트로 부르기로 한 냥펀이었다.

밤이 되었지만 아무도 침실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여전히 이블아이는 작전 수행 중이었고, 멤버들은 혹시 모를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지원을 나설 생각이었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지루한 것은 사실.

“마그마 요정아, 루키 쪽은 뭐래?”

테이블에 엎어졌던 핥짝이가 마그마 요정에게 물었다.

냥펀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으나 탈모맨과 핥짝이는 아니었다.

“뭔가 일이 터진 거 같아. 연락이 중간에 끊겼어. 계속 시도하기는 했는데 붉은 수정이라는 말을 끝으로 아예 반응이 없네.”

“붉은 수정? 탈모맨, 돌아다니면서 그런 거 본 거 있냐?”

“붉은 바위는 본 적 있는데. 서쪽으로 가면 암석지대 하나 있어.”

“일단 그쪽은 아니겠네. 악마나 천사들한테 물어봐야겠다. 게네들은 뭐라도 좀 알겠지.”

핥짝이가 붉은 수정에 대해 묻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엇? 공블아이 움직인당.”

냥펀이 지도를 가리켰고.

“메시지도 보냈는데?”

탈모맨이 커뮤니티를 확인했다.

잠깐의 정적. 조용히 멤버들이 지도와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도 잠시.

“아, 또 뭔 사고를 치려고!”

“공블아이 돌아왕! 그쪽까지는 위치 수신 안 된단 말야!”

“아하하하! 역시 이블아이야! 행동력이 좋아!”

멤버들은 새로운 문제가 생길 것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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