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422화 (421/740)

422화 접근하다

70층대 마지막 시나리오. 대미를 장식할 세 번째 챕터.

이번 챕터의 제목은 ‘연옥계의 주인’이다. 앞으로 벌어질 일과 해야 할 일을 명확히 보여 줬다.

숭배자들과 우리들. 두 세력 중 하나는 사라져야 한다는 뜻인데.

‘중요한 건 따로 있어.’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싸우기는 해야 한다.

그 결과가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가 문제지.

단순히 층을 클리어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고, 그에 따른 추가 혼돈 수치와 보상을 챙겨야 하는 게 중요하지.

80층에 올라가기 위한 조건을 충족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부분이야 적어도 우리 멤버들은 문제없으니 그나마 마음이 놓이는데…….

“상위 헌터들이 어떻게 나올지가 신경 쓰인단 말이지.”

못해도 79층에 몇 년은 갇혀 있었을 거다.

그럼에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건 80층에 올라가고 싶은 욕망이 크다는 걸 의미한다.

막말로 늦게 들어온 우리가 먼저 위로 향하려고 한다면 눈이 돌아가서 덤빌지도 모른다는 것.

사람이 질투에 눈이 멀면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기 마련 아니던가.

어디까지나 탑을 오르며 생긴 인간 불신에 근거한 생각이기는 하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이번 시나리오는 깔끔하게 숭배자들을 빠르게 무너트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자.

그렇다고 급하게 행동할 거는 없고 변수를 최대한 줄인 이후에 실행하자.

난간을 잡은 손에서 힘을 뺐다.

천사와 악마로 이루어진 수백의 무리. 객관적으로 봐도 훌륭한 전력이다. 조금은 여유를 가져 보자.

“당장 서두를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마그마 요정이 말한 그 사람도 만나 봐야 하고.”

“기억이 생기기는 했지만 직접 확인해 보는 편이 좋겠지.”

“우선 심층부 개척 지도부터 봐 볼깡. 후후. 이쪽으로는 내가 전문가지! 물자 목록도 봐야겠당.”

맞네. 냥펀은 제2 천계에서 전쟁 물자를 관리했었으니까 지도 보고 루트 짜는 건 잘할 거다.

“그럼 답사는 내가 하면 되겠군! 산악 구보는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탐색과 수색, 실제 지형을 탐사하는 건 탈모맨이 맡기로 했다.

특임대 출신인 만큼 이 분야는 우리 중 가장 전문가다.

핥짝이는…….

“전투 편제 좀 확인해 봐야겠네. 천사들 특성은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고칠 부분 있으면 고쳐 줘야지.”

내부적인 부분을 관리하기로 했다. 엘리트 체육인 출신이라 그런지, 아니면 타고난 성격이 그런 건지는 몰라도 리더십이 있으니까. 밑에 애들도 잘 챙겨 주고.

제2 천계에서도 그 능력으로 하인들을 다 사로잡았지. 군대로 팔려 가서도 한 자리 차지하고.

“난 루키 그룹 김조균이랑 접선해 볼게. 이야기는 미리 나누었지만 실제로 만나는 건 다를 수 있으니까.”

“그쪽은 너한테 맡길게.”

마그마 요정은 루키 그룹의 김조균과 연락하기로 했다.

유일하게 커넥션이 있는 상위 헌터인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해 줄 거다.

각자 맡은 바 임무를 다하기 위해 움직이는 상황.

“야야, 넌 뭐 할 거냐? 설마 뒹굴뒹굴하려는 거 아니지? 그렇다고 말해 보시지.”

멈칫 자리에 선 핥짝이가 내 머리통을 잡는다.

배구 선수였어서 그런가 악력이 무슨.

말 한번 잘못하면 바로 핥을 기세다.

“나, 나도 할 일 있거든?”

“어떤 거.”

어떤 거냐니. 사실 대부분의 일은 다 나뉘어서 마땅한 게 없는데.

어… 뭐 하지?

“응원단장?”

-꾸우우우욱

“하하하! 농담! 농담이지!”

핥짝이가 손에 힘을 주니 머리가 터질 거 같다.

할 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나도 나름 생각해 둔 게 있다.

“숭배자들이 있는 곳에 들어갔다 올 거야.”

“뭐?”

“얘들이 대략적으로 위치를 파악했다고는 하지만 숭배자가 얼마나 있는지는 아직 파악 못 했다고.”

심층부는 넓다. 그중에는 마물이 모여 있어서 터를 잡기 힘든 곳도 있었고, 지형 자체가 본부를 차리기에 부적합한 곳도 있었다.

관측된 숭배자들의 이동 경로를 확인해 대략 어느 곳에 자리를 잡았을 거라고 추측만 한 상태.

그 규모도 짐작으로 몇 명이 있을 거라고 추측한 게 전부다.

워낙 은밀하게 움직이는 놈들이다 보니 실제로 몇 명이나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

‘백터의 말대로 심층부 외부에 있던 놈들도 들어왔다고 하니 우리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많을 수도 있단 말이지.’

우리가 하려는 건 전쟁이다.

어느 한쪽도 물러날 수 없는 전쟁.

어림짐작으로 판단한 적의 전력을 믿고 움직이는 건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는 말.

“그나마 여기서 은신 스킬 쓰는 사람은 나밖에 없잖아?”

“그건 맞지.”

전투에 있어서는 다들 한가락 했지만, 적진에 스며들어 정보를 캐 오는 데 적합한 스킬이나 권능은 가지고 있진 않다.

난 은신 스킬도 있고, 권능으로 정보도 모을 수 있다.

“수틀리면 탈출할 능력도 있고.”

“으음, 도망치는 게 빠르긴 해.”

땅굴 이동을 쓰든, 파이어 밤으로 날든, 무지개다리로 이동하든.

적어도 나 한 명 빠져나오는 건 문제 없었다.

게다가.

‘정말 일이 틀어져서 잡히더라도 난 코인이 무한이야.’

최악의 경우를 가정했을 때 코인이 제한되어 있는 녀석들보다는 내가 잡히는 게 나았다.

물론 이 부분은 말할 수 없지만. 망할 히든 퀘스트 제약 때문에 무한 코인의 정체를 알게 된 대상에게는 페널티가 부여되니까.

속말을 삼키고 장비를 챙겼다. 무장은 이미 한 상태.

심층부에서 활동한 악마들과 중립 지대에서 살아온 천사들의 정보를 토대로 만든 지도를 챙겨 테이블에 펼쳤다.

“놈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곳은 3개.”

심층부 외곽에 하나, 중립지대에서 살짝 벗어난 쪽이 하나, 마물이 몰려 있는 경계선 쪽에 하나.

그중 마물이 몰려 있는 곳을 짚었다.

“이쪽이 그나마 가장 가까워. 규모로 봤을 때 가장 많은 숭배자가 있을 가능성이 크고. 한마디로 놈들의 본진일 거라는 말이지.”

“일이 생기면 우리 쪽에서 지원해 줄 수도 있겠군.”

“그치. 그럴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말이야. 놈들도 우리가 있는 곳을 알게 될 테니.”

적의 위치를 먼저 파악하는 건 아주 중요하다.

상대방이 대비하기 전에 기습을 할 수도 있으니까.

특히나 우리는 현재 모든 전력이 한 공간에 모여 있다.

그로 인해 생기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반대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을 경우 한 번에 전멸할 수도 있다는 것.

“좋아. 다들 할 일은 정해진 거 같네.”

“아, 공블아이. 이거 가져강.”

냥펀이 주섬주섬 뭔가를 꺼낸다.

끝이 뾰족한 말뚝 같은 아이템. 딱 봐도 땅에 꽂게 생겼다.

그런 물건이 5개.

“GPS 비슷한 아이템이야. 이걸 꽂으면 그 위치가 연동한 지도에 떠.”

건물 내부에 있는 대형 지도를 가리킨 냥펀이 아이템을 활성화시킨다.

점 5개가 지도에 깜빡인다. 우리가 있는 위치.

“이런 좋은 게 있었다고?”

“그거 은근 비싼 물건이라구. 범위도 그리 넓지 않으면서 말이지! 내구도도 좀 구려서 적들한테 발견되면 바로 파괴할걸? 안 보이는 데다가 박앙.”

여러 제한이 있기는 했지만 유용한 아이템인 건 분명하다.

단순히 위치 표시하는 데만 쓸 게 아니라.

“만약에 진짜 위험하다 싶으면 한 번에 다 부숴. 그럼 마지막에 표시됐던 곳으로 갈겡!”

“알았어.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부순다.”

“응응. 그거 하나에 10,000포인트인 거 알아두고. 다 합치면 50,000포인트야. 그냥 그렇다구.”

“어, 그래. 알겠으니까 이제 좀 줄래?”

아티팩트를 꼭 쥐고 있던 냥펀이 미련 어린 눈으로 넘겨 준다.

가능하면 부수지 말아야겠군. 물론 도움이 필요하면 망설임 없이 부술 거지만.

아무튼 이걸로 준비는 끝났고.

“바로 시작하지. 갔다 올게.”

“조심히 갔다오구!”

“올 때 맛있는 거 챙겨 와!”

“사고 치지 마라!”

멤버들의 배웅을 받으며 난간을 타 넘었다.

타악. 부드럽게 바닥에 착지한 후 숲으로 달려 나가며 지도를 살폈다.

마물 영역의 경계.

그 옆으로 깨알 같은 글씨로 정보가 적혀 있다.

“기본 10급 이상의 마물들이 출현한다라. 실수로라도 영역 안으로 들어가면 귀찮아지겠군.”

“그에에에.”

10급 정도면 어렵지 않게 해치울 수 있지만 그 이상의 몬스터가 우르르 몰려들면 여러모로 짜증 날 거다.

심층부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마물의 영역.

한때 심층부를 차지하고 있던 메피스토와 그리가도 이쪽에는 오지 않았다고 한다.

마계에서도 보기 힘든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라나.

괜찮다. 내가 갈 곳은 영역 내부가 아니라 경계선이니까.

“부지런히 움직이면 해지기 전까지는 도착하겠군.”

파악!

힘차게 땅을 박찼다.

* * *

탑 숭배자 본거지.

연옥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숭배자들이 심층부에 모였다.

천사, 악마 할 거 없이 모여 있는 만큼 문제가 생길 법도 했으나 의외로 그러지는 않았다.

같은 숭배자라 하더라도 세력이 나뉘어져 있었고, 각 세력의 대표격이 되는 인물들이 집단을 운영하고 있었다.

3명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외부에 있던 인원들은 전부 들어왔군요.”

“중심부를 완전히 놓는 거나 다를바 없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감수해야지.”

“맞는 말이다. 전례 없는 규모의 무리가 만들어졌어.”

오랫동안 79층에 머물렀던 만큼 숭배자들은 그동안 이곳에 도착한 등반가가 이룬 무리를 수없이 봐 왔다.

그중에는 제법 그럴싸한 무리를 일군 자도 있었고, 별다른 세력 없이 홀로 움직이는 자도 있었다.

천족들을 규합해 악마들과 맞선 이는 물론이고, 아예 심층부에 들어오지도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게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면…….

“이번에도 우리가 놈들을 와해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군.”

결과적으로 숭배자의 개입으로 연옥의 주인이 되지 못했다는 것.

심층부에 들어오지 않거나 홀로 움직이던 이들은 건들지 않았다. 그냥 놔두기만 해도 되니까.

집중적으로 노린 건 일정 규모 이상의 무리를 이룬 자들.

숭배자는 천사와 악마들로 이루어진 만큼 상대 무리에 침투해 분열을 일으키고 함정에 빠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놈들 내부에 침투하는 건 불가능해. 우리의 정체를 알아보는 놈이 있다.”

“천사랑 악마들이 섞여 있어 교란시키는 것도 불가능해요.”

“인원부터가 너무 많다. 꼴에 단합력도 좋더군.”

천사와 악마를 모두 합쳐 규모가 너무 컸다.

숭배자들 또한 적은 수는 아니었지만 이블아이의 무리에 비하면 적었다.

스파이를 넣을 수도 없으며, 억지로 넣더라도 바로 발각되는 상황.

여러모로 불편한 상황.

“윗분들께서는 뭐라고 하던가?”

“데이본드 님께서는 이미 축복을 내려주셨다. 멍청한 놈이 제대로 받기도 전에 죽어 버렸지만.”

79층 숭배자들을 관리하는 3명의 대표 중 하나, 악마 데하일이 얼굴을 찡그렸다.

“유헤다 님은 잠시 자리를 비우셨어요. 따로 할 일이 있으시다는군요.”

유헤다를 모시는 천사, 펠 역시 고개를 저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별다른 도움은 받을 수 없다는 것.

남은 이는 한 명이었다. 연옥계 출신의 악마. 둘과 달리 모시는 골드 등급은 없었지만 연옥계 출신을 바탕으로 자체적인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골드 등급의 총애를 받는 데하일과 펠조차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의 세력을.

이유는 하나.

“별 수 없군. 부족하면 만들어야지.”

연옥계 출신의 악마, 트라할은 한때 연옥계의 왕이었다.

당시 그를 따르던 이들은 숭배자가 되었으며, 탑에 들어오고 나서도 그 영향력은 여전했다.

또한 연옥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기도 했다.

“놈들을 꼬드겨야겠어, 79층에 고여 있는 멍청이들. 달콤한 미끼를 뿌리면 독인 줄 알고도 먹겠지.”

이블아이의 무리가 파악하지 못한 상위 헌터들의 보금자리 또한 그는 알고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