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421화 (420/740)

421화 79층

대기실에서 보여 주는 동영상.

챕터가 넘어가며 진행되는 일들을 간략하게나마 보여주는 작업이었고, 그 안에서 알지 못했던 정보를 얻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다음 챕터를 위해서라도 집중해서 보고 있었는데…….

“마그마 요정이 도움을 받을 사람이 있다던 게 이런 거였나.”

“그에에.”

화면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인물들이 보였다.

악마? 천사? 그런 게 아니다.

“상위층 헌터들.”

우리보다 먼저 탑을 오르고 있었던 상위층 헌터들의 모습이었다.

잘못 본 건가 싶기도 했으나 다시 봐도 등반가가 맞다.

일단 외형부터가 사람이다.

물론 천사와 악마 중에도 사람과 똑 닮은 녀석들이 있기는 한데.

“그렇다 치더라도 상점창을 쓰는 건 말이 안 되지.”

찰나의 순간이지만 분명히 봤다. 한데 뭉쳐 있는 사람들이 허공에서 음식을 꺼내는 것을.

아공간 아이템이나 인벤토리를 썼을 가능성도 있으나 그렇다 한들 저렇게 멀쩡한 음식이 나타나는 건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번 시나리오가 진행되는 곳은 연옥계. 악마와 천사, 마물이 뒤섞인 동네였고 제대로 된 요리 기구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애초에 악마 놈들은 노숙이 일상이고, 몬스터 고기를 익히지도 않고 뜯어 먹는다. 요리한다 하더라도 굽거나 삶는 정도가 전부.

아직 연옥계의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만큼 언제 이동할지 모르니 전투 장비도 아닌 요리 기구를 들고 다닐 여유가 없다.

“천족이야 숨어다니니 더더욱 그럴 일 없고.”

악마들한테 들키며 공격당할 텐데 함부로 불을 피운다? 그 정도로 조심성이 없었으면 진작에 전멸했다.

즉,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 여건 자체가 안 된다는 말.

나야 요리 스킬도 있고, 소화 스킬도 있으니 몬스터를 재료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지만 다른 등반가들은 아니다.

독 내성이 있더라도 천천히 중독되어 죽으니까.

사람인 이상 밥은 먹어야 했고, 등반가 대부분은 상점창에서 식량을 구매했다.

여기까지는 오케이.

마그마 요정도 말했다시피 이번 시나리오에 상위층 헌터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그 수가 예상보다 많았을 뿐.

“화면에 보인 것만 10명 정도 되는 거 같았단 말이지.”

“그에에.”

지금이야 내가 뿌린 공략 덕에 많은 사람이 70층을 넘어 공략을 도전하고 있었으나 우리보다 먼저 탑을 오른 이들은 아니다.

보송송이도 말하지 않았던가. 많아 봐야 50명 좀 넘을 거 같다고.

10명이면 상위 헌터 중 20퍼센트에 해당하는 인원이다. 화면에 보이지 않은 이들까지 합치면 더 늘어나겠지.

그만큼 많은 상위 헌터들이 79층에 몰려 있다는 건데.

“다들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군.”

이유는 간단했다.

80층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모든 스테이터스 스텟을 999까지 찍어야 한다.

이전까지 70층대는 얌전히 앉아만 있어도 시나리오가 진행됐다.

살아만 있으면 별다른 문제 없이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

다만 그렇게 한다면 혼돈 수치는 물론이고 성장 자체가 늦어진다.

어떻게 보면 도전 없이 날림으로 위로 올라간 이들이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보면 됐는데.

‘이게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모르겠어.’

썩 좋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은 여기까지.

[79층으로 전송됩니다.]

-우우우우웅

전송 마법진이 활성화되었으니까.

70층대 마지막 챕터. 80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

“가자.”

-파아아아아앗!

환한 빛과 함께 시야가 바뀌었다.

* * *

실내다. 나무로 만들어진 방.

흙냄새와 나무 냄새가 느껴지는 것이 나쁘지 않다.

유리 없는 창문을 통해 보인 것은 심층부 숲.

[79층]

[챕터Ⅲ-연옥계의 주인]

친절하기도 하지. 웬일로 챕터 이름을 곱게 말해 준다.

그다지 숨길 만한 내용이 아니라는 거겠지. 지금까지 진행으로 봤을 때 저거 말고는 없으니까.

시나리오 콘셉트 자체가 연옥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기도 했고.

“오옹! 공블아이!”

“냥펀, 다른 애들은?”

“몰랑. 어디서 뻘짓 하고 있지 않을까?”

같은 곳으로 떨어졌는지 냥펀이 나를 반긴다.

녀석이랑 함께 있는 거로 봐서는 천족 무리와 악마 무리가 잘 섞인 거 같다.

다른 멤버들도 근처에 있겠지.

“뻘짓이라니, 난 그런 거 안 하거든?”

“그럼 그럼, 진중하고 침착한 사람이 바로 나지.”

“어? 너, 뭐 떨궜다.”

“어디.”

“저기, 네 양심.”

역시나, 문이 열리더니 핥짝이와 탈모맨이 걸어왔다.

게다가.

“으으. 천족 놈들! 다시는 믿나 봐라!”

마그마 요정까지.

속고 있었다는 배신감 때문인지 부르르 몸을 떤다.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지 갑옷 사이로 뚝뚝 용암이 떨어지는 게 근처에 가고 싶지는…….

-와락!

“얘들아, 미안해! 나도 게네들이 숭배자인지 몰랐다고. 도와줘서 땡큐!”

“으아아앙! 용암 묻는다!”

“나, 난 왜!”

-치이이이익

다짜고짜 나와 냥펀을 안아 버리는 마그마 요정.

냥펀이 비명을 지르고, 핥짝이와 탈모맨은 혹여나 자신에게도 올까 거리를 벌린다.

“그, 알겠으니. 좀 떨어져 줄래?”

“놔랏! 얍얍!”

재빠른 손놀림으로 마그마 요정의 투구를 내리친 냥펀이 빠져나간다.

저게 바로 냥냥펀치인가, 닉값 하네.

아무튼.

“이렇게 뭉치게 됐으니 잘해 보자고.”

“이 멤버면 정예지.”

“맞는 말이얌. 내 안전을 위해 힘쓰도록!”

솔직히 말해 멤버들과 마그마 요정까지 합세한 이상 대부분의 위험은 감당할 수 있을 거 같다.

이미 동층대 헌터들과 비교하면 최상위권인 인원들이니까.

그래도 방심하지는 말자. 이곳에도 상위 헌터들이 있으니.

80층에 오르지 못한 걸로 봐서 문제가 있는 건 맞겠지만 얕볼 수는 없다.

애초에 이번 시나리오는 등반가를 엿 먹일 준비가 되어 있던 곳이라.

‘다른 스텟이 999점을 달성했더라도 신성력이나 마기 스텟이 부족해서 못 넘어갔을 수도 있어.’

진영이 정해지는 것과 동시에 강제로 신규 스텟이 생성되니 등반가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다.

새로운 힘이 생겨서 좋기는 하지만 그 대가로 갇힌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런 의미에서…….

“다들 대기실에 봤지? 이번 층에는 다른 등반가들도 있어.”

“아, 그 옹기종기 모여 있던 애들? 열댓 명 정도 있던데.”

핥짝이도 그들이 상위 헌터인 걸 눈치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눈치가 빠르다니까.

상위 헌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인지 마그마 요정의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흠흠! 이번에는 내가 도움이 될 수 있겠군. 대기실에서도 말했었지만 79층에는 날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말씀!”

“오오오오!”

냥펀이 눈빛을 빛내며 박수를 친다.

“그때 말했던 산군 소속 헌터 말하는 거지? 루키 그룹에 있다는 놈.”

“맞아. 요정 클럽에서 협조를 요청했으니 윈윈이지. 그 사람도 우리가 있으면 좋은 점이 많을 테니까.”

좋은 소식이기는 하다. 어찌 됐든 우리는 이제 막 올라온 참이니까.

먼저 올리어와 있던 만큼 이곳 상황에 대해서도 잘 알겠지.

[챕터 진행에 따른 기억이 생성됩니다.]

-파지지지직

메시지와 함께 두통이 찾아왔다.

이제는 익숙한 현상.

세 번째 챕터로 넘어오면 진행된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메피스토의 무리도 흡수했군.”

“천족이랑도 잘 섞인 듯?”

“살짝 마찰이 있던 거 같기는 한데 큰 문제는 없어 보이네.”

예상했던 대로 악마 무리와 천사무리는 별 탈 없이 융화됐다.

무지개단도 그렇고, 탈모맨이 이끌던 녀석들도 그렇고 우리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니까.

규율부터가 천족과 싸우지 말라는 거 아니었던가. 반발은 없었다.

이해할 수 없다며 메피스토 쪽 악마 몇 놈이 들고일어나기는 했지만 워낙 전력 차이가 커서 금방 제압됐다.

굳이 위험 부담을 안고 갈 생각은 없었기에 불만 있는 놈들은 퇴출한 상태.

천족들 역시 핥짝이와 냥펀이 꽉 잡고 있어서 문제없었다.

처음에는 경계심을 가졌지만 무지개단 특유의 얼빵함 덕에 지금은 좀 누그러진 상황.

‘백터의 역할도 컸지.’

심층부로 들어온 백터도 합류했다. 중요한 건 녀석의 연인이 천사라는 것.

그 모습을 본 천족들이 조금 더 마음을 열었다. 백터 역시 천사와 악마들이 함께 있는 걸 보고 크게 기뻐했고.

전대미문의 악마와 천사의 연합체.

이름하야.

“…빛과 어둠의 탈모블아이 파티.”

이거 어떤 놈이 지은 거냐.

이름이 긴 건 둘째치고 왜 이딴.

“히히하학!”

“왜 탈모‘발’아이가 아니죠? 이름이 잘못됐네!”

“와! 탈모블! 탈모블!”

웃어 젖히는 녀석들. 화가 난다.

절로 쥐어진 주먹을 떨었지만 심호흡을 하며 진정했다.

여기서 말려든다면 놀리면 더 놀렸지 그만두지는 않을 터.

[정신 보호(SSS) Lv.10]

정신 보호가 있는 이상 이 정도의 정신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빠르게 주제를 바꾸자.

“다들 스텟은 어떻게 됐어. 알겠지만 80층에 올라가려면 모든 스텟이 999점에 도달해야 해. 탈모맨이야 문제없겠지만 너희는 아직 신성력이 부족할 거 같은데.”

우리 쪽 상황도 객관적으로 판단해 놔야 한다.

탈모맨은 킬더레스의 계승자가 되면서 일찍 신성력과 마기를 얻었다. 지금쯤이면 충분히 스텟을 쌓았을 터.

나 역시 무지개단과 함께 활동하면 마기 스텟을 상당히 모았다.

스테이터스를 확인해 본 결과.

‘힘, 민첩, 체력, 마력은 문제없어. 신성력도.’

힘과 신성력은 900대 극 후반.

민첩, 체력, 마력은 999스텟을 달성했다.

마기 또한 챕터가 진행되면서 올랐는지 900대에 들어섰다.

이 정도면 무난하게 80층에 오를 조건을 채울 수 있다.

중요한 문제라 그런지 자연스럽게 자신의 스텟을 확인한 이들이 반응을 보인다.

“난 다 채운 듯?”

탈모맨은 오케이.

“신성력 빼면 금방 채울 거 같은데. 천족이랑 뒹굴면서 모으긴 했는데 아직 800대야.”

“나도 비슷행!”

핥짝이와 냥펀은 신성력이 문제다. 800대가 결코 낮은 점수는 아니지만 앞으로 100점 이상 더 모아야 한다는 뜻이니.

이건 내가 어떻게든 도와줄 수 있을 거다. 일단은 성자 칭호를 가지고 있으니까. 편법이든 뭐든 사용할 수 있겠지.

“다들 높네? 나도 신성력인데 영약을 먹긴 했어도 좀 부족해서. 이제 700대 좀 넘어.”

“다른 스텟은?”

“대기실에서 보낸 시간이 있는데 다 채웠지.”

하기야 우리보다 먼저 올라왔으니 어떤 식으로든 기본 스텟은 채웠을 거다.

전반적으로 양호하다.

적어도 우리는 스텟으로 인한 문제가 없을 거 같으니 무사히 챕터를 마무리하는 걸 목표로 하면 될 거 같다.

“여기 다 모여 있으셨습니까?”

“혹시 저희 몰래 맛있는 거 드시는 건 아니겠지요? 설마 천하의 이블아이 님이 그런 얄팍하고 비겁한 짓을 벌일 리 없을 겁니다!”

“이 똥멍처이들을 아직도 데리고 다니더군, 이블아이.”

대략적으로 상황을 확인한 타이밍, 악마 3명이 다가왔다.

루나르와 후렌 키아노, 백터.

“잠시 회의를 좀 할까 해서 모여 있었지.”

“그렇군요! 하기야 숭배자 그 간악한 무리들을 처치하려면 그러셔야지요!”

고개를 끄덕인 루나르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현재 심층부를 나누는 두 세력은 우리와 숭배자들.

“마침 준비가 끝났습니다. 놈들의 위치도 대략적으로 파악해 놨죠.”

“천족들과 협조해 각 조별로 인원 배치를 마쳤습니다요.”

놈들의 설명을 들으며 걸어 나갔다.

세력이 커지며 인원이 늘었기에 우리가 있는 곳은 요새화되어 있었다.

우리가 있던 곳도 요새화된 건물의 내부.

악마들의 안내를 받아 나온 곳은 테라스였다. 시야가 탁 트이며 수많은 악마와 천사들이 보였다.

경비를 서는 놈들과 식사를 준비하는 녀석들.

장비를 점검하고 훈련을 하는 이들 역시 적지 않았으며, 어디서 길들인 건지 마물을 타고 있는 놈도 보였다.

그 수가 어림잡아도 수백 단위.

“명령만 내리시면 언제든지 출격할 수 있습니다.”

후렌 키아노가 참모들을 대표해서 말했다.

자, 이제 어떻게 할까.

가만히 서서 우리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는 수백의 무리를 내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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