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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420화 (419/740)

420화 78층 클리어

수풀을 뚫고 들어온 인원.

놈들의 정체는 악마였다.

“악마? 양동 작전이었냐!”

갑작스럽게 등장한 악마들로 인해 마그마 요정이 배신감 어린 외침을 토하며 메이스를 들어 올렸다.

녀석 입장에서는 나와 탈모맨이 수작을 부려 함정을 판 것으로 보였겠지.

물론 아니지만.

“숭배자가 근처에 더 있었군.”

“네놈들을 처리할 생각이니까 지원군을 불렀다.”

언제 부른 거지? 이상한 행동은 한 게 없었는데.

내가 모르는 아티팩트를 몰래 사용한 건가. 아니면 숭배자는 서로의 위치와 상황을 알 수 있는 건가.

아마 전자가 맞지 싶다. 적어도 지금까지 겪어 온바로는 같은 숭배자라 하더라도 따로 연락하지 않으면 서로의 상황을 알지 못했으니까.

‘권능이나 스킬을 사용한 걸 수도 있고.’

뭐가 됐든 상황이 안 좋아졌다.

모습을 드러낸 무리는 대략 20명.

권능을 사용해 본 결과, 역시나 대부분 실버 등급이다.

왜 이렇게 실버 등급이 많을까. 연옥계라는 배경과 악마들의 수준을 고려해 탑이 이렇게 배치한 건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

중요한 건.

“마그마 요정, 놈들이 숭배자라는 건 여기서 드러난 거 같은데? 너랑 있는 놈들이 진짜 천족 잔당이라면 악마들과 함께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 그렇긴 한데.”

여전히 혼란스러운 모습. 나라도 그럴 거 같다. 첫 번째 챕터부터 함께 움직였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놈들은 공을 들여 차근차근 접근한 것이다.

그 사실을 아는지 천족들 또한 거짓말을 뱉어 냈으니…….

“놈들의 농간에 속지 마십시오. 이들은 우리를 도와 심층부에서 악마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던 첩자니까요.”

“저희가 어떻게 지금까지 심층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겠습니까. 조력자가 있던 겁니다.”

“이번에 메피스토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죠.”

말은 잘한다.

저놈은 주둥아리 먼저 때려야지.

예상한 것보다 적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해야 할 건 달라지지 않았다.

한 놈이라도 잡아서 숭배자 패를 꺼내기만 하면 되니까.

놈들의 규율 때문인지 아니면 탑의 시스템적으로 고정한 것인지는 몰라도, 숭배자들은 항상 숭배자 패를 가지고 다닌다.

“잘 생각해, 마그마 요정. 상식적으로 악마들이 천족을 도울 이유는 없으니까. 증명할 테니 조금만 있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놈들 역시 불어난 세력을 이끌고 우리와 격돌한다.

쏟아지는 검과 스킬.

고함과 비명이 오간다.

탑이 이게 문제다. 워낙 악랄한 시련을 주다 보니 인간 불신을 기본으로 장착하게 된다.

혹시 등쳐 먹거나 함정에 빠트리려는 건 아닐까, 저러다 배신하는 건 아닐까.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라면 주저 없이 남을 고꾸라트릴 놈들이 차고 넘쳤다.

당장 나도 대형 길드와 각국의 특임대를 상대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다 떨궈 냈지만. 진작 상위층에 올라와 있던 마그마 요정은 그 과정을 본 적도, 겪은 적도 없다.

우리보다 불신이 심하면 심했지 적지는 않을 거라는 말.

-촤아아아악!

앞으로 다가온 녀석의 가슴을 그었다.

피를 내뿜으며 뒤로 빠지는 녀석. 옷깃을 끌어당기며 품을 뒤지려 했으나.

“어딜!”

악마 숭배자가 틈을 비집고 들어와 붉은 가시를 소환했다.

바닥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송곳이 회전하며 복부를 뚫으러 들어온다.

어떻게 제압하더라도 소지품을 뒤질 여유가 없다.

게다가.

“마그마 요정님! 도와주십시오!”

“우리와 함께 저들을 죽이고 연옥계를 차지하는 겁니다!”

숭배자들이 계속해서 녀석을 압박했다.

갈등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가뜩이나 머릿수가 밀리는 상황. 마그마 요정까지 합세하면 꽤 골치 아프다.

[파이어 밤(S) Lv.10]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무리해서라도 증거를 눈앞에 보일 생각.

“이블아이!”

“엄호해 줘, 탈모맨!”

“이 씨! 다 비켜!”

적진 깊숙이 진입한 나를 본 탈모맨이 몸통 박치기를 하며 따라 들어온다.

인간 전차나 다를 바 없는 모습. 탈모맨의 어깨에 부딪힌 놈들이 수수깡처럼 날아가고, 우리가 만든 틈으로 악마들이 돌진한다.

-터억!

내게 도끼를 휘두른 놈의 팔을 붙잡았다.

억지로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빠르게 손을 움직여 놈의 몸 곳곳을 터치했고.

“가라!”

힘차게 걷어찼을 뿐.

동료의 품으로 날아간 녀석을 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시한폭탄(S) Lv.10]

[시한폭탄(S) Lv.10]

[시한폭탄(S) Lv.10]

.

.

.

-콰과과과과광!

놈을 붙잡던 놈들이 일제히 폭발에 휘말린다.

수많은 인원이 뒤엉켜 싸우는 난전.

시한폭탄만큼 놈들을 엿 먹일 수 있는 스킬은 많지 않았다.

적당히 싸우며 가볍게 터치. 불의의 순간에 폭발.

이제 놈들에게 있어 아군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나 마찬가지.

놈들도 실버 등급인 만큼 시한폭탄 몇 개 터진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대미지가 없는 건 아니었다.

운 나쁘게 폭발이 중첩되거나 위험한 곳을 맞으면 치명상을 입기도 하고.

그렇다고 폭발시키지 않도록 우리 쪽으로 몸을 던진다?

“이블아이 님의 충신! 후렌 키아노의 몽둥이를 맞아라!”

“나 루나르는 이블아이 님의 폭발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때는 뭐, 우리 쪽 악마들한테 뒈지게 맞는 거지.

여러 변수를 창출했지만 전세를 완전히 뒤집을 정도는 아니다.

기껏해야 비등비등하게 싸울 수 있도록 만들어 줄 뿐.

조금씩 놈들의 전력을 갉아먹으면 확실한 우위를 차지할지 모른다만 놈들이 가만히 당해 줄 리가.

“마그마 요정님! 부디 결단을!”

“우리와 함께한 시간을 잊지 마십시오!”

“저들의 꼬임에 넘어가 봤자 끔찍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숭배자이 처절하게 외친다.

어떻게든 마그마 요정을 끌어들이겠다는 심산.

“으으으으! 알았어! 알았다고!”

고민하던 마그마 요정이 결단을 내렸다.

[용암지대(S) Lv.10]

-쿠르르르르륵!

녀석의 몸에서 용암이 쏟아진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바닥을 채우는 용암.

이어 그녀의 손짓에 용암이 의지를 가지고 꿈틀거린다.

-콰앙!

-콰아아아앙!

뱀처럼 일어선 용암 기둥.

그 기세가 제법 매섭다. 느껴지는 열기만 해도 대단했지만 암석과 금속이 녹으며 가지는 질량은 그대로 휘두르기만 해도 위협적일 터.

‘기어이 놈들에게 넘어가는 건가.’

미간을 찌푸렸다.

망할 숭배자들이 악을 쓰고 소지품을 챙겨서 여전히 숭배자 패를 빼앗지 못한 상황.

마그마 요정이 입을 열었다.

“의심해서 미안.”

[용암 구속(S) Lv.10]

-콰드드드득!

“마, 마그마 요정님?”

불시의 순간 시커먼 돌이 녀석의 근처에 있던 숭배자를 붙잡았다.

흐물거리던 용암이 삽시간이 식으며 단단하게 굳어 버린다.

설마 자신을 붙잡을지 몰랐던 숭배자가 바둥거렸지만 제대로 제압된 만큼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냥 확인만 해 볼게. 그럼 되는 거잖아. 이해해 줄 거지? 아니면 진짜 미안해!”

현명한 선택이다. 굳이 말에 휘둘릴 필요가 있나. 직접 확인해 보면 되지.

간단하지만 확실한 방법. 놈들이 결백하면 직접 소지품을 털면 되는 거다.

마그마 요정 또한 그 사실을 알기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 테고.

“음?”

마그마 요정이 뭔가를 잡았는지 쑥 뽑았을 때…….

“너, 너희?”

숭배자 패가 들려 나왔다. 흔들리는 동공. 차갑게 내려앉은 공기.

지금까지 숨겨 왔던 살기를 내뿜은 숭배자들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우리를 믿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기어이 일을 만드는구나, 등반가여.”

“계속 멍청했다면 편하게 갈 수 있었을 거다, 어리석은 것아!”

한순간에 돌변한 숭배자들의 반응에 마그마 요정이 뒷걸음질 친다.

“이년부터 죽여!”

“일을 망치다니! 그 대가를 치러라!”

뒤에 빠져있던 놈들이 일제히 마그마 요정을 공격한다.

수틀리면 칼부터 빼 드는 습관은 여전하구만.

가서 돕고 싶지만 앞에 쌓여 있는 적이 너무 많다.

숭배자인 걸 숨길 필요도 없으니 작정하고 덤벼드는 놈들. 하지만 괜찮다.

“덕춘아!”

“그에에엑!”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덕춘이를 보내 놨으니까.

아무리 놈들이라도 개구리까지 신경 쓰면서 싸울 수는 없는 노릇.

정신없이 싸우는 틈에 뒤쪽까지 접근한 덕춘이가 마그마 요정을 도왔다.

절대적인 인원의 차이로 인해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시간이 제법 흘렀어.’

곧 도착할 거다.

난 그렇게 생각했고.

“와, 개떼같이 모여 있네. 바글바글한 거 봐라.”

“우리가 왔도다! 놀랍지도 않게 사고를 치고 있구낭! 내 말 맞지?”

“진짜 이번에는 혹시나 했다. 여기 1,000포인트.”

“히히히! 잘했어. 공블아이, 탈모맨! 믿고 있었다구!”

우리와 합류하기 위해 전력으로 심층부를 가로질러 온 핥짝이와 냥펀이 난입했다.

갑작스러운 천족 무리의 합세.

“뭐, 뭐냐!”

“어? 이블아이 님? 이건 상당히 조진 거 같습니다만?”

“크으윽! 이런 사악한 놈들. 지원군이 더 있었단 말이냐!”

“수, 숭배자가 아닌데?”

“아, 이게 게임이면 로그아웃하고 싶다.”

숭배자도 놀라고 우리 악마들도 놀라고 마그마 요정도 놀라는 상황.

“냥펀! 핥짝이! 마그마 요정 좀 봐 줘!”

“저 천사들은 적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나와 탈모맨이 외쳤다.

두 녀석이 데리고 온 천사들 역시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으나.

“자자. 저기 용암 흐르는 친구를 지키면 된다, 얘들아. 어쭈. 앞으로 안 가? 콱 씨. 뒤로 오면 나한테 맞는다?”

“저쪽 악마들은 이상하지만 착한 애들이니까 걱정 말라구. 거기! 탈영병은 즉시 핥짝형에 처할 테니 도망칠 생각 마!”

핥짝이와 냥펀의 응원과 협박 덕에 곧 정신을 차리고 마그마 요정을 감싸기 시작했다.

뭐가 됐든 마그마 요정 역시 천족 진영이었으니 거부감이 좀 덜하겠지.

아무튼.

“축하해. 이제 너희는 죽었다.”

인원수로도, 전력으로도 우리가 앞선다.

이를 갈며 눈알을 굴리던 숭배자들이 각오를 다지며 덤빈다.

“우리가 끝일 거라 생각지 마라!”

“한 놈이라도 더 죽여! 결국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항복은 기대도 안 했다. 모 아니면 도. 그게 놈들의 패턴이니까.

나도 이쪽이 편하고.

“어차피 보내 줄 생각 없었거든.”

등반가에 있어 숭배자는 걸림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뒤쪽은 핥짝이와 냥펀이 이끄는 천사들이.

앞쪽은 나와 탈모맨이 이끄는 악마들이.

가운데 갇힌 숭배자들을 처리하기 위해 달려갔다.

그리고 암전.

[78층 클리어]

[대기실로 전송됩니다.]

시야가 어두워지며 두 번째 챕터가 종료되었다.

* * *

달아오르는 타이밍에 끝나서 그런지 살짝 김이 빠졌지만 이내 털썩, 대기실에 준비된 소파에 앉았다.

흥분감과 긴장감에 잊고 있었지만 연달아 전투를 벌였다.

알게 모르게 피로도가 누적되어 있었고, 긴장감이 풀리자 몸 곳곳이 쑤신다.

“아고고, 죽겠다.”

턱을 괸 채 눈앞에 펼쳐진 화면을 지켜봤다.

스타트는 합류한 멤버들과 숭배자의 정체를 깨달은 마그마 요정이 합세해 싸우는 장면.

아마도 저 장면은 다음 챕터로 넘어가면 시스템으로 머리에 각인되겠지.

“잘 싸우네.”

멤버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마그마 요정도 꽤 수준급이다.

숭배자들도 분전한다. 과연 실버급도 뭉치면 강하다 이건가.

-촤르르르륵

화면이 빠르게 지나간다.

심층부.

그리가와 부하들. 그리가의 본진에서 온 듯한 악마들이 움직인다.

이어서 메피스토의 부하들도 잠깐 스쳐 지나가고.

중간중간 마물이나 다른 것들도 보이기는 했으나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 패스.

시점이 점차 멀어지더니 이번에는 심층부 바깥을 보여 줬다.

그들의 정체를 파악한 난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숭배자들이 더 있었군.”

“그에에.”

악마와 천사가 뒤섞여 있으니 분명하다.

다른 곳에서는 백터가 이끄는 악마들이 심층부로 진입하고 있다.

멤버들 무리와 숭배자 무리. 세력이란 세력이 한곳에 모이고 있다.

하, 헛웃음이 나왔다.

어쩐지 챕터 이름이 대결합이러더니.

“이런 걸 뜻한 거였나.”

-촤르르르르르

어느덧 영상의 막바지.

화면이 휙휙 바뀌더니 다시 연옥계 심층부를 줌인한다.

“으음?”

몸을 앞으로 숙이며 화면에 집중했다.

예상치 못한 장면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마그마 요정이 그런 말을 했었지.

“도움을 줄 사람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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