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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419화 (418/740)

419화 심층부로 모여들다

나와 악마들 모두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진동음이 울려 퍼진다.

초대형 마물이 나타나기라도 한 걸까. 그러기에는 주변에 보이는 게 없다.

대신 우리를 반긴 건.

[연옥계-심층부를 양분하는 세력이 바뀌었습니다.]

하늘 위로 생성된 메시지창.

연옥계를 양분하는 세력이 바뀌었다라.

그야 그렇겠지. 당장 우리가 그리가의 세력을 흡수하면서 악마 세력 중 가장 큰 규모를 가지게 됐으니까.

심지어 메피스토가 정체 모를 천족들에게 당하면서 사실상 악마 세력은 하나가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메피스토의 무리는 우두머리를 잃었고, 그들만으로는 나와 탈모맨, 그리가 3개의 세력이 합쳐진 악마들을 상대할 수 없을 테니까.

잠깐만…….

“악마 세력은 우리로 좁혀졌어. 세력이 양분됐다는 건 우리 못지않은 세력이 하나 더 있다는 거잖아.”

“그렇, 겠지?”

내 물음에 탈모맨이 고개를 기울인다.

대체 어떤 세력이?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천족.

냥펀과 핥짝이가 심층부에 있는 천족들을 규합하는 데 성공했다고 했다.

메피스토를 공격한 놈들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심층부의 천사들을 모두 합쳤다면 그 규모가 작지는 않겠지.

기존에도 악마들이 함부로 심층부를 돌아다닐 수 없을 정도의 영향력은 끼치고 있었으니까.

다만…….

‘기껏해야 그 정도가 전부야.’

천족의 영향력이 있다고는 하나 예상치 못한 위협, 딱 그 정도였다.

당장 탈모맨과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악마들도 중립지대에서 살아가지 않았던가.

한 구역을 완전히 장악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당장 한 번에 괴멸될 것을 우려해 점조직으로 운영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남은 가능성은 하나.

탈모맨도 무언가 떠올랐는지 얼굴을 구긴다.

“이블아이, 아무리 봐도 그놈들인 거 같지? 중립지대에 있을 때 종종 마주쳤거든.”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 외의 세력. 즉, 탑 숭배자들이 우리 못지않은 세력을 가지게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야 말이 된다.

핥짝이와 냥펀이 차지한 천족 세력. 우리가 차지한 악마 세력.

메피스토를 공격한 천사들.

멤버들이 이끄는 세력이 아니라면 숭배자 소속의 천사들이라고 봐야 했다.

이미 확인하지 않았던가. 백터를 두고 싸웠던 숭배자들 사이에 천사들이 섞여 있던 것을.

오케이.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럼 마그마 요정은?”

“뭐긴 뭐야. 숭배자들이랑 같은 편이었다는 거겠지. 괜찮은 녀석인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못 봤군!”

분한지 탈모맨이 씩씩거렸으나 난 달랐다.

상황만 보면 그게 맞는데.

‘권능을 통해 봤을 때 마그마 요정은 숭배자가 아니었어.’

숭배자였다면 내가 모를 수가 없다.

시나리오를 진행하면서 숭배자가 된 걸까?

그럴 리가.

다른 등반가라면 그럴 수도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탑의 난이도는 올라가고 숭배자는 빙의 등의 방법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녀석은 다르다. 이미 상위 헌터들로 이루어진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

그 때문에 이번 시나리오에 들어가기 전에 정보를 얻고 우리한테 조언까지 해 주었던 거고.

숭배자가 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

협박받았거나 강제적으로 숭배자가 됐을 가능성도 있지만…….

‘마그마 요정은 강해. 놈들이 함정을 팠어도 탈출할 정도의 실력은 된다고.’

대기실에서 봤던 무력만 봐도 그렇다.

탑은 지독할지언정 클리어 방법을 아예 막아 두지는 않는다.

70층대에 골드 등급 이상의 숭배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

숭배자들은 등반가를 공격해도 페널티를 받지 않는다. 70층대부터 골드 등급 이상이 깽판을 치면 위로 올라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 무엇보다…….

‘탑이 의도한 대로 진행되지 않아.’

각 층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구성돼 있다. 탑이 그러한 규칙을 깨 버릴 위험을 놔둘 리가 있나.

마그마 요정은 실버 등급 정도는 상대할 실력이 있다. 그렇다는 건…….

“탈모맨, 마그마 요정이 위험해. 놈들한테 속고 있는 거야.”

숭배자들을 천족 집단이라고 생각해 함께 있는 거다.

진짜 천족 잔당은 핥짝이와 냥펀이랑 같이 있고.

내 생각을 전하자 탈모맨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숭배자라면 충분히 그런 짓을 하고도 남지. 역시 내 눈은 잘못되지 않았어!”

“…아까는 잘못 봤다고.”

“하하하! 내가 그렇게 쉽게 의심할 리가 없잖아!”

악마들이랑 같이 있어서 그런가. 태세 변환이 빠르다.

뭐,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는 것보단 낫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숭배자들이 어떤 식으로 세력을 키웠는지 알 수는 없으나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애들이랑 합류해야겠어.”

“이미 연락하고 있지.”

척하면 척. 커뮤니티 중독자 탈모맨이 멤버들에게 연락을 보낸다.

악마들을 불러 모았다.

“후렌, 메피스토를 잡은 녀석들이 어디 갔는지 확인했지?”

“예, 저쪽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후렌 키아노의 능력을 이용해 놈들의 이동 방향을 확보했다.

냥펀과 핥짝이와 합류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심층부는 넓었고, 둘은 악마들과 쓸데없는 소모전을 펼치지 않기 위해 중립지대 안에서도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합류하기 전에 마그마 요정을 구출할 생각. 이유는 여러 가지다.

나름 인연도 있고, 조금이지만 조언을 받기도 했다.

NPC가 아닌 등반가가 숭배자가 되면 이후 어떤 위협이 될지 알 수 없었으며, 이런 식으로 빚을 만들어 두면 이후 녀석이나 요정 클럽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다.

당장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는 데 힘을 합치면 좋은 점이 많겠지.

“가자.”

“오케이!”

할 일을 정했으면 행동해야 하는 법.

우리는 바로 마그마 요정을 구출 작전을 진행했다.

전투가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다.

“흔적이 남아 있군.”

없애려고 노력한 거 같지만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

[발자국 무더기를 덮은 흙]

-여러 발자국을 없애기 위해 덮은 흙입니다.

-감쪽같죠?

권능은 육안으로 알아낼 수 없는 정보를 주니까.

거기에 후렌 키아노의 사이코메트리까지 합쳐지니 엉뚱한 길로 빠질 일 없이 놈들을 쫓을 수 있었다.

흔적을 지우며 가는 무리와 곧장 뒤쫓아가는 무리.

당연히 후자가 더 빠를 수밖에 없었고.

“이블아이, 놈들 보인다!”

“오케이. 확인.”

머지않아 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메피스토를 상대했기 때문일까 여기저기 옷이 찢어지고 상처를 감은 붕대에서는 피가 고여 있다.

대부분 자잘한 상처. 치명상으로 보이는 건 없었다. 그만큼 강한 놈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거겠지.

“마그마 요정!”

큰 목소리로 외쳤다.

자고로 부끄러운 이름일수록 멀리서도 들리는 법.

선두로 달리던 녀석이 흠칫 놀라며 뒤돌아본다.

“이, 이블아이? 쫄쫄이?”

여기서 이렇게 만날지는 몰랐는지 목소리가 올라가 있다.

뭐라 반응하기 전에 권능부터 사용했다.

[엘로이즈 베흐나흐]

-최대 등반층 78층

-닉네임: 마그마 요정

-상위 헌터로 이루어진 클럽, 요정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확실하다. 마그마 요정은 숭배자가 아니다.

반면에 녀석 옆에 있는 놈들은.

[이반 스네이프]

-탑 숭배자.

-실버 등급입니다!

-그리 낮은 서열은 아니군요!

[블레코 모블랑]

-탑 숭배자.

-상위 서열의 실버 등급!

-200년 후에는 골드 등급이 될지도?

.

.

.

하나도 빠짐없이 탑 숭배자였다.

역시나, 마그마 요정을 속이고 있던 거였나.

꿀꺽 침을 삼켰다. 숭배자들일 건 예상했지만 설마 저 인원 모두 실버 등급일 줄이야.

그동안 겪어 온 시나리오에서는 많아야 서너 명이 전부였는데.

조금은 긴장됐지만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탈모맨도 있다.

마그마 요정도 진실을 알면 우리와 함께할 터. 악마 무리까지 있으니 저 정도 인원은 충분히 할 만하다.

-차아아아앙!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린 숭배자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으며 마그마 요정을 뒤로 물렸다.

“간악한 악마들입니다! 상대하지 마시고 뒤에 계십시오!”

“이블아이입니다! 아주 사악한 악마죠.”

“잔혹한 탈모, 타이즈도 있군요.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럼 그렇지. 숭배자들은 나와 멤버들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

그동안 싸운 게 한두 번이 아니니 인상착의 정도는 퍼지고도 남았다. 가뜩이나 특징도 확실해서 헷갈릴 일도 없고.

“어. 아, 아니. 쟤네들은 괜찮은데.”

“물러서십시오!”

마그마 요정이 천족들을 만류했지만 들을 리가 있나.

본인들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상부 지시를 따르기 위해서라도 나를 공격하려 들겠지.

“마그마 요정! 놈들은 탑 숭배자다! 속지 마!”

“악마들의 사악한 속삭임입니다!”

“진짜 천족 세력들이 오고 있다고! 조금만 기다리면 도착할 거야!”

“어림없다! 더러운 악마들아!”

나와 말싸움을 벌이던 숭배자 한 명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든다.

그걸 시작으로 다른 숭배자들도 덤벼들었고, 어떻게 해야 하나 갈피를 잡지 못한 마그마 요정이 머뭇거렸다.

그래. 차라리 저게 낫다. 괜히 휘둘려서 우리랑 싸우는 것보다는.

“놈들 품에 숭배자 패가 있을 거야! 내가 직접 꺼내서 증명할게!”

혼돈검을 뽑아 놈들에게 가리켰다.

“저놈들 쓸어버려! 천족이고 뭐고 숭배자는 봐줄 필요 없다! 확실히 밟아!”

“알겠습니다!”

“감히 이블아이 님에게 사악하다고 하다니! 앞에 위대하다는 형용사를 붙여라!”

“그래! 대단히 사악한 분이시니까!”

그리가와 싸우느라 악마들의 체력은 온전치 않다. 하지만 그건 숭배자들 또한 마찬가지. 놈들도 메피스토와 싸웠으니까.

인원 자체는 살짝 밀리는 감이 있었지만 우리는 나와 탈모맨이 있다.

자신감을 가지며 앞으로 달리는 찰나.

-부스럭

수풀이 흔들리며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잘못 봤나? 눈을 찌푸렸지만 제대로 본 게 맞다.

“아, 이건 좀.”

* * *

연옥계 중심부.

연옥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펼쳐지는 곳이자 심층부에 들어가기 전에 힘을 기르고 세력을 넓히는 공간.

이블아이를 비롯한 멤버들이 심층부를 들어갔지만 여전히 중심부에 남아 있는 이들이 있었다.

“백터, 이건…….”

“알아. 서둘러야겠어. 이블아이가 위험할지도 몰라.”

이블아이의 명에 따라 중심부에 있는 악마들을 정리하고 합치고 있던 백터와 무지개단. 그들이 심층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전보다 규모가 커진 상태. 신성 간의 서열은 모두 정리되었고 새롭게 무지개단으로 들어온 이들만 100명이 넘었으나, 지금 그를 따라 달리는 이들은 50명이 전부였다.

심층부에 들어갈 만한 실력을 갖춘 이들은 그 정도뿐이었으니까.

원래라면 좀 더 시간을 들여 무리 전체를 데리고 심층부에 들어가려 했으나 상황이 바뀌었다.

중심부 곳곳에 숨어 있던 천족들과 악마들이 일제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던 이들. 천사, 악마 할 거 없이 한데 뭉쳐 심층부로 들어가는 놈들.

다른 악마는 몰라도 백터는 알고 있었다. 종족 관계없이 움직이는 집단을.

‘탑 숭배자.’

그에게 접근했던 이들이며 이블아이에게 강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던 세력.

하나같이 수상할 정도로 강한 놈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이 심층부 안으로 들어간다면 이블아이 또한 무사치 못할 거라는 게 백터의 판단이었다.

파악된 숭배자들만 해도 60명가량. 미처 파악하지 못한 이들까지 합치면 100명을 넘어설지도 몰랐다.

백터가 품에 든 아이템을 확인했다.

이블아이와 헤어지기 전, 충분한 전력을 모아 심층부로 들어왔을 때 사용하기로 했던 위치 추적 아이템.

발동시키면 서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늦지 않았으면 좋겠군.”

꾸욱. 백터가 아이템을 움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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