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화 네놈들은 누구…….
후웅!
나를 향해 날아오는 폴암을 피해 몸을 뒤로 젖혔다.
아슬아슬하게 턱을 스쳐 가는 공격.
-콰앙!
닿지 않았음에도 충격이 들어온다.
머리를 흔드는 일격. 투구를 쓰고 있음에도 이 정도라.
‘제대로 맞으면 장난 아니겠는데.’
뒤로 발을 빼며 균형을 잡았다. 이어 뒤로 두 발자국.
무게 중심을 되찾은 동시에 앞으로 쏘아져 나갔고.
[검강]
[절삭(S) Lv.10]
[영혼 찢기(S) Lv.10]
그대로 검을 그었다.
검강을 통해 신성력을 불어넣은 상태. 놈도 악마인 이상 신성력에 대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을 알기에 놈이 폴암의 긴 리치를 이용해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흠!”
검강은 불어넣는 기운의 양에 따라 검신이 길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수 미터로 늘어난 검날에 폴암을 짧게 휘두른다.
퉁. 옆으로 튕겨 나가는 검.
그때를 노려 탈모맨이 태클을 건다.
-콰릉!
대지를 부수며 기차가 들이박듯 놈을 압박한다.
2미터에 달하는 키에 사람 두세 명은 붙여 놓은 듯한 덩치였으나 기본적인 골격은 사람과 비슷한 상황.
탈모맨의 그래플링이 통하는 대상이었고.
“다운! 뒹굴어 보자!”
기어코 넘어트리는 데 성공한 탈모맨이 파운딩을 했다.
단순한 파운딩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미 우리는 70층대 후반을 등반하고 있는 초인.
동층대에 있는 이들보다도 강력한 파워를 지니고 있는 강자였으니까.
한 번 내려칠 때마다 그리가가 깔린 땅이 터져 나간다.
가드를 올려도 의미가 있는지 의문일 정도의 타격이었으나.
“흐흐하하! 그래! 이런 맛도 좋지!”
그리가도 대공급에 다다랐다고 여겨지는 악마였다.
종족 특성까지 생각하면 피지컬로는 따라가기 버거운 대상.
-푸화아아아악!
마기가 폭주하듯 터져 나간다.
급격히 힘을 끌어올린 그리가가 몸을 튕기자 탈모맨의 몸이 들썩거렸고.
“크흡!”
저 덩치에서 나왔다고 보기 힘든 민첩함과 유연성으로 탈모맨을 걷어찼다.
벌떡 일어나 폴암을 쥐고 찌르기까지.
-카가가가각!
가만히 구경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기에 검으로 놈의 폴암을 걷어 냈다.
도끼날 부분을 걸어 저지하여 속도를 늦춘 뒤, 손목을 꺾어 뱀처럼 창대를 타고 내려갔다.
그대로 놈의 손목을 잘라 낼 생각.
육체적으로 자르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게는 영혼 찢기가 있었고 영혼이 잘려 나간 팔을 제 기능을 하지 못할 테니까.
놈이 반응하기에는 너무나 빠르고 자연스러운 흐름.
보통은 아무런 대응도 못 할 수준의 반격이었으나.
-콰드드드드득!
그리가는 마기를 응축해 검의 경로를 막아 냈다.
마기를 운용해 물리적인 형상을 취할 수 있다 이건가.
천마대전에 참전한 놈이라 하더니 전투 센스가 남다르다.
‘종족 특성이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후천적으로 마기를 얻은 나와 달리 악마인 녀석에겐 마기를 다루는 것이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일 테니까.
악마마다 마기를 컨트롤하는 능력은 제각각이겠지만.
아무튼.
“이 정도면 몸 좀 풀린 거 같은데, 안 그래?”
“좀 더 빡세게 해도 될 듯?”
몇 번 무기를 섞으며 기초적인 탐색전은 끝났다.
애초에 놈을 얕본 적이 없다. 탐색전도 그래서 한 거고. 놈이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 스킬은 어떤 걸 사용하는지 확인해 보기 위함.
그도 그럴 것이.
[그리가]
-제7 마계의 악마.
-천마대전에서 급부상한 탐욕의 악마입니다!
-집착과 소유욕.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자, 도전하세요.
-그의 탐욕을 멈출 수 있는 건 힘의 굴복뿐입니다!
놈이 가진 스킬이 보이질 않는다.
동급의 권능을 가지고 있거나 나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았다.
그래도 제법 강해졌다고 생각했건만 여전히 강자는 널리고 널렸다.
대공급이라 불리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쯤에서 드는 호기심.
“네놈, 탑에 올랐었나?”
“탑이라… 난 아직 올라가지 않았지. 그곳에 다녀왔나?”
“뭐, 비슷하지.”
정확히 따지면 등반 중이지만 놈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니까.
이 시점의 그리가는 탑에 불려가지 않은 모양.
하기야 듣기로는 이쪽 세계에는 탑이 나타난 지 얼마 안 됐다고 했다.
무지개단을 통해 듣기로는 천마대전을 기점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했으니 이제 기껏해야 3년 정도 됐으려나.
아쉽네. 몇 층까지 올랐는지 알 수 있었으면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도 대략이나마 알 수 있었을 텐데.
혹시라도 나보다 더 위까지 올라갔었다면 앞으로 만나게 될 녀석들의 전투력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고.
아니라면 됐다.
“이곳 말고도 일이 터진 거 같아서. 빠르게 끝내는 편이 나을 거 같아.”
“저쪽에서도 싸우는 거 같더라.”
내 말에 탈모맨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곳과 떨어진 곳. 폭음이 들려온다.
그리가가 이곳에 있으니 아마 메피스토가 있는 곳 같은데.
‘대체 누구랑 싸우고 있는 거야.’
나랑 탈모맨이 이곳에 있다. 그리가도 마찬가지고.
메피스토와 전투를 벌일 만한 세력이 누가 있을까.
천족 아니면 숭배자. 가능성은 두 가지.
냥펀과 핥짝이는 아닐 거다. 둘이 메피스토와 마찰을 빚을 이유는 없으니.
운이 나빠 서로 마주쳤다면 메피스토 쪽에서 공격했을 수도 있긴 하다.
만약 그런 거라면 그리가를 처리한 후에 도우러 가는 편이 낫겠지.
수많은 가능성이 있었으나 결론적으로는 우리 쪽 상황을 마무리 지어야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모든 수를 쓸 수는 없겠군.’
저쪽에 적이 있는지 아군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만큼 비장의 수는 아껴 두는 편이 좋았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첫 번째 챕터에서 사용했던 업보 청산 스킬 쿨타임이 두 번째 챕터로 넘어오는 데 걸린 시간만큼 줄었다는 건데.
‘그래도 아직 쿨타임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어.’
당장 쓸 수 없는 건 매한가지라 가장 큰 화력을 낼 수 있는 아스트랄 레인보우를 비장의 수로 남겨야 된다.
선택지가 줄기는 했으나 여전히 사용할 수 있는 건 많은 상태.
“동시에 가자.”
“오케이!”
-콰앙!
-콰광!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나와 탈모맨이 그리가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홀로 둘을 상대함에도 기세가 죽지 않은 녀석이 입꼬리를 올리며 자세를 취한다.
“슬슬 제대로 해보자꾸나!”
전초전을 벌인 건 놈도 마찬가지. 대략적으로나마 우리의 전투 스타일을 파악했을 거다.
탈모맨이 앞에서 근접전을 벌이며 탱커와 근거리 딜러 역할을 맡아 준다면.
[심연의 눈동자(S) Lv.3]
[집착하는 망령(S) Lv.6]
난 보조해 주며 기회를 노리면 되겠지.
시나리오가 진행되며 어지간한 스킬은 모두 S급에 도달한 상황.
-끼에에에에!
더덕이의 먹이에 불과했던 망령조차 지금은 꽤 강력한 원귀가 되어 그리가를 옭아매었고, 허공이 갈라지며 드러난 눈동자는 놈의 정신을 좀먹었다.
나야 정신 공격에 면역이나 다를 바 없지만 대부분은 아니다.
망령이 육체를, 눈동자가 정신을 붙잡는 타이밍.
“우오오오오!”
[SS급 권능, 두 세계의 지배자가 빛납니다!]
[칭호, 초인의 길이 함께합니다!]
[칭호, 마왕의 가호가 깃듭니다!]
[정의의 일격(S) Lv.10]
-콰아아아아아앙!
마기와 신성력. 상충하는 힘이 깃든 주먹이 놈의 얼굴을 강타했다.
머리를 기준으로 터져 나가는 충격파.
몸에서 났다고는 믿을 수 없는 파육음에 전투를 벌이던 악마들 또한 이쪽을 바라볼 정도였으나.
“아, 어지러웠는데 고맙군! 덕분에 정신이 들었어.”
그리가는 뭉개진 얼굴을 찡그리며 폴암을 휘둘렀다.
전혀 느려지지 않은 공격에 탈모맨이 몸을 숙여 피했고 난 오로라 빔을 쏘았다.
파이어 밤을 쐈다가는 탈모맨도 휩쓸릴 게 뻔했으니까.
평소라면 탈모맨의 튼튼함을 믿고 터트렸겠지만.
‘그리가도 내구도가 장난이 아니야.’
지금은 달랐다. 어쩌면 그리가가 탈모맨보다 방호력이 좋을지도 몰랐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가와 탈모맨의 내구도를 깎으며 기회를 엿본다? 잘못하면 탈모맨이 리타이어 된다.
그렇다면…….
“탈모맨! 퇴로 막아!”
“아하!”
일방적으로 두드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내 의도를 파악한 탈모맨이 그리가를 중심으로 돈다.
탈모맨이 가벼운 견제로 그리가의 움직임을 제한한다. 그러면서도 절대 달라붙지는 않았으니.
[파이어 밤(S) Lv.10]
-콰아아아아아앙!
난 마음 편히 놈을 폭격할 수 있었다.
첫 번째로 터트린 파이어 밤.
그리가가 불길에 휩싸였지만 탈모맨은 범위에서 벗어났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보자고.”
놈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러브 앤 피스(S) Lv.10]
신성력을 가득 담아서.
“터져라.”
[파이어 밤(S) Lv.10]
[파이어 밤(S) Lv.10]
[파이어 밤(S) Lv.10]
.
.
.
“크하아아아아악!”
새하얀 불길이 세상을 집어삼켰다.
* * *
“후우. 후.”
메피스토가 이마를 타고 흐르는 피를 닦아 내며 숨을 골랐다.
이질적으로 하얀 피부는 피로 물든 지 오래. 그의 손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검이 쥐여 있었다.
난전.
서로 뒤엉켜 싸우며 생사를 오가는 사이 본래의 무기는 부러지고 사라졌으며, 부하들 또한 누구에게 죽었는지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거대한 크기의 악마.
“…메피스토 님.”
배가 뚫린 악마가 메피스토를 돌아봤다.
킨, 틴, 핀 삼 형제의 결합체.
“폰.”
한때는 마계의 대공 중 하나인 킹의 부하였던 자.
이후 비숍의 자리까지 올랐으나 분열되어 메피스토의 밑으로 들어간 악마가 천천히 앞에 서 있는 자를 노려봤다.
메피스토 또한 뚫려 버린 폰의 몸 너머에 서 있는 자를 응시했으니.
“후우. 진짜 강하네, 너희.”
그녀의 갑옷에서는 마그마가 쉼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미 일대는 화산이나 마찬가지.
시커멓게 그슬린 땅이 갈라지고 붉은 용암이 끓어오른다.
매캐한 연기가 하늘을 타고 올랐으며 타 버린 숲은 숯덩이가 되어 꺾였다.
“이놈들, 뭔가, 이상합니다. 피하십시오.”
-쿠웅
간신히 버티고 서 있던 폰이 허물어진다.
어지간한 악마도 한 수 접어 주는 것이 결합체인 폰이건만 그조차도 눈앞의 상대는 이길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마그마 요정과 그녀와 함께 등장한 천족들의 공세에 무너졌다.
이질감이 느껴졌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
비록 천마대전을 겪지는 못했으나 메피스토의 부하 중에는 참전했던 이들이 존재했고, 많지는 않지만 심층부에 숨어 있던 잔당들과 싸운 적도 있었다.
그들은 분명 강했으나 결국에는 연옥계에 고립된 이들.
숭고한 의지를 가지고 끝까지 저항하는 이들이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패잔병에 불과했다.
하지만 앞에 서 있는 천사들은…….
“메피스토, 네가 연옥의 주인이 될 줄 알았더냐.”
“우리는 언제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찰나의 행복한 꿈을 꾸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죽을 수 있겠지.”
단순한 천사들의 전사가 아니었다.
보다 강력한 무언가. 본적 없는 무구를 사용하고 고위 천사와 같은 강대한 신성력을 가지고 있다.
원래라면 전쟁이 끝나고 멸망에 접어들기 시작한 천계로 돌아갔어야 할 존재들.
능력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나.
‘계급이 낮다.’
놈들이 입고 있는 전투복에 붙어 있는 계급은 높다고 볼 수 없었다.
자신보다 높은 계급의 천사에게 편하게 말하는 건 물론이고, 입고 있는 전투복조차 본인들의 몸에 맞지 않았다.
마구잡이로 있는 옷을 주워 입은 모양새.
철저한 계급 사회인 천계에서 저렇게 행동할 수 있는가?
옷이 없어 아무거나 입었더라도 계급장은 따로 붙이는 게 그들 아니던가.
아니, 애초에 옷이 없었다면 굳이 천계의 전투복을 입을 게 아니라 노획한 장비를 착용하면 되는 거 아니었는가.
“네놈들은 누구…….”
-푸욱
메피스토가 문장을 잇기도 전에 천사 한 명이 메피스토의 가슴을 꿰뚫었다.
강대한 악마라도 생명체인 건 마찬가지.
눈을 굴려 가슴에 박힌 검을 바라본 메피스토가 쓰러졌고.
“겨우 이겼네, 힘들어라.”
“모두 요정님 덕분이죠.”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마그마 요정은 자신을 칭찬하는 천사들을 보며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내가 뭐 대단한 거 했다고. 너희가 다 했지. 좀 쉬어야겠다. 으으으!”
기지개를 켜며 구석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마그마 요정을 보며 숭배자들이 웃었다.
번들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을 마그마 요정은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