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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413화 (412/740)

413화 맞네

연옥계의 심층부. 들어오자마자 10급 마물을 만났고, 메피스토의 심복들을 만났다.

예상과 달리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었고, 나와 무지개단 역시 언제 어떤 식으로 덤빌지 모르는 적들을 경계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단순히 악마들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천사들과 마물, 그리고 그동안 모습을 숨기고 있던 숭배자들 또한 언제 나타날지 몰랐다.

…라고 생각한 지 6일이 지났다.

“사실 심층부는 평화로운 곳이 아닐까요, 이블아이 님?”

“우리도 경계하지만 다른 놈들도 우리를 경계하는 거 같습니다요.”

후렌과 루나르의 말에 동의한다.

그동안 제대로 된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나타날 거 같았던 핀, 킨, 틴 삼 형제도 별다른 소식이 없고, 접선해 오리라 생각했던 그리가도 가만히 있었다.

그나마 전투를 벌인 게 있다면…….

“다 구워졌다, 먹어라.”

“오오. 마물도 먹다 보니 나름 입맛에 맞는 거 같습니다.”

“이블아이 님의 특제 소스만 있다면 돌멩이도 먹을 수 있습죠!”

식량을 구하기 위해 마물을 사냥할 때 정도.

인원이 많은 만큼 식량을 확보하는 것도 일이었는데, 이곳에 서식하는 마물들은 기본적으로 큰 놈들이 많아서 그 부분은 걱정할 게 없었다.

겸사겸사 헬다잉 키친에 마물 고기와 껍데기도 보내 주고. 아예 그쪽에서 원하는 마물을 지목해 주기도 했다.

뭐랬더라, 본스케일러였나. 놈의 사골로 육수를 끓이면 맛있단다. 다행히 심층부에 서식하는 놈이라 잡아서 보냈다.

[요리(AAA) Lv.5]

“이것도 많이 올랐군,”

스킬의 효과로 이제는 처음 보는 식재료도 어지간하면 먹을 만하게 만들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꽤 맛있게 만들 수 있다. 환경이 환경인 만큼 좀 투박하기는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의 맛이 있으니.

정말 날 것 그대로의 환경이었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등반가인 만큼 상점창을 사용할 수 있어서 향신료까지 곁들일 수 있었고.

“너무, 너무 맛있습니다!”

“사실 난 밥 먹으려고 무지개단에 들어온 거였어!”

“이블아이 님, 입맛 없으면 남기십쇼. 제가 먹겠습니다.”

무지개단은 ‘식사 제공’ 복지에 감복하고 있었다.

그래. 몸 굴리는 놈들인데 밥이라도 제대로 줘야지.

뭐든 잘 먹어 주니 만들어 주는 입장에서도 흡족한 상황.

“하하하! 이거 냄새가 기가 막힌데 이러다 다른 놈들도 몰려드는 거 아닙니까?”

그때 악마 한 놈이 플래그를 세웠고.

-부스럭

짜기라도 한 것처럼 수풀이 흔들렸다.

모두가 방금 입을 연 녀석을 노려봤다.

“아, 아니. 난 그냥.”

“쉿. 다들 무기 들어.”

변명하려는 놈의 입을 다물게 하고 검을 쥐었다.

연옥계에 들어서며 거점지를 만든 적이 없다. 그동안 노숙만 하고 살았다는 뜻이었고 밤 중에 기습하는 놈, 밥 먹을 때 기습하는 놈 등 온갖 것들을 다 만났다.

무지개단 역시 익숙하게 입에 넣은 고기를 우물거리며 병장기를 들었다.

수풀이 흔들리는 크기를 봤을 때 덩치가 큰 놈은 아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끽해야 2미터 이하. 마물이라면 집단으로 활동하는 객체일 가능성이 컸으나.

‘주변에 다른 인기척은 없어.’

그랬다면 하나만 다가올 리가 없었다.

악마? 혹은 천사일 거 같은데.

“머, 먹을 걸 좀 주시오.”

예상대로 모습을 드러낸 건 악마였다.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못한 것인지 앙상하게 마른 녀석.

수염과 털이 가득한 얼굴 때문에 나이는 짐작하기 힘들다. 뭐, 악마라는 종족이 수명이 워낙 길어서 의미 없기는 하지만.

그보다 심층부에서 식량을 구걸하는 악마라…….

“너무 수상하지 않습니까?”

“잡아 올까요?”

“일단 창이라도 하나 꽂아 넣읍시다.”

무지개단 녀석들도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당장이라도 무기를 휘두를 기세였으나.

“그만. 데려와서 먹여라.”

“넵! 알겠습니다.”

“자고로 밥 굶는 놈한테는 배불리 먹여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죠.”

“싸우더라도 밥은 먹이고 싸우는 게 매너 아니겠습니까.”

난 놈을 데리고 올 것을 명했고 무지개단은 바로 의심을 거두고 녀석을 데리고 왔다.

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행동.

“가, 감사합니다!”

“천천히 먹으라고. 모자라면 이블아이 님 것도 먹고.”

“맞아. 우린 건 건들지 마. 여기 물도 좀 마셔.”

“어떠냐! 이블아이 님의 요리 실력이!”

녀석이 걸신들린 듯 고기를 뜯는다.

딱했는지 뭐라 하면서도 옆에서 챙겨 주는 놈들.

그냥 불쌍해서 놈을 받아들인 건 아니다.

[듀발 보하스]

-제7 마계의 악마.

-천마대전에서 공을 세운 신흥 강자입니다.

-그리가의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신흥 강자라는 타이틀. 게다가 그리가의 감옥에서 탈출했다는 설명.

이 부분이 중요하다. 메피스토와 함께 심층부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악마가 그리가니까.

놈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꺼윽. 이제 좀 살 거 같구려.”

“식사는 입에 맞았나?”

“내 인생에 있어 최고의 만찬임을 장담하지.”

얼마나 먹었는지 튀어나온 배를 두드린 녀석에게 다가갔다.

아까도 느꼈는데 경계심이 그리 강하지 않다. 어떤 상황이라도 도망칠 수 있다는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 아닐까.

천마대전에서 공을 세웠다고 했을 정도니 어지간한 고위 악마와 맞먹는다고 보면 됐다.

‘그런 놈을 가둬 둘 수 있는 놈이 그리가고 말이야.’

어쩌면 생각보다 놈들이 강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옷차림을 보아하니 당신이 이블아이겠군.”

“나에 대해 알아?”

“감옥까지 이야기가 들릴 정도로 심층부는 당신을 주목하고 있소. 아! 이거 소개가 늦었군. 난 듀발이라 하오. 그리가의 감옥에 갇혀 있었지. 지금은 탈출했지만.”

그의 말에 다른 악마들이 놀란다.

“그리가의 감옥이면 악명이 자자한 곳 아닌가?”

“그치. 그곳에 들어가면 나올 방법은 2개라 했어.”

“죽거나 충성을 맹세하거나.”

그리가의 감옥이라는 게 이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모양.

잠자코 이야기에 집중했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요. 그리가는 소유욕이 강하니까.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반드시 가지려 들지. 끈질기고 악독하오.”

호록. 내가 건네준 차까지 마시던 듀발이 지그시 날 바라봤다.

“내 비록 정직하게만 살아왔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은원은 확실히 갚는다오. 이블아이 공, 최근 그리가와 메피스토가 접선한 사실을 아시오?”

“두 악마가?”

“모르는 눈치군. 나도 잘은 모르오. 감옥을 탈출하면서 메피스토의 전령이 그리가에게 간 걸 본 것뿐이니까.”

“전령이면 킨, 핀, 틴 삼 형제를 말하는 거겠군.”

“맞소.”

허. 겉으로는 우리와 그리가가 싸울 것처럼 이야기하더니만 뒤로 수작을 부리고 있던 건가.

메피스토가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아오. 그리가가 눈독 들이고 있는 자가 있소. 미스터 그린. 그리고 최근에 한 명 더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듀발이 날 가리킨다.

“바로 당신이오, 이블아이.”

미간을 좁혔다. 그리가 그놈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눈독을 들여.

것보다 미스터 그린은 또 뭐야.

내가 아는 악마냐고 무지개단한테 눈치를 줬지만.

“미스터 그린? 처음 듣습니다요.”

“그래도 심층부에 있을 정도면 이름을 들었을 법한데.”

녀석들도 모르는 눈치다.

“모를 만도 하지. 심층부 내에서도 미스터리한 인물이니. 난 그자 밑으로 들어갈 생각이오. 중립을 지키고 있던 이들을 모으고 있다더군.”

“도움은 무지개단에게 받고 가입은 그쪽으로 하겠다는 거냐!”

“아주 건방지도다!”

듀발의 말을 들은 후렌과 루나르가 뭐라 했으나.

“그래서 정보를 주지 않았소. 메피스토와 그리가가 만날 이유는 많지 않소. 미스터 그린, 혹은 자네에 대한 거겠지. 덕분에 살았소. 더 민폐 끼칠 수는 없으니 이마 가지.”

“잠깐.”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녀석을 멈춰 세웠다.

그의 눈에 곙계가 서린다. 자신을 붙잡거나 공격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미스터 그린이란 자를 찾아간다 했던가. 우리도 같이 가지.”

“당신이?”

“왠지 미스터 그린과 아는 사이일 거 같아서 말이야.”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탑을 오르면서 감이 좋아졌다. 특히 안 좋은 쪽,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거 같은 쪽은 특히 감이 예민하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인물, 중간 세력들을 규합하는 존재, 무엇보다 초록색.

왤까, 왜 탈모맨이 떠오르는 걸까.

초록색 타이즈를 입고 호탕하게 웃고 있는 탈모맨이 자꾸만 떠오른다.

여러 상황이 들어맞는다. 중앙부에서는 탈모맨을 만나지 못했으니.

커뮤니티로 확인하면 간단하겠지만 세력이 생기고부터는 사용하기 쉽지 않았다.

하루 대부분을 놈들과 붙어 있었고, NPC는 커뮤니티를 볼 수 있었으니까.

하다가 만약 걸리면.

-이, 이블아이 님? 쁘띠공듀셨습니까?

-아주 깜찍 무시합니다! 보십쇼. 닭살 돋은 거. 히이이익!

-무지개단 때려쳐! 오늘부터 우리는 쁘띠공듀 수호대다!

-공듀 님 행차하신다! 길을 비켜라!

이딴 소리를 하지 않았을까.

등골이 서늘하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놈들 앞에서는 절대 커뮤니티를 켜지 않을 거다.

어쩔 수 없이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상황.

연옥계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세력을 불려야 한다. 아직은 메피스토와 그리가를 상대할 정도의 규모가 아니라서.

“미스터 그린은 강하오. 그대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충분히 막아 내겠지. 정말 아는 사이면 그것대로 나쁘지 않겠지. 좋소. 같이 갑시다.”

잠시 내 의중을 살피던 녀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좋다, 좋은데…….

“미스터 그린이 있는 위치는 알고?”

“나도 모르오만 몇 가지 소문이 돌고 있소이다. 그러고 보니 이블아이 공과 무지개단이 그 소문에 적합하긴 하군.”

소문? 뭔 소문.

“미스터 그린은 다양한 색이 섞여 있는 자들을 찾아다닌다고 하오. 그 특성 때문에 종종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지. 중립 지대 위주로 돌아다니다 보면 접근해 올 가능성이 크오.”

“아, 그렇군.”

맞네.

탈모맨이네.

* * *

조현수와 무지개단, 듀발이 미스터 그린을 찾아 나선 타이밍. 또 다른 세력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 씨, 여긴 뭔 놈의 몬스터가 이리 많아.”

“맞앙. 이상한 애들이 가득하다구. 이블아이랑 탈모맨처럼 이상해!”

“두 녀석은 이상한 게 아니라 부끄러운 거야.”

“아하!”

일단의 무리. 그들 주변에 쓰러진 마물만 수십 구에 달했으며, 그중에는 마계에서도 악명 높은 고등급 마물도 섞여 있었다.

심층부. 그곳에서도 외진 곳을 위주로 돌아다닌 만큼 덤벼든 놈이 많았다.

그럼에도 피해는 전무.

이제는 익숙한지 빠르게 시체를 치운다. 피 냄새를 맡고 다른 마물들이 몰려오면 골치 아팠으니까.

심층부에 들어온 지 제법 시간이 지난 상황.

“대체 어디로 간 거야. 걔 때문에 천족을 다 흡수하지도 못했는데.”

“우리보다 먼저 들어간 건 확실한듯? 용암이 굳은 흔적이 있었으니까.”

핥짝이와 냥펀이 투덜거린다.

작전대로 곳곳에 흩어진 천족의 잔당을 흡수하는 과정에 알게 된 사실.

대기실에서 만난 상위 헌터, 본명 엘로이즈. 통칭 마그마 요정 또한 천계 진영으로 배치됐고, 무리를 이룬 뒤 마족들을 공격했단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럴 수 있다. 다만…….

“걔가 먼저 안에 있는 천족들을 만나면 안 된다구!”

“아니길 빌어야지.”

심층부에는 천족 잔당의 핵심 인력들이 숨어 있었다.

만약 마그마 요정이 그들과 먼저 만나 규합한다면…….

“계획 제대로 꼬이겠는데.”

천족들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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