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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412화 (411/740)

412화 분열체

덕춘이의 급발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으나 일은 이미 벌어졌다.

심층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만큼 가능한 적을 만들지 않은 상태로 정보를 모으는 걸 우선하려 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대놓고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 같다.

‘결국에는 다 싸워서 이겨야 하니까.’

누가 뭐라 해도 연옥계에 있는 이들은 마계를 떠나 연옥계를 차지하려고 온 이들이다.

마계에서는 별다른 직책이 없고 서열이 낮아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는 놈들이 몰렸다는 이야기.

이렇게만 보면 마계에 있는 놈들보다 약한 놈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듣자 하니 꼭 그런 것도 아닌 거 같더군.’

이미 어느 정도 세력을 지니고 있다 욕심이 생겨 연옥계로 온 놈도 있었고, 마계에서의 위치가 마음에 안 들어 새로운 곳에서 왕이 되고자 온 놈도 있었다.

그 외 갖가지 이유로 기회를 차지하기 위해 몰려든 악마들 중에는 마계에서도 인정받는 놈들이 섞여 있는 상태.

대표적으로 메피스토가 그렇다고 들었다. 마계에서도 이름을 날리던 놈이라고 하니.

그에 반해 ‘그리가’라는 악마는 신흥 악마로 천마대전을 기점으로 두각을 나타낸 놈이고.

여러 말이 있겠지만 결론만 말하면…….

“이곳에 있는 이들 중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가려고 연옥에 온 자가 있나?”

이게 핵심이다.

상대방에게 굴복하거나 상대의 능력을 인정한 게 아닌 이상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가지 않는 게 악마다.

“그에에에.”

덕춘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단칼에 거절한 거겠지.

적당히 간 보지 말고 확실히 선을 그으라고. 더불어 자신의 주인이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가는 걸 보기 싫었을 것이고.

내가 너의 뜻을 몰라봤구나, 덕춘아.

“그에?”

뭔 소리냐며 고개를 기울이는 녀석.

놈이 딱딱하게 굳은 채 인상을 쓰고 있는 킨을 가리키더니 이어 얼굴에 손을 흔든다.

아, 그냥 못생겨서 때렸다고?

끄덕이는 덕춘이. 그럴 수 있지, 응응.

잠깐… 나도 한창 많이 맞았던 거 같은데. 에이, 아니겠지. 나한테 한 건 애정 표현이다. 확실하다.

왠지 모르게 찝찝했지만 덕춘이와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하는 데 성공했다는 걸 자축하며 놈을 바라봤다.

“후우. 건방진 새끼로군. 흐흐. 으하하하!”

미간을 문지른 킨이 웃음을 터트린다.

정신이 나간 걸까.

그런 놈을 보며 무지개단이 소리쳤다.

“네 이놈! 천하의 이블아이 님을 뭘로 보고 밑으로 들어오라는 거냐!”

“우리는 어둠을 비추는 무지개단! 사악한 이블아이 님은 너같이 어설프게 음흉한 놈이랑 함께하지 않는다!”

“긴장하라고. 연옥을 먹는 건 여기, 알록달록하신 분이다!”

응원인가, 돌려 까는 건가.

어느 쪽이든 놈의 제안에 거절한 걸 반기는 거 같다.

과정이 어찌 됐든 나를 구심점으로 만들어진 게 무지개단이니까.

심층부까지 들어온 이상 어떻게든 끝을 보겠다 이거지. 나도 이유는 다르지만 같은 생각이고.

메피스토든 뭐든 결국에는 상대해야 할 대상이다. 적을 늘려서 좋을 거는 없다지만, 만들어야 할 때는 망설이지 말고 만들어야 하는 법.

게다가…….

‘이번 챕터Ⅱ의 제목은 대결합이야.’

대결합. 첫 번째 챕터로 인해 미래가 바뀌며 두 번째 챕터도 바뀌었다.

숭배자가 되어야 했을 백터가 나와 함께하게 됐으니까. 그 결과 무지개단의 세력이 늘어나 모든 신성을 격파.

모두의 예상과 달리 내가 심층부에 들어오게 됐다.

대결합이라는 게 뭘 뜻하는지는 모르겠다. 동맹을 뜻하는 걸까, 아니면 공존을 뜻하는 걸까.

아니면 다른 특정 집단의 결합을 이야기하는 걸 수도 있다.

한 가지 예상해 볼 수 있는 건.

“메피스토도 뭔가 쫄리는 게 있나 보지? 우리가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사람을 보내 영입을 시도하는 걸 보니 말이야.”

“함부로 입을 지껄이지 마라.”

연옥계를 대표하는 2개의 세력 중 하나인 메피스토가 세력을 불리려 하고 있다는 것.

이번 챕터와 뭔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겪어본바 챕터 제목은 그 세계에 문제가 생기는 사건과 계기를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첫 번째 챕터의 제목, 잔당.

그것 역시 원래대로 흘러갔다면 백터가 숭배자와 함께하며 천계의 잔당들인 천족을 돕는 이야기였으니까.

“메피스토 님을 따를 좋은 기회를 걷어차는구나.”

“이봐, 킨. 당당하게 가 놓고 별 수확이 없어 보이는걸?”

“그럴 줄 알았지.”

대화에 별다른 진척이 없기 때문일까.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두 악마도 다가온다.

3명이서 같이 다니는 거 같은데 분위기나 생김새가 묘하게 닮았다.

권능을 사용하자 놈들의 정보가 보인다.

“그런 거였군.”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제7 마계의 악마라는 것과 메피스토의 심복이라는 것.

몇 가지 칭호와 권능에 대한 정보도 나왔고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셋이서 분열체이자 형제라.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군.’

이름이 비슷하다 했더니.

원래는 하나의 존재였다는 건가. 그러다 분열돼서 삼 형제가 된 것이고.

악마라는 종족이 워낙 종류가 다양하니 이런 경우도 있나 보다. 나중에는 셋이서 합체하는 거 아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털어 냈다.

놈들이 지들끼리 떠들어 댄다.

우리에게 맨 처음 말을 건 녀석이 킨, 중앙에 덩치 좋은 놈이 핀, 오른쪽에 선 녀석이 틴.

“포섭에 실패했다면 어쩔 수 없지.”

틴이 어깨를 으쓱인다.

놈에게 물었다.

“우리랑 싸울 생각인가?”

“아니.”

틴이 손가락을 흔든다.

이건 좀 의외인데.

“굳이 싸울 필요 있나. 보아하니 머릿수도 좀 많아 보이고.”

“말하는 꼴을 봤을 때 그리가의 밑으로 들어갈 거 같지도 않아.”

“그럼 그냥 놔둬도 그리가의 세력과 싸우게 되거든. 우리야 좋은 일이지.”

그리가의 세력과 싸우게 된다?

“그쪽에서도 포섭하러 올 거라는 뜻이군.”

“정답. 요즘 심층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굳이 우리 힘을 뺄 필요는 없겠지.”

“실력 좀 있어 보이던데 가능하면 최대한 그리가 놈한테 피해를 줘 달라고.”

생각보다 머리를 좀 굴리는 놈들이다.

포섭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놈들 입장에서는 좋다 이거지.

덕분에 몇 가지 정보를 얻었다. 두 세력 모두 적극적으로 포섭에 나설 정도로 심층부 내 힘의 균형이 바뀌고 있다는 것.

그리가가 이끄는 세력은 상당히 호전적이라는 것.

그런데 말이지.

“너희가 가겠다고 하면 우리가 곱게 보내 줄 거라고 생각해?”

왜 우리가 그냥 보내 줄 거라 확신을 할까.

누구 마음대로 이용해 먹으려고.

마물과 싸우면서 몸도 풀렸고, 무지개단의 사기도 올랐다.

컨디션이 좋다는 말. 어차피 상대하게 될 거 지금 메피스토의 전력을 깎아 두는 편이 좋을 거 같다.

겸사겸사 놈들의 실력도 확인해 보고.

내 말의 의외였는지 킨과 핀, 틴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크게 웃었다.

“아하하하하! 누구를? 우리를?”

“우리를 공격한다고? 이래서 새내기가 좋아. 패기 있잖아!”

“꽤 재밌는 녀석이야. 생긴 것도 그렇지만!”

그러다 뚝, 동시에 웃음을 멈춘다.

순식간에 바뀌는 기세. 짙은 마기가 뿜어져 나온다.

“이블아이라고 했나. 우리에 대해 이야기를 듣지 못한 모양이군.”

“이해해. 이제 막 심층부에 온 녀석이니까.”

“왜 우리가 무리도 없이 셋이서 왔다고 생각하지?”

꿀꺽.

무지개단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심층부로 넘어오는 이들은 세력을 이끌고 온다.

기본적인 상식. 그런 이들을 상대로 단 3명이서 왔다는 건 그만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인가.

-쿠구구구구궁

질량을 가진 마기가 공기를 무겁게 내리누른다.

긴장감을 올리며 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어떤 식으로 들어올까. 마땅한 무기는 보이지 않는다. 스킬 위주의 공격? 맨손? 아니면 암기를 쓰는 걸지도 모른다.

협공에 특화된 놈들일 수도 있고, 내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싸우는 스타일일지도 몰랐다.

-스윽

긴장된 순간.

킨과 틴, 핀이 거리를 벌린다.

이후 뭔가 움직인다 싶더니.

“그건 우리가 이곳에서 가장 빠르기 때문이다!”

“쫓을 수 있으면 쫓아 보시지!”

“하하하하! 메피스토 님의 전령을 무시하지 마라!”

그대로 도주했다.

진짜 잡히면 죽는다는 마인드로 미친 듯이 뛰어간다.

이동기는 기본에, 얼씨구? 은신까지 사용하네.

왜 셋이서 왔나 했더니 흩어져 도망치기 위함이었나. 방법도 다양하다. 하늘로 튀는 놈. 육지로 튀는 놈. 땅 밑으로 튀는 놈.

“…어, 이블아이 님. 쫓을까요?”

“쫓을 수는 있고?”

“이미 눈에 안 보입니다요.”

연옥에서 가장 빠른 발이라는 게 거짓은 아니었는지 벌써 시야에서 사라졌다.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발자국조차 남아 있지 않다.

나야 권능이 있으니 어떻게든 쫓을 수 있겠지만 얘네들은 아니라서.

무작정 가자니 얘들이 못 쫓아올 거 같고, 쫓아가더라도 그곳에 함정이 있을지 없을지 확신할 수 없다.

여러모로 인상 깊은 놈들. 긴장한 나 자신이 창피할 지경이다.

“아무튼 좋은 거 아닙니까, 이블아이 님?”

“저놈들이 가서 이블아이 님의 뜻을 퍼트릴 겁니다. 당당하게 선전포고를 한 것이지요.”

후렌과 루나르의 말이 맞다.

뭐가 됐든 우리의 존재는 제대로 알렸으니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렇기는 하다만. 뭘까, 이 미묘한 기분은…….

단순히 황당한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저놈들 말이 앞뒤가 안 맞아.’

굳이 포섭하지 않아도 그리가가 접선할 테니 싸울 것이라고?

아니, 우리가 포지션을 바꿔서 그쪽에 들어갈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은 건가.

그걸 굳이 우리한테 말해 준 이유는?

놈들의 행동만 보면 만만해 보이지만 내가 권능으로 살펴본바 보통 놈들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에게 충분한 피해를 줄 수 있었다는 뜻.

게다가 놈들이 말한 대로 심층부 내부에 변화가 생겼다면 위험 요소를 없애고 강제로 합병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확실한 병력을 보냈을 게 분명했다.

진짜 포섭을 목적으로 온 걸까, 다른 목적이 있는 건 아닐까.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난 눈살을 찌푸렸다.

* * *

연옥계, 심층부.

도주했던 킨, 핀, 틴 삼형제가 합류하기로 한 지점에 모였다.

“후우, 따돌린 거 같지?”

“쫓아온 흔적은 없던데.”

“그 규모로 따라오는 건 힘들겠지.”

전력을 다해 뛰었음에도 가볍게 숨을 고르는 것으로 호흡이 진정된다.

그런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한 남자.

“그래, 너희가 보기에는 어떻더냐?”

“메피스토 님.”

그리가와 함께 연옥을 대표하는 세력의 수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이질적으로 하얀 피부에 비늘. 눈 전체가 검게 물들어 있었고 붉은 홍채는 타오르듯 빛났다.

길게 뻗은 한 쌍의 뿔과 유독 긴 팔.

구태여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느껴지는 막강한 마기에 삼 형제가 한쪽 무릎을 굽혔다.

“명하신 대로 싸우지 않고 대화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역시나 포섭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예상하신 대로입니다. 무지개단이라는 단체가 확실했고 옷차림 또한 동일합니다.”

“개구리를 데리고 다니는 것 또한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애초에 이들의 목적은 포섭이 아니었다. 포섭을 빙자해 염탐을 하는 것에 가까웠지.

심층부는 검증된 악마들과 위험한 마물, 천족의 잔당 중에서도 특히 강한 이들이 뒤섞인 곳.

기본적으로는 메피스토와 그리가가 기성 세력으로 심층부를 양분하고 있었으나 현재 상황은 달랐다.

“미스터 그린, 탈모맨이 말하던 인물은 이블아이가 맞는 거 같습니다.”

“모든 특징이 일치하고 갈무리한 듯했지만 신성력도 느껴지더군요.”

“가진 세력에 비해 마기는 많지 않았습니다. 미스터 그린이 마기가 강하고 신성력이 약한 거랑 정 반대죠.”

천족의 세력이 급증했다. 새로운 영웅의 탄생. 기존에 흩어져 있던 천족을 규합한 이들도 두 명이나 되었다.

이것만 해도 머리가 아파지건만…….

“세간에 떠돌던 소문이 사실이었던 거 같습니다.”

“무지개 중 초록색만 따로 빠져나왔다더니. 이블아이의 장비에는 초록색이 없더군요.”

“이블아이와 탈모맨이 원래 하나였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마기와 신성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도 그렇고, 갑작스럽게 등장했다는 것도 그렇고.”

가장 큰 문제는 느닷없이 들어와 깽판을 벌이고 있는 탈모맨. 미스터 그린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세력이 양분되었다고는 하나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악마 또한 심층부에 존재했고, 그들은 단독으로 움직일 만큼 강한 이들이었다.

일종의 중립 세력이자 메피스토와 그리가의 전면전을 펼치지 못하게 만드는 위협 세력.

그런 놈들에게 접선해 하나의 세력으로 뭉치고 있는 게 탈모맨이었다.

같은 타이밍에 나타난 이블아이, 그가 이끄는 무지개단.

무지개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러 색으로 이루어진 갑옷을 입고 있었으나 단 하나, 초록색이 없었으니…….

“두 놈이 마주치게 둬서는 안 된다. 합쳐지면 어떤 괴물이 탄생할지 알 수 없어.”

악마들 사이에는 새롭게 나타난 이블아이와 탈모맨 둘이 원래는 하나였다가 분리된 건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당장 메피스토의 눈앞에 있는 킨, 핀, 틴 삼 형제 역시 원래는 하나의 악마였다가 분열된 존재였다.

잠시 침묵했던 메피스토가 입을 열었다.

“그리가한테 연락을 취해라. 임시적으로 평화 협정을 하고 이블아이와 탈모맨 둘 먼저 친다.”

“예, 알겠습니다!”

서로 견제하던 두 세력이 힘을 합칠 기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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