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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411화 (410/740)

411화 찰싹

심층부. 가시넝쿨 숲을 지나 도착한 곳에서 만난 첫 번째 몬스터.

“크라아아아악!”

그건 초대형종 몬스터였다. 나도 처음 보는 형태의 괴물.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마주쳤던 몬스터는 게이트를 통해 나타났거나 탑을 오르면서 본 놈들이 전부니까.

이곳은 연옥계. 천계와 마계가 연결된 또 다른 차원. 이 세계만의 몬스터가 나타날 만했고.

“메가겔리코입니다!”

“저건 마계에서도 보기 힘든 놈인데, 그러니까 7급 마물이 그냥 죽었지. 좋은 삶이었다!”

“10급 마물이에요. 한가락 한다는 악마도 저놈 마주치면 수면제 먼저 먹습니다. 그래야 안 아프게 가거든요.”

무지개단의 반응을 봤을 때 연옥계에 서식하는 고유종은 아닌 거 같고, 마계에 서식하는 놈인 거 같다.

그보다 10급이라.

챕터가 넘어가며 생겨난 기억 중에는 마계와 천계에 대한 마물 정보도 있었다.

이놈들이랑 떠들다 보니 마계의 생태계와 문화에 대해 알게 되어서 말이지.

거기서 알게 된 것 중 하나.

‘우리가 보통 말하는 몬스터는 6성급이 최대야.’

재앙과 같은 규격 외 몬스터를 제외하면 그렇다.

최근이야 에이션트 몬스터와 고대 퍼스트 몬스터를 만나 과거에는 더 강한 놈들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이전에는 그랬다.

마계에 존재하는 마물은 최대 16급까지 존재. 16급까지 올라가면 대공급 악마들도 어지간하면 전투를 피할 정도의 괴물이라던가. 14급부터는 보는 게 더 힘들다고는 하다만.

어쨌든 10급이면…….

“6성급은 당연히 넘을 거고 굳이 올려 치자면 7, 8성급 이상 정도 되겠군.”

대충 에이션트급이라고 보는 게 좋을 거 같다. 퍼스트 몬스터보다는 강할 거 같아서.

도대체 마계는 어떤 동네인 거야. 하긴 이런 환경에서 치고받고 싸우며 살아가는 종족이니 차원을 넘어 다른 차원을 차지하려 드는 거겠지.

탑에 불려와 높은 곳까지 올라간 NPC 중 악마들이 은근 많았던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닐까.

작게 혀를 차며 검을 뽑아 들었다.

“크르르르르륵.”

메가겔리코라고 했던가. 생김새만 보면 커다란 코브라 같은데, 특이점이 있다면 머리와 이어져 넓게 펼쳐진 몸통에 3쌍의 눈이 달려있다는 거?

“후후. 마계였다면 바로 유서를 썼겠지만 지금은 아니죠. 이블아이 님이 계시니까요!”

“킬더레스 대군주님과도 아는 사이인 이블아이 님이라면 메가겔리코를 상대하는 법 정도는 알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믿습니다. 이블아이 님의 손에 우리 30명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시라고요!”

부담감 줘서 고맙다. 날 잡아서 얼차려나 한번 줘야지.

마계에는 들어가 본 적도 없는데 저놈 공략법을 어떻게 알아.

그래도 괜찮다. 내게는 권능이 있으니까.

-츠즈즈즈즈

놈을 주시하며 권능을 발휘했다.

우리가 낯선 건 저놈도 마찬가지인지 섣불리 공격하지 않는 상태.

심층부에서는 10급 마물이라 하더라도 최상위 포식자가 아니라는 뜻이겠지.

[메가겔리코]

-10급 마물.

-강력한 피지컬과 강력한 마법 방어력을 지녔습니다!

-몸에 박힌 3쌍의 눈은 각기 다른 저주를 내리니 조심하세요!

오케이. 대충 알았다.

얼굴에 달린 메인 눈깔이 앞을 보는 용도, 몸통 눈깔은 메두사 같은 기능적 눈깔.

정확히 어떤 저주를 내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주 내성도 만렙 찍은지 오래다.”

특히 정신계 저주는 면역에 가깝다.

내 정신 건강을 책임지는 SSS급 정신 보호가 있으니까.

“너흰 시간 끌어. 몸통에 박힌 눈알부터 없앨 거야. 마법은 잘 안 통하니까 칼질 위주로 할 수 있으면 하고 아니다 싶으면 마법만 쏴.”

“넵! 갔다 오십쇼!”

빠르게 지시를 내린 후 놈을 향해 달려갔다.

나름 신선한 흥분감이 올라온다. 그동안 일반 몬스터를 상대하면서는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못했으니까.

현재 스펙으로는 6성급 몬스터도 어렵지 않게 잡는다.

재앙도 비슷하지 않을까? 60층대에 오를 때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70층 후반을 달리는 중.

메스토카나 그런 놈들은 충분히 쓸어버릴 수 있을 거 같은데.

‘세상이 망하면 이런 놈들도 넘어오려나.’

안 넘어올 거라는 보장은 없다. 뭐가 됐든 탑 안에 있는 놈이기는 하니까.

이쯤 되면 진짜 어떻게 여태 지구가 안 망했나 싶다.

60층이면 S급. 메스토카 한 마리 잡는 데 수백 명이 죽고 레비아탄은 잡지도 못했다.

몰랐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지금은 아슬아슬한 걸 넘어 신기할 지경이다.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쉬며 바닥을 박찼다.

-콰아아아아앙!

내가 있던 자리로 놈의 꼬리가 지나간다.

초대형종이라 이건가. 똬리를 틀고 있을 때부터 빌딩만 한 놈이라 그런지 꼬리치기 한 번에 일대가 초토화된다.

스펙이 안 되면 피할 공간이 없어 그대로 당했겠지만 내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고.

“일제히 쏴!”

“마구잡이로 쏘지 말고 타임 맞춰서 쉬지 말고 공격해!”

무지개단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2개로 조를 나누어 한쪽을 원거리로 스킬을 쏘아 댔고, 다른 한쪽은…….

“충신 루나르! 칼침 한 방 꽂겠습니다!”

“충신 중의 충신! 후렌 키아노의 매타작!”

“이 자식, 이블아이 님의 눈에 들려고 별짓을 다 하는구나!”

“네가 먼저 했다, 이놈아!”

과감하게 놈에게 들이대며 공격을 해 댔다.

마법 공격에 강한 내성을 가지고 있는 놈답게 마법 스킬에는 몸이 조금 흔들릴 뿐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지만 둘의 공격에는 달랐다.

“크라아아아아!”

통증이 느껴지는지 몸을 꿈틀거리는 녀석.

머저리 같아 보여도 나와 함께 들어온 놈들은 신성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평소 내가 너무 굴려서 제대로 인식하지는 못한 거 같지만.

“어? 좀 통하는데?”

“우, 우리 좀 강해졌나?”

이렇게 객관적인 반응을 보고 나서는 스스로의 힘을 눈치챈 거 같다.

각오가 당황으로, 당황은 곧 자신감으로 바뀌었고.

“무지개단의 저력을 보여 주자!”

“계속 쳐!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이야!”

“싸가지 없게 눈 한 번 깜빡 안 하더라, 패! 줘패!”

보다 적극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덩치가 덩치인 만큼 치명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놈의 시선을 끌어 주었고, 그사이에 난 놈의 몸통을 기어올랐다.

[달라붙기 (S) Lv.5]

시나리오를 겪으며 달라붙기의 등급도 올라간 상황. 강한 마찰력이 생겨나며 손쉽게 위로 향할 수 있었다.

경사만 어느 정도 주어지면 달리기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선 하나.”

가장 가까운 눈알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신성력을 듬뿍 담아서.

마물이라 그런지 마기를 가지고 있어서 한 선택이었고.

-푸르륵!

“크라라라라라라!”

효과는 대단했다.

물컹한 뭔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놈이 날뛰기 시작했다.

몸을 꼬든, 앞구르기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검을 헤집었다. 덩치가 큰 만큼 눈알도 커서 한 번 찌르는 거로는 부족할 거 같아서.

[메가겔리코가 저주를 내립니다!]

[무호흡의 저주(S)]

“흡?”

이대로는 안 되겠는지 놈이 저주를 내렸다. 무호흡의 저주라니. 듣도 보도 못한 능력이었으나 숨이 막혔던 것도 잠시.

[저주 내성(S) Lv.10]

[저주 내성이 저주를 극복합니다!]

내성 스킬이 성공적으로 발휘되며 숨이 트였다. 문제는 무지개단은 아니라는 것.

나처럼 저주를 막아 낸 녀석들도 있었지만.

“으읍!”

“꺼으으윽!”

그대로 저주에 걸려 버린 녀석도 있었다. 격렬하게 움직이던 도중 숨이 막히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

잠깐이지만 무방비해질 정도의 타격이다.

메가겔리코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대한 꼬리를 휘둘렀다.

성가시게 구는 놈들 먼저 처치하겠다는 뜻이겠지. 빠르게 놈의 몸통을 살폈다.

반대편 눈알이 빛나고 있다. 몸통이 워낙 커서 저기까지 기어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 가는 동안 다른 눈이 저주를 걸 수도 있고.

그렇다면…….

“덕춘아!”

“그에에에.”

덕춘이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

이런 환경에서는 나보다 덕춘이가 더 자유롭게 움직일 거다.

발바닥의 빨판을 이용해 빠르게 이동하는 녀석. 저쪽은 덕춘이한테 맡기고.

“난 이쪽 먼저 처리해야겠군.”

서두르자.

메가겔리코가 연달아 꼬리를 내리찍는다.

저주에 걸린 무지개단을 쓸어버리겠다는 의지.

저주를 버텨 낸 녀석들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놈들을 붙잡고 자리를 피한다.

운이 좋은 건지 놈들의 판단이 빠른 건지 아직까지 공격에 당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도 그럴거라는 보장이 없다.

-콰직! 콰드드득!

-찌유우우우웅!

검으로 놈의 몸을 찔러 대며 눈을 향해 오로라 빔을 쏘았다.

일시적으로 시야가 가려진 녀석이 멈칫했고 그사이…….

[프로즌 브레이크(S) Lv.10]

-꽈드드드득!

-콰아아아아앙!

다음 눈알을 얼리고 깨트렸다. 촉촉해서 그런지 효과가 좋다.

덕춘이도 산성 침을 이용해 저주를 걸고 있던 눈알 하나를 무력화한다.

“헉, 허억! 죽는 줄 알았네.”

“뭐 저딴 저주가 다 있어.”

“당한 만큼 돌려주자! 가자!”

호흡을 되찾은 놈들이 숨을 고르며 재정비를 한다. 이어서 공격.

그 모습을 잠시 살핀 후 담담히 인정했다. 내가 잘못 판단했다.

무지개단이 시선을 끄는 사이 메가겔리코를 처치하려고 했는데.

“굳이 나 혼자 어떻게 할 필요가 없었네.”

무지개단을 진가를 못 알아본 건 놈들뿐만이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였다.

메가겔리코의 공격을 피하고 막아 내면서 깎아 버리듯 공세를 이어 나가는 녀석들.

뒤에서 마법을 날리던 녀석들도 성이 안 차는지 각자의 무기를 들고 달라붙었고.

[과감각의 저주가 내립니다!]

[통증 전이의 저주가 내립니다!]

.

.

.

위기를 느낀 메가겔리코가 쓸 수 있는 저주를 쏟아부으며 꼬리뿐만 아니라 몸통 전체를 이용해 덤벼 댔다.

말이 덤비는 거지 사실상 발버둥에 가까웠다.

실시간으로 놈의 주력기인 저주를 내리는 눈알이 파괴되었고, 저주를 내릴 수 없는 녀석은…….

“크하아아아아!”

마법이 잘 통하지 않는 거대한 뱀에 불과했다.

10급이라고는 하나 30명에 달하는 악마들의 공세를 막아 낼 수는 없었다.

사실상 레이드나 마찬가지. 시간이 지날수록 승기는 우리 쪽으로 기울어졌다.

-콰직!

놈의 정수리에 검을 꽂아 넣는 것으로 끝.

크게 몸을 떤 녀석이 축 늘어진다.

-쿠구구구구궁

쓰러진 놈 위로 올라오는 먼지구름.

아직 살아 있는 신경 세포로 인해 꿈틀거리는 하지만 죽었다.

생각보다도 빠르게 끝난 사냥. 긴장했던 것과 달리 별다른 피해 없이 성공했다.

얼떨떨한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던 놈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정정당당하게 집단으로 승리했다!”

“우리 꽤 강하잖아?”

“이걸로 이 몸의 무용담이 하나 늘었군!”

평소에는 뭐라 한마디 해 줬겠지만 이번에는 놔두었다.

심층부에 올라와서 스스로의 힘을 깨닫는 동시에 처음 거머쥔 승리 아니던가.

사기를 올리는 것 또한 중요한 법이다.

자축을 하는 것도 잠시.

느껴지는 시선에 손을 들어 올렸다. 무지개단 역시 뭔가를 눈치채고 입을 다문다.

숨기는 기색 없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악마 3명.

“오호, 이번에는 꽤 실력 있는 애들이 들어왔네?”

“심지어 다들 처음 보는 얼굴이야. 신성 중에 한 명이 올라올 줄 알았는데.”

“아! 나 저놈들 알아. 무지개단이라고 불리는 애들이야.”

눈을 찌푸렸다.

강렬한 마기가 전신을 찌른다. 밖에서 싸운 신성들도 마기가 짙었는데 이놈들은…….

‘못해도 800대 이상. 900대는 되는 거 같군.’

내가 느끼기에도 순도 높은 마기를 지니고 있었다.

흥미로운 눈으로 우리와 메가겔리코의 사체를 보는 녀석들.

“그놈들보다 우리가 먼저 찾아서 다행이야.”

“맞아 맞아. 꽤 쓸 만해 보이잖아. 누가 갈래?”

“내가 가지.”

지들끼리 떠들더니 우측에 서 있던 놈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고작 3명. 30명인 우리에게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는 걸까. 움직임에 여유가 있다.

“반갑다. 심층부에 온 걸 환영하지. 난 메피스토 님을 따르고 있는 킨이라고 한다.”

메피스토?

연옥의 왕에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악마 중 한 명이다.

그놈의 부하인가.

나도 놈을 향해 다가갔다.

“…무지개단의 이블아이다.”

“하하하! 그렇게 기죽을 거 없다. 아직은 적대시할 생각이 없으니.”

기죽은 게 아니라 내 입으로 무지개단이라 말하기 부끄러워서 그런 건데.

그냥 오해하게 놔두자. 설명하는 게 더 이상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메피스토 님의 밑으로 들어올 기회를 주마. 영광으로 알거라.”

상당히 건방진 모습.

기선제압을 했다고 느꼈는지 놈이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며 손을 내밀었고.

“난 누구 밑에 들어갈…….”

“궥!”

-찰싹

“음?”

적당히 거절하려는 찰나. 급발진한 덕춘이가 혓바닥으로 놈의 뺨을 때렸다.

이건, 아… 그니까.

“꺼져라! 우리는 연옥을 집어삼킬 무지개단이다!”

몰라. 패기롭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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