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408화 (407/740)

408화 비장의 수

자그마치 3개의 세력이 충돌하는 상황.

백터까지 합치면 4개라 봐도 되기는 하지만 따로 무리를 이루고 있는 것도 아니고 상태를 봤을 때 참전할 수 있지도 않았다.

그저 전투에 휘말리지 않도록 천사를 데리고 뒤로 빠져 있는 게 전부.

좋은 선택이다. 괜히 거든답시고 끼어들었다가 죽으면 곤란해서.

게다가…….

“네놈을 죽여 윗분들의 인정을 받을 것이다!”

살기등등하게 나를 노리는 놈이 있어서 말이지.

숭배자 무리를 이끄는 놈. 패를 봤을 때는 실버 등급이었다.

‘70층대에서는 실버가 가장 높은 걸지도 모르겠군.’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 골드 등급과 전면전을 치른 적은 없지만 간접적이나마 그 힘을 느껴본 바 있다.

그런 놈들이 70층대에 있었다면 숭배자들이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도 않았겠지.

그냥 닥치는 대로 등반가를 학살하면 되니까.

탑이 가혹하기는 해도 어느 정도 밸런스는 맞춰 준다. 임의로 높은 등급의 위험한 놈들은 높은 층에 배정했을 거라는 말.

-카아아아아앙!

놈이 내지른 창을 쳐 냈다.

힘이 꽤 강하다. 전투 센스도 있고.

제2 천계에서 만났던 가디슈랑은 천지 차이. 같은 등급임에도 훨씬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가디슈는 왕족이라 그런 건지 가진 힘에 비해 실전 경험이 부족했어서.

반면 이놈은…….

-스파앗!

창이 튕겨 나가는 것과 동시에 자세를 고쳐 다시금 창을 내질렀다.

몸통을 노리는 척 들어오던 공격이 급격히 하강해 발을 노린다.

검과 창. 리치 차이로 인한 유리함을 잘 살린 공격이었으나.

[어스 월(B) Lv.4]

-콰드드드드드!

공격이 닿기 전에 놈의 발밑에 흙벽을 세워 버렸다.

얼떨결에 위로 솟구치는 놈.

그대로 벽을 걷어차 무너트렸다. 날개가 있는 게 아니라면 공중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

악마들이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날아다니는 놈도 있었지만 적어도 저 녀석은 해당 사항이 없었다.

실버 등급인 만큼 이 정도 변수에 당할 놈은 아니지만…….

“짜증 나게 구는구나!”

허공을 한 번 박차더니 내 공격 범위를 벗어나 착지했다.

신기한 능력을 쓰네. 아무것도 없는 곳을 차다니. 물리력을 무시하는 움직임이었지만 놀랍지는 않았다.

과학적인 영역을 벗어난 것이 스킬이고 권능이며 칭호였으니까.

탑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보아하니 간단한 트릭에 불과하기도 했고.

[에어 쉴드(S) Lv.10]

-공기를 압축해 보호막을 만듭니다.

허공에 쉴드를 생성해 발판 삼아 뛴 거였다.

공기로 만들어진 만큼 투명한 건 당연.

상황에 따라서는 꽤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스킬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피슉!

놈이 손가락을 내밀더니 마기로 이루어진 화살을 쏘아 보냈다.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화살.

그 경로에 생성되는 에어 쉴드.

-티잉! 팅!

연속적으로 생성된 쉴드에 맞아 각도가 틀어진 화살이 내 쪽으로 날아온다.

고개를 꺾어 피했다.

이런 식으로도 쓰는구만.

정신 놓고 있으면 사각지대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맞기 딱 좋다.

“호오, 제법 눈썰미가 좋구나?”

“그냥 네가 못하는 거야.”

“닥쳐라!”

종족 불문 상대를 가장 화나게 만드는 방법은 팩트로 때리는 것.

얼굴을 붉힌 놈이 다시금 덤벼 온다.

피할 수 있는 공격을 피하고, 막아야 할 것은 막으면서 권능을 사용했다.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츠즈즈즈즈

[마하나]

-제7 마계의 악마.

-탑 숭배자. 실버 등급입니다!

-실버 등급 상위권의 서열을 지니고 있습니다.

상위권이라.

음, 그래서 까다로웠던 건가.

생각해 보면 이 녀석 말고 서열이 높다고 떴던 놈이 한 명 있기는 하다.

히든 가든 시나리오 때 만났던 숭배자.

그놈도 서열이 높다고 했는데 직접 싸우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곳에서는 네가 가장 서열이 높나? 실버 등급 중에서 말이지.”

“네놈이 알아 뭐 할까. 이 자리에서 죽을 놈이거늘.”

그러게. 왜 물어봤지? 답하기 전에 죽을 놈인데.

이래서 숭배자 놈들한테는 정이 안 가. 너무 극단적이잖아. 입만 열면 죽이겠다 뭐 하겠다.

평화롭게 말로 하면 얼마나 좋아.

그런 의미에서…….

“러브 앤 피스!”

-파하아아아아앗!

사랑과 평화를 담아 놈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꾸헤에에엑!”

갑작스레 검을 놓고 주먹질을 할 줄은 몰랐는지 괴상한 비명과 함께 날아가는 녀석.

손맛 괜찮네. 이래서 탈모맨이 맨몸으로 싸우나?

돌대가리인지 강철 안면인지 단단하기도 해라. 주먹이 다 아플 지경이다.

잠시 떨군 혼돈검을 잡고 몸을 돌렸다.

전장은 혼란의 도가니. 누가 봐도 개판인 상황.

수십, 정확히 말하면 100명이 넘는 인원이 뒤엉켜 싸우는 건 그 자체로 장관이고 질리는 광경이었지만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의 소속을 알기는 쉬웠다.

대공의 아들 포라드가 이끄는 악마들은 규칙성 없는 장비를 마구잡이로 입고 있었고, 숭배자인 마하나의 무리는 후드 달린 로브를 입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우두머리로 있는 무지개단은…….

“내가 왼쪽을 맡지, 빨강!”

“난 오른쪽으로 가마, 파랑!”

“어? 나도 파란색인데?”

“적당히 눈치껏 해, 등신아!”

말을 말자. 스트레스받네.

왤까, 왜 내 주변에는 이런 놈들밖에 없는 거지?

그래도 인상적이기는 하다. 다른 놈들의 머리에 무지개단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건 제대로 하고 있었으니까.

그 증거로…….

“저 미친놈들!”

“변방에서 올라온 놈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놈들이었나!”

“이딴 놈들한테 당할 수는 없다!”

맞서 싸우는 놈들은 이를 악물고 무기를 휘둘러 댔다.

나 같아도 저럴 거 같다. 어디 가서 말도 못 한다. ‘누구한테 졌어?’ ‘무, 무지개단.’ 이럴 거 아냐.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그건 그거고.

“흥! 변방에서 버러지 한 마리가 기어 왔다더니 네놈이었구나.”

“버러지도 아니고 혼자 온 것도 아닌데. 네 눈에는 얘네들이 안 보이나 보군. 젊은 나이에 안 됐어.”

“말장난은 집어치워라!”

팩트는 상대를 화나게 한다는 불변의 진리에 따라 포라드가 고함과 함께 달려들었다.

특이하게도 무기가 보이지 않는다. 탈모맨과 같은 피지컬 타입인가.

-콰드드드득

“오호?”

달려오는 순간 놈의 몸에 마기가 둘러지더니 갑주와 같은 형상으로 변했다.

무기만 안 들었다 뿐이지 기사의 형태와 같았고.

“이블아이 님! 저놈은 포라스 대공처럼 악의 갑주를 두를 수 있습니다!”

“닿는 것은 그대로 갈아 버립니다. 조심해야 돼요!”

그 모습을 확인한 루나르와 후렌이 경고했다.

닿는 것을 갈아 버린다라.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한다는 뜻.

한번 겪어 보지 뭐.

별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아서일까 놈이 코웃음을 친다.

“압도당해 움직이지도 못하는구나!”

거대한 덩치에 가속을 더하며 몸통 박치기.

산이라도 무너트릴 만한 기세였으나.

[중량 팔찌(C)]

[강철의 의지(S) Lv.10]

[강체强體(S) Lv.10]

[물리 공격 내성(S) Lv.10]

[어둠 내성(B) Lv.3]

-콰아아아아아앙!

아티팩트와 보호 스킬을 두른 채 공격을 받아 냈다.

과연 보통 놈은 아니라는 걸까, 놈과 맞부딪치자마자 어둠 내성의 레벨이 상승한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콰가가가가!

경고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놈과 닿은 곳이 휘몰아치며 펠라인 세트를 갉아 먹는다.

커다란 믹서기로 갈아 버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보호 능력과 더불어 펠라인 세트의 방호력. 자체 수복 능력이 있어 큰 대미지는 없었다.

오히려…….

‘아주 좋아. 어둠 내성 올리기에 최적화 됐어!’

기쁘게 놈의 공격을 맞이했다.

갑주 자체가 마기로 이루어진 만큼 어둠 내성이 발휘될 수밖에 없는 구조.

“크하하하하하! 공포에 얼어붙었구나!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탓하라!”

-쾅! 콰앙! 쿠구구구궁!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녀석.

연달아 주먹을 날리는 건 물론이고 미들킥을 비롯해 발차기의 연계.

몸을 비틀며 팔꿈치와 무릎으로 찍어 버리기까지.

확실히 아프다. 신성 서열 2위라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속이 울리고 뼈가 부러질 것 같다.

하지만…….

[어둠 내성(B) Lv.9]

[스킬 레벨업!]

[어둠 내성(B) Lv.10]

[B등급 한계 레벨에 도달했습니다.]

[승급 쿠폰을 사용했습니다.]

[어둠 내성(A) Lv.1]

“올라간다! 올라가!”

놈이 나를 구타하는 10분 동안 어둠 내성이 A등급으로 올라갔다.

쿠웅!

묵직한 발차기가 옆구리를 강타했다.

울컥. 속이 뒤집히며 핏물을 토했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때려 봐!”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법.

내게는 킹갓영물 덕춘이도 있다.

“그에에.”

질린 표정을 하면서도 현란한 혀 놀림으로 상처를 치유해 준다.

중간중간 놈의 공격을 흘리며 회복 포션까지 마셔 줬다. 건강해야 잘 맞지.

처음에는 신나서 주먹질하던 놈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움찔 뒤로 물러섰고.

“뭐, 뭐 이딴 새끼가 다 있어?”

“아.”

난 작게 탄식했다.

역시 같은 자극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어둠 내성(A) Lv.3]

3레벨에 도달한 후로는 레벨업 할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아쉽네. 그래도 이 정도면 뽕은 뽑고도 남았지.

볼일은 끝났으니.

“꺼져 이제.”

[되갚기(S) Lv.10]

-쿠구구구구.

-쿠과아아아아아앙!

망설임 없이 되갚기를 사용했다.

놈에게 얻어맞으며 대미지는 한계치까지 누적된 상황.

누가 뭐라 하기도 전에 거대한 파괴의 파동이 덩치를 불리며 퍼져 나갔고.

“크하아아아악!”

포라드 역시 충격을 받고 저 멀리 튕겨 나갔다.

그래도 강한 놈이라 그런지 죽지는 않네.

바위에 처박혀서 멍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는 것이 현타가 온 것 같다.

그럴 수 있지.

-뚜둑

몸을 풀었다.

신나게 두들겨 맞느라 온몸이 쑤신다.

퉤. 입에 고인 핏물을 뱉어 내고 손가락으로 치아를 살폈다.

다행히 깨지거나 빠진 건 없는 거 같고. 늑골은 몇 개 나간 거 같은데 덕춘이가 핥아 주고 있으니 조만간 낫겠지.

일부 찌그러졌던 펠라인 세트도 저절로 펴지며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 중이다.

그런 나를 중심으로 굳어 있는 악마들.

나와 포라드를 번갈아 살피고 있다.

“어, 어어? 포라드 님?”

“어떻게 이게… 아니, 어?”

“후, 후퇴! 일단 빠지자!”

“제기랄, 뭔가 잘못됐어!”

놈들의 보스인 포라드가 나가떨어졌다.

치명상을 입거나 한 건 아니니 다시 싸우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내가, 졌다.”

포라드는 싸울 의지를 잃었다.

생각보다 근성 없네. 나야 알아서 포기해 준다면 땡큐지만.

봐라.

[악마, 포라드를 상대로 승리했습니다.]

[마기 일부를 흡수합니다.]

-스아아아아아!

놈이 패배를 선언하는 것과 동시에 막대한 양의 마기가 몸으로 스며들었다.

확실히 서열이 높아서 그런지 마기 스텟이 수직 상승하는 게 느껴진다.

만약 저놈이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면 훨씬 힘든 싸움이 됐을 거다.

겉으로 아무렇지 않게 맞은 것처럼 보였을지는 몰라도.

“으음.”

대미지가 상당히 들어왔어서.

좀 위험하게 행동하기는 했다. 그래도 별 수 있나. 좋은 기회가 있으면 잡는 게 정답인데.

“다음에는 네놈을 꺾어 주마! 나, 포라스의 아들 포라드는 결국에는 정상에 설 것이다!”

삼류 악당 같은 대사를 지껄이며 달아나는 녀석.

자연스럽게 포라드의 무리는 아웃이고.

남은 건 숭배자와 무지개단 두 세력뿐.

나름 치열하게 싸웠다. 평균적인 수준은 무지개단이 살짝 밀리기는 하지만 놈들 역시 포라드의 무리와 싸우며 지친 상황.

“방해꾼이 사라졌군.”

“뭐래, 지금까지 대기 타던 놈이.”

“그 건방진 아가리가 찢어져도 떠드는지 봐야겠구나!”

사실상 숭배자의 대표와 무지개단의 대표인 내가 승부를 결정하게 되었다.

전력의 핵심의 격돌.

그 결과에 따라 한쪽은 급격히 무너질 게 뻔했고 놈 또한 그 사실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일까.

“데이본드 님이시여, 제게 힘을 주소서! 죽어 마땅한 자에게 벌을 내리소서!”

[숭배자 마하나가 가호를 요청합니다!]

[숭배자 데이본드가 권속의 요청에 응합니다!]

놈이 비장의 수를 뽑아 들었다.

데이본드? 그 괴물의 힘을 끌어들이겠다고?

[시스템 개입!]

[데이본드가 페널티를 앉고 권속에게 힘 일부를…….]

“그건 반칙이지!”

[업보 청산]

가호가 내려지기 직전, 나 또한 비장의 수를 사용했다.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이세계의 스킬.

업보 청산이 놈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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