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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407화 (406/740)

407화 세력. 세력. 세력

나를 비롯한 무지개단은 서둘러 백터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백터 역시 보통 놈은 아니라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나.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권능과.

“이블아이 님! 이쪽에 백터가 지나간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요.”

탐색과 정보 수집에 특화된 후렌 키아노의 활약으로 뒤를 쫓을 수 있었다.

주도면밀하기도 하지. 지나간 흔적을 없애는 건 기본이었고, 혹시나 미행이 붙었을 것을 염두에 두었는지 목적지로 바로 향하지 않고 빙빙 돌았다.

그뿐일까.

“이야, 백터 그 녀석 부상당한 거 맞습니까?”

“여길 뛰었네. 어쩝니까? 우리도 일단 뛰어내릴까요?”

생각도 못 한 험한 지형으로 움직여 당황하게까지 했다.

분명 나와 싸우고 나서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고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었는데.

그 부상을 안고 이렇게 움직였다? 어지간한 악바리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거의 강박이라 해도 될 법한 행동.

루나르와 후렌 역시 백터가 뛰어내린 절벽을 보고 어떻게 할지 묻고 있었으며…….

“백터가 절벽 중간에 매달려서 다른 쪽으로 이동했다 했지?”

“그렇습니다요.”

“뛰어. 밑에 물도 흐르네. 실패해도 죽지는 않겠어.”

“…왜 안 죽습니까? 저기 강물에 암초 안 보이십니까?”

“시끄러. 내가 밀어줄까, 네 발로 내려갈래?”

“하하하하. 말씀 못 드렸는데 전 사실 절벽 밑으로 내려가는 취미가 있습죠!”

바로 태세를 바꾼 후렌 키아노가 절벽을 타고 내려갔다.

발 한번 헛디디면 그대로 추락할 게 뻔했으나.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하는 짓이 얼빵해서 그렇지 이놈들도 어디 가서 꿇리지는 않는 놈들이다.

신성이니 뭐니 이름을 떨칠 정도로 강한 놈들보다는 못할지 몰라도 마계 전체 수준으로 보면 약하지는 않다는 뜻.

이 정도 높이의 절벽은 충분히 내려갈 수 있다.

후렌을 시작으로 루나르와 무지개단들도 밑으로 이동. 나 역시 아래로 내려갔고.

“으음, 여기부터는 흔적이 선명하네요. 백터도 여기까지 왔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우리도 쫓아 오는데 고생 좀 했으니까.”

“철두철미한 놈입니다. 그러니 여태 다른 신성에게 잡히지 않은 거겠지만요.”

맞는 말이다. 조심성이 이렇게 많으니 여태 살아남은 거겠지.

무엇보다 놈이 천족과 엮여 있다고 예상되는 상황. 그 사실이 들키면 수많은 악마의 공격을 받을 게 뻔했다. 조심성이 많아진 데는 이유가 있다.

아직까지는 추측에 불과하다만.

‘예상이 맞을 거 같단 말이지.’

직감이라 해도 좋았고 드러난 정황과 심증에 의한 결론이라 해도 좋았다.

그보다 더 확신을 가지게 만드는 건 이번 시나리오의 무대.

천마대전이 끝난 세계. 천계와 마계가 각자의 진영으로 물러선 후 후발주자와 천족 무리가 대립하는 환경.

챕터의 이름 잔당.

그동안 겪어온바 멸망이 가속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혼란이 일어야 한다.

제2 천계에서 발생한 몬스터 웨이브와 탑 숭배자.

히든 가든에서 벌어진 대침공과 멸망한 세계를 버리고 탑으로 들어간 NPC.

이번에도 형태는 다를지언정 구조는 비슷할 게 분명했고.

‘악마와 천사의 대립이 그 원인일 가능성이 제일 크지.’

당장 나도 천족들의 기습을 받았으니까.

나만 그럴 리가 있나. 다른 악마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게 뻔했고, 반대로 악마들의 공격을 받은 천족도 있을 거다.

그 사이에 껴서 혼란을 더 키울 인물이 있을 거라는 건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었고.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보내지 말 걸 그랬네.”

“그에에에.”

덕춘이도 동의하는지 낮게 울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항상 늦는 법.

아직 크게 일이 터지지는 않았으니 그 전에 수습하면 된다.

“이블아이 님, 마기가 느껴집니다. 꽤 강한데요!”

“저, 저놈들 걔네 같습니다! 대공의 아들!”

절벽 중간, 인위적으로 뚫린 동굴을 따라 들어가자 붉은 암석 지대가 나타났다.

광활하게 펼쳐진 돌산.

붉은 광택에 산 전체가 피를 흘리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그곳에는…….

“크하아아아아! 들어와 새끼들아!”

백터가 날뛰고 있었다.

움직임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직 제대로 된 회복을 하지 못했다.

놈을 둘러싸고 있는 악마 무리. 그 인원만 60명은 가뿐히 넘겼으며, 그 너머 팔짱을 낀 채 상황을 즐기고 있는 놈이 있었으니.

“포라드예요. 신성 서열 2위! 마계 대공인 포라스의 아들입니다.”

“지원도 빵빵하게 받고, 대공의 후광을 믿고 몰려든 악마들도 많아서 규모가 꽤 큽니다. 지금 보이는 놈들은 일부에 불과할 거예요.”

“조만간 신성을 뛰어넘고 메피스토나 그리가와 견줄지 모른다는 예측이 도는 놈이죠.”

이전에 들었던 대공의 자식이었다.

서열 2위라, 신성 중에는 상위권을 차지하는 놈이다.

직접 나서지 않아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마기의 농도만 봐도 어중간한 악마는 비교 대상도 되지 않는다.

자신감 때문인가 아니면 백터가 고통받는 걸 즐기는 걸까, 직접 참전했다면 진작에 끝났을 테지만 팔짱을 낀 채 구경만 하고 있다.

부하로 보이는 놈을 의자 삼아 걸터앉고, 음료수까지 마시는 것이 제대로 즐기는 모양인데.

“그래! 좀 더 발버둥 쳐야지! 그냥 하지만 말고 옆에 천사도 좀 찔러 줘라!”

“예, 알겠습니다!”

포라드의 명에 진형을 짜며 백터를 압박하던 놈들이 뒤에 있는 천사를 노리기 시작했다.

장난치듯 슬쩍 무기를 뻗기도 하고 기습적으로 파고들려는 모습도 보였으니.

“크읍!”

“그렇게 막 움직이면 빈틈이 생긴다고? 백터.”

“스케빈져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구만그래! 소문보다 못하잖아!”

그때마다 대응하는 백터에게 빈틈이 생기는 건 당연했고 조금씩 부상이 늘어났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하던가. 포라드의 부하들 또한 단번에 끝내지 않고 깎아 나가듯 백터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정상 컨디션이었다면 불가능한 일. 세간의 평가와 달리 백터는 강하다.

고작 저딴 놈들한테 당하지 않을 만큼. 수십 명이 몰려와도 휩쓸어버릴 만큼.

‘나와의 전투에서 입은 대미지가 너무 컸어.’

심지어 뒤에 있는 천족까지 지키고 있다.

천족도 나름 맞서 싸우고는 있었으나 전투력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회복이 주특기인 거 같은데.’

공격에 어설픈 부분이 많았고, 그때마다 상처가 늘어났다. 상처가 생기는 동시에 아무는 게 회복력만큼은 대단해 보인다만 저래서는 버티는 게 고작이다.

어디까지나 치명적인 공격을 받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신성력 기반의 치유 능력만 아니었다면 백터도 순식간에 회복시켰을 텐데 종족 특성상 그럴 수는 없다.

백터가 쓰러지기 전에 도와야 한다.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천족과 커넥션이 있다면 나랑 뜻이 맞거든.’

목적이 같다면 도움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있는 법.

아직까지 멤버들과 합류하지도 않았다. 각자 진영에서 확고한 위치를 잡는 중이었으니까.

머릿속으로 결정을 내리는 순간.

“저기 또 다른 무리가 오는뎁쇼?”

“포라드를 노리는 거 같습니다!”

일단의 무리가 들이닥쳤다.

척 보기에도 수상하게 생긴 놈들.

갑작스러운 난입에 포라드 쪽도 당황한다.

둘이 같은 세력은 아니라는 뜻이었고.

“백터한테 접근하는데요?”

그대로 전장으로 밀고 들어온 놈들이 포라드의 부하들을 공격하는 사이,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 백터에게 다가갔다.

마력을 돌려 시각과 청각에 집중했다.

후드를 쓰고 있는 악마. 놈이 품에서 꺼낸 것은…….

“숭배자!”

탑 숭배자들이 가지고 다니는 증명패였다.

색으로 봤을 때 실버 등급. 후드를 벗자 얼굴에 문신을 한 갈색 피부의 악마의 얼굴이 드러난다.

그가 백터에게 손을 내민다.

“반가워.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보아하니 힘든 상태 같은데 우리가 좀 도와줄 수 있겠군.”

“넌 누구냐.”

“그게 궁금하나? 지금은 여기서 벗어나는 게 우선일 텐데. 물론 저쪽 천사도 같이 말이야.”

씨익, 입꼬리를 올린 숭배자가 뒤에 있는 천사에게 시선을 돌린다.

“미리 말하지만 우리는 천족에 별로 적대감이 없어. 저기 보여? 자네라면 천족인 걸 눈치챘겠지.”

그의 말마따나 숭배자 무리에는 천족이 섞여 있었다.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기는 했으나 느껴지는 신성력은 악마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백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연옥계는 갇혔어. 이어져서는 안 될 두 세계가 합쳐져 생긴 차원이니까. 아주 불안한 상태다 이거지. 그런 마당에서 서로 싸워서야 쓰나.”

이어져서는 안 되는 세계.

말할 것도 없이 천계와 마계를 말하는 거다.

갇혔다? 이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긴데.

“너 같은 얼굴은 본 적이 없는데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백터의 반응을 보았을 때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닌 거 같았다.

숭배자가 어깨를 으쓱인다.

“자네도 알고 저쪽 천사도 알고 있을 내용인데 나라고 모르라는 법은 없지. 보게, 이런 생산성 없는 싸움을 끝내려면 힘이 있어야 해. 우린 힘을 가지고 있지.”

그가 턱으로 전장을 가리켰다.

숭배자 무리가 포라드 무리와 격렬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다.

뭐가 됐든 신성 서열 2위가 포라드다. 놈의 부하들도 한가락 하는 놈들이고 그놈들과 비등하게, 정확히는 점차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만 봐도 상당한 실력이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이 멍청한 전쟁을 끝내고 평화와 평등을 가져오는 거야. 악마도 천사도 서로 다칠 일 없도록 말이지. 다시 묻지. 우리와 함께하겠나? 잘 선택하는 게 좋아. 기회는 여러 번 오지 않거든.”

숭배자가 선택을 강요한다.

백터는 위기에 빠졌고 숭배자의 도움 없이는 빠져나갈 수 없다. 당연히 뒤에 있는 천사도 보호할 수 없다.

사실상 선택지가 정해져 있는 물음.

입술을 깨문 백터가 숭배자가 내민 증명패를 향해 천천히 손을 내뻗는 순간.

“누구 마음대로 영입 제안을 해! 가자! 우리도 참전한다! 저 상도덕도 없는 놈들 쓸어버리고 포라든지 포마든지 제쳐서 우리가 위로 올라간다!”

바로 돌진 명령을 내렸다.

내가 먼저 데려갈라 했는데 대기 순번도 안 뽑고 새치기를 하려 해?

다른 곳도 아닌 탑 숭배자 놈이? 어림도 없다.

[무지개다리 (S)]

-촤아아아아아아악!

백터를 목적지로 무지개다리를 연결했다.

“무식하게 달리지 말고 무지개 타!”

“오오오오오! 이건 또 뭡니까!”

“동심이 살아나는구만! 무지개단 돌격이다!”

“무지개단의 무시무시함을 느껴 봐라, 거지 같은 놈들아!”

무지개단이 신나서 위로 올라탔다.

가뜩이나 알록달록하게 장비를 염색한 놈들. 악마의 종족 특성상 피부색도 다양한지라 어떤 의미에서는 장관이었고.

“저, 저게 뭐야!”

“포라드 님! 해괴한 뭔가가 다가옵니다!”

“빌어먹을. 저놈들은 또 뭔데!”

누군가에게는 충격이었다.

포라드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겠지. 갑자기 정체불명의 무리가 양쪽에서 덤벼들고 있으니.

숭배자도 비슷한 생각일 거다. 기껏 포섭하려고 나섰는데 내가 나타났으니까.

미간을 찌푸리던 숭배자의 눈이 커진다.

날 알아본 걸까? 그렇겠지. 그동안 한 짓이 있는데. 숭배자들 사이에서는 나에 대한 정보가 쫙 퍼졌을 거다.

“이블아이? 저놈부터 죽여라! 상부에서 척살 대상으로 올린 놈이다! 포라드 같은 들러리는 무시해!”

곧장 칼날을 내게로 돌리는 놈들.

“드, 들러리? 이 개자식들이. 난 마계 대공 포라스의 아들 포라드다! 건방진 새끼들 다 죽여!”

숭배자들에게 무시당한 포라드 역시 분노해 무기를 휘둘렀고.

-쿠구구구구구구구궁!

“무지개 타고 온 무지개단이다! 이블아이의 이름을 높여라!”

“이름값 한번 하자!”

“와아아아아아!”

무지개다리를 타고 전장에 합류한 우리까지 뒤섞였으니.

“배, 백터. 이게 무슨 상황이죠?”

“…나도 잘 모르겠는데.”

혼란의 중심에 있던 백터와 천사는 얼빠진 얼굴로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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