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403화 (402/740)

403화 중앙 진출

연옥을 차지하기 위한 악마들의 투쟁.

제대로 그 경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를 통과해야 했다.

변방과 중앙을 가르는 거대한 산맥이 존재했고, 그곳은 천계와 마계가 연결되며 탄생한 마물로 가득 차 있었다.

우선적으로 이곳을 뚫는 것이 첫 번째.

이는 기본적인 능력을 검증하는 과정이었고, 두 번째는…….

“저놈부터 죽여!”

“어디서 족보도 없는 놈들이 대가리를 들이밀어!”

“자, 잠깐만! 그쪽은 내 약점이다. 정정당당히 싸우지 말고 비겁하게 정공법으로 들어와라!”

산맥을 넘어오면서 약해진 이들을 공격하는 놈들을 극복하는 거다.

일명 신고식.

루나르 역시 중앙 진출에 도전한 적이 있으나 신고식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블아이 님! 놈들의 수장을 맡아 주십시오! 저놈은 너무 강합니다!”

“저희는 약한 놈들을 상대하겠습니다!”

“어, 그래. 망할 놈들아.”

내가 있는 만큼 나름 무난하게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놈들의 수는 대략 40명가량.

생각보다 규모가 컸지만 단합력은 좋지 않았다. 뜻이 맞아 임시로 산맥을 넘어오는 놈들을 공략하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이라.

“크하아아악!”

검으로 앞에 놈을 베었다.

힘은 강했지만 둔한 녀석.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쓰러졌고.

“오, 얘는 주기는 주네. 그래도.”

놈을 잡으며 마기 스텟이 상승했다.

그래 봐야 고작 1 정도지만.

루나르의 조언을 듣고 일대 지방에 있는 세력들을 모두 흡수했다.

아무래도 악마와의 전투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절대적으로 적은 마기를 늘리기 위함이기도 했다.

현재 내 마기 스텟은 424점. 단기간에 올린 것치고는 상당히 빨랐지만…….

‘마기라는 게 100단위로 뛸 때마다 성장이 늦어질 줄 몰랐는데.’

300단위일 때만 해도 스텟이 팍팍 올랐는데 400을 넘으니 속도가 확연히 줄었다.

그래도 여전히 빠른 속도기는 하다만 약한 상대로는 상승하는 값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최소 본인과 동급. 가능하면 더 강한 상대와 싸워 승리하라고 종용하는 것 같다.

악마라는 종족 자체가 호전적이고 전투에 집착하는 이유.

성장하기 위해서는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 탑의 의지와 상당히 유사하다.

다른 차원에 비해 마계가 유독 빠르게 멸망화가 진행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후우.

작게 숨을 내쉬며 스테이터스를 껐다.

“아직도 최하급 수준이란 말이지.”

천족도 개인마다 신성력이 오락가락했는데,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녀석들은 700을 기본으로 넘겼다.

마족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적당히 이름을 알리고 본격적인 경쟁에 참가한 놈들은 대부분 마기 스텟이 700을 넘는다고 한다.

나야 마기가 아닌 다른 능력들로 커버해서 문제가 없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이 빠르게 성장하는 건 불가능했을 터.

-키릭

검을 고쳐 쥐며 전방을 노려봤다.

나와 함께 성장한 만큼 무지개단의 능력도 제법 올라갔다.

압도하는 건 아니지만 버티는 것 정도는 가능한 상태.

내가 노려야 하는 건.

“이번에 넘어온 놈들은 제법이구나.”

“무지개단이라고 했나? 내 친히 기억해 두지.”

저 두 녀석.

지금 상대하고 있는 연합체 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놈들.

한쪽은 도끼, 다른 한 명은 삼지창.

딱 악마같이 생긴 놈들이다. 털이 뒤덮인 근육질에 발굽 달린 다리. 코에서는 불을 뿜고 있었으니.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권능을 통해 놈들의 정보를 읽었다.

도끼가 팜피아, 삼지창이 소헤덴.

“흐음.”

마기가 어느 정도 늘어나서 그런가 놈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를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다른 놈들에 비하면 진하다.

좋네. 저놈들을 잡으면 마기가 10점은 오를 거 같다.

-콰앙!

전초전 따위는 무시한 채 앞으로 돌진했다.

그동안 이곳에서 신고식을 여러 번 치렀는지 둘이 동시에 공격과 방어를 해 온다.

도끼를 크게 휘둘러 접근을 막는 사이.

“꿰뚫려라!”

-콰아아아아악!

뒤에 있던 놈이 삼지창을 내질렀다.

공기가 찢어지며 가공할 만한 속도로 다가오는 창날.

강력하기는 하지만 정직한 공격.

고개를 꺾는 것으로 흘려 냈다. 처음부터 그걸 노렸는지 녀석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고.

“어리석은 녀석, 그대로 죽어라.”

-파앙!

순간 삼지창이 순식간에 넓게 퍼졌다.

고개를 꺾는 것만으로는 피할 수 없는 범위였다.

날카로운 창날에 목이 날아갈 만한 상황이었으나.

-꽈드드득

“그에에.”

내 어깨에는 외갑 특성을 두른 덕춘이가 있다.

터프하기도 하지. 한 손으로 목으로 들어오는 창날을 잡아 낸 덕춘이가 낮게 울었다.

그치, 가만히 있는데 이상한 게 날아오면 기분 나쁘지.

“그에에엑!”

발바닥의 빨판을 이용해 놈의 창대를 타고 달려가는 덕춘이.

오케이, 삼지창은 덕춘이한테 맡기고. 난 도끼를 상대해야겠다.

“넌 나랑 놀자.”

“들어오시지!”

이 정도 변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녀석이 콧김을 뿜으며 몸을 부풀렸다.

가뜩이나 큰 덩치가 더욱 커진다. 털까지 일어서니 2배는 커진 거 같다.

“이 몸의 방호력은 세계 제────!”

-콰아아아아아앙!

그대로 면상에 파이어 밤을 날려 줬다.

뭐라 말하려 했던 거 같은데 못 들었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겠지.

얼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윤기 흐르던 털이 열기에 꼬부라져 볼품없어졌다.

크게 휘청이던 놈이 다리에 힘을 주며 몸을 세웠다.

“크흥, 간지럽군.”

한쪽 콧구멍을 막고 코피를 푼 녀석이 입꼬리를 올린다.

두 번 간지러웠다가는 드러누울 거 같다만 본인이 그렇다는데 뭐라 할 수 있나.

무지개단도 슬슬 체력이 닳고 있는 거 같으니 빠르게 처리하는 수밖에.

외과이기는 하나 중심부에 진입한 놈들이라 그런지 손속이 매섭다.

벌써 우리 쪽에서 사상자가 나왔을 정도.

머릿수가 부족하니 어쩔 수 없기는 하다만.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이야. 이제 막 시작하려는 애들 등이나 처먹고.”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가 커질 게 분명한 상황.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쾌검.

속도에 집중한 일격이었고.

“어딜!”

놈은 노련하게 도끼를 비틀어 공격을 막아 냈다.

무식하게 휘둘렀다면 틈이 생겼겠지만 도끼면을 이용해 각도만 비틀었기에 들어갈 틈은 없었다.

-차앙

-차가가가가가강!

난 연달아 검격을 퍼부었다.

틈이 없다? 애매하다?

그럼 생길 때까지 두들기면 되지.

빠르게, 좀 더 빠르게.

나만의 리듬이 생기며 검이 더 빨라진다.

변박자로 기존과 다른 템포로 공격을 가하는 한편 변칙적인 각도로 찌르기.

아무리 도끼를 잘 다룬다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막기만 해서는 답이 없는 상황.

공격에서 벗어나려 할 거다.

“이 자식이!”

-콰아아아앙!

지금처럼.

가슴을 노리고 들어오는 검을 포착한 놈이 거세게 검을 쳐 낸다.

반발력으로 검이 들리는 사이 내게 파고들겠다는 의지가 엿보였고.

“이제야 들어오네.”

난 입꼬리를 올리며 양팔을 벌렸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놈이 놀라는 것도 잠시.

절호의 기회를 참지 못하고 도끼를 내리찍었으니.

[강철의 의지 (S) Lv.10]

[강체强體 (S) Lv.10]

[물리 공격 내성 (S) Lv.10]

[어둠 내성 (B) Lv.3]

-콰아아아악!

“뭐, 뭣?”

“나도 좀 튼튼해.”

패시브 스킬을 믿고 놈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았다.

충격이 없지는 않았지만 버틸 만한 수준이었고.

“이 정도면 되겠군.”

[되갚기 (S) Lv.10]

-쿠구구구구구

-콰아아아아앙!

누적된 대미지를 한 번에 폭발시켰다.

나를 기준으로 생겨나는 크레이터. 파괴의 파동이 주변을 집어삼켰으며.

“오오! 무지개! 무지개!”

“어떠냐! 이블아이 님의 자폭이다!”

“잊지 않겠습니다, 이블아이 님!”

그 엄청난 파괴력을 본 무지개단이 환호성을 질렀다.

자폭이라니, 왜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러냐.

“아직 살아 있다, 이놈들아. 너희 솔직히 말해. 나 죽길 기다리고 있지?”

“하하하! 그럴 리가 있습니까요. 전 살아 계실지 믿고 있었습니다!”

“암요! 암요! 천하의 이블아이 님이 죽을 리가 있겠습니까!”

이때다 싶어서 아부하는 후렌과 루나르.

제일 먼저 잊지 않겠다고 외친 놈들이 한 소리다.

어휴. 이제 화도 안 난다. 악마 놈들 나사 빠진 거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챕터가 시작된 지 벌써 2주일. 익숙해질 때도 됐지.’

탁탁.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며 검을 돌렸다.

폭발의 여파가 잦아들고 증발해 버린 우두머리를 확인한 놈들이 전의를 상실했다.

더 이상의 전투는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은 것.

저마다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한다.

“사나이답게 항복하겠다! 죽이지 마라!”

“팜피아와 소헤덴이 좋은 조건을 내걸어 함께했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 투항한다.”

“이렇게 된 이상 무지개단으로 가지! 이블아이 님,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자연스럽게 무지개단으로 흡수되기를 요구하는 놈들.

처음에야 이상했다만 이제 와서는 이게 제7 마계의 문화라는 걸 안다.

놈들의 수준이 높았다면 싸우든 죽이든 해서 마기를 얻었겠지만 이놈들은 수준이 낮아서 잡아도 마기를 얻을 수 없다.

그럴 바에야 무리로 흡수하면서 세력도 넓히고 조금이나마 마기를 얻는 게 낫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미약한 마기로 모으다 보면 스텟을 올려 준다.

“너희 그러다 강해지면 나한테 덤빌 거지?”

“물론이죠. 그게 약자의 의무 아니겠습니까!”

“그때까지 건강하셔야 합니다. 다른 놈한테 당해서 마기 주시면 안 돼요.”

“그래. 썩을 놈들아, 무지개단에 온 걸 환영한다.”

약자는 강해져 도전을 하고, 강자는 새롭게 올라온 놈과 싸움으로써 더욱 강한 악마가 탄생한다.

악마들이 성장하는 과정이자 문화였으며 정체성이기도 했다.

도전이 무서워 약자를 쓸어버리는 것은 잡아먹을 악마의 탄생을 막는 것이었고, 스스로의 성장을 멈 춰버리는 일이다.

그런 짓을 하는 놈이 있기도 하다고는 하는데.

‘악마들 사이에서 겁쟁이라 불리며 표적이 된다 했지.’

표적이 된 놈은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상황에 따라서는 대공급 악마가 직접 처단해 버리니까.

어떤 의미에서 보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구조라 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되겠지만 이 미친 악마들은 웃으며 도전을 받아들인다.

작게 혀를 내두르는 타이밍.

[팜피아와 소헤덴 처치]

[두 악마의 무리를 흡수했습니다.]

[마기 +16점]

마기 스텟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오, 생각보다 많이 주네. 생각보다 놈들이 가지고 있던 마기가 많았던 모양.

“축하드립니다, 이블아이 님. 신고식을 마쳤으니 이제 당당히 중앙에 진출했다 볼 수 있죠.”

한번 실패했던 경험이 있던 루나르가 감격한 얼굴로 말했다.

중앙에 진출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남달랐으니까.

이들에게 있어 연옥은 또 다른 마계가 될 공간.

비어 있는 땅이었으며 성장할 수 있는 무대였고, 한 지역의 패자가 되어 대공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는 기회였다.

“본격적으로 경쟁에 참여하기 전에 정비해야겠군.”

“탁월한 선택입니다. 말씀 들었지, 등신들아! 발 뻗고 누워! 이번에 들어온 신참들은 경계 서고 6시간 후에 교대한다!”

루나르의 외침에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놈들이 치료를 한다.

쉴 놈은 쉬고 장비를 점검할 놈들은 점검하고.

“이 몸, 이블아이 님의 총애를 받고 내비게이션의 직책을 받은 후렌 키아노 님이 같이 경계를 서며 무지개단에서 지켜야 할 규율을 알려주지. 신참들, 따라와라!”

“오오, 알겠습니다!”

“무지개단의 규율. 보나 마나 무시무시하겠죠. 후후후!”

“벌써 등골이 짜릿합니다!”

알아서 교육에 나서는 후렌 키아노.

전투 능력은 잘 모르겠지만 애들 가르치는 것도 그렇고 쓸모가 많다.

‘지형 파악이랑 정보 수집 능력도 있고 말이지.’

반쯤은 장난삼아 내비게이션이라 했는데 가지고 있는 스킬과 권능 등이 그쪽에 특화되어 있었다.

얻어걸린 느낌이 있기는 하다만 나야 좋으니까.

나도 적당한 바위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1시간가량 있었을까.

“이블아이 님. 이것 좀 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신참들을 데리고 순찰을 돌던 내비게이션이 뭔가를 가지고 왔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