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화 고위 악마
하늘에서 떨어지며 쏟아 낸 신성한 광선.
비처럼 대지를 두들기는 오로라 빔의 위력은 가히 대단했고, 특히나 신성력과 상극인 악마에게는.
“크하아아악!”
더욱 치명적이었다.
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하는 놈들.
“천족 잔당이었나!”
“혼자서 덤벼 방심을 유도하다니, 비겁하다!”
“크으윽. 이런 간악한 놈. 무섭다!”
뭐라는 거야. 악마라 그런지 사고방식이 이상하다.
그러려니 하자. 하나하나 따지면 답도 없다.
시선을 돌렸다. 공격에 휩쓸린 놈들은 많지만 내가 노린 건 루나르.
녀석 역시 타격을 입었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래, 이 정도에 쓰러지면 재미없지.
-치이이익
신성력에 피부가 타들어 간 루나르가 검을 쥐었다.
상당히 긴 검신을 가지고 있었고 한 가지 특징은.
“톱?”
“더러운 천족 같으니! 찢어 주마.”
검날이 톱처럼 지그재그라는 것.
놈의 말마따나 저거에 당하면 베이는 게 아니라 찢어질 게 분명했다.
위험한 것도 위험한 거지만 꽤 잔인한 무기였고.
동시에.
-카가가가가각!
상황에 따라 소드 브레이커로 사용할 수도 있는 기형 무기였다.
놈이 내지른 일격에 나 역시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막았으나, 루나르는 기다렸다는 듯 기묘하게 검로를 바꿔 톱날에 검을 걸었다.
“흐흐흐. 검부터 부숴 주지.”
씨익, 입꼬리를 올린 녀석이 그대로 힘차게 잡아당긴다.
힘을 이기지 못하고 휘어진 검이 망가지거나 부러지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음?”
내 검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당황했는지 눈을 끔뻑이는 녀석을 향해 친절히 설명해 주기로 했다.
“그거 안 부서질걸?”
“왜, 왜?”
“많이 단단하거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혼돈검.
혼돈의 파편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검이자 혼돈의 파편에서 얻은 광물로 만든 특수한 무기였다.
SSS급 아이템치고는 특별한 능력이나 스킬이 깃든 건 아니지만 단단한 거로 따지자면 비교할 대상이 없었고.
-카아아아앙!
손잡이를 비틀며 놈의 검을 긁어 버리자 충격을 받은 검이 튕겨 나갔다.
앞으로 돌진.
쿵!
진각을 밟아 시선을 유도하는 동시에.
[디그 (B) Lv.9]
놈의 발아래에 구덩이를 만들었다.
일순간 균형을 잃는 놈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이딴 술수에 당할 성싶더냐!”
발이 닿지 않음에도 몸을 비틀어 구덩이에서 벗어난 놈이 검을 쳐 낸다.
혼돈검보다 긴 리치를 이용해 밀어버리듯 검을 찔렀다.
힘이 실리지 않았다. 그저 내 이동을 방해하며 자세를 가다듬는 것이 목표.
재빨리 뒤로 발을 빼더니 좌측으로 자세를 낮추며 몸을 돌렸고, 그대로 발목을 노리고 크게 검을 휘두른다.
노련하다.
그대로 맞아주기에는 위험한 공격.
“제법인데?”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흥미롭다. 정형화되지 않은 검술. 실전으로 익힌 것인지 아니면 악마 특유의 자유로움이 변칙성이 깃든 건지는 몰라도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공격이 들어온다.
발목을 자르지 못한 것을 파악하자마자 짐승처럼 뛰어 내 앞으로 진입. 검등을 잡고 짧게 베기.
긴 검신을 이용해 멀리서 싸움을 걸 거라 생각한 부분을 파고들었다.
-카그그그극!
펠라인 세트를 긁고 지나간 검.
진한 마기가 갑옷을 타고 올라온다.
[마기 폭발 (S) Lv.10]
-콰아아아앙!
갑옷에 묻은 마기가 폭발한다.
검은 불길이 치솟으며 몸이 타격했다.
꽤 강렬한 충격.
펠라인 세트의 방호력 덕에 치명상은 면했지만 대미지가 아예 없지는 않다.
‘마기를 묻힌 부위가 터졌어. 접근전에 강한 타입이군.’
공격이 통한다는 걸 확인한 녀석의 눈이 번뜩인다.
“흐하하하! 어떠냐! 이제 내게 덤빈 것을 후회하느냐!”
좌우 횡으로 대각선으로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른다.
그럼에도 패도적인 기세가 섞여 압박감이 대단했고.
-카앙
가볍게 들어온 공격이었기에 튕겨 내도 금세 방향을 바꿔 몸 어딘가를 타격했다.
애초에 진짜 공격이랄 게 없다.
놈의 목적은…….
“퍼엉.”
[마기 폭발 (S) Lv.10]
-쿠아아아앙!
최대한 내 몸에 많은 마기를 묻히는 거였으니까.
전신을 태워 버리는 흑염.
검은 불길에 휩싸인 내게 떠오르는 메시지.
[화기 내성 (S) Lv.10]
[어둠 내성 (C) Lv.1]
[스킬 레벨업!]
[어둠 내성 (C) Lv.2]
입꼬리가 올라간다.
“좋네.”
그래. 이래야 마족이지.
이곳에 있는 동안 어둠 내성을 최대한 끌어모아야겠다.
온몸이 불타는 통증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실수 한 번에 팔다리가 날아가는 게 전투인데, 아프다고 뒹굴면 죽여 달라고 부탁하는 거나 다를 바 없다.
히죽거리는 내 모습에 놈 또한 이를 보였고.
“그냥 미친놈인가 했더니 단단히 미친놈이었구나?”
“종종 그런 소리 들어. 그리고…….”
따악.
난 손가락을 튕겼다.
[시한폭탄 (S) Lv.2]
-콰아아아앙!
“크하아아아악!”
예고 없이 몸에서 폭발이 일어나자 비명을 지르는 녀석.
꼴 좋다.
“너만 터트릴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놈과 접전을 치르며 나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녀석의 팔과 다리, 검. 사정거리에 닿는 곳에 시한폭탄을 설치했으니까.
억울하더라고. 나만 당하는 거 같아서.
몸을 뒹굴며 불을 끈 녀석이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본다.
“이노오오오옴!”
고함과 함께 달려드는 녀석.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지금까지는 전초전. 녀석의 수준과 스타일을 파악하기 위한 탐색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좀 아플 거야.”
[검강劍罡]
-우우우우우웅!
신성력이 담긴 검격을 퍼부었다.
러브 앤 피스를 쓰지 않더라도 검강에 신성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
보다 효율적이며 공격적인 방법.
-촤가가가가가각!
아까보다 2배 정도 속도를 올렸다.
보니까 속도에 좀 자신 있어 하더라고.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속도가 빨랐지.
칼날을 파고들며 팔뚝을 찌르고 목을 노리는 척 가슴을 공격한다.
놈이 내지르는 검을 튕기는 동시에 얼굴을 향해 찌르기. 이건 허초. 놈이 반응하는 찰나 원을 그리며 허벅지를 그었으니.
“크흐으읍!”
상처가 늘어나 놈이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힘 빠지면 안 된다.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힘내야 할걸? 안 그럼 훅 간다?”
[버프 다이스 (S) Lv.10]
[5]
[벌어지는 상처]
이야, 오랜만에 눈금 높은 게 떴네.
버프가 적용되며 내 공격에 효과가 붙었다.
작은 생채기도 저절로 벌어져 더 큰 상처가 되었고.
-후두두둑
그에 따라 출혈량도 많아졌으니 순간 현기증이 온 녀석이 비틀거렸다.
곧장 정신을 차리기는 했지만.
악마는 기본적으로 강인한 육체를 지니고 있는 종족. 이 정도로 쓰러질 리가 없다.
“이아아아악!”
루나르가 괴성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하다고 판단했다는 거겠지.
검강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을 걸까, 아니면 원래 사용하던 기술인가.
놈의 검에는 안개 같은 마기가 뭉쳐 있었고.
-푸화아아아아악!
횡 베기와 함께 마기가 퍼져 나갔다.
동시에 폭발.
온몸이 들썩일 정도의 충격!
반발력이 몸이 뒤로 밀려난다. 찝찔한 맛에 코밑을 살피니 코피까지 터졌다. 내부까지 충격이 들어왔다는 거겠지.
“좋군.”
웃으며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핏덩이를 뱉었다.
[어둠 내성 (C) Lv.5]
스킬 레벨이 팍팍 오른다. 이 짧은 사이에 5레벨까지 오르다니.
아직 갈 길이 멀다. 가능하면 80층에 가기 전까지 S급으로 올릴 생각이니까.
어쩌면 이번 전투로 B등급까지 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을 거다. 그렇게 할 거다!
“얼른 들어와. 더!”
“이, 이런 미친 새끼!”
“싫으면 내가 갈게!”
-콰앙!
발을 박찼다.
포탄처럼 날아들며 손을 내뻗었다.
[파이어 밤 (S) Lv.10]
폭발에 대비해 검을 드는 녀석.
미안하지만 내가 터트릴 곳은 그쪽이 아니다.
“어?”
바로 놈의 뒤.
콰아아아아앙!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폭발의 여파로 내 쪽으로 떠밀리는 녀석.
놈과 눈이 마주쳤다.
“보여 줄 게 더 남아 있을 거야, 그렇지?”
난 그렇게 믿기에 망설임 없이 검을 그었다.
“크합!”
기겁하며 뒤로 몸을 튕겨 피해 낸다.
그래, 아직 움직일 수 있을 줄 알았다.
뭐가 됐든 이 근방에서는 가장 강한 놈 아니던가. 이 정도에서 끝나면 실망이지.
“저, 저놈 보통이 아닌데?”
“사악한 천사 놈, 남의 구역에서 날뛰기나 하고!”
“근처에 가지도 못하겠어.”
놈을 따르는 부하들이 제법 있었으나 싸움에 끼어들 틈은 없었다.
쾌속하게 내지르는 검과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파이어 밤.
기습적으로 쏘아지는 오로라 빔에 허점을 드러내며 일렉트릭 쇼크로 카운터.
어중간한 실력으로는 근처에 다가오는 것도 불가능했으니까.
본인들이 나설 기회가 없어서인가 아니면 악마라는 종족 자체가 이런 상황에 익숙해 무덤덤한 것일까.
놈들은 어느새 구경꾼이 되어 있었고 토론을 하고 있었으니.
“근데 천족 맞나? 암만 봐도 악마 같은데.”
“나도 악마로 보인다만 일단은 신성력을 쓰잖아.”
“신성력 스킬이나 그런 거 아닐까. 마기도 느껴지고. 흐음.”
내 정체에 대한 거였다.
루나르 녀석, 부하 한번 잘뒀네. 돕기는커녕 팝콘이나 뜯고 있고.
내 기준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으나 별수 있나. 마계에서는 다 저런가 보지.
그래도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는 않으니.
“난 악마가 맞아, 멍청이들아.”
악마임을 각인시켜줘야 할 거 같다.
괜히 얼버무렸다가 천족으로 낙인찍히면 악마 사이의 경쟁에서 배제될 수도 있으니까.
그냥 말로 해서는 신뢰가 안 갈 게 분명하니.
[데몬 스피어 (S) Lv.10]
-쿠구구구구구!
데몬 스피어를 사용하는 수밖에.
안 그래도 써 보려 했다. 999스텟이니 뭐니 하더라도 새로 얻은 힘 아니던가.
마력만 담았을 때도 쓸 만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기로 강화까지 하면 훨씬 더 강해질 게 분명하다.
시험 대상은 누구랄 것도 없이 루나르.
힘겹게 공세를 막아 내던 놈의 눈이 커진다.
허공에 둥실 떠오른 악마의 창이 정확히 그를 노렸고.
-콰앙!
기존과 차원이 다른 속도로 창이 날아가는 순간.
“오오오오! 위대한 악마로다!”
무릎을 꿇은 루나르가 나를 붙잡았다.
간발의 차이로 놈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 창.
아쉽네. 위력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보려 했는데.
그건 그거고.
“미처 알아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간악한 천족을 무찌르고 신성력을 갈취한 고위 악마 아니십니까!”
“뭐라는 거야, 이 녀석.”
“아아! 겸손하시기까지. 보석은 멀리서 보아도 빛나는 법! 숨기셔도 그 위대함을 감춰지지 않습니다요.”
아무래도 질 거 같으니 바로 전략을 바꾼 모양.
생각해 보면 후렌 키아노도 제압당하고 바로 자세를 낮췄었지.
이 녀석도 나름 영악하다는 평가를 받은 놈이고.
살아남을 방법을 빠르게 찾았다고 해야 하나.
머리를 긁적였다. 주변 분위기를 살피니 그냥 살기 위해 연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은 게…….
“어? 신성력을 쓰는 악마? 나도 들어 본 거 같은데.”
“천마대전 때 전공을 세운 이들 중에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 있잖아, 고위 악마 중에 천사 죽이고 신성력을 갈취한 존재들.”
“그럼 저 새끼 아니, 저 새끼분도 고, 고위 악마?”
“어쩐지! 루나르가 두들겨 맞는다 했더니만.”
많지는 않지만 실제로 신성력을 쓰는 악마들이 있는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킬더레스도 신성력을 가지고 있던 거 같은데, 탈모맨이 계승자가 되면서 신성력과 마기를 둘 다 쓰는 걸 보면.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럼.
“맞다. 나 이블아이는 고위 악마다! 내 앞에 무릎을 꿇어라!”
“오. 오오오!”
“이블아이! 이블아이!”
고위 악마인 콘셉트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