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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400화 (515/740)

400화 접수하자

천마대전. 천계와 마계의 전쟁이 벌어진 대사건.

제7 마계와 제1 천계가 연결되며 생겨난 차원이 연옥계煉獄界.

어떻게 보면 그럴듯한 이름이다. 흔히 연옥이란 천국으로 가기 전에 머무는 곳이라고들 하니.

본래의 뜻과는 다를지 몰라도 악마들이 천계로 넘어가는 통로인 만큼 제법 그럴싸했다.

황량한 공간. 전쟁의 여파가 남은 곳은 삭막하기 그지없었으나 다른 의미에서는 기회의 땅이었고, 척박한 대지에는…….

“끄으으으으.”

후렌 키아노가 박혀 있었다.

머리부터 꼿꼿하게 땅에 박힌 녀석.

전에 제4 천계 천사에게 시켰던 ‘뿔로 머리 박아’의 강화판이라고 할까.

난 이걸 ‘머리 박고 서기’라고 이름 붙였다.

머리에 뿔이 달려서 고정됐나. 잘 서 있네. 뭔가 기둥 같기도 하고.

“야야, 자세 흐트러진다. 차렷해. 차렷. 다리 벌어지면 그대로 두 갈래로 쪼개지는 거야, 알아?”

“아, 알겠습니다!”

땅속에 얼굴이 파묻혀서 그런가 소리가 좀 울렸지만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다.

그러게 왜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시비를 걸고 난리야. 좋게 좋게 살면 되는 것을.

놈을 땅에 박에 넣은 이유.

물론 나한테 까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냥냥펀치]: 나 천계 진영임. 근데 천국은 아닌 듯?

[니머리 탈모]: 그건 네가 착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냥냥펀치]: 보나 마나 넌 지옥이겠지!

[니머리 탈모]: 아닛? 어떻게 알았지!

[냥냥펀치]: 대머리는 지옥 간 댔어!

[니머리 탈모]: …그건 수많은 숱 적은 자에 대한 도전…….

[니머리 탈모]: 흠흠, 내가 대머리 아닌 건 물론이고 마계 진영이긴 한데 나도 마계는 아니야.

[정수리 핥짝]: 나도 냥펀이랑 같은 진영이지… 후후. 낯익은 정수리를 찾으러 떠난다.

[정수리 핥짝]: 익숙한 촉촉함이 정수리에 느껴지면 나인 줄 알도록.

[냥냥펀치]: 히… 히익!

[니머리 탈모]: …너 진짜 핥았었냐?

[니머리 탈모]: 저기요? 왜 답이 없어! 나 무서워!

[냥냥펀치]: 탈모맨… 핥짝이가 다음은 너라고 전해 달랭. 공듀도 조심하구.

[니머리 탈모]: 끼아아아악!

탑에 속해 있어서 그런가, NPC는 등반가의 커뮤니티를 볼 수 있다.

내 닉네임을 보여 주고 싶지도 않고, 솔직한 심정으로 저런 대화 내용을 보여 주기도 부끄러워 땅에 박아 둔 상태.

것보다…….

“진짜 핥은 거 같은데.”

“그에에.”

말로만 그럴 줄 알았건만 기어코 욕망을 참지 못하고!

핥짝이가 헬멧을 벗고 있을 때는 조심하기로 마음먹고 채팅을 했다.

[쁘띠공듀]: 저도 마계 진영이랍니닷☆

[냥냥펀치]: 와! 악마공듀! 악마공듀!

[니머리 탈모]: 마계쁘띠! 마계쁘띠!

[정수리 핥짝]: 쁘띠데몬! 쁘띠데몬!

“이것들이.”

까드득. 이를 갈았다. 이럴 때는 죽이 척척 맞는다.

정신 보호 이거 만렙 찍은 거 맞나? 왜 스트레스받는 기분이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채팅을 이어 나갔다.

[쁘띠공듀]: 두 진영에 골고루 나누어진 것… 이게 바로 균형의 수호자!

[정수리 핥짝]: 수호자는 개뿔. 딱 지옥 갈 놈들만 골라 갔구만.

[쁘띠공듀]: 전 아주 선량하고 선한 영향만을 끼치고 다니는 걸욧?

[냥냥펀치]: 아하항항항! 좋은 시도였엉!

[정수리 핥짝]: 마계 기준의 선한 영향력… 납득 완료.

[니머리 탈모]: 호오…….

착한 일만 골라 했는데 이렇게 억울할 때가.

됐다. 자고로 선행은 남들이 알아줘도 좋지만 안 알아줘도 가치가 바래지 않는 법.

우선 양쪽에 멤버들이 나뉜 것은 확인했다.

이제 중요한 건 이곳에 넘어올 때부터 생각했던 것을 실행하는 거다.

[쁘띠공듀]: 지금 이곳이 천마대전이잖아용?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욧?

천마대전을 봤을 때부터 떠오른 아이디어.

천계 진영인 핥짝이와 냥펀. 마계 진영인 나와 탈모맨.

우리들이 각 진영의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 전쟁을 멈춘다.

단순하지만 어렵고 동시에 확실한 방법.

다른 세계와 달리 마지막 시나리오는 멸망의 단서가 명확하다.

두 세계의 전쟁.

물론 막상 이쪽으로 넘어오니 상황은 좀 달랐지만.

“야, 뿔쟁이.”

“넵! 후렌 키아노! 위대한 악마의 심복이 되어 영광입니다!”

“누구 마음대로 내 심복이야.”

“살려 주십쇼! 살고 싶습니다!”

삶의 의지가 당당하네, 선빵 친 놈이.

놈을 제압하고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나름 아는 게 많아서 살려 둔 상태. 이야기를 들어 봤을 때 대충.

“천계랑 마계가 지금 개판이라고 했지?”

“네! 멸망에 접어들면서 대공들과 대천사 모두 각자의 세계로 돌아갔습니다!”

일단 이번 세계관은 킬더레스가 있던 곳이 맞다.

킬더레스와 플레타. 악마와 천사 둘로 인해 연결된 곳이 이곳이고.

다만 예상하지 못한 게 있다면…….

‘정확히 우리가 있는 무대는 천계와 마계가 아니야.’

그쪽은 그쪽 나름대로 멸망을 막기 위한 발버둥 치는 중.

킬더레스가 이끄는 제7 마계가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멸망의 여파로 사실상 천계를 완전히 접수하지 못하고 본래의 세계로 돌아간 상태였다.

전쟁에서 패배하며 많은 전력을 잃은 천계 역시 멸망을 피하기 위해 노력 중이고.

우리는 그 사이에 존재하는 세계, 연옥에서 활동해야 한다.

그리고 연옥은…….

‘마계에서 넘어온 이주자들이 새로운 마계를 만들어가는 기회의 땅.’

동시에 전쟁에서 패배한 천족의 잔당이 악마들을 몰아내 연옥계를 장악하려 하는 중이다.

이유는 하나.

연옥을 차지해 마계와의 연결을 끊어 버리기 위함.

다르게 말하면.

‘전쟁은 끝났지만 이곳, 연옥에서만큼은 천마대전이 이어지고 있다는 거야.’

악마들은 새로운 마계의 중심이 되기 위해.

천사들은 마계와의 연결을 끊기 위해.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은…….

[챕터Ⅰ- 잔당殘黨]

챕터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으니.

“지금 연옥에서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게 누구야?”

“메피스토와 그리가가 가장 유명하고 그 외에도 9명의 신성이 있습니다!”

“그놈들을 제외하면 다 고만고만한 애들인 건가.”

“겉으로 드러난 거로는 그렇습니다. 현재 마계의 멸망을 막는다고 이주를 금지하고 있거든요.”

마계도 여유가 없는 모양. 그러니까 기껏 차지한 천계와 연옥을 방치하고 마계 밖으로 악마들이 빠져나가는 걸 막고 있겠지.

살짝 아쉽네.

‘시간 되면 마계로 넘어가 전성기 시절의 킬더레스를 보려고 했는데.’

그럴 수는 없는 거 같다.

멸망화가 진행되며 이주를 막기 위해 연결을 임시적으로 끊은 것도 있고.

[Tip. 시나리오 진행 중에는 시나리오 영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팁 메시지에서 나온 것처럼 시스템적으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게 금지됐다.

아쉽군. 킬더레스가 있던 세계에는 관심이 많았어서. 릴카도 그렇고 킬더레스도 그렇고 본인이 속한 세계를 벗어나 활동했었으니까.

릴카가 말했었다. 혼돈의 파편을 잡고 다닌 적이 있었고 그 멤버 중 한 명이 킬더레스라고.

그 배경은 마계가 아니었으니 아마 마계와 연결된 또 다른 차원에서 활동한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킬더레스와 계약해 마계로 넘어오려던 놈도 있었으니까.

결과적으로는 리치가 되어 미궁의 몬스터가 되었지만.

아무튼.

[쁘띠공듀]: 우리가 각 진영 접수하죠! 그럼 끝나는 거 아닌가용? 이제 싸우지 마랏. 땅땅땅!

[니머리 탈모]: 오오! 맞는 말이야.

[정수리 핥짝]: ‘처맞는 말!’이라고 하고 싶지만 괜찮은 듯?

[냥냥펀치]: 초등학교 선생님 전법! 싸웠으니 악수하고 화해해!

어감이 좀 그렇긴 하지만 냥펀이 말한 그대로다.

천계는 신분제가 확고한 곳. 마계는 힘의 논리의 서열이 명확한 곳.

양쪽의 우두머리가 전쟁 끝내자고 협의를 맺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마 놈들 먼저 다 조져야겠지.”

“그에에에.”

악마의 친구 칭호를 가진 자로서 우정의 힘을 보여 줄 때가 온 거 같다.

탈모맨도 있으니 각자 구역을 나눠 하나씩 접수해 가면 될 터.

오히려 잘됐다. 나와 멤버들이 등반 층에 비해 강한 건 맞지만 진짜 마계의 대공급 악마나 대천사가 나타나면 각 진영을 접수하는 건 힘들 수도 있어서.

제2 천계의 동부전선 장군 벨브레그만 해도 어마어마한 실력자 아니던가.

만약 그 사람과 일대일로 붙는다면 어떨까?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어.’

펠라인 세트 스킬이 제대로 먹힌다면 이길지도 모르지만 실패하면 패배 확정이다.

그만큼 강한 이들이다. 이곳에 있는 놈들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할 만하겠지.

생각은 여기까지. 직접 겪어 보기 전까지는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마기를 얻기 위해서도 전투를 해야 한다.

이 녀석이 말한 정보 중 가장 중요한 것.

“상대를 죽이거나 복종시키면 마기를 얻을 수 있다고 했지.”

그 증거로 후렌 키아노를 제압하고 항복 선언을 듣는 것과 동시에 놈이 가진 마기 일부를 가져올 수 있었다.

현재 마기 스텟 310점.

-뻐엉!

“어이쿠야!”

땅에 박혀 있는 놈을 걷어차 뽑았다.

목이 시큰한지 주물럭거리는 놈에게 턱짓했다.

“원하던 대로 지금부터 넌 내 심복이다.”

“가, 감사합니다!”

“특별히 네게 내비게이션 직책을 내려 주지.”

“내비, 게이션?”

생소한 단어에 머리를 기웃거리는 녀석.

“내 앞길을 밝히는 등불과도 같은 직책이다.”

“오오오! 대단한 직책임이 분명하군요!”

“자, 내비게이션. 근방에 가장 강한 놈한테 안내해라. 내가 보다 높은 곳으로 인도해 주마.”

“과, 과연 연옥을 지배할 차세대 마왕의 배포! 저만 믿으십쇼! 무지개 악마 만세!”

우리의 소중한 내비게이션이 힘차게 답하더니 어디론가로 달려 나간다.

입꼬리가 올라간 것이 제법 신난 모양.

놈을 따라 움직였다. 평소였다면 무지개라 할 때 머리통을 때려 줬겠지만 이번에는 참았다.

목적이 분명한 이상 유명세를 떨치는 게 이득이었으니.

‘그래야 알아서 기어 나올 거 아냐.’

이 넓은 곳에서 언제 일일이 다 찾아갈까.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이동.

약 3시간 후. 지형이 바뀌며 악마 특유의 마기가 섞인 바람이 불어왔고.

“허억. 헉. 이쪽입니다. 자칭 대공의 후계자라 부르는 악마 루나르가 있는 곳인데 부하가 제법 많고 간악하다는 평가가…….”

“오케이.”

“아직 설명 다 안 끝났는데요!”

“아냐, 다 들었어.”

-콰앙!

놈의 말을 무시하고 발을 박찼다.

폭죽처럼 터지는 땅. 몸이 위로 떠 오르고 능선 아래, 굉음에 고개를 돌린 악마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대충 우르르 몰려 있다는 거 아니야.”

어디 보자.

하나, 둘, 셋, 넷.

대충 20명? 루나른가 뭔가 하는 놈은 딱 봐도 저놈이네. 호위하듯 원으로 둘러싼 놈들 중앙에 있는 놈.

마치 왕이라도 된 것처럼 머리에 관을 쓰고 의자에 삐딱하게 앉은 녀석.

“호오, 이 근방에 내게 덤비는 놈이 아직 남아 있었군.”

노랗게 빛나는 눈동자에 호기심과 살기가 감돈다.

“적당히 찢어서 내 앞으로 가져와라.”

“예!”

“저놈 잡아라!”

나를 향해 손톱과 이빨, 무기를 들이미는 놈들.

콰앙!

파이어 밤을 터트리며 놈들에게 날아간 나는 아티팩트에 마력을 주입했다.

[중량 팔찌 (C)]

급격히 무거워지는 무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각도가 수직으로 꺾이며 떨어졌고.

“하! 건방지게 직접 내게로 오시겠다?”

그런 날 보는 루나르가 의자에서 일어선 순간.

[러브 앤 피스 (S) Lv.10]

[오로라 빔 (S) Lv.10]

[오로라 빔 (S) Lv.10]

[오로라 빔 (S) Lv.10]

.

.

.

“이, 이건 신성려어어억────!”

-콰아아아아아앙!

놈의 위로 신성력을 머금은 오로라 빔이 비처럼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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