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9화 종족 특전
선택지를 정했다. 그에 반응해 떠오르는 알람.
[당신의 진영은 마계입니다.]
마계. 이번에는 이쪽으로 간다.
핥짝이는 신성력을 가지고 있다. 냥펀은 잘 모르겠지만 신성력이 깃든 물건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지금까지 마기가 담긴 아티팩트를 쓰는 걸 본 적이 없으니 천계 진영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탈모맨은…….
“확률이 반반이기는 한데, 마계 쪽에 좀 더 가깝지 않을까?”
특이하게도 신성력과 마기 모두 가지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이 마계로 올 거라고 생각한 이유는 하나.
탈모맨은 킬더레스의 계승자다. 자그마치 제7 마계의 수장.
동시에…….
“천마대전에서 승리한 두 세계의 주인.”
탈모맨이 가지고 있는 두 세계의 지배자 역시 킬더레스의 권능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상하건대…….
“어쩌면 이번 배경은 킬더레스가 있던 곳일지도 모르겠군.”
그럼 킬더레스도 만날 수 있는 건가?
잘 모르겠다. 킬더레스는 이미 10층에서 역할을 하고 있어서.
따지고 보면 70층대에서 등장하는 NPC 모두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심지어 그쪽 세계와 연관된 NPC들을 이미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레지스탕스, 하얀뿔 소속 NPC들도 시나리오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우우우우우우웅
진동과 함께 퍼지는 빛.
난 그것에 몸을 맡겼다.
* * *
[77층 진입]
훅, 올라오는 매스껍고 텁텁한 공기.
눈을 뜨자 대기실과 비슷한 느낌의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말라비틀어진 나무와 바닥에 누운 풀.
시커먼 땅과 누런 강물이 흐르는 계곡.
연기인지 구름인지 모를 것이 가득한 하늘은 뿌옇고, 태양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챕터Ⅰ- 잔당殘黨]
[천계와 마계의 경계에 도달했습니다.]
[이곳은 두 세계가 연결되어 생성된 작은 차원입니다.]
마계 소속이기는 하나 정말 마계에 떨어지지는 않은 모양. 두 세계의 경계라고 하는 걸 보니까.
작은 차원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두 세계의 완충 지대 정도로 생각하면 될 거 같다.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부담감보다는 흥미로움이 컸다. 뭐가 됐든 겪어 본 적 없는 새로운 세계니까. 지금 아니면 언제 와 볼까.
“다양한 세계가 있단 말이지.”
찬찬히 주변을 살폈다. 다른 세계의 종족들도 지구에 오면 신기해하겠지?
이세계의 존재가 보는 지구는 어떤 느낌일까.
시답잖은 상상을 하며 실실거렸지만 긴장감을 늦추지는 않았다.
이번 시나리오는 규모가 크다.
2개의 세계가 엮여 있으니까.
[당신의 유형은 정의할 수 없는 혼돈입니다.]
[어떠한 설정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설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라. 이걸 뭐라고 해석해야 하나.
대충 직위가 없다 정도로 알아들으면 되는 건가.
그나마 비교할 수 있는 게 제2 천계 때 일이라서.
나를 제외하고 진영을 골랐던 멤버들은 각각 신분과 직위가 설정됐었다.
냥펀이 귀족, 핥짝이가 노예, 탈모맨이 레지스탕스 대원이었으니까.
나야 소속이 없어서 그냥 떠돌이로 다녔지만.
어디까지나 가설이다. 나도 정확한 기준을 아는 건 아니라서.
특히나 마계와 마족의 문화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천계처럼 폐쇄적이고 수직적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좀 알아보는 건데.
쯧. 지금 아쉬워해 봤자 의미 없다.
“음?”
-저벅저벅
나만 있던 게 아니었나. 한 존재가 내게 걸어왔다.
비늘이 덮인 몸. 검은 입술과 세로로 그어진 한 쌍의 검은 무늬.
머리에 돋아난 뿔과 마찬가지로 삐져나온 송곳니.
누가 봐도 나 악마요, 하는 모습이었고.
[후렌 키아노]
-제7 마계의 악마.
-기회의 땅에 도달한 자. 이주자입니다!
.
.
.
“이봐, 너.”
-따악!
다짜고짜 내 머리를 후려쳤다.
뭐지?
일단 마족이기에 다가와도 가만히 있기는 했는데 뒤통수를 후려?
어안이 벙벙한 것도 잠시.
난 천천히 놈을 노려봤고.
“뭐이 씨, 눈깔을 그냥!”
놈은 바로 손을 들어 올리며 위협했다.
신분이 안 정해진 게 아니었나? 어디 부대 막내라든가, 하층민이라든가. 그런 콘셉트?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내게 주어진 설정이 없다고 했는데.
눈을 부릅뜬 놈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내 위아래를 살폈다.
그러고는 피식.
“희한하게 생겼네. 이주자겠지, 그래.”
이주자?
뭔데 그게.
“뭐, 좋아. 그렇게 쫄지 않아도 된다. 이 몸 후렌 키아노 님은 아량이 넓으니까! 크하하하!”
시원하게 웃어 재끼는 것이 목젖을 날려 주고 싶다.
일단은 참자. 아직 상황을 모르니까.
것보다 나보고 인간이라 하지 않고 이주자라고 한 걸 보니 아무래도 그거 같다.
[시나리오가 진행되는 동안 임시적으로 마족으로 분류가 됩니다.]
[NPC 모두 당신을 마족으로 인식합니다.]
역시나.
여기에 또 다른 정보가 떠올랐으니.
[소속- 마계 확인.]
[시나리오의 특수성을 고려.]
[종족값에 따른 특전이 지급됩니다!]
“오.”
특전을 준다고 한다. 이번 시나리오는 자세가 됐네. 특전도 준비하고.
앞에서 까불거리는 놈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눈앞의 정보에 집중했다.
임시로 마족 취급을 받는다는 건 오케이.
애초에 사람이 끼어들 세계관이 아니라는 거니까.
어쩐지 악마의 친구 칭호가 발동되지 않는다고 했다. 종족 자체가 악마로 옮겨졌으니. 지금의 난 악마의 친구가 아닌 악마 그 자체.
이런 건 딱히 관심 없고.
종족 값에 따른 특전이 뭘까. 다음 메시지를 기대했다.
-파아아앙!
경쾌한 이팩트와 함께 알람이 떴다.
[축하합니다!]
[스텟- 마기가 생성되었습니다.]
[현재 마족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종족값 보너스]
[마족 최소 보유치, 마기 +300점을 획득합니다.]
[이것으로 당신은 마물과 다른 격을 지니게 됐습니다!]
[정점에 오르는 그 날까지, 분발하십시오!]
“오오오오! 마기이이이!”
주먹을 내지르며 울부짖었다.
여기서 마기를 얻는다고? 여기서?
안 그래도 탈모맨이 신성력과 마기를 둘 다 다루는 걸 보고 부러웠었는데 나도 이제 그럴 수 있게 됐다.
천족이든 마족이든 상황에 맞춰 상대할 수 있다는 뜻!
“덕춘아! 봤어? 특수 스텟 이걸로 3개야!”
“궥, 궤에에에!”
덕춘이를 잡고 흔들었다. 흥분감에 몸이 떨릴 지경이다.
신성력, 행운, 마기까지!
행운이야 칭호 효과라 스테이터스에는 따로 적용이 안 되지만 아무튼 있는 건 있는 거였다.
지금까지 특수 스텟을 3개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내가 보기에는 없다. 특수 스텟이라는 것 자체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니까.
이 상황을 봤을 때 아마…….
“천계 진영으로 간 사람들한테는 신성력이 주어졌겠지?”
이제야 알 거 같다. 60층대를 오르던 때, 하얀 나무의 교단을 접수한 적이 있다.
그때, 굳이 교인이 되지 않더라도 위에 올라가면 신성력을 얻을 방법이 있다고 했었는데.
‘이게 그거였어.’
핥짝이야 이미 나를 통해 신성력을 얻었으니 상관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상승하지 않을까?
멤버들도 꽤 축제 분위기일 거 같은데.
안 그래도 마기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것이…….
‘사실상 80층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성장 방법이 막힌 거나 마찬가지.’
80층부터는 초월의 영역.
60층에서 얻은 초월석으로 권능의 등급을 올릴 수 있으며, 70층에서 얻은 한계 돌파 스킬로 레벨 제한을 풀 수 있었다.
70층이 상위층의 시작이었다면 80층은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구간.
다르게 말하면 그전까지는 성장 방법이 애매했다.
어떻게 보면 이게 맞았다. 구조적으로 70층대는 80층에 오르기 전, 최대한 스킬과 권능의 숙련도를 올려야 하는 구간이었으니까.
내가 이상할 정도로 스킬 레벨이 빠르게 오른 편이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
‘마기라는 새로운 능력. 거기에 데몬 스피어는 마기가 높을수록 강해지지.’
내게는 마기를 바탕으로 하는 스킬이 있었다.
마계 진영에 들어왔으니 부수적으로 어둠 내성 스킬의 레벨을 올리기도 쉬울 게 분명했다.
“흐흐. 으흐흐흐. 으흐하하하!”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일이 이렇게 잘 풀려도 되나.
그동안 시나리오를 겪으면서 고생만 했는데 여기서 보상을 받는 거 같다.
“이, 이상한 놈이다. 미친 건가?”
혼자 떠들다 히죽거리는 걸 본 악마, 호멘이 뒷걸음질 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이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고.
“그에엑!”
-철썩!
“어흑!”
보다 못했는지 덕춘이가 내 뺨을 때렸다.
어우, 방심하다 목 돌아갈 뻔했네. 너무 세게 친 거 아니야?
주인이 기뻐하는데 같이 기뻐해 주면 될 것…….
“어거거걱! 미안해, 덕춘아! 내가 아까 흔드드드, 들었지?”
“그에에에에!”
내 멱살을 잡고 흔드는 덕춘이.
왜 그러냐. 아무리 그래도 감정이 너무 격한…….
“그엑! 그에에!”
“어?”
여전히 떠오른 메시지를 가리키는 덕춘이.
어떤 걸 가리키나 해서 봐 보니.
[마족 최소 보유치, 마기 +300점을 획득합니다.]
그래. 마기 스텟 300. 이거 때문에 좋았던 건데.
스텟이 한 번에 300이나 오르는 건 기연이나 다를 바 없다.
나도 처음에는 100은커녕 십 단위의 스텟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스텟이 800대를 넘어 900대에 진입했지만…….
“어?”
입을 벌렸다.
300? 마기 스텟 300?
아 씨, 잠깐만.
“80층 진입 조건이 올 스텟… 999점이었지, 아마?”
“그에엑!”
고개를 끄덕이는 덕춘이. 착각일까, 놈의 눈에 물기가 젖은 거 같은데.
묘한 데자뷰가 느껴진다.
6층, 안전지대. 처음 각성하고 무한 코인을 받았을 때도 이러지 않았나.
“허허. 어허허.”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조졌네, 이거.
어쩐지 엘로이즈가 전송되기 전에 영약 많이 모으라 하더라.
이거 때문에 그런 거였구나? 어디 보자. 지금이 300점이니까.
“699점 남았네?”
이게 실홥니까.
올라갔던 텐션이 바닥을 기고 세상이 미워졌으며 현실 부정을 해 댔지만 잔혹한 현실은 이게 사실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가뜩이나 황량한 공간이라 그런가 더욱 분위기가 처지는 타이밍.
-빠아아악!
주춤거리며 물러섰던 후렌이 재차 뒤통수를 때렸다.
아까보다 세게. 힘을 담아서.
“너, 이 자식! 미친놈인 척하면 그냥 그러려니 할 줄 알았어? 어림도 없다 이놈! 카악, 퉤!”
가래침을 뱉은 놈이 뚜둑. 손가락을 푼다.
“네놈도 이쪽으로 이주한 거 보니 새 삶을 꿈꾸나 본데, 나도 마찬가지거든. 이쪽은 내 구역으로 정해 놨다고, 어?”
툭툭. 삐딱하게 몸을 기울인 녀석이 가슴을 쿡쿡 찌르더니 찰싹, 뺨을 두드렸다.
“괜히 알짱거리다 죽는 거야. 마기도 코딱지만 한 게 어디 가서 잡아먹히기 딱 좋네. 아니지. 간에 기별도 안 갈 테니 살려나? 으하하하!”
본인이 말하고 본인이 웃고.
뚝. 웃음을 그친 놈이 몽둥이를 꺼낸다.
눈에서 흘러나오는 살기.
근육질의 몸이 폭발하듯 내게 몽둥이를 휘두른다.
“쓸 만하면 부하로 쓸까 했지만 안 되겠다. 이곳을 지배할 후렌 키아노 님의 제물이 되어라!”
-턱
“어?”
한 손을 들어 놈의 몽둥이를 잡았다.
놈이 몽둥이를 빼내려 했지만 빼낼 수 있을 리가 있나.
권능을 통해 놈이 가진 스킬 하나하나까지 다 보인다.
놈보다 내가 강하다는 명백한 증거였고.
“이, 이익! 난 처음부터 주먹질하려 했, 으읍!”
-꽈드드득!
난 그대로 놈의 입가를 움켜잡았다.
“좀 닥쳐 봐. 안 그래도 심란하니까.”
나와 눈이 마주친 놈이 흠칫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