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396화 (396/740)

396화 히든 스테이지- 히든 가든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작게 감탄했다.

어쩐지 바로 시나리오 대기실로 안 가고 남아 있다 했더니만 다른 게 준비되어 있었구나.

[히든 스테이지, 히든 가든이 열립니다.]

히든 가든. 70층대 두 번째 시나리오의 배경이 되던 곳.

다 떠나서 방금까지 개고생을 하던 곳이다.

-우우우우웅

어서 오라는 듯 눈앞에 포탈이 생성된다.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며 생각했다.

안에 들어가면 뭐가 있을까, 높은 확률로 엘프와 드루이드가 있을 거 같기는 하다만…….

“설마 뜬금없이 공격하지는 않겠지?”

“그에에.”

“그치? 그건 아니겠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럴 거 같지는 않다. 그래도 내가 한 게 있는데.

시나리오 진행 중에 교류가 있기도 했고, 세계수 반지를 가지고 있는 만큼 친화도가 꽤 높을 거다.

이게 다 탑 때문이다. 괜히 의심병만 생겨 가지고.

그래도 뭐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 게 옳은 법.

‘지금 몸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단 말이지.’

세계수와 결합하며 감당했던 것들의 후유증이 밀려오고 있다.

신체적으로는 회복이 되었지만 놀란 신경과 고통스러운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하루도 안 지난 시점에 잊었을 리야 있나.

지금도 손이 다 떨릴 지경이다. 덕춘이가 핥아 준 덕에 조금은 나아졌지만.

후우.

깊게 심호흡하고 자세를 바로 했다.

“들어가자.”

“그에엑.”

기껏 저쪽에서 초대를 해 줬는데 안 들어가면 섭섭하지.

궁금한 것도 있고, 저 포탈이 언제까지 열려 있을지도 모르는 거라 어물쩍거리다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포탈 안으로 들어섰다.

* * *

[히든 가든에 입장합니다.]

[전 서버 최초, 히든 가든에 입장했습니다!]

[칭호, 수상한 초대를 받는 자를 획득합니다!]

흔들리는 공간. 입장을 알리는 알림과 함께 칭호가 생겼다는 메시지가 생성됐다.

전 서버 최초인가.

아니, 그보다.

“뭐야, 저 함정 카드 같은 칭호는.”

수상한 초대를 받는 자라니. 이름만 들었을 때는 도로 반납하고 싶은 칭혼데.

혹시 모른다. 좋은 걸지.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칭호의 효과를 살피자.

[수상한 초대를 받는 자- 칭호]

-당신은 무수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대중뿐만이 아니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들 또한 관심을 가집니다!

-그들의 초대는 달콤할 수도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오, 이런 이름과 내용이 일치하는 칭호 같으니.

아무래도 그동안의 행적이 쌓여서 생긴 칭호 같다.

히든 가든에 입장한 게 트리거였고.

이런저런 설명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거네.”

그게 조력자일지 흑막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고.

다른 곳이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탑에서는 좀 그렇다.

이미 필요 이상의 관심을 받고 있는 중이라. 요새 바빠서 커뮤니티도 잘 못 보고 있는데 저번에 살짝 봤을 때도 이준석에게 온 메시지가 좀 쌓여 있었다.

보기 무서워서 아직 안 열어 봤지만.

잠깐만…….

“정신 보호가 SSS급 만렙을 찍은 지금이라면?”

후후. 우후후. 이것만 있다면 쁘찡연합의 메시지 따위는 두렵지 않다!

딱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덕춘이와 속으로 승리의 포효를 하는 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이어지는 타이밍.

“히든 가든에 온 걸 환영해요, 우리들의 친구.”

“기다리고 있었어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몸을 돌리자 내가 아는 얼굴이 보인다.

“휘카, 미피.”

세계수를 정상화하러 떠난 최종 결사대.

두 여인 모두 우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이후에 파르갈과 함께 중심부로 들어갈 시간을 끌어 줬다.

“아.”

난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숲.

히든 스테이지, 히든 가든은 숲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다른 숲과 차이점을 알지 못했겠지만.

“세계숲을 본떠 만들었군요.”

“알아보시는군요.”

“못 알아볼 리가요.”

방금까지 있던 곳인데. 게다가 지금 보이는 숲은 평범한 숲이 아니다.

괴목들의 형태가 남아 있는 숲. 완전히 괴목이라는 건 아니고.

[정화된 비틀린 괴목]

-깃들었던 정령이 안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정화가 되어 있었다. 괴목 근처에 가면 느껴졌던 정령들의 몸부림이 사라진 게 그 증거.

칭호 효과인지 아니면 정령과 가까워져서 그런지 그들의 기운을 느끼는 것도 가능해졌다.

엘프나 드루이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신성력이나 마기를 느끼는 거랑 비슷한 느낌.

미피가 부드러운 손길로 괴목을 쓰다듬는다.

정화되었다고는 하나 괴목의 특성은 남아 있는지 나무 기둥을 기울여 손바닥에 몸을 비빈다.

“크리쳐도 있나요?”

“아쉽지만 크리쳐는 모두 흩어져 찾을 수 없었어요. 이미 마물화가 완료되기도 했고요.”

“슬픈 일이죠. 항상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건 좀 아쉽네.

찬찬히 미피와 휘카를 따라 숲 안으로 들어갔다.

심심치 않게 보이는 괴목들. 이들에게 있어서도 좋은 기억이 아닐 텐데 이렇게 데리고 있다는 것은 당시의 일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가 아닐까.

혹은 고통받았던 정령들에 대한 애정일지도 몰랐다.

숲 가운에 만들어진 공터. 원래라면 세계수가 있어야 할 자리였지만 이곳에는 없었고, 대신 히든 가든의 구성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의자에 앉자 미피가 향긋한 차를 내준다.

“어? 이제 끝났나 보네요?”

“잘 봤어요, 이블아이!”

몇몇 낯이 익은 엘프들이 손을 흔든다.

잘 봤다? 이제 끝났다?

설마…….

“예. 우리도 이블아이가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는 걸 보고 있었어요.”

“NPC는 그런 것도 가능한가 보네요.”

“우리 세계를 바탕으로 하는 시나리오니까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그러니까 오자마자 우리들의 친구라고 반겨 준 거겠지.

숲에서 과일을 따고 약초를 채집한 후 돌아오는 엘프들과 드루이드.

멸망의 영향인가, 드루이드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게다가.

‘장로들은 보이지 않네.’

끝까지 함께했던 메디는 물론이고, 뒤에서 받쳐 준 파르갈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그거 알아요? 우리 세계도 이블아이가 한 것처럼 세계수를 지켜냈었어요.”

몰랐던 사실이다. 76층은 어디까지나 기존에 있던 사건의 재현.

원래는 어떤 식으로 일이 진행됐는지 알 수 없다.

“이블아이가 했던 것과는 달라요. NPC가 되어 사라지면 남은 이들은 전멸이었죠. 그래서 마지막으로 세계수로 몰려갔어요.”

“그때 절반이 넘는 인원이 희생됐고, 세계숲에 도달해서 또다시 많은 이들이 공물이 되어 사라졌죠. 우리 때는 당신 같은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공물. 메디가 마지막에 스스로를 공물로 바친 덕에 무사히 세계수를 정상화할 수 있었다.

이들도 비슷한 판단을 내린 모양.

“세계수는 정상화됐으나 멸망화 지수는 100점에 도달했고 마지막 선택지가 주어졌죠.”

“세계에 남을 것인지 NPC가 될지.”

“메디 장로님과 파르갈 장로님은 세계에 남기로 했어요. 누군가는 남아 있는 이들을 보살펴야 하니까요.”

“세계수의 씨앗을 키우기 위해서는 장로님의 힘이 필요하기도 했고요.”

이미 멸망을 겪은 이들에게 듣는 이야기.

“멸망화 지수가 100점이 넘어도 세계가 어떻게 되지는 않나 보군요.”

“몇 가지 바뀌는 게 있지만 크게 달라지지는 않아요. 실제로 이후로도 한동안 일원들이 살아갔어요.”

“그때 자라난 세계수가 하이누죠.”

희미하게 미소 짓는 휘카.

하이누, 내가 처음 만난 눈의 정령 여왕이자 세계수 퀘스트를 준 장본인.

설마 이쪽 세계 출신이었을 줄이야.

“멸망한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가요?”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보통은 말해 주지 않지만 당신에게는 해 주고 싶네요.”

미피가 몸을 가까이 기울인다.

“멸망화 지수가 100점에 도달하면 세계 일부가 탑에 종속돼요. 시나리오에 노인과 아이들이 있던 이유가 그 때문이죠. 탑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 객체지만 말이에요.”

미간을 찌푸렸다.

세계 일부가 종속된다?

탑을 구성하는 재료가 되어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NPC가 되어 올라가기로 한 이들은 히든 가든을 이어 이곳에서 영약과 약초를 공급하고 있어요.”

“등반하면서 얻은 영약 중에도 우리가 만든 게 있을걸요?”

시나리오 진행 중에 얼핏 들었다. 영약을 만드는 레시피가 있다고.

종족 특성을 살려 탑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양.

이제야 의문이 풀린다. 시나리오의 배경이었던 히든 가든이 어째서 NPC 집단으로 인정받고 있었는지.

멸망한 세계에서 넘어온 이들이 다시 뭉쳐서 만든 게 히든 가든이었다.

“잠깐이지만 세계가 더 나아질 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어요. 언젠가 우리에게도 다시 기회가 오겠죠.”

“모든 NPC에게는 기회가 남아 있으니까요.”

아마 계승자를 말하는 걸 거다.

계승자가 100층에 오르면 뭔가가 주어진다는 거 같으니까. 직접 겪어 본 이가 없어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지만.

“이건 우리의 선물이에요.”

“무사히 등반하기를 기원해요. 히든 가든은 당신을 지지합니다.”

[NPC 집단, 히든 가든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탑에서의 영향력이 커집니다.]

[칭호, 수상한 초대를 받는 자의 효과!]

[당신을 주목하는 이들이 생겨납니다.]

연달아 떠오르는 메시지.

헬 다잉 키친, 프램 버그, 대림원에 이어 히든 가든의 지지까지 받는다라…….

등반가 중에 나만큼 NPC와 인연을 맺은 사람이 있을까 싶다.

선물이라고 주어진 물건은 3개.

[괴목의 순수함 (S)]

-정화된 괴목에 맺힌 열매로 만들어진 영약!

-자연의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 귀하다는 S급 영약과.

[히든 가든의 레시피]

-다양한 약초와 영약의 레시피가 적혀 있습니다.

-돈으로는 구할 수 없는 귀한 정보!

이들이 사용하는 레시피에다가.

[히든 가든 특제 약초 꾸러미]

-히든 가든에서 생산한 최고급 약초 세트!

-최적의 상태로 약초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약초 전용 아공간 아이템. 약초도 종류별로 가득 들어 있다.

나도 포션을 만들면서 공부한 게 있어서 아는데 꽤 귀한 것들도 여럿 섞여 있다.

“잘 받겠습니다, 고마워요.”

“고맙긴요. 우리를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마워요.”

“시간이 다 됐네요. 이곳은 일반적으로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라서요. 당신의 세계는 무탈하기를 바랄게요.”

감사 인사를 하는 내게 휘카와 미피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히든 가든이 당신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칭호, 엘프의 친구가 생성됩니다.]

[칭호, 드루이드의 친구가 생성됩니다.]

두 종족의 친구가 되었다는 칭호를 끝으로 시야가 바뀌었다.

[히든 스테이지, 히든 가든이 닫힙니다.]

[시나리오 대기실로 전송됩니다.]

* * *

-파아아아앗!

빛이 터지며 전송된 대기실.

생명력 넘치는 숲이 사라지고 나타난 공간은…….

“이야, 이거 분위기가 너무 바뀌는 거 아니냐.”

“그에에.”

[대기실- 흑색 땅]

[77-79층 시나리오에 진입하기 전 휴식을 취하십시오.]

[적정 인원, 혹은 적정 시간이 충족되면 77층으로 전송됩니다.]

삭막하게 빛이 바랜 평지였다.

건조한 바람이 불어오고, 숯덩인지 뭔지 모를 것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건 화산인가. 갈라진 땅바닥 사이로 시뻘건 용암이 흘러나오는 것이 화산 지대가 맞는 거 같다.

대기실 한번 따뜻하게 주네. 화기 내성 덕에 그리 덥지는 않다만.

“오랜만에 목욕이나 하지 뭐. 가자, 덕춘아!”

“궤엑!”

시커먼 연기가 올라오는 구덩이. 웃옷을 벗고 용암이 고여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고.

-투화아악!

뜨끈한 용암에 들어서는 순간.

“누, 누구세요?”

선객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너는 누군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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