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화 비틀린 숲
히든 가든 일반 거주지 외곽.
엘프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예상치 못한 사고를 막기 위해서인지 우리는 외각에서도 조금은 동떨어진 곳에 머물고 있다.
위치가 위치인 만큼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껏해야 식재료와 생활용품을 가져다주러 오는 사람 몇 명 정도?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손님이 찾아왔다.
그것도 짐을 잔뜩 싸맨 채.
찾아온 사람은 2명. 둘 다 구면이다.
히든 가든의 장로인 메디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만난 기동 타격대장 휘카.
엘프들은 제법 수평적인 구조인지 메디도 커다란 가방을 짊어지고 있었다. 어디 피난이라도 가는 건가 싶을 지경.
당황스럽긴 하지만 일단 찾아왔으니 인사는 해야지.
“어… 안녕하세요?”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일단 짐부터 내려놓으세요. 무거울 거 같은데.”
다짜고짜 본론으로 넘어가는 메디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건물 내부, 중앙 홀은 거실로 쓰고 있는 중. 셰어 하우스 비슷한 느낌이라 평소 할 일이 없으면 멤버들 모두 거실에 나와 있었다.
예상치 못한 손님에 눈을 깜빡이던 녀석들이 자리를 내준다.
소파에 앉은 메디와 휘카에게 냥펀이 음료수를 슬며시 내밀었다.
목이 말랐는지 바로 마신다.
“부탁이라고 하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번에 마경으로 가게 됐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을 받고 싶어요.”
“마경이라면 몬스터에 점령당한 곳 아닌가요.”
제2 천계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서 그런가 마경이라고 하면 몬스터에 점령당한 땅이 먼저 떠오른다.
물론 이곳에서는 다른 의미로 쓰일지도 몰랐지만 표정으로 보나, 무장 상태를 보나 비슷하게 쓰이는 것 같다.
“마경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세계숲에 속해 있는 곳이에요.”
“세계숲이요?”
“아, 세계수가 있어서 이곳을 세계숲이라고 불러요.”
그것참 직관적이네. 세계수가 있는 세계숲이라.
살짝 의문이 든다. 저번에 말하기를 세계수의 영역에서는 게이트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기에 안전지대라고 불리는 것이고.
마경이 있을 리가 없다.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는 뜻.
무엇보다…….
“저희를 찾아온 이유가 따로 있으신 거 같네요. 다른 엘프 전사들도 많은데 이쪽으로 온 걸 보니까요.”
최근 침입자를 잡는 데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는 않았다.
호의를 받고는 있으나 어디까지나 우리는 외부인.
세계숲에 관련된 일을 한다는 건 내부적인 일이라는 건데.
“엘프들은 비틀린 숲에 가는 걸 꺼려요.”
메디를 대신해 휘카가 말을 이었다.
뒤이어 설명을 덧붙이는 메디.
“드루이드가 인위적으로 만든 마경이 비틀린 숲입니다. 드루이드는 저희와 같은 히든 가든의 일원이죠.”
“저주받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엘프들은 숲에 동화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요.”
종족 특성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거 같다.
그러니까 따로 살고 있는 거겠지만.
그곳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엘프가 없으니 우리한테 부탁을 하는 거고.
“드루이드와의 관계가 좋지는 않을 거 같네요.”
“나쁘지는 않아요. 엘프와 드루이드 모두 눈의 정령의 아이니까요. 힘들 때마다 서로 돕고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서로 방식은 달라도 세계수를 지키려는 마음은 같으니까요.”
종족이 갈릴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가족은 가족이라는 건가.
모르겠다. 이들만의 문화일 수도 있고. 어느 정도 뜻이 맞으니까 공동체를 이룬 걸 거다.
살짝 흥미가 생기기는 한다.
첫 번째 챕터의 이름부터가 ‘눈의 정령의 아이들’인 것도 있고.
비틀린 숲에도 한번 가 보는 게 좋을 거 같다.
다른 녀석들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 혼자 결정할 건 아니네요. 다들 어떻게 할래?”
난 소파에서 뒹구는 애들한테 물어봤고.
“하하하.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 돕고 사는 법. 전 언제든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에라이, 자식아. 속이 빤히 보여서 괜히 더 열받네. 후우. 됐다. 일단 난 찬성. 어떤 곳인지 봐 보기는 해야지.”
“비틀린 숲이라,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은데 이 멤버로 간다면 안전하겠징. 나도 갈래!”
녀석들도 관심이 있는 모양.
우리들의 반응에 메디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바로 떠나죠.”
“아직 준비를 못 했는데요?”
“개인 용품만 챙기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저희가 다 준비했으니까요.”
“도움을 받는데 짐까지 들게 할 수는 없죠. 가서 출발 준비하고 있을게요.”
메디와 휘카가 건물 밖으로 나섰다.
창문 너머로 보니 일단의 무리가 짐을 멘 채 수레를 챙기고 있다.
비틀린 숲에 가기로 결정된 지 얼마 안 된 거 같다. 그러니까 이렇게 갑자기 찾아왔지.
뭐, 상관없다.
“챙길 것도 딱히 없고.”
“그에에.”
대부분의 물건은 인벤토리와 아공간 아이템에 있는 상황.
탑에 있으며 생긴 습관인가. 쉴 때도 어지간하면 무장을 한 채로 있었다. 지금도 펠라인 세트를 착용하고 있는 중.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 장비 상태를 점검하는 것으로 준비는 끝났다.
가 보자. 비틀린 숲이 어떤 곳인지.
* * *
비틀린 숲으로 가는 인원은 많지 않았다.
장로인 메디와 휘카가 이끄는 기동 타격대 대원 5명. 우리가 전부다.
총 11명. 그리 많지는 않다.
- 덜그럭, 덜그럭
활발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기동 타격대 인원들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고, 메디 역시 손에 쥐고 있는 지도를 보며 조심스럽게 길을 안내했다.
“분위기 장난 없네.”
“그거 같지 않아? 막 귀신 나오고 들어가면 못 빠져나오는 그런 거.”
“아, 괴담에 나오는 숲 느낌?”
핥짝이와 냥펀이 속닥거린다.
둘의 말마따나 엘프들이 사는 곳과는 느낌이 다르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나무로 인해 주변이 어두웠으며, 나무들 역시 곱게 뻗기는커녕 마구 비틀려 있었다.
어떤 종류인지 알아볼 수도 없을 지경.
그뿐일까. 몬스터나 다를 바 없는 괴목이 지나가는 동물을 잡아먹고, 특이한 식생에 맞춰 진화한 듯 척 보기에도 괴상한 생명체들이 빠르게 돌아다녔다.
게다가.
[기묘한 압박감이 몸을 짓누릅니다.]
[환각이 나타납니다.]
[불안감이 증폭됩니다.]
[도주 심리가 발동됩니다.]
.
.
.
아직 초입부임에도 온갖 디버프가 발생했다.
[정신 보호 (SSS) Lv.3]
나야 별다른 타격이 없었지만.
“으으음.”
“까득.”
숲과 동화한다는 엘프들은 아닌 거 같았다.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입술을 깨문 채 침을 삼키는 이도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무기를 가지고 온 건 메디랑 휘카밖에 없네.’
우리를 제외하고 비틀린 숲으로 진입한 엘프 중에 무기를 쥔 사람은 둘밖에 없다는 것.
아무래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돌발행동 할 때를 대비하기 위함인 거 같다.
다르게 말하면 메디와 휘카는 어느 정도 버틸 만한 정신력과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거고.
“크르르르르.”
낮은 울음소리가 들린다.
어두컴컴한 숲속. 여러 쌍의 눈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몬스터?
- 차앙
바로 검을 뽑아 들었다.
그에 반응한 걸까 정체불명의 몬스터가 슬며시 다가왔다.
“저게 뭐야.”
“으, 키메라?”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점차 선명해지는 모습.
지금까지 봐 왔던 놈들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다.
냥펀이 키메라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게.
‘여러 종류가 섞이고 비틀린 거 같군.’
모습을 드러낸 녀석의 몸은 기괴했다.
늑대와 사람, 나무가 섞인 듯한 모습. 눈도 여러 개다.
얼굴에 2개, 몸통에 4개, 팔에도 몇 개 있는 거 같은데.
덩치도 커다란 것이 비주얼만 봤을 때는 최소 5성급은 되어 보인다.
먼저 처리하는 게 나을까. 슬며시 앞으로 몸을 기울일 때 메디가 팔을 들어 막았다.
“공격하지 말아요. 먼저 건들지 않으면 덤비지 않을 거예요.”
“비틀린 숲을 수호하는 크리쳐예요.”
크리쳐?
나도 안다. 프램버그에서 많이 봤으니까.
호문쿨루스와 같은 마법 생명체지만 영혼이 없는 존재들.
그때 봤던 크리쳐는 그래도 멀쩡한 모습이었는데 이들은 대체…….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 츠즈즈즈즈
[비틀린 크리쳐]
-비틀린 숲에 맞춰진 강력한 크리쳐.
-영혼 대신 정령이 깃들어 있습니다.
-당신을 반깁니다.
-당신을 두려워합니다.
-정령이 고통스러워합니다.
-정령이 고통을 감내합니다.
연달아 떠오르는 정보.
크리쳐가 맞기는 하다. 평범한 크리쳐는 아니지만.
인공 생명체에 정령이 깃들었다라. 정령이 육체를 얻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밝은 분위기의 정령과 괴상한 생명체의 조합이라. 기분이 묘하다.
“크르르. 끼이이잉.”
크리쳐가 몸을 낮추며 바닥을 기듯 내 쪽으로 다가온다.
엘프들의 눈이 떨린다.
‘그러고 보니 엘프들은 정령과 친하다고 했던가.’
메디를 처음 봤을 때도 정령이 주변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비틀린 크리쳐에 깃든 정령이라. 엘프들이 보기에 좋은 건 아니었다.
몇 명은 반사적으로 무기를 찾았지만 있을 리 없었다. 이곳으로 올 때부터 무장을 해제했으니까.
메디와 휘카 역시 긴장하며 크리쳐를 지켜보는 타이밍.
“우쭈쭈쭈. 일로 와.”
난 되려 앞으로 나아갔다.
슬며시 내민 손.
움찔하던 크리쳐가 킁킁 냄새를 맡더니 내 손에 머리를 비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칭호, 호문쿨루스의 친구가 은은히 빛납니다.]
-호문쿨루스가 우호적으로 다가옵니다.
-일정 수준 이하의 마법 생명체, 키메라와 크리쳐가 두려움을 느낍니다.
[칭호, 정령의 친구가 살랑입니다.]
-모든 정령들이 우호적으로 다가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칭호에 반응한 거 같다.
“헥헥헥.”
척 보기에도 기뻐하는 표정.
덩치는 산만 한데 은근 귀엽네.
모양은 좀 특이하지만 베이스는 늑대인 거 같고, 늑대도 개과 아닌가?
“앉아.”
“컹!”
“일어서!”
“커헝!”
“옳지 잘한다.”
짜식. 똘똘하네.
슥슥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어째 널 잘 따른다?”
“공블아이, 밖에 있을 때 조련사였엉?”
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핥짝이와 냥펀.
탈모맨은 눈을 반짝이며 크리쳐에 관심을 보였다.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법. 나도 강아지 좋아해!”
“크르르르르르!”
“워워. 진정해, 땡칠아. 지지기는 한데 해로운 건 아니야.”
보다시피 바로 경계를 했지만.
시무룩하게 뒤로 빠지는 탈모맨.
난 메디를 바라봤다.
“뭐, 문제는 없을 거 같네요. 쭉 가시죠.”
“당신은 대체…….”
“크리쳐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처음이에요.”
상당히 놀란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해도 난 잘 모른다.
비틀린 크리쳐가 어떤 성격인지, 평소에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니까.
내게는 말 잘 듣는 멍멍이 정도의 느낌일 뿐이다.
“크르르.”
“그에에.”
어째서인지 신경전을 벌이는 덕춘이와 땡칠이.
에헤이. 왜 이러실까, 우리 킹갓 덕춘 님.
더덕이 때도 그러더니만 뭐가 붙으면 서열 정리 먼저 하려 하더라.
슬며시 덕춘이의 머리를 긁어 줬다.
한번 봐준다는 표정으로 덕춘이가 고개를 돌리고.
“크릉.”
은근히 쫄렸는지 꼬리를 내린 땡칠이가 내 옆에 다가와 몸을 납작 낮췄다.
뭐랄까.
“타라고?”
“크헝.”
태워 준다는데 거절 필요는 없겠지.
처음 있는 상황이라 그런지 메디와 휘카도 별다른 말이 없고.
냉큼 위로 올라타자 땡칠이가 메디가 들고 있는 지도를 슥 보더니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직접 길 안내를 해 주려는 모양.
초반에는 지도를 살피며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던 메디도 어느 순간부터는 땡칠이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크르르르릉.”
“키히이이이익.”
“구구구. 구구.”
크리쳐들이 하나둘 기웃거리며 모습을 드러냈고.
어느새 땡칠이 위에 올라탄 내 뒤로 수십 마리의 크리쳐가 따라붙었다.
저 멀리 목적지로 보이는 곳.
“…이런 세상에나.”
보초로 보이는 드루이드 한 명이 입을 딱 벌렸다.
떨그렁.
충격에 놓친 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